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바다는 찰랑찰랑 차알랑. 모래밭엔 게들이 살금살금 나오고 우리 동무 뱃전에 나란히 앉아 물결에 한들한들 노래 불렀지.’
이원수 시 ‘고향바다’의 일부분이다.
대표작 ‘고향의 봄’으로 널리 알려진 이원수는 경남 창원과 마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후에도 오랫동안 그의 마음속엔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가 ‘울긋불긋 꽃대궐’을 이루던 고향 숲, 그리고 봄이 오면 ‘찰랑찰랑 차알랑’ 물결치던 남해의 풍광이 새겨져 있던 모양이다.
경남 거제시 ‘외도 보타니아’를 걸으며 문득 이원수가 그리워하던 그 고향이 바로 지금 여기 같은 정경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외도 보타니아는 거제도에서 약 4km 떨어진 섬 외도에 조성된 해상공원이다. ‘식물낙원(botanic +utopia)’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시사철 다양한 풀, 꽃, 나무가 신선한 향을 내뿜는다. 섬의 경사면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를 거닐다 고개를 들면 탁 트인 바다가 두 눈을 가득 채운다. 1971년 대한민국 명승 2호로 지정된 해금강의 절경이 작은 섬의 꽃숲을 넉넉히 두르고 있다.
외도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미역 채취, 고기잡이 등에 종사하는 8가구가 모여 살던 평범한 섬이었다. 이곳이 지금 모습으로 바뀐 건 고 이창호 씨와 최호숙 씨 부부의 노력 덕분. 평안남도 순천 출신으로 6·25 전쟁 중 월남한 이씨는 낚시를 하다 우연히 알게 된 외도를 ‘제2의 고향’으로 가꾸기로 마음먹었다. 거주자들로부터 차례차례 땅을 사들여 마침내 소유권 이전을 완료한 게 1973년이다. 이때부터 부부는 거센 바람과 싸워가며 선착장을 만들고 경사지를 개간해 꽃과 나무를 심었다.
수선화, 금낭화, 능소화, 나팔꽃 등 개화 시기와 모양, 색깔이 서로 다른 꽃이 대지를 뒤덮고, 편백나무와 아왜나무, 야자수와 선인장 등도 하나둘 뿌리를 내리면서 차츰 이 섬은 수많은 사람이 마음에 품고 있던 ‘고향 숲’ ‘고향 바다’의 모습을 닮아갔다. 떠들썩한 즐길 거리 하나 없는 이 섬에 찾는 이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건 이 때문일 것이다. 1995년 4월 대중에 공개된 외도 보타니아 누적 방문객 수는 지난해 가을 2000만 명을 넘어섰다. 지금도 거제도 내 7개 항구에서 쉼 없이 배가 오가며 수많은 이를 이 독특한 섬 위로 옮겨 놓는다.
붉은 동백과 각양각색 튤립이 꽃을 피우는 봄은 특히 외도 보타니아의 매력을 만끽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한겨울을 견딘 아름드리 나무에 새순이 돋고, 햇살에 들뜬 새들은 섬 곳곳에서 청명한 노래를 부른다.
외도 보타니아를 뒤덮은 봄을 보자고 서둘러 걸음을 옮길 필요는 없다. 이 섬을 찾는다면 바다 전망대 옆 작은 벤치에 앉아 잠시 이원수의 동시를 떠올려보자. 꽃향기와 나무 내음과 새소리를 만끽하며 ‘물결에 한들한들 노래’한다면, 그보다 아름다운 봄날은 없을 것이다.
입장료 성인 1만1000원, 청소년 8000원. 유람선 비용 별도. 문의 055-681-45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