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호

親盧-非盧 ‘책임론’ 핵분열하나

대선 패배 야권은 어디로

  • 이종훈 | 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최영철 기자 | ftdog@donga.com

    입력2012-12-28 1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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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노 중심 권력구도 당분간 변화 없을 듯
    • 안철수 책임 공방 벌어지면 이합집산 예상
    • 안철수, 비노와 합쳐 독자 신당 추진 가능성
    • 친노+범야권은, ‘연합신당’ 만들 수도
    親盧-非盧 ‘책임론’ 핵분열하나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2012년 대선 당일인 12월 19일 밤 기자회견을 열고 “패배를 인정한다. 모든 것은 저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 후보가 패함으로써 민주당과 범야권은 시계(視界) 제로의 카오스 상황을 맞았다. 당장 민주통합당에선 대선 패배의 책임론이 거세게 일 것으로 보인다. 누가 책임질 것인지를 놓고 공방이 벌어지고, 책임질 대상이 정해진다면 누가 이 누란의 상황을 정리하고 흐트러진 당의 체제와 기강을 세울지도 의문이다. 문재인 후보는 12월 19일 밤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모든 것은 저의 책임이지, 민주진영 전체의 책임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 말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해석하기 따라서는 이번 대선에서 자신의 친위대 역할을 해온 친노계에 사면장을 주기 위한 포석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1차 책임은 문재인 후보가 져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 안에서 정작 주류 친노계 측이 먼저 안철수 전 후보를 상대로 책임론 포문을 열 것으로 보인다.

    후보 사퇴 이후 문 후보 지원이 왜 늦어졌는지, 문 후보 유세 지원에 왜 그렇게 소극적이었는지, 문 후보를 지지한다고 해놓고 왜 새 정치에 대한 지지와 투표 참여만 호소했는지, 그래서 결국 자신의 정치만 하려 든 게 아닌지,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의 네거티브전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움으로써 결국 자신을 지지했던 세력의 문 후보 지지 편입을 막은 것은 아닌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선은 패배했지만 민주당의 권력구도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친노계는 대선 이후에도 수적으로 주류이며 논리로는 어디 가도 밀리지 않는다. 실제 할 말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적어도 당내에서는 이런 안철수 책임론이 먹힐 여지가 많다.

    다수의 친노계가 이길 것



    반면, 비노계 비주류는 이런 공세에 맞서 이번 대선의 패인(敗因)이 친노계가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은 데에서 비롯됐다고 맹공을 퍼부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당 쇄신을 제대로 하지 못해 대선에 패배했다는 주장을 펼칠 것이다. 4월 총선거 패배 이후 친노계 기득권 비판론이 등장했을 때, 인적쇄신론이 제기됐을 때, 제대로 된 당 쇄신만 했더라도 대선에서 과반수 패배라는 아픔은 없었을 것이라며 친노계의 목을 조를 것이다.

    대선 과정에서 정국 주도권을 상실한 이유가 새누리당보다 정당 쇄신 측면에서 뒤처진 탓이라는 비판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해찬 전 대표 등 친노계의 인적 쇄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것도 시점을 놓침으로써 결국 단일화 과정에서도 안철수 전 후보 진영과 분란만 야기했다는 지적이다. 결국 친노계 기득권 때문에 안 후보가 좌절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후보 사퇴 이후 안 전 후보 지지 세력의 급속한 이탈을 가져왔다는 비판이 가해질 수 있다.

    안 후보가 유세 지원에 나선 이후에도 이탈한 지지 세력을 다시 끌어와야 했지만 새누리당과 마찬가지로 네거티브전에 주력함으로써 차별화에 실패했고 그들의 재흡수에 실패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두 옳은 말이지만 현실 정치의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비노계 비주류의 목소리는 묻힐 가능성이 높다. 비노계 비주류는 어쨌든 민주통합당에서 소수이기 때문이다.

    친노계 대선 패배 잘된 일?

    어떻게 보면 친노계는 이번 대선 패배가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만약 문 후보가 당선되고 안 전 후보가 새정치 공동선언을 근거로 국민연대를 주도하며, 이를 발판으로 신당 창당을 주도한다면 그들에게는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 무엇보다 다음 총선거 때에 공천을 받을 수 있을지 불확실해지기 때문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민주통합당을 흡수하는 방식의 신당이 창당되면 친노계가 공천을 받을 가능성이 거의 희박해진다.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안 후보가 친노계의 인적 쇄신을 강력하게 원한 사실을 그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정권 재창출과 국회의원직 유지, 둘 중 어느 것을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친노계 대부분은 마음속으로 후자라고 답할 가능성이 크다. 문 후보의 대선 승리로 여당 국회의원이 됐지만 다음에는 금배지를 달 수 없다면 차라리 야당 국회의원을 하면서 다음 기회에도 금배지를 달기를 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회의원 임기는 앞으로도 3년 이상 남았다. 공격받는 여당 국회의원보다 공격하는 야당 국회의원이 더 나은 측면도 없지 않다. 더욱이 거대 야당 아닌가? 책임을 져야 하는 여당보다 책임이 덜한 야당. 나쁘지 않다.

    미궁 속에 빠질 대선 패배 책임론 그리고 차라리 잘된 일이라는 민주통합당의 주력부대 친노계의 인식은 그들을 게으르게 만들 것이다. 정치 쇄신이 필요하지만 서두르지 않을 것이고 정당 쇄신이 필요하지만 모르는 척할 것이고, 인적 쇄신이 필요하지만 애써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다. 문 후보가 대선 패배 이후에도 건재하다면 혹시 모를 일이다. 하지만 1차적 책임을 지고 뒷전으로 물러난 상황에서 그가 당 운영에 개입할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당은 결국 여전히 친노계의 관리하에 놓일 것이다.

    친노계는 문재인과 안철수 사이에 맺었던 새정치 공동선언을 자신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의제라고 보지 않는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단일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받아들였던, 하지만 단일화 효과도 보지 못한 마당에 굳이 지켜야 할 이유가 없는, 개인 문재인과 개인 안철수 사이에 맺은 계약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대선에서 문 후보가 승리했다면 또 모르겠지만 계약 당사자인 문 후보가 그 계약에도 불구하고 쓴맛을 본 마당에 당사자도 아닌 그들이 새 정치의 약속을 지켜야 할 이유는 없다. 따지고 보면 결국 자신들의 목을 칠 수도 있는 그 계약을 지킨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할 대안은 ‘당분간은 이대로’일 가능성이 높다. 만약에 새누리당이 정치 쇄신 요구를 강력하게 하고 나온다면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선에서 승리한 당당한 여당 새누리당이 정치 쇄신을 서두르지 않을 수도 있다. 선거 국면에서 내놓은 정치쇄신안은 다 어디로 갔느냐고 말할 순 있지만 우리 정치의 현주소는 여기까지다. 그런 생각을 한다면 순진한 사람이다. 새누리당이 정치쇄신안을 내놓은 것은 결국 안철수 바람을 잠재우는 데 필요해서였을 뿐이다. 단일화 국면에서 안철수 지지 세력을 한 명이라도 더 편입시키려고 급조했던 것이다.

    안철수와 비주류의 새판짜기

    親盧-非盧 ‘책임론’ 핵분열하나

    안철수 전 후보는 12월 19일 투표를 한 후 오후 비행기편으로 미국으로 떠났다. 그는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깊이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진정성이 떨어지는 정치쇄신안은 가끔 야당 공세용으로 활용이야 하겠지만 정말 야당이 이것을 받아들이길 원치는 않을 것이다. 새누리당의 주류 친박계 역시 ‘당분간은 이대로’ 대통령을 만들어낸 세력으로서 그 권력을 향유하려 할 것으로 봐야 한다. 혹시 국정운영 과정이나 새누리당 내에서 또 다른 비리 문제가 불거지면서 비판 여론이 일기 전까지는 그렇게 보는 게 정확하다. 그렇다면 답은 분명해진다. 민주통합당도 새누리당도 다음 총선거가 있을 2016년까지는 이대로 가길 원한다고 봐야 한다.

    주류 친노계가 책임공방을 벌이며 자신들과 호남 구세력 중심의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는 행태에 대항해 비주류 일각에서 안철수 전 후보를 상수로 놓고 야권의 새판짜기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도 있다. 민주당 비주류만을 흡수한 신당 창당설이 꾸준히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안 전 후보는 “단일화 이전 친노 그룹의 계파주의를 맹비판하면서 이해찬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 등의 용퇴를 직간접적으로 요구했고 민주당 비노계도 이에 동조하는 반응을 보였다.

    안 전 후보가 대선 당일 미국으로 떠난 것과 관련해 신당 창당 구상을 하기 위해서라는 설도 나온다. 그는 캠프 해단식에서 “국민이 만들고 닦아준 새 정치의 길 위에 저 자신을 더욱 단련해 항상 함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출국에 앞서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깊이 고민해보겠다”고 말해 돌아오면 정치인 안철수로서의 제2막을 어떻게든 시작하겠다는 뜻을 암시했다. 앞으로 어떤 형태로든 뜻을 같이하는 세력의 규합, 즉 정치세력화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만약 신당이 창당된다면 ‘합리적 보수, 온건적 진보’라는 안 전 후보의 평소 정치 성향이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대선 패배 공방에 지친 민주당 비주류는 물론, 새누리당에서도 이탈자가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대선에서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고 박 당선인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온건 보수 성향의 의원과 ‘월박(越朴)’을 하지 않고 남은 MB계 의원 일부가‘안철수 신당’이 생기면 옮길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문제는 안 전 후보가 이들을 받아주느냐 여부다.

    ‘안철수 신당’이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안 전 후보가 전면에 나설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안 전 후보가 ‘숙고(熟考)’하는 스타일인데다 총선과 지방선거 등 대규모 선거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親盧-非盧 ‘책임론’ 핵분열하나

    대선 과정에서 민주통합당 당 대표에서 물러난 이해찬 의원. 하지만 아직 친노계의 좌장으로서 그의 힘은 막강하다.

    만약 민주당 비주류가 대선 패배 책임공방 과정에서 탈당 움직임을 보일 경우 민주당의 새판짜기는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일괄 사퇴한 이해찬 전 대표 등 구 지도부는 정치 2선으로 밀려날 수 있다. 문 후보가 11월 18일부터 겸해온 당대표 권한대행직을 내놓을 경우 당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되면서 권력투쟁이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해찬 전 대표 등 친노세력과 호남세력이 지도부 재입성을 시도한다면 비주류의 신당 창당 움직임은 더욱 빨라질 수 있다. 2013년 1월 중순쯤 열릴 것으로 보이는 새 지도부 선출 전당대회가 민주당의 권력지도와 안철수 신당의 탄생 가능성을 가늠하는 분수령이 될 것은 분명하다.

    가능성은 작지만 친노세력과 비노세력이 대선 패배 책임공방을 벌이는 대신 문 후보와 안 전 후보가 대선 과정에서 이룬 새정치 공동선언 합의를 기초로 ‘국민연대’가 출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안 전 후보를 중심으로 한 국민연대가 ‘안철수 신당’ 창당으로 가는 길이다. 신당 창당은 똑같지만 민주당 친노세력과 호남세력, 건전보수 등을 모두 포용한 신당인 셈. 이 경우 이해찬 전 대표, 박지원 전 원내대표 등 구세력은 설자리가 없어진다. 이 신당에는 자유로운 건전 보수까지 포함된다. 만약 국민연대를 기초로 한 안철수 신당이 창당된다면 개헌을 통한 의원내각제 도입 또는 4년 중임제 개헌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대’ 계속 가나

    구세력의 입김이 아직 거센 상황에서 오히려 문 후보가 대선 승리를 전제로 제시했던 범야권 신당인 국민정당의 창당 가능성도 점쳐진다. 민주당과 선거기간 범야권 공조기구였던 시민사회 인사 중심의 ‘국민연대’, 그리고 일부 중도 보수진영이 ‘헤쳐모여’식으로 연합신당 창당을 모색하지 않겠느냐는 설이다. 이 경우 주도권이 민주당 측에 주어진다면 안 전 후보는 독자행보를 취할 가능성이 높으며 국민정당 연합신당은 ‘도로 민주당’이 될 공산이 적지 않다.

    만약 안 전 후보와 민주당 비주류가 새 정치를 전면에 내걸고 혼돈에 빠진 야권을 추스르고 재건할 ‘구원투수’를 자임하며 이 범야권 신당에 합류한다면 야권 전체를 아우를 중심축으로 부상하며 야권의 재편 작업도 질서 있게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이지만 반면, 친노계가 비토를 하고 건건이 반대를 한다면 범야권 신당 흐름과는 별개로 독자노선을 택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상황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안 전 후보로의 원심력이 강화되면서 범야권 신당 창당 작업에도 제동이 걸리고 안 전 후보에게 우호적이었던 민주당 내 비주류 그룹을 중심으로 집단이탈이 현실화되면서 ‘안철수 신당’이 탄생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내 비주류의 대표주자 격으로 안 전 후보의 사퇴 이후 단독 회동을 가졌던 손학규 상임고문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도 관심을 모은다. 일각에선 친노 그룹과 대척점에 서 있던 안 전 후보와 손 고문 측이 연대를 본격 모색하지 않겠느냐는 시각도 있다.

    어쨌든 민주당의 대선 패배는 안 전 후보의 귀국을 재촉할 것으로 보인다. 대선 판도에 지대하게 영향을 준 안 후보는 민주당 내의 책임공방과 관련 없이 범야권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할 조타수가 되어 있다. 정치공학적 시각에서 바라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안 전 후보는 민주당의 패배로 ‘꽃놀이패’를 쥔 것일 수도 있다. 대선에는 실패했지만 야권에서 안 전 후보의 입지는 더욱 강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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