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호

아프간 소녀 앗아간 ‘나비지뢰’

지뢰의 덫

  • 김영미│분쟁지역 전문 PD

    입력2012-10-19 10: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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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뢰는 인간이 만들어 설치했으나 인간이 통제하지 못하는 무기다. 80여 개 국가에 7000만 개가량이 묻혀 있다. 세계 곳곳에서 매주 약 500명의 사람이 지뢰를 밟아 목숨을 잃거나 부상한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외친다.
    • “지뢰는 우리 아이들을 죽이는 살인자. 지뢰를 묻는 사람은 모두 살인자.”
    “대인지뢰로 인해 가난한 사람이 생명을 잃고, 팔 다리가 잘려나가고, 땅이 황폐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어요. 나도 앙골라를 방문하기 전까지는 그러한 사실을 잘 몰랐습니다.”

    -1997년 6월 한 세미나에서 고(故)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가 한 말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1997년 8월 사망하기 전까지 대인지뢰 매설 금지 운동을 활발하게 벌였다. 헬멧에 방탄복 차림으로 앙골라의 지뢰 매설 지역에서 다리가 잘린 아이를 끌어안고 안타깝게 바라보던, TV에서 본 다이애나의 눈길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는 지뢰라는 무기가 인류에게 어떤 고통을 주는지 세계인에게 알렸다.

    지뢰는 개당 생산가가 5달러 수준의 싼 무기지만 뿌려진 지뢰 하나를 제거하는 데는 1000달러가 든다. 지금의 지뢰 제거 속도대로라면 지구에 묻힌 지뢰를 모두 치우는 데 1000년 넘는 시간이 걸린다. 앞으로 단 한 개의 지뢰도 새로 매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그렇다.

    지뢰 1000만 개 깔린 아프간



    지뢰가 뿌려진 곳은 대부분 전쟁이 벌어졌거나 진행 중인 곳이다. 한국도 지뢰 매설 국가 중 하나다. 지뢰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베트남에는 국토의 5분의 1이 넘는 지역에 80만t 넘는 지뢰와 불발탄이 남아 있다. 베트남 공병대 최고사령부 판 죽 뚜안 대령은 “베트남 전쟁이 수십 년 전에 끝났는데도 응에안, 하띤을 비롯한 전국 6만6000㎢의 방대한 지역에 엄청난 양의 지뢰와 불발탄이 남아 있다”고 밝혔다. 베트남에서 현재까지 10만여 명이 지뢰, 불발탄으로 인해 사망하거나 부상했다. 베트남 정부는 지뢰를 제거하고자 수천만 달러의 돈을 쏟아 붓고 있지만 지뢰와 불발탄의 대부분을 제거하려면 100년 넘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캄보디아도 국토 절반에 해당하는 지역에 지뢰가 남아 있으며 라오스 역시 전쟁이 남긴 상처로 신음하기는 마찬가지다.

    아프가니스탄은 전 세계에서 지뢰가 가장 많이 묻힌 나라다. 1980년대 옛 소련군이 매설한 지뢰 1000만 개가량이 전국 각지에 깔려 있다. 나라 전체가 지뢰밭인 셈이다. 어디에 얼마나 묻혔는지 안다면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될 텐데 소련군은 퇴각하면서 ‘지뢰밭’의 지도조차 남기지 않았다.

    필자가 아프가니스탄 취재를 시작한 2001년부터 현장을 카메라에 담을 때 가장 신경 써야 한 것이 지뢰밭을 잘 피해가는 일이었다. 길가에 차를 멈추고 잠시 쉴 때도 신경을 써야 한다. 지뢰가 깔려 있는 곳이 너무나 많아서다. 북부지방으로 갈수록 지뢰가 매설된 지역이 더 많다.

    아프가니스탄에선 다리가 하나인 사람을 만나는 게 어렵지 않다. 시장을 가든 관공서를 취재하든 다리 하나가 잘려나간 사람이 정말로 많다. “아프가니스탄인은 다리가 하나인 사람과 둘인 사람, 이렇게 두 종류로 나뉜다”는 끔찍한 농담을 하는 이도 있다. 다리가 하나인 사람은 대부분 지뢰를 밟은 이들이다. 이 척박한 나라에서 다리를 잃고 사는 삶은 고단하기 그지없다. 죽지 않더라도 일평생 멍에를 짊어져야 하는 운명이다. 지뢰는 이렇듯 비윤리적이고 잔인한 무기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차를 타고 북쪽으로 한 시간가량 가면 바그람이 나온다. 이곳에서부터 도로 가장자리에 흰색 페인트칠을 한 돌과 빨간색 페인트칠을 한 돌이 늘어서 있다. 흰색은 지뢰를 제거해 안전하다는 뜻이고, 빨간색은 아직 지뢰를 제거하지 못했으니 위험하다는 뜻이다. 아프가니스탄처럼 문맹률이 높은 나라에서 글자로 ‘지뢰가 있으니 위험하다’라고 적은 푯말을 만들어 세워놓은들 사람들은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빨간색은 지뢰, 하얀색은 안전이라는 식으로 위험을 알리는 것이다. 2002년 1월 지뢰 매설 여부를 알리는 표시를 촬영하려고 차에서 내렸을 때의 일이다. 외국인이 카메라를 든 모습이 신기했던지 10여 명의 아이가 몰려들었고 현지 통역인은 아이들에게 흰색 돌이 있는 곳에만 발을 디디라고 일러줬다. 갑자기 필자 뒤쪽에서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놀라 뒤를 돌아보는 순간 흙먼지가 주위를 뒤덮었다. 다섯 살가량 된 아이가 빨간 돌과 흰 돌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지뢰를 밟은 것이다. 아이는 몸이 여러 조각으로 찢겨 사망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지뢰를 제거하는 민간단체 OMAR를 불러 시신을 수습할 때까지 누구도 죽은 아이 근처로 가지 못했다. 아이를 살피러 가는 사이 또 다른 지뢰가 터질 것이 염려됐기 때문이다. 같은 무게의 돌을 얹거나 뇌관을 제거해 사람을 살린다는 것은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였다. 혼비백산한 필자와는 달리 아프간 아이들은 무덤덤했다. 지금껏 많이 겪은 사건이어서 공포에 대한 내성이 생긴 모양이다.

    어린이 노리는 나비지뢰

    1980년부터 지금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지뢰를 밟아 사망한 사람은 10만 명이 넘는다.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옛 소련군은 항공기를 이용해 수백만 개의 플라스틱 지뢰를 공중에서 살포했다.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 곳곳에 대량으로 투하한 지뢰 중 나비지뢰 (PFM-1, Butterfly Mine)라는 게 있다. 크기나 모양이 꼭 나비 모양 장난감처럼 생겨 붙은 이름이다. 평야나 밭에 뿌려진 이것이 지뢰인 줄 모르는 아이들이 지금도 해를 입곤 한다. 이 지뢰는 충격을 가하거나 밟아서 터지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만지작거리면 일정 시간이 흐른 후 터지는 방식이다. 장난감이 귀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린이들은 나비처럼 생긴 신기한 모양 때문에 호기심에 이 지뢰를 만지작거리게 된다. 이 나비 지뢰는 본래 목적 또한 어린이를 살상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죽여 사람들이 소요하도록 만드는 극도로 비인간적인 살상 및 심리전 무기다. 이 지뢰를 아프가니스탄의 들이나 평야에서 카메라에 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OMAR에서 일하는 샤히르 씨는 “지난 10년간 우리 단체가 제거한 지뢰는 어마어마한 수량이지만 그 정도로는 제거했다는 게 티도 나지 않을 만큼 많은 지뢰가 뿌려져 있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카불에서 운영하는 한 정형외과 클리닉은 지뢰 사고로 다리를 잃은 환자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환자들은 마치 발레 연습할 때 사용하는 바처럼 생긴 두 줄의 봉을 잡고 의족으로 걷는 연습을 한다. 지뢰 및 폭발물 사고가 잦은 탓에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원하는 의사가 정형외과 전문의다. 카불의 정형외과 클리닉에서 일하는 압둘 카림 씨는 무릎 아래가 절단된 사람에게 의족으로 걷는 법을 가르치는 데 5일이 걸린다고 말했다. 무릎 위까지 절단된 사람은 2주 정도 연습해야 걸을 수 있다. 그는 “클리닉을 찾아오는 사람의 70~80%가 지뢰로 부상한 사람”이라고 전했다. 지뢰를 밟고 한쪽 다리를 잃은 15세 소년 오마르는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폭발 때 정신을 잃고 깨어보니 눈앞에 잘려나간 내 다리가 있었다”고 말했다. 오마르는 적십자에서 제공한 의족으로 걸음마 연습을 하고 있었다.

    앙골라는 아프리카에서 지뢰가 가장 많이 매설된 나라다. 앙골라에 묻힌 지뢰는 1975년 3월~1995년 2월 벌어진 앙골라 내전이 남긴 유산이다. 앙골라에는 최대 900만 개의 지뢰가 깔려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구가 1000만 명 정도이니 한사람 앞에 하나꼴로 지뢰가 매설된 셈이다. 내전 이후 앙골라에서 지뢰로 신체의 일부를 잃거나 목숨을 잃은 피해자는 8만여 명에 달한다. 아프가니스탄과 마찬가지로 어느 마을에 가더라도 목발을 짚고 다니거나 팔이 하나 없는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앙골라 국민의 대다수가 농업이나 목축업, 광업에 종사하는데 지뢰밭이 많다보니 생계에 엄청난 지장을 준다. 수도 루안다에 살고 있는 알베르도 씨는 내륙도시인 후암보가 고향이다. 그는 20년 넘게 고향을 찾지 않고 있다. 고향에 돌아간들 지뢰 탓에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앙골라가 보유한 비옥한 농토의 상당 부분이 이렇듯 지뢰 탓에 방치돼 있다. 다이아몬드, 목재와 같은 천연자원을 개발할 때도 지뢰가 장애물이다.

    코끼리도 멸종 위기

    앙골라의 지뢰 피해자 8만 명 중 절반은 비전투원이다. 군인이 아닌 지뢰 피해자 가운데 여자와 어린이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2008년 앙골라 수도 루안다에서 특별한 미인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 참가한 여성들은 여느 미인대회 참석자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으나 다리가 하나뿐이었다. 지뢰로 다리를 잃은 여성만 참여한 미인대회다. 대회에 참가한 대부분의 여성은 어릴 때 지뢰를 밟아 절망 속에 살아왔다. 이들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나섬으로써 자신감을 일부 회복했으며 이들의 모습은 전 세계에 지뢰의 심각성을 알리는 하나의 계기가 됐다.

    인간만 지뢰를 밟아 희생당하는 게 아니다. 앙골라에선 야생동물 일부 종(種)이 멸종 위기를 맞고 있다. 내전 기간 10만 마리 넘는 코끼리와 물소, 버팔로가 죽었다. 앙골라의 상징인 검은 영양마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사람도 피해가기 힘든 지뢰밭에서 덩치 큰 코끼리, 물소, 버팔로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발이 잘린 동물은 굶어 죽기 십상이다. 최근 앙골라는 국립공원의 코끼리 수가 모자라자 다른 아프리카 국가로부터 코끼리를 사들였다. 앙골라에서는 현재 지뢰 제거를 통한 코끼리 이동경로 복구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도 소문난 지뢰 매설 국가다. 한반도에서 대인지뢰가 사용된 건 6·25전쟁부터다. 이후 휴전선 일대에 엄청난 양의 대인지뢰가 매설됐다. 휴전협정이 체결되기 전 중공군의 남하를 막고자 미군이 대인지뢰를 묻었다. 현재 비무장지대에는 100만 개 이상의 대인지뢰가 묻혀 있다. 매설 밀도로는 세계 최대다. 휴전 이후 지뢰 탓에 끊임없이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강원도가 사고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2010년 12월 13일 경기 연천군 백학면의 어린이 놀이터에서 39개의 지뢰가 발견된 일도 있다. 대인지뢰 10개, 대전차지뢰 29개, 수류탄, 고폭탄, 대전차용 철갑탄을 발굴해 제거했다. 이곳의 지뢰는 육군이 1960년대 초 매설한 것이다. 1952~2011년 한국에서 지뢰로 인한 사망자는 289명, 부상자는 253명에 달한다.

    그렇다면 지뢰는 누가 제공하는 것일까. 6월 발표된 국제앰네스티 보고서는 중국이 남수단 반군에 대전차지뢰를 제공해왔다고 밝혔다. 중국이 제공한 대전차지뢰는 남수단 유니티 주의 도로에 매설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앰네스티는 각국 정부가 분쟁 국가에 무기판매를 중단해 인권이 침해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이와 관련해 공식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2010년 7년 만에 ‘최악의 내전’이 종식된 수단은 현재 국토 곳곳에 깔린 지뢰 탓에 재건 사업이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

    이탈리아 군수산업체 발셀라 메카노테크니카는 세계 최대 지뢰 제조사다. 이 회사는 탐지기로 찾아내기 어려워 제거하기조차 힘든 지뢰를 개발했다. 지뢰에 센서를 달아 조금만 기울어도 폭발하거나, 제거방지용의 별도 뇌관을 따로 설치해 지뢰를 제거하려는 순간 폭발하는 기능을 탑재한 지뢰도 판매한다. 특히 이 회사가 개발한 플라스틱 지뢰는 쉽게 부식하지 않는데다 금속탐지기가 찾아낼 수 없다. 수십 년간 기후에 영향을 받지 않고 기능을 유지한다고 이 회사는 광고한다. 이 회사의 거래처는 당연히 전쟁과 내전이 벌어진 지역이다. 일부 국가와 기업은 이렇듯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수십 년간 전 세계에 지뢰를 공급해왔다.

    당구 큐대로 지뢰 제거

    아프가니스탄의 OMAR 지뢰제거팀은 매설된 지뢰를 제거하고자 금속탐지기와 개, 지뢰폭파장치, 제초제 등을 사용한다. OMAR 바그람지부에서 일하는 나이크 모하메드 씨는 4개 팀을 이끌고 매일 지뢰 제거 작업을 벌인다. 그의 일과는 오전 8시 작업 인부들에게 장비를 나눠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헬멧과 보호복, 금속 탐지기, 모종삽이 그것이다. 장비를 받은 인부들은 구역을 나눠 금속탐지기로 지뢰를 탐색한다. 그러다 ‘삐~’하는 신호음이 울리면 조심스럽게 모종삽으로 땅을 파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파다가 간신히 지뢰를 발견하면 그 자리에서 폭파를 시킨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작업이다. 그들이 입고 있는 보호 장구도 조잡하다. 모하메드 씨는 지난 10년간 지뢰 제거 작업 중 47건의 사고가 발생했으며 지금껏 그의 팀원 8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3㎡의 넓이 지역에서 지뢰를 발견해 제거하려면 두 사람이 5시간 30분 동안 작업해야 한다. 지뢰를 제거하는 일로 먹고사는 인부들의 일당은 10달러 내외다.

    아프간 소녀 앗아간 ‘나비지뢰’

    2010년 12월 경기 연천군 백학면 전동리 민간인출입통제선 내 임진강 지류 사미천 변에서 육군 25사단 비룡부대 장병들이 북한에서 흘러온 목함지뢰를 탐지기로 찾고 있다.

    지난해 북아프리카, 중동 민주화 혁명이 리비아를 휩쓸 때 무아마르 카다피 당시 국가원수의 친위부대는 반군이 서부 도시 미스라타를 장악하자 도시 외곽에 대인지뢰를 매설하기 시작했다. 카다피군은 자신들의 로켓탄 발사기에 반군이 접근하는 것을 막으려고 미스리타 주변에 지뢰를 집중 매설했다. 이후 카다피를 축출한 반군은 과거 군 폭발물 처리반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모하메드 투르고멘 씨 등 3명에게 지뢰 제거 업무를 맡겼으나 인력과 장비가 부족해 작업이 쉽지 않았다. 지뢰제거팀에 금속탐지기를 지급했지만 카다피군이 매설한 지뢰는 플라스틱 재질의 신제품이어서 무용지물이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을 쓴다고 했다. 지뢰제거팀은 원시적 방법으로 지뢰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낙타가 지뢰를 밟아 죽은 장소를 중심으로 당구 큐대를 이용해 지뢰를 찾아낸 것이다. 이들은 매설 지역을 천천히 걸으면서 큐대로 앞쪽의 땅을 가볍게 찌르다 지뢰가 발견되면 조심스럽게 땅에서 그것을 파낸 뒤 기폭 장치를 분리하는 방식으로 지뢰를 제거했다. 투르고멘 씨는 “아이들이 이곳에서 놀다 지뢰를 밟아 숨질 수 있기에 위험하더라도 지뢰를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지뢰감독그룹(MAG)의 션 서튼 언론담당관은 “이런 방식의 지뢰 제거는 매우 위험하다. 전문 장비와 인력을 지원해야 할 것 같다. 현재까지 지뢰제거팀의 누구도 다치지 않은 것은 기적이다”라고 말했다.

    스리랑카는 2009년 5월 타밀 반군과의 내전을 끝냈으나 마을, 숲, 농지에 매설된 지뢰가 지금도 사람들의 다리와 목숨을 노리고 있다. 내전 종료 이후 올해 6월까지 스리랑카 국방부는 약 50만 개의 대인지뢰와 1300여 개의 대전차지뢰, 40여만 발의 불발탄을 회수했다. 지뢰 제거 작업에 전문 인부 약 3600명을 배치했는데, 그중에는 이 작업을 위해 훈련된 전쟁미망인도 포함돼 있다. 내전 때 남편을 잃은 이들이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더는 나오지 않게 하겠다는 명분과 가족 부양을 위한 일자리를 얻고자 이 일에 뛰어든 것.

    지뢰를 주로 묻는 지역은 국경지대다. 한국에서 지뢰의 대부분이 묻힌 곳도 휴전선 부근이다. 칠레와 페루가 맞닿은 국경 지역도 사정이 비슷하다. 두 나라는 1970년대 치열한 국경 분쟁을 겪었다. 두 나라는 국경을 형성하는 강의 양안에 엄청난 양의 지뢰를 매설했다. 올해 2월 이 지역에 홍수가 발생하면서 지뢰가 지면으로 드러났다. 양국은 이 지역 통행을 막고 매설된 지뢰의 공동 제거를 추진하고 있다. 40년 전 죽일 듯 다툰 이들의 후손들이 선대가 묻은 지뢰를 함께 제거하기로 한 것이다. 한반도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까?

    이라크는 1980~1988년의 이란-이라크 전쟁, 1991년 걸프전, 2003년 이라크전을 겪었다. 이라크엔 2000만 개의 지뢰가 매설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1991년 이후 이라크에서 지뢰 폭발로 인한 사망자는 어린이 2000명을 포함해 8000명에 달한다. 특히 이란·이라크 국경지역에서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이 지역의 일부 가난한 주민들은 지뢰를 캐서 이를 무장단체에 파는 방식으로 돈벌이를 하기도 한다. 이라크는 2018년까지 전국에 산재한 지뢰를 제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비용 문제로 제거 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1997년 12월 3일 국제사회는 캐나다 오타와에서 대인지뢰전면금지협약(오타와 협약)을 맺었다. 156개 회원국이 이 협약에 서명했으며, 한국은 북한과의 대치라는 특수한 안보 상황 때문에 이 협약에 참여하지 않았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주요 군사강국을 비롯한 36개 나라도 협약에 서명하지 않았다. 이 협약 서명과 관련해 버락 오바마 정부는 2009년 전임 정부의 정책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이 협약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로 내건 것은 ‘한반도(주한미군)의 예외적 상황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러시아 등은 미국이 가입하지 않으면 협정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구실로 가입하지 않고 있다.

    “지뢰 묻는 이는 모두 살인자”

    카불에서 자동차로 2시간가량 걸리는 자불사라지 마을에는 매주 화요일 오후 카불에서 손님이 온다. 이들은 OMAR에서 자원봉사하는 여성들이다. 그들이 하는 일은 각종 지뢰의 모습을 보여주며 주의를 환기하는 것이다. 여성과 아이 100여 명이 초등학교 교실에 모여 있다. 다들 하늘색 부르카(아프가니스탄 전통의상.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리는 몸 가리개)를 쓰고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오늘 강의를 맡은 35세의 여성 마리암 씨가 말한다.

    “저의 친척 아이 중 지뢰를 밝아 죽은 녀석이 5명이나 됩니다. 모두가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아이들이에요. 아이들은 지뢰가 뭔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강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뢰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리려고요. 알면 조심하게 돼 사고가 덜 나겠지요.”

    그가 지뢰가 그려진 그림을 칠판에 붙이며 설명한다.

    “여러분 여기 보이는 지뢰는 꼭 반찬통처럼 생겼어요. 색깔은 군인이 입은 옷과 비슷하지요. 만지거나 건드리면 폭발해 눈을 다치고 다리가 잘립니다.”

    강의를 듣는 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강사의 얼굴을 쳐다본다. 마리암 씨가 덧붙여 말한다.

    “어머니 여러분. 이 그림 잘 보셔야 해요. 아이들은 우리가 지켜야 하잖아요. 나비처럼 생긴 이 물건을 절대 줍지 말라고 가르치세요. 장난감이 아닙니다. 아이들을 죽이는 살인 무기입니다.”

    그가 만든 구호를 참석자들이 함께 외친다.

    “지뢰는 우리 아이들을 죽이는 살인자.”

    “나비 모양, 반찬통 모양, 그릇 모양의 물건은 모두 지뢰다.”

    “지뢰를 묻는 사람은 모두 살인자.”

    참석자들의 목소리가 우렁차다. 이 외침이 지구를 돌아 지뢰를 묻는 이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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