- 신동아’는 지난 4월호에 ‘붓다필드’라는 마음수련단체의 지도자인 ‘게이트’의 비리를 고발하는 김종업 한국정신과학학회 이사의 글을 실었다. 이후 게이트 파문은 SBS TV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확산됐다. 이에 대해 붓다필드 운영위원장인 김소희씨가 김종업씨의 기고 내용과 이번 사태에 대한 붓다필드 측의 견해를 전해왔다. ‘편집자’
저는 붓다필드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소희입니다. 붓다필드는 지난호 ‘신동아’ 지면에서 김종업님이 ‘게이트 파문으로 본 사이비 수련행태’라는 글을 통해 비판했던 단체이지요.
우선 붓다필드에 관심을 보여줬던 ‘신동아’ 측에서 이번 사태로 겪었을 곤혹에 대해 송구스러운 마음을 전합니다.
저희 회원들은 필자(김종업씨)가 지적한 우려 사항들에 대해 마땅히 경계하고 살펴야 할 면이라고 받아들이면서 비교적 침착하게 현 사태를 관망하고 있습니다만, 거론된 사안들이 부정확하거나 논란의 소지가 크다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유사한 주장이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 의해 여러 달 동안 난폭하게 유포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그분들은 게이트님은 물론이고 그 부인과 어린 자녀들, 저를 포함한 잔류 회원들의 신상과 사생활, 실명과 직장 등을 거론하며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언사로 위협하고 인격적인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설사 누군가가 어떤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것은 전문가들이 법에 의거해 조심스럽게 가릴 일이지, 이렇게 맹목적인 사이버 테러를 통해 공개적으로, 혹은 은밀하게 사형(私刑)을 가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으며 실정법상으로도 중대한 범죄행위에 해당한다는 고언으로 붓다필드 회원들의 견해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다만 ‘사이비’ 논란과 관련하여 독자들께서 받았을 충격을 감안하면, 최소한 마음공부에 대한 사회적 오해를 풀어 줄 필요는 있다고 판단합니다.
저희는 김종업님의 관점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종업님은 마음공부나 깨달음을 신비주의적인 수련과 동일시하는 것이 아닌가 여겨질 정도로 단순화해 설명합니다. 물론 인간의 마음속에는 신비한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있고, 붓다필드 회원들 중에도 신비 능력을 추구하거나 갖춘 사람들이 드물지만 존재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신비주의를 ‘교리’로 만들고 그러한 능력을 사칭하는 자를 ‘교주’로 신봉하는 ‘신도’들이 존재하는지 여부일 것입니다.
붓다필드 회원이라면 예외 없이 동의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마음공부는 백인백색으로 다양하게 진행되는 사적인 여정이라는 것입니다. 게이트님은 본인의 수련 경험과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신비한 현상이란 인간의 본질적인 능력에 포함되는 것으로 누구나 계발할 수 있는 특기에 지나지 않다고 누누이 말해왔습니다. 그런 까닭에 게이트님과 소수의 회원이 전생을 비롯해서 차원과 시공간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는 대화를 나눌 때도 대다수는 ‘전설 따라 삼천리’를 듣는 듯한 태도를 취하거나, 진지하게는 과학과 이성이 해명하지 못하는 불가지(不可知)의 영역으로 남겨둘 뿐입니다.
다만 자신의 경험과 다르다고 해서 사이비로 매도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남아 있는 회원들이 신비주의에 현혹된 환자이거나 사회무능력자들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표현에 대해서는 수긍하기 어려우며, 회원들의 실상과도 명백히 다릅니다.
회원들이 시종일관 추구한 공부의 핵심은 외부로 향해 있는 시선을 내면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자각’이라고 부릅니다. 굳이 수련이라고 한다면, 결국 그 모든 것이 ‘나’의 선택에 기반한 창조행위임을 인식하고 그와 같은 창조적 본성을 가진 ‘나’에 대해 거듭 자각하는 것이 유일하고도 궁극적인 수련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육체와 감정, 생각과 이성이 고정불변의 절대적인 실체가 아님을 깨우치는 것이며, 이러한 깨우침을 철저히 본인의 내면에 적용하도록 권유받습니다.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에 걸친 노력을 통해 회원들은 각자의 내면에 쌓여 있던 고통이나 번뇌의 원인을 재구성하게 되고 자신을 무한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는 힘을 키우게 됩니다. 그 결과는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정신적인 치유, 불화하던 이들과의 화해, 내면의 억압이나 강박관념 털어내기, 사회생활에 대한 두려움의 극복, 세속에 대한 초연, 혹은 반대로 세속에 대한 도전적인 정열, 고급 수행에 대한 관심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저희는 게이트님으로부터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 일대 일의 사제 관계로 정신적인 신뢰를 약속하면, 그때부터 회원들은 내면 탐구에 박차를 가하는 경향이 있고 회원 상호간의 도움말에 대해서도 열린 태도를 보입니다. 치열한 자기 검토를 거쳐 의문에 종지부를 찍을 즈음 게이트님은 ‘인가’라는 형식으로 제자의 공부가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고 말해줍니다. 이것은 살아 있는 모든 인간 존재의 본성이 부처라는 기존 불교의 가르침과 제도를 차용한 내부적인 통과의례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붓다필드의 전통에 따라 ‘견성’이라고 받아들이며, 점차 견성은 진정한 마음공부의 시작일 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자각의 힘이 높아질수록 견성이나 인가는 자신과 대면하도록 유도하고 길을 열어주기 위한 형식적인 과정이었음을 이해하게 되고, 게이트님이 가리키는 마음공부의 방향과 그가 구사하는 노하우에 대해 친근한 존경심을 갖게 됩니다. 또한 견성자가 탄생할 때마다 우리는 인생의 한판 쇼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이들의 여정에 대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감동적인 축하를 보내며 유쾌하게 즐깁니다.
붓다필드는 개인이 추구하는 어떠한 방향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판단을 하지 않도록 권유합니다. 상이한 현상 아래로 동일한 본질이 회복되고 있음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에 개인들의 내면에 경쾌한 평온이 깃들며 그것이 붓다필드를 감싸는 밝고 따뜻한 에너지의 원천임을 회원들 각자 절실한 경험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체험이 가능하도록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끌어준 게이트님과 도반들에 대해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일상화된 문화입니다. 붓다필드 게시판은 회원들이 자신의 일상에서 경험하는 깨우침을 매일 나누고 감사하며 격려하는 글로 넘쳐납니다. 뉴질랜드를 포함해 국내 몇몇 지역에 우리의 손으로 마련한 소박한 센터는 세상을 살면서 흔히 접하기 어려운, 기이할 정도로 평온하고 아름다운 곳이기에 모진 폭풍우 속에서도 손쉬운 탈퇴 대신 붓다필드를 지키려는 노력과 용기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회원들이 보는 게이트님은 마음공부의 본질과 방법론에 관한 한 놀라울 정도로 일관된 목소리를 내는 사람입니다. 게시판 글이나 여러 형태의 대화, 개별적인 메일과 채팅 등을 통해 똑같은 이야기를 변함없이 정성스럽게 유머를 섞어가며 변주한다든가, 뉴질랜드 센터로 끊임없이 방문하는 손님들을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종일토록 접대하며 공부하도록 설득하는 모습, 기회가 닿는 대로 회원 개개인의 심리상태를 예리하게 관찰해 본인 스스로 깨닫고 극복할 때까지 반복적으로 짚어주는 집요한 애정 등은 스승으로서의 게이트님을 둘러싼 회원들의 풍성한 이야기 소재가 됩니다.
한 인간으로서 게이트님의 면모에 대해서는 세상의 모든 사람에 대해 그러하듯이 각자의 가치관과 취향에 따른 다양한 시선이 존재하며, 누구도 그가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완벽한 인격체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또한 자신의 실존을 살아내고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평범한 인간일 뿐입니다. 다만 특별한 지도력을 가진 리더를 열광적으로 숭배하는 사람은 어느 조직 사회에나 있게 마련이고, 붓다필드 안에서도 가끔 부작용이 나타났지만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시행착오를 극복해왔습니다.
그러므로 게이트님과 붓다필드 회원의 전체적인 관계를 종교적 도그마에 기초한 교주-신도의 관계로 묘사하는 것에 대해 저희 회원들은 동의하지 않으며, 생일파티에서 장난스럽게 치장하고 찍은 사진을 제공해 우스꽝스러운 교주의 이미지로 만들어낸 비판자들의 의도에 실소를 금치 못합니다. 또한 어린 날 학업을 배운 스승도 평생의 은사로 모심이 마땅한데, 성인이 돼 스스로 선택한 정신의 스승을 성급히 매도하고 부인하는 것은 양식에 어긋난다는 것이 현재 붓다필드에 잔류한 회원들의 생각입니다. 어느 쪽이든 진실은 차차 드러나겠지만, 무지막지한 시련을 겪고 있는 한 인간을 보면서 가슴이 아픈 것은 감출 길이 없군요.
김종업님에게는 기 수련이나 신비적 경험이 진지한 관심사일 수 있겠지만, 그것을 특권화하고 짧은 기간에 그쳤던 활동을 근거로 붓다필드를 통째로 비판하시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사이비라는 규정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무서운 족쇄인지 아는 사람들이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소수자를 이토록 성급하게 낙인찍는 것은 또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음을 고려해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회원 가운데 사이비(似而非), 즉 ‘비슷하지만 아니다’라는 화두를 깊이 있게 숙고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고 알고 있습니다.
김종업님이 지적했듯이 수행이나 마음공부는 현대인의 문화에서 더 이상 비주류가 아닙니다. 그 요체가 철학이나 문학, 에세이, 과학, 영화, 심지어 경영학과 처세론에 이르기까지 도처에 확산되어 있음을 확인합니다. 붓다필드 회원들은 우리 식의 공부를 통해 이토록 귀한 가르침이 기성 종교는 물론이고 인류의 선각과 동시대의 지성 속에 면면히 존재하고 있음을 비로소 열린 귀로 알아듣습니다. 붓다필드는 저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그 같은 가르침을 책 속에만 가두어두지 않고 스스로의 삶에서 실천적으로 적용하도록 독려하고 실험하는 하나의 장입니다.
붓다필드의 이러한 가능성에 일찍이 주목하면서 작지만 치열한 우리의 시도를 진지하게 격려해주신 ‘신동아’ 측의 안목에 존경과 감사를 표합니다. 금번 사태를 붓다필드의 성장통으로 여기고 시행착오를 슬기롭게 극복함으로써 저희의 경험이 전체 사회에도 긍정적인 자산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