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철 기자]
“막 냉대하시면 어떡하나…”
다녀보니 시민들 반응이 어떤가요?“되게 좋습니다. 안에서 뉴스 하고 있을 땐 워낙 인터넷에서 시달려서…. 아우, 막 냉대하시면 어떡하나 그런 걱정도 했어요. 그런데 밖에 나오니 대부분이 무척 반가워해주시고 사진 찍자고도 하시고. 흥이 나요.”
어디를 주로 찾나요?
“석촌호수도 가고, 아침 저녁 출퇴근길에도 인사하고 그러고 있어요.”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던가요?
“많이 알아보시고요. 감사한 것은 뉴스 하던 배현진, 이렇게 아시는 게 아니라 저에 대한 사안들을 깊이 알고 계세요. MBC 얘기도 하시면서 격려해 주세요. ‘고생했지?’ 그런 말씀들.”
6월 13일 지방선거와 함께 최소 8곳에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치러진다. 원내 1당(더불어민주당 121석)과 2당(자유한국당 116석)이 바뀌거나 진보(148석), 보수(145석) 간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 송파을은 최대 관심 지역이다. 원래 여긴 박계동, 이회창, 맹형규를 배출한 구여권의 텃밭.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민주당 지지도가 높게 나온다. 한국당은 배현진을 최전선인 이곳에 배치했다. ‘배현진이 지면 한국당은 영남당 전락’ 이야기가 나온다.
이번에 입당해 출마한 이유는?
“MBC에서 진력을 짜내서 했다 싶을 정도로 노력을 다했어요. 방송인이 어떤 공익을 추구하는 삶을 살잖아요. 제2의 사회생활을 어떻게 구성할까 생각하던 중에 당에서 제안이 왔어요. ‘회사 안에서 말할 자유, 생각할 자유, 행동할 자유, 그리고 선택할 자유가 무시되는구나’ 하는 갈증과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어요. 이걸 해소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담대하게 한번 해보자’ 결단했어요.”
30대 신인으로서 어떤 자기 색깔을 보여줄 건가요?
“요새 입고 다니는 점퍼도 흰색인데, 저는 제 자신을 어떤 색도 입히지 않은 흰 도화지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MBC에서 보여드린 ‘할 말은 하고 욕먹어도 선택은 한다’는 소신이 있는데요. 정치인으로도 당당하게 할 말은 하고 주변 눈치 안 보고 송파구민들을 위해 일하고 싶어요.”
자유한국당에 대해서 ‘적폐’ ‘국정농단 본진’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탄핵 상처 때문에 집권여당이던 저희 당에 대한 실망이 크다는 점이 이해됩니다. 지금 당을 추스르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낙인이 영원히 갈 순 없잖아요. 그 변화의 시작이 저라고 생각합니다. 저 같은 사람들이 합류하면서 당을 새롭게 쇄신하겠다는 각오를 보여드리고 있어요. 실망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 확신해요.”
여론조사상으론 지방선거와 보궐선거에서 한국당이 상당히 어려울 것 같다는….
“저는 신인이라 여론조사에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보여드린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 조사엔 저에 대한 신뢰도가 반영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이제 막 현장에서 발로 뛰고 있으니 충분히 능가할 수 있다고 봐요.”
한국당은 배현진에게 보수정치의 실추된 이미지를 바꿔주는 역할을 기대한다. 이에 대해 그는 “당 차원에서 막 첫발을 내디딘 사람에게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감지덕지할 일”이라고 했다. 자신의 성장기와 관련해 배 전 앵커는 “작은 도시 소시민의 딸로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렵게 아나운서가 됐다”고 말한다.
‘재벌가 남친’ 소문
예나 지금이나 아나운서 되기 어렵죠.“제가 입사했을 때의 경쟁률이 아직 대한민국 방송사에서 깨지지 않았죠. 1926:1. 그렇게 입사했는데, 그때부터 ‘장관 딸이다’ 하는 소문이 돌았어요. 또 앵커를 오래하다 보니 ‘대단한 백이 있다’ ‘어마어마한 재벌가 남자 친구가 있다’ 하는 드라마 같은 무서운 소문도 많았어요. 아버지가 조그마한, 아주 구멍가게 같은 사업을 하셨는데, 이게 기복이 심하다 보니 정말 어려운 시절도 있었고 이렇게 계속 살았거든요. 부유하다는 느낌을 갖고 살진 못한 것 같습니다.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하면서 정말 열심히 살았고 그래서 전 그 점에 관해 스스로 당당해요.”
대학생 때 토론대회에도 참여했다면서요?
“학교(숙명여대)에 공지가 붙었더라고요. 숙명 토론대회. 대학생들이 취업하려고 이력 많이 만들잖아요, 스펙 쌓으려고. 해외 어학연수 갔다 와야 한다, 뭘 해야 한다, 이렇게 친구들이 써주는 스펙 목록이 있었죠. 저는 ‘방송사에 입사하고 싶은데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스펙이 무엇일까?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것 한 가지만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마침 그 토론대회 공지를 봤고 무작정 도전했습니다.”
결과는?
“쭉쭉 올라가더라고요. 은상 타서 전국 대학생 토론대회에 나가게 됐어요. 그러나 대회 도중 한 팀원이 포기하고 대회장에서 나가버렸어요. 저희 팀이 떨어졌죠. 실망하고 집에 왔더니 이틀 뒤에 ‘베스트 스피커라고 열 명을 선발해 다시 수상할 테니 오라’고 해요. 그래서 그 상을 받았어요.”
“저 되게 재밌는 사람이에요”
[조영철 기자]
“MBC 입사시험 때 일단 궁금해하셨어요. 제가 아나운서 시험 볼 땐 토론 대회 출신자가 없었거든요. ‘왜 이 대회에 참가했습니까?’라고 많이들 궁금해하셨고, 토익 몇 점 같은 게 아니라 저만의 스펙이었기에 더 유심히 봐주셨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어느 도시에서 지냈나요?
“중학교 때부터 부천에서 오래 살았고요. 경기도는 시험 봐서 학교에 가잖아요. 저는 안산에 있는 동산고에 지망해 시험을 봐서 학교를 갔죠.”
앵커로 활동할 때 대학 쪽에선.
“많은 요청이 있었어요. 열심히 했습니다. 저를 길러주신 모교여서 제가 일을 한다, 바쁘다, 이런 핑계 댈 것 없이, 지금도 기조가 같아요. ‘저를 필요로 하신다면 언제나 가서 후배들에게 제가 받은 사랑을 다시 나눠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불러주시는 게 감사했죠.”
예전 MBC 사내 소식지를 보니, 신입 시절에 ‘보이시(boyish)하고 유머 감각이 있다’는 평가가 있던데요.
“저 되게 재밌는 사람이에요. 제가 뉴스만 하면서 정제된 모습만 보여드려서 그런지 많은 분이 저에 대해 도도하고 차갑고 재미없고 진지하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계시죠. 그러나 실제로는 사석에서 분위기를 주도하는 스타일이고 친구들도 저를 굉장히 좋아해요. 내숭 떠는 스타일은 아니어서, 이를테면, 방송국에서 여성 아나운서들이 방송할 때 하이힐을 주로 신으니까 생수통에 물이 떨어지면 통을 갈기 힘들거든요. 저는 그냥 신발 벗고 물통 갈고 그래요. 제가 어디 더러우면 대걸레질도 하고 그래요. 보이시하다, 일을 걱실걱실하게 잘한다, 그렇게들 평가해주셨던 것 같아요.”
그땐 방송사 동기들이라고 하나요, 친했습니까?
“엄청나게 사랑받았고요. 동기뿐만 아니라 제가 자부하는 건 2012년 파업 이전엔 MBC에 소문이 자자했어요. ‘배현진이라고 정말 괜찮은 애가 들어왔다’라고. 다들 얘기해주셨고, 이걸 제 입으로 지금 말씀드리는 게 좀 낯부끄럽긴 하지만, 분에 넘치게 사랑을 받았어요. 동기들도 그렇고 심지어 모 선배는 ‘아나운서에 대한 편견을 너 때문에 깼다’라고 말씀하셨죠.”
그땐 노조에 가입한 상태였고요.
“그렇죠. 노조 가입, 사전에 설명 같은 것도 좀 해줘야 하는데, ‘가서 가입하면 과자랑 초코파이 선물로 준다’고 해서….”
여성 앵커가 재벌 3세와 결혼하는 일도 있었는데, 지금까지 미혼인 상태로 사회활동을 하는데….
“앵커를 그렇게 오래할 줄 저도 몰랐어요.”
7년 했나요?
“거의 8년 가까이, 뉴스데스크만 그렇게 했어요. 5시 데일리뉴스까지 치면 저는 입사 이후 10년을 통틀어서 그냥 앵커만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저 스스로의 어떤 강박일 수도 있지만, ‘앵커는 뉴스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밖에 나가서 사생활에 대한 잡음을 일으켜선 안 된다’고 저는 철칙으로 삼았어요. 친구들은 ‘왜 그러냐?’ ‘답답하다’고 하는데, 저는 소개팅도 좀 안 하고 조심했던 것 같아요. 출퇴근도 아침에 눈뜨면 나와서 밤늦게 들어가는 게 규격화되다 보니 결혼 계획이나 기회들이 좀 많이 지나갔어요. 물론 좋은 분 소개해 준다는 선배도 많으셨는데, 제가 자꾸 일을 우선한 면이 있죠.”
속으로는 ‘재벌가와 결혼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적 없나요?
“저는 그 체질은 아닌 것 같아요. 원래 제 결혼관은 ‘이야기를 잘할 수 있는 편안한 사람과 만나서 소박하게 사는 것’이죠. 스물아홉, 서른쯤이면 자동으로 하는 게 결혼인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못 할 줄은 저도 몰랐고요.”
“저, 그 드라마 봤어요”
뉴스데스크 앵커는 어떤 계기로 맡았나요?“제가 입사하자마자 5시 데일리뉴스를 진행한 것도 좀 파격이었어요. 아나운서국에서 좀 소란이 있었어요. 뉴스데스크를 개편할 때 오디션을 열거든요. 그럼 사내 공모를 합니다. 여자 아나운서는 전원 가서 앵커 오디션을 보죠. 최일구 앵커와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를 보고 있던 저도 오디션을 봤고 선발된 거죠.”
혹시 ‘미스티’라든지 여자 앵커가 나오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나요?
“네, 저 그 드라마 봤어요.”
어떤 생각을 했나요?
“좀, 저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여주인공인 앵커 고혜란(김남주 분)이?
“네, 좀 비슷하지 않나요?”
어떤 측면에서요?
“그냥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철칙과 원칙을 가지고 하는 것들에 대해 저도 그렇게 일했거든요. 보통 ‘앵커가 저녁 8시 뉴스를 하면 7시에 와서 화장하고 준비하면 되는 것 아냐?’라고 말씀하시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점심시간 전후에 출근해 하루 종일 뉴스를 따라가요. 취재기자들이 오후 3~4시쯤 들어오면 그때부터 저는 간접 취재를 시작하거든요. 뭘 가져왔나 하고요. 잘 아시잖아요. 뉴스시간이라는 게 한정돼 있는데 SBS나 KBS에서 하는 뉴스를 똑같이 읊조릴 거면 제가 뭐 하러 앵커로 나오겠어요. 더 예쁜 사람들 시키면 되지. 저는 우리 기자들이 취재해 온 뉴스를 정확하게, 제일 윤나게 해주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기자를 상대로 취재하는 앵커였어요. 저는 열심히 했습니다.”
“혼자 손 들었거든요”
배 전 앵커가 MBC 노조 총파업 중에 노조를 탈퇴해 뉴스데스크에 복귀한 것에 대해 “꽃가마 탄 것” “배신”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에 대해 배 전 앵커는 “꽃가마라고 규정하고 싶을 것이고 그렇게 폄훼하고 싶을 것”이라고 반박했다.“그 거대한 몇 천 명이 되는 노조원들 사이에서 ‘반대하는 사람 손 들어’ 하면 제가 혼자 손 들었거든요. 이건 쉽게 할 수 있는 일일까요? 조직생활을 해본 분들은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 거예요. 애초부터 꽃가마가 아니었습니다. 뉴스데스크 앵커를 하고 있다가 노조 파업에 동참한 것엔 저 나름의 비겁함이 있었다고 인정해요. 제가 노조 파업 계기에 대해 동조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지만 동료들이 하니까 파업에 돌입한 측면이 있어요. 이후 파업이 진행되면서 불합리한 것, 제가 도저히 설득되지 않는 문제에 대해 계속해 노조 집행부나 동료들에게 물었어요. 심지어 ‘저를 좀 설득해주세요’라고 말도 했어요. 저도 거기서 이탈하는 게 무서우니까요. 아무도 답을 주시지 않고 ‘대의를 위해 네 스스로의 소의는 접어’라는 납득 안 되는 말씀만 해주셨어요. 그래서 결국 당시 1900명에 가까운 노조원들을 등지고 제가 뉴스에 복귀했어요. 비난받을 걸 각오했죠. 저는 꽃가마를 선택한 것이 아니고 그게 집단이든 권력자든 그 의지에 끌려가지 않고 제 스스로 제 삶이니까 떳떳하게 산 것이라 생각해요. 제가 그렇게 꿈꿔왔던 앵커를 지금 하고 있는데, 뉴스데스크 앵커를 하고 있는데 제 인생에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어 그는 “‘한국당이 영입한 것도 꽃가마 태운 것’이라고 하시는데, 한국당이 지금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라는 건 국민이 다 안다. 절대 꽃가마가 아니다”라고 했다.
“화장실 안에서의 그 양치대첩…”
인터넷에선 ‘앵커 시절 화장실에서 물을 틀고 양치를 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배 전 앵커는 길게 설명했다.)“지금 말하면서도 좀 낯부끄러운데요. 언론사에 다니는 사람이라고 하면 배울 만큼 배우고 양식이 있다고들 밖에서 보잖아요. 그런데 파업이 끝나고 저한테 말도 안 되는 일이 많이 있었어요. 이를테면 뉴스를 준비하는데 앵커뿐만 아니라 기자들한테 소금을 뿌린다든지, 굵은 소금을, 겁을 주려는 거죠. 출퇴근 시간에 떼로 몰려와 어떤 위협을 한다든지.
화장실 안에서의 그 ‘양치대첩’도 저에 대해 이뤄진 끊임없는 공격 중의 하나였어요. 제가 그 상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응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싸움을 벌였다, 선배에게 대들었다, 이런 말씀 하시는데, 앵커를 떠나 언론사에서 7년, 5년 선배는 감히 대들 수 없는 존재라는 건 잘 아실 거예요. ‘물을 틀었다’가 아니라 사실은 ‘왜 컵을 쓰지 않느냐’였어요. 제가 ‘부족했습니다. 다음부터는 꼭 컵을 쓰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그러다가 사무실에 들어가서 저의 부모님에 대한 어떤 모욕적인 말을 들은 후 제가 ‘댁에 가서 가정교육을 하십시오’라고 언성을 높인 것이 계기가 됐어요. 다음 날 출근했더니 ‘조사위원회가 열렸다, 조사 좀 받자’고 해요. 저는 황당했거든요. ‘그게 무슨 조사를 받을 일이냐’고 하니 ‘뉴스가 있기 한 시간 전에 앵커와 취재 기자가 언성을 높인 사건이기 때문에 파악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저는 조사를 받았고 경위서를 썼습니다. 경위서에서 진술이 엇갈리는 부분 때문에 복도 CC-TV까지, 너무 웃긴 일이죠, 확인하고 결국 그 선배께서 저한테는 사과 안 하셨지만, 그 조사부장에게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하다고 하고 저는 그렇게 하고 잊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최근 ‘배현진이 물을 틀어놓고 화장을 하고 있었다’ ‘선배에게 대들었고 그것을 고자질해서 선배가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라는, 전혀 사실이 아닌 말이 퍼져요. 제가 앵커를 하는 와중에 해명하기에는 우스운 일이어서 말씀을 안 드리다 보니까 오해가 깊어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분께서 보도국 밖으로 방출됐다고 말씀하시는 그 시점에 저는 그 조사위원회 열리고 얼마 후 앵커에서 하차해 집에서 6개월 동안 휴직 중이었거든요. 제가 먼저 잘렸는데 제가 어떻게 갑질을 했다고….”
그 조사 때문에 앵커에서 물러난 것인가요?
“그건 아니지만 개편을 이유로 갑자기 하차해 집에서 그냥 쉬고, 숨만 쉬고 있었습니다. 월급이 안 들어오기 때문에 부모님이 가만히 있으라고 하셔서 집에서 쉬고 있었는데요. 그 일을 구태여 꺼내 배현진 때문에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 피구 공을 배현진에게 던졌기 때문에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 저는 노조의 동력을 끌어모으기 위한 희생양이었다고 생각해요. 화제성, 그것 때문에 제가 이용됐다고 생각하는데, 우스운 일이죠.”
배 전 앵커에 대해선 “뉴스데스크를 진행하면서 세월호와 최순실 보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여권과 진보진영에서 나온다. 이에 대해 그는 “불만을 가진 분들의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기조를 가지고 보도한 적은 없다고 판단한다. 완전무결한 중립은 있을 수 없지만 뉴스를 중립적으로 다루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최장수 앵커의 최장수 기간이 MBC뉴스의 암흑기였다”는 여당 측 지적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그는 “제가 하차한 이후 시청률 때문에 굉장히 곤혹스러워한 것으로 보고 들었다”고 말했다.
“유령처럼 회사 주변 떠돌아”
MBC 앵커 시절의 배현진 씨. [동아DB]
“그럼요. 저희가 SBS와 동시간대 경쟁을 하고 있었죠. 우월하게 압도했다고는 못하지만 엎치락뒤치락했고 능가할 때도 있었어요. 경쟁력 있는 뉴스였다고 생각해요.”
MBC 노조에 대해 배 전 앵커는 “선의로 시작해 변질됐다고 본다. 과격한 말이지만 ‘괴물’이 됐다고 생각한다. 제가 파업을 접겠다고 한 이후 거의 ‘본보기 처형’식으로 저를 그렇게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애’인데, 이게 파업 국면에서 철저하게 무시됐다”고 말했다.
앵커로 있는 동안 대통령과 정부에 유리한 기사를 키워달라거나 불리한 기사를 빼달라는 사내외 압력을 받은 적이 있나요?
“결단코 없습니다. 그건 제가 확신해요. 앵커는 결국 뉴스의 최종 편집자거든요. 앵커 코멘트를 쓰기 때문이죠. 제가 뉴스를 하는 동안 어떤 회사 선배도 제 앵커 코멘트에 관여한 적이 없어요. 충분히 독립적으로 이뤄졌다고 생각해요.”
최승호 MBC 사장은 배 전 앵커에 대해 “그분이 다시 뉴스에 출연하거나 뉴스의 중심으로 활동을 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최 사장의 말을 들을 때 느낌이 어땠나요?
“이미 뉴스데스크에서 하차할 때 인사할 기회도 안 주셨잖습니까. 그날 저희가 뉴스를 준비하고 있는데 아무 통보 없이 물밀 듯 밀고 들어오셨어요. 제가 앵커 룸 밖을 보니 저희 편집진이 모두 쫓겨난 상태여서 저도 조용히 짐을 싸서 나왔어요. 이미 2012년부터 사내에서 ‘다시는 방송할 수 없을 거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어 담담했고요. 그런 말씀을 하신 것에 대해 화는 안 났습니다. 다만, 제가 최 사장님의 입장에 서서 ‘본인에게 위험한 발언을 하시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블랙리스트에 대한 아픔을 공감한다 하시고 사장이 되신 분이 하시지 말아야 할 발언이거든요. 배현진을 절대 뉴스에 기용하지 않겠다는 것은 공공연하게 블랙리스트를 못 박은 거잖아요. 좀 앞뒤가 안 맞는 말이라고 그냥 생각했어요.”
창고 같은 곳으로 인사 조치를 받았다고 했는데….
“사실 이번에 뉴스데스크 앵커에서 하차하고 한 달 반 동안 회사에서 제게 아무 연락을 주지 않았어요. 어떤 인사 발령이 나지 않아 계속 유령처럼 회사 주변을 떠돌았어요. 저도 갈 데가 없으니까 1층 서점에 가 있으면 서점 사장님과 친해서 사장님이 커피도 주시고 좀 앉아 있다 가라 이렇게 해주시고.”
사무실에는 안 들어간 건가요?
“발령이 안 났으니까요.”
어디 앉아 있어야 될지 모르니까?
“네, 한 언론사는 제가 편집부로 발령이 나 일하고 있다고 보도했는데, 전 그 기사 보고 웃었거든요. 저는 앵커일 때 편집부 소속이었고, 하차한 다음에는 부서 발령이 안 나 그냥 보도본부로 붕 떠 있었던 거죠. 그래서 거의 낭인처럼 커피 마시고 주변을 돌고 갈 곳이 없었어요. 한 달 반쯤 지나 ‘배현진을 뉴스에 기용하지 않겠다’는 발언 이후 회사에서 굉장히 복잡하게 어디로 돌아서 어디의 엘리베이터를 내려서 어디로 돌아서 어떻게 가라는 문자메시지를 주셨어요. 찾아가보니 ‘보도본부’라고 쓴 A4 용지가 붙어 있더라고요. ‘여기가 저의 새 사무실이구나’라고 생각했죠. 물론 안에 책상도 놔주시고 했는데, 처음엔 복도에 조명기구들이 굉장히 난잡하게 널려 있었어요. 그래서 ‘이것들이 원래 이 방에 있었던 것이구나’라고 알게 됐죠. 밥을 먹고 오니 그 조명UPS실 팻말이 보도본부로 바뀌어 있었어요. 이제 교체를 해주신 거죠.”
거기서 무슨 일을 했죠?
“아무도 저희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그냥 계속 앉아 있었죠. 앵커에서 물러난 후 석 달 정도 끝끝내 발령이 나지 않았고, 그런 상태에서 그냥 나왔습니다.”
통상적으로 얘기하는 ‘대기발령’ 비슷한 건가요?
“대기발령은 대기발령이라는 인사가 나는 거잖아요, 좀 말장난 같지만 발령을 대기했다, 회사가 이렇게 말씀하시던데요. 발령을 내는 걸 대기했다라고 얘기하시더라고요.”
“송파의 복심”
배현진 전 앵커는 “조직 안에서 말할 자유와 선택할 자유가 무시돼선 안 된다”고 말한다. [조영철 기자]
현 정부가 적폐 청산, 개혁, 통합을 추진하는데요.
“이율배반적이라고 생각해요. 자신과 뜻이 다른 사람을 ‘적폐’라고 규정지어버리죠. 저 또한 적폐로 꼽혔는데, 제가 어떤 적폐였는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죠. 말도 안 되는 양치, 피구 하며 이미지만 각인시켜요. 국민 통합은 의견이 달라도 포용하고 소통하자는 이야기죠. 그럴싸하지만 실천되지 않고 있다고 봅니다.”
‘신동아’는 4월호에서 송파을에 출마하는 최재성 전 민주당 의원을 인터뷰한 기사를 내보냈다. 이 인터뷰에서 최 전 의원은 “배현진 씨가 공천이 되면서 저희 쪽에서 누가 나가도 해볼만한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최재성 전 의원이 출마하면서 자신을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이라고 지칭했는데요.
“제가 만난 송파구 주민들은 자긍심이 높으세요. 비록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에 기대어 나왔다는 분을 과연 송파 주민들이 신뢰할 수 있을까요. 최 후보가 문 대통령의 복심이라면 저는 송파의 복심이 될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자유한국당 송파을 국회의원 재선거 배현진 선거사무소측의 요청에 따라 위 인터뷰 내용 중 숙명토론대회 수상경력을 ‘금상’에서 ‘은상’으로 수정합니다. 선거사무소 측은 “인터뷰 시 숙명토론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다고 말한 게 맞다. 하지만 추후 숙명여대에 확인한 결과, 당시 받은 상은 ‘금상’이 아니라 ‘은상’으로 밝혀졌다”고 알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