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호

인터뷰

‘아웃사이더’ 동양철학자 임건순

“조선으로의 퇴보를 멈춰라”

  • 입력2018-05-02 17: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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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권의 동양철학 저서 펴내고 대중 강연…“젊은 도올 보는 듯”

    • 상위 10% 중간지배층이 독재하는 ‘조선스러운’ 대한민국

    • “노무현은 과대평가, 노태우는 과소평가”

    • “열 명에게 욕먹더라도, 한 명에게 자극되는 글 쓰고파”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회자된다. 인문·사회학 분야가 천대받는 세태의 방증이다. 문(文)·사(史)·철(哲)로 대표되는 순수 인문학 처지는 더 어렵다. 

    한 남자가 있다. 이름은 임건순(37). 동양철학자 겸 저술가. 대중 강연도 한다. 어렵고 딱딱한 동양철학을 쉽게 녹이고 풀어내는 일이 그의 ‘직업’이다.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시대의창),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세(勢), 동아시아 사상의 거의 모든 것’ 등 그간 출간한 동양철학 분야 책만 11권. 집필 중이거나 집필 예정인 책도 10권이 넘는다고 한다. 그의 책들은 고정 독자를 확보하며 중쇄를 거듭하고 있다. 그는 ‘척박한 인문·사회 출판계의 떠오르는 별’로 평가받는다. 

    임건순은 ‘멸종 위기’에 처한 동양철학 외길을 걷는 독행자(獨行者)다. 석·박사 학위는 없다. 대학 및 연구소 등 제도권에 적(籍)을 두지 않았다. 학술·연구단체와 인연도 없다. 혈혈단신 ‘임건순’이란 이름 석 자로 승부를 건다. 외롭고 힘든 길을 걷지만 행보는 거침없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이다. 임건순 책의 애독자인 손상범 영남대 교수(국제통상학부)는 “임건순의 말과 글에서 ‘젊은 시절’ 도올 김용옥을 연상한다”고 했다. 

    스스로를 ‘한국 지식인 사회의 지적 불법체류자’라 정의하는 임건순은 한국 사회를 향해 거침없이 ‘돌직구’를 던진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조선으로 퇴보 중”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그를 만났다.

    ‘혈혈단신 임건순’

    다수가 기피하는 철학, 그중에서도 동양철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가 뭔가요. 

    “대학은 행정학과로 입학했습니다만, 정치학·경제학 등 사회과학 전반을 두루 공부했습니다. 제가 연구하는 제자백가(諸子百家) 사상은 사실 철학보다는 사회과학에 가깝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사회와 국가를 잘 다스릴 수 있는 질서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한 학자들입니다. 정치사상이자 종합사회과학인 거죠. 관중(管仲)이나 한비자(韓非子)는 경제학으로 접근해도 좋습니다. 그들의 경제학적 통찰은 기가 막히죠.” 



    제자백가 사상이 가지는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제자백가를 다른 표현으로 선진(先秦·진나라 이전) 철학이라 합니다. 통일제국 진(秦) 이전과 이후 철학 양상은 사뭇 달라요. 선진 철학이 역동적이고 재기발랄하다면, 후진(後秦) 철학은 단조롭고 무미건조합니다. 통일제국 성립이라는 환경 변화에 영향을 받아 학문적 자유도 줄고, 수성(守成) 시대에 맞춰 개인의 수신(修身)에 중점을 두게 됐기 때문이죠. 형이상학 내지는 관념론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열국(列國)이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벌이던 시대의 ‘백화제방(百花齊放)’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가 제자백가의 ‘역동성’과 ‘재기발랄’의 매력을 강조하는 이유는 한국 사회에 사유의 다양성과 다원성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제자백가 텍스트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저술과 강연으로 이들 사상을 대중화함으로써 한국 사회 문제의 해결을 도모하겠다는, 그만의 ‘운동’인 것이다. ‘묵자’ 상동(尙同)편 상(上)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사람마다 의로움(義)을 달리하였다. 한 사람이 있으면 한 가지 의로움이 있었고 두 사람이 있으면 두 가지 의로움이 있었고 열 사람이 있으면 열 가지 의로움이 있었다. 사람의 수가 더욱 많아지면 의로움 역시 많아지는데….

    임건순은 이 구절에 대해 “여러 사람이 등장해 ‘내 이야기 좀 들어보라’며 떠들어댄 당대 상황을 보여준다”며 “그만큼 다양한 목소리가 등장해 서로 힘을 겨룬 것으로, 오늘날 한국 사회에 좋은 참고가 된다”고 말했다. 

    공자(孔子)·맹자(孟子)가 아닌 묵자(墨子) 등 이른바 비(非)주류 사상가 연구에 주력합니다. 

    “균형 있게 공부해보고 싶었습니다. 제자백가는 ‘백화제방’이란 표현처럼 서로 다른 빛깔을 가진 활짝 핀 아름다운 꽃들이에요. 수많은 아름다운 꽃이 있는데, 한두 송이(공자·맹자) 꽃만 바라보고 마나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그의 인생 역정은 순탄치 않다. 각막이 원뿔 모양으로 튀어나온, ‘원추각막’이란 희귀병을 앓고 있다. 가난도 따랐다. 원하던 서울 소재 명문 사립대학 대신, 학비가 저렴하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서울시립대학에 진학했다. 고학(苦學)은 필연. 사회로 나온 후에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기초 생계비에 턱없이 못 미치는 돈으로 수년을 버티기도 했다. 오늘날도 이른바 ‘도시빈민’ 신세다. 

    “제 고향은 충남 보령군, 반농반어(半農半漁)의 시골입니다. 한마디로 전 ‘촌놈’이죠. 집안 형편도 어려웠어요. 본디 양반 가문도 아닌 것 같고요. 그렇다 보니 학문적 관심도 성리학(性理學)에서 자연 묵가(墨家)와 양명학(陽明學)으로 옮겨갔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열정적으로 구세(救世)하려던 묵자, ‘사농공상(士農工商)이 다른 일에 종사하지만 그 도(道)는 같다’는 이업동도(異業同道)를 주창한 양명학에 빠져들었습니다.”

    유학파가 인문학 망친다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최근에 그가 주력하는 분야는 법가(法家)다. 올해 ‘법가’ 관련 책을 출간할 계획이고, 최근 이랜드그룹 후원으로 10강에 걸쳐 ‘한비자’를 강의하기도 했다. 법가에 천착하는 것 또한 그의 처지와 무관치 않다. 

    “제가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데다 가난해서인지 성격이 거칠고 강한 편입니다. 영춘권(詠春拳)을 비롯해 무술도 좋아합니다. 평등 원리가 강하고 기득권·중간 착취계급 타파를 목적으로 하는 법가 사상에 끌립니다. ‘근대국가’인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전근대’ 조선으로 귀환했다고 봅니다. 상위 10%의 중간지배층이 독재하는 사회로 변해버렸으니까요.” 

    임건순은 사회주의 용어로 ‘사회경제적 위치·계급적 좌표’가 학문에 결정적 영향을 끼쳐 한국 동양철학계가 외면해온 분야를 파고들게 된 셈이다. 

    “우선 저 자신이 서 있는 사회·경제적 위치를 자각합니다. 그걸 바탕으로 제 좌표를 정확하게 인지해야죠. 그다음 저와 문제의식이 일치하는 사상가와 텍스트를 찾아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 사회와 국가가 당면한 문제와 해결 방법을 찾습니다. 이런 것이 ‘인문학적 사유’ 혹은 ‘인문학을 하는 자세’가 아닐까요?” 

    처한 환경과 이를 바탕으로 생긴 문제의식 때문에 비주류가 되었다는 그는 한국 학계 풍토를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한국 대학에서 손자(孫子)나 오기(吳起)를 주제로 논문을 쓰면 석·박사 학위를 받기 힘들죠. 아마 안 줄 겁니다. 묵가, 병가, 법가 등을 공부한 저 같은 사람은 사문난적(斯文亂賊)일 거예요(웃음).” 

    한국 사회 ‘인문학 열풍’의 의의와 한계는 무엇이라 보나요. 

    “한국 사회 인문학은 ‘중산층 특화 교양’입니다. 쉽게 말해 여유 있는 사람이나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라고 할까요? 배부른 사람들 구미에 맞춘 위로와 위안을 진정한 인문학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진정한 인문학이란? 

    “춘풍(春風)이 아니라 추상(秋霜) 같아야죠. 진리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지만, 당장의 진실 혹은 진리는 비참하게 다가온다는 것을 시현하고 싶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팩폭(팩트 폭행)’이죠. 열 사람 중 아홉 사람에게 욕을 먹어도 한 사람에게는 진정한 자극이 되는 그런 글을 쓰고 싶고, 말을 하고 싶습니다. 만인에게 존경받기보다는 적을 만들더라도 치열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싸우고 싶어요.” 

    그는 ‘인문학 위기론’에 대해서도 반론을 폈다. 

    “인문학 위기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학 인문학과와 거기 교수들의 위기죠. 학령인구 감소로 인문학 전공 위주로 진행되는 학과 통·폐합 때문에 전임교수 자리를 잃게 된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겁니다. 한국 사회에서 언제 인문학이 제대로 연구·교육된 적이 있습니까?” 

    인문학 전공 학생들을 향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무늬만 인문학 전공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텍스트를 해독해 자신의 말과 글로 풀어내는 ‘내공’ 있는 인문학 전공자가 몇이나 있습니까? 비판적 사고를 제대로 하는 학생을 얼마나 보셨나요? A4용지 한두 장 분량이라도 조리 있게 자신의 생각을 쓰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부생, 대학원생의 민낯이죠.” 

    원인이 뭘까요. 

    “해외 유학파가 교수 시장을 독점하는 구조적 문제, 학문 후속 세대를 키우기 위한 노력과 시스템의 부재, 모국어를 천시하는 풍토 등이 한데 뒤섞였기 때문이에요.” 

    박상익 우석대 교수도 ‘신동아’ 3월호 인터뷰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유학파들은 외국 이론·사상 ‘운반책’ 노릇이나 하고 있습니다. 로컬(local)에 기반한 상상력은 제로입니다. 그들은 제대로 된 한국어 교재나 번역서를 출간하는 데 게으릅니다. 명색이 선생이라면서 ‘아웃소싱’할 게 따로 있지, 학문 후속 세대를 제대로 양성하지 않고 제자들에게 ‘유학이나 다녀오라’고 합니다.” 

    그는 이러한 현실을 타개할 해법으로 ‘제국(帝國) 연구’를 제시한다. 

    “한국은 여러 이유로 인문학이 뿌리내리기 힘든 환경입니다. 한국인들은 중·고등학교 시절 시민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스스로 사유하고 판단하는 주체가 되지 못했습니다. 시민으로서의 소양을 쌓는 데 필요한 외국 고전과 명저가 제대로 번역돼 있지 않은 것도 큰 문제입니다. 역사적으로도 우리에겐 제국 경험이 없습니다. 

    저는 제국을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국의 야만성, 침략성이 아니라, 제국 운영의 메커니즘, 제국 창업자·수성자들의 철학과 수사(修辭), 제국이 성립하기 위한 물적·사상적 토대 등을 연구해 대중과 공유해야 합니다.”

    ‘배부른 돼지’와 ‘위선자’

    그는 제국 연구를 통해 ‘한국인의 선량한 피해자 의식’을 깨야 한다고 주문한다.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나만 피해를 입었다’는 피해자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취지다. 

    “수학과 과학도 인문학 연구에서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철학의 핵심은 개념입니다. 이는 수학·과학과 일맥상통합니다. 현상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훈련법을 수학·과학에서 차용할 수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수학·과학 분야에서 먼저 쉬운 한국어로 개념과 현상을 가르치면, 이 분야 전공자 중에서 장차 철학자로 대성할 인재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철학자로서 진단하는 한국 사회 보수 및 진보의 문제점은? 

    “보수는 배부른 돼지고, 진보는 위선자죠. 한국 사회에 진정한 보수 및 진보 세력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보수 세력은 너무 배가 불러 사상적으로 진화하지 못했습니다. 인재를 키우는 데도 소홀했습니다. 왜냐? 진보와의 경쟁에서 지더라도 먹고사는 데 지장 없으니까요. 사상적으로 권위주의를 탈피, 자유주의·시장주의로 진화했어야 함에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반면 진보는 시쳇말로 ‘내로남불’이 심합니다. 위선과 허위의식도 강하고요. 도덕적 우월감에 기반한 선민의식 문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만 옳고 나와 생각이 다르면 적으로 간주하는 오만과 독선도···.” 

    진보의 대표적 위선은 뭐라고 봅니까. 

    “자신들도 기득권 집단의 일부이면서, 이를 애써 부정하거나 아닌 척하는 거죠. 조선시대 양반과 닮았습니다. 지배층이자, 자신의 기득권 수호에만 관심 있는 집단이란 점에서요. 절대 다수인 서민의 삶에 관심이 없으면서도 그들을 위하는 척하죠. 자신은 절대 선, 상대방은 절대 악으로 규정하며 명분과 도덕 투쟁을 벌이는 모습도 매우 닮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보 세력을 ‘위정척사적 사대부’라고 정의합니다.” 

    임건순은 “대한민국은 조선으로 퇴행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그의 눈에 비친 조선은 사대모화(事大慕華)에 빠져 있던 ‘한심한’ 나라다. 주 원인은 지배 이념인 성리학에 있다. 명분에 집착하고 현실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사농공상’의 신분 질서를 고착화해 백성 차별을 당연시했다. 역동성도 없었다. 무엇보다 문을 닫고 살며 대외 환경 변화에 무지했다. 

    “대한민국의 영어 국호는 ‘Korea’이지 ‘Chosun’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회 진보를 하자면서 왜 자꾸 조선시대로 돌아가려 합니까? 일례로 교사와 공무원이 최고 직업이 되는 세상을 만들고 있잖아요. 다들 공무원 되려는 세상이 되면 실험실 불은 꺼집니다. 사업가는 사업을 접습니다. 안정적인 것을 찾을 게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며 도전해야 합니다. 우리에겐 ‘고려(Korea) DNA’도 있습니다. 이를 발전시켜 나가야 해요. 고구려와 고려의 진취성과 역동성, 개방성을 살려야 합니다.” 

    그는 “‘샌님의 나라가 아니라 ‘무사·상인의 나라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사·상인의 나라는 어떤 의미인가요. 

    “성리학이 명분인 이(理)에 집착한다면 양명학은 현실인 기(氣) 또한 중시합니다. 성리학만 공부하면 양명학이 만든 직업관이 보이지 않습니다. 양명학은 직업에 차이를 두었을 뿐,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조선이나 오늘날의 한국이 성리학만 편식한다는 겁니다. 같은 유교권인 중국이나 일본은 그러지 않습니다. 일본 장인정신의 뿌리는 양명학에 있습니다. 중국인의 사고 체계를 이해하려면 ‘손자병법’, 병법서 혹은 제왕학서로서의 ‘노자’를 읽어야 합니다. 

    호방한 양명학은 무인·상인들에게 어울립니다. 인간의 욕망을 긍정합니다. 의병을 일으키고, 기업을 창업하는 것과도 잘 맞습니다. 광복 후 한국 발전에는 무인(군부)과 상인(사업가) 역할이 컸다고 봅니다. 이들이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싸워온 결과죠.”

    ‘고려 DNA’ 살려야

    임건순은 이승만 초대 정부부터 김대중 정부까지를 ‘고려 DNA’가 잘 반영된 시기라고 평했다. 무인과 상인을 중심으로 고도 경제성장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한편 그는 노태우 전 대통령을 “저평가된 대표적 대통령”이라고 언급했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과대평가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노태우는 ‘시계(視界) 제로’ 상황에서 대한민국을 번영의 길로 이끈 훌륭한 파일럿이었습니다.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가는 가교 역할을 하며 ‘연착륙’에 성공했어요. 민주시민사회 건설에도 큰 공이 있다고 평가합니다. 노태우 정부 때 노동자 임금도 인상되고, 내수 시장도 확장됐습니다. 소득 분배도 고른 편이었죠. 이 속에서 ‘중산층 꿈’이 생겼습니다. 대외적으로 북방 정책을 추진한 것도 획기적인 일입니다. 노태우는 군인 출신이지만 유연한 사고를 가진 인물이라 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비극적 최후 때문에 과대평가되는 면이 있다고 봅니다. 참여정부 시절 불공평이 심화됐고, 세종시 등이 비효율과 자원 낭비를 불러왔습니다. ‘화합’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국민 편 가르기를 통한 득표 전략을 추구한 점도 부정적으로 생각해요.” 

    노태우는 보수·진보 진영 양쪽에서 인기가 없는 인물입니다. 

    “역사학자들이 몸을 사리기 때문에 노태우 재평가가 안 되고 있다고 봅니다. 군부독재의 연장선상에서 노태우를 평하기 때문이죠. 쉽게 말해 노태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반민주·독재 옹호’로 낙인찍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겠죠. ‘노태우’ 이름 석 자만 나오면 공격부터 해대는 보수 및 진보 진영의 정치권도 관점을 달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태우는 과(過)보다는 공(功)이 훨씬 더 큰 인물입니다. 언젠가는 재평가해야 하며, 재평가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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