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아이는 웬만한 사람 못지않아요.’ 많은 보호자가 자신의 반려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현명한 반려견 보호자라면 강아지가 결코 사람이 아니라는 점 또한 명심해야 한다. 섣부른 의인화는 소중한 반려견을 큰 고통 속에 몰아넣을 수 있는 잘못된 행동이다.
보호자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는 주로 강아지가 분리불안 증세를 보일 때다. 분리불안이란 보호자와 떨어져 혼자 남겨진 강아지가 불안을 느끼고 이상행동을 하는 것을 뜻한다. 보통 큰 소리로 짖기, 울부짖기(하울링), 집 엉망으로 만들기, 오줌 아무 데나 싸기 등의 행동이 나타난다. 이런 증상을 보이는 강아지는 매우 많다. 그러니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보호자도 많다. 그래서 분리불안은 보호자가 강아지를 유기하는 제1 원인으로 꼽힌다.
“너 네가 뭘 잘못했는지 알지?”
외출하고 돌아와 보니 평소 배변 습관이 잘 잡혀 있던 강아지가 화장실 아닌 곳에 오줌을 싸두었다고 해보자. 보호자들은 보통 이렇게 생각한다. ‘이 놈이 저 혼자 두고 나갔다고 복수를 하네.’ 그러면 화가 난다. 또 강아지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느낀다. 그러니 강아지를 오줌 싼 장소로 데리고 가 혼낸다.이후 문제가 해결될까. 대개는 그렇지 않다. 몇 번 비슷한 상황이 반복돼도 외출하고 돌아와 보면 강아지는 오줌을 아무 데나 싸놓았다. 달라진 건, 그래놓고 숨는다는 점이다. 보호자가 집에 돌아오는 소리가 들리면 식탁 밑 같은 곳에 숨어 눈치를 본다. 그러면 보호자는 또 생각한다. ‘이놈이 저 혼자 남겨뒀다고 복수하면서, 또 잘못한 건 알아서 저렇게 숨네.’
이번엔 같은 사건을 강아지 관점에서 바라보자. 보호자가 집을 떠나면 분리불안을 느끼는 강아지는 두려움에 떤다. 무리 동물인 강아지는 혼자 남겨졌을 때 기본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릴 때 혼자 있는 연습을 한 적 없는 강아지는 극심한 공포까지 느낀다. 보호자를 부르고자 크게 짖거나 울부짖기 시작한다. 괄약근이 자기도 모르게 풀려버리기도 한다.
우리 뇌는 평소 괄약근을 향해 지속적으로 ‘수축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불안과 공포 등이 심해지면 아무 생각도 못하게 되고 뇌의 괄약근을 닫으라는 명령도 약해진다. 이러면 의도하지 않아도 오줌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노약자가 롤러코스터를 타면 자기도 모르는 새 바지에 소변을 지리는 것처럼 말이다. 분리불안 증세를 가진 강아지가 혼자 있을 때 오줌을 아무 데나 싸는 건 대부분 이런 이유에서다.
자, 그렇게 불안에 떨고 있는데 드디어 사랑하는 가족이 돌아왔다. 강아지는 기쁨에 넘친다. 보호자에게 달려가 ‘왜 이제 왔어요’ 하며 흥분한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화난 표정을 짓더니 자기를 정체불명의 물이 흥건한 장소에 데리고 가 혼낸다고 생각해보자. 이유를 알지 못하는 강아지는 엄마가 오랜 시간 외출하고 돌아오면 자신을 혼낸다고 생각한다(강아지는 특정 행동과 그에 따른 결과가 바로 연결돼야 인과관계를 이해한다. 오줌을 싸고 한참 뒤 그 장소에 데려가 혼낼 경우, 현장에 오줌이 남아 있어도 자신이 왜 혼나는지 결코 알지 못한다). 그러니 보호자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리면 일단 숨는다. 그리고 ‘슬픈 표정’을 짓는다.
주의할 것은 이 표정 또한 진짜 슬퍼서, 혹은 죄책감 때문에 짓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강아지들은 자기가 어떤 표정을 지으면 보호자가 덜 혼내는지를 기억한다. 보호자가 혼을 내기 시작하면 이유를 몰라도 그 표정을 짓는다. 학습 효과다.
진정한 역지사지의 첫걸음
사실 조금만 생각해봐도 강아지가 아무 데나 오줌 싸는 행동이 보호자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는 걸 쉽게 눈치챌 수 있다. 복수하자고 마음먹으면 이빨도 있고, 발톱도 있는데 왜 굳이 방광을 이용해 공격할까. 또 그 행동도 복수 대상이 있을 때 하지 않고 없을 때 몰래 할까.보호자 중에는 이렇게 설명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분이 적잖다. ‘당신이 뭘 잘 몰라서 그러는데 우리 아이는 분명히 죄책감을 느낀다고요’라고 반박하기도 한다. 물론 내가 잘 모를 수 있다. 다만 지금까지 수의학계의 연구 결과가 그렇다고는 말씀드릴 수 있다.
미국의 유명 심리학자 스탠리 코렌(Stanley Coren)은 강아지의 뇌를 연구한 뒤 사람으로 보면 만 2.5세 수준에서 성장이 멈추는 게 일반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 또래 사람이 갖는 감정을 통해 강아지의 감정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각종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만 1세 정도면 흥분, 스트레스, 만족, 혐오, 두려움, 화남, 즐거움, 의심, 사랑 등의 감정을 갖는다. 3세가 넘어가면서 부끄러움, 자신감, 죄책감, 경멸, 무시 등의 감정을 갖게 된다. 이에 비춰보면 평균적인 강아지는 복수심이나 죄책감 같은 고등 감정을 갖기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가 반려견이 복수한다거나 죄책감을 느낀다고 생각하는 건 ‘의인화’ 때문이다. 의인화는 ‘인간 이외의 존재에 인간적 특색, 특히 인간의 정신적 특색을 부여해 인간과 견주어 해석하려는 경향’을 의미한다. 우리가 강아지의 감정 발달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알려는 노력도 하지 않다보니 그저 나 편한 대로 강아지를 바라보는 것이다.
마음을 열고 수의학계의 연구 결과를 받아들이면 강아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될 수 있다. 내가 집을 떠난 뒤 얼마나 불안했으면 자기 의지에 관계없이 배변까지 했을까. 혼나는 게 얼마나 무서우면 자기가 왜 혼나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불쌍한(죄책감을 느끼는 듯 보이는) 표정을 지을까. 이렇게 생각해야 강아지의 분리불안을 치료하려는 노력을 시작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사람과 강아지가 서로를 좀 더 이해하며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된다.
보통의 경우 반려견 보호자의 의인화는 역지사지라는 좋은 감정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 상태에서 역지사지가 이뤄지다보니 결과적으로 반려견과의 소통에 실패하는 것이다. 이런 엇갈림이 반복되면 강아지는 문제 행동을 계속하고 강아지에 대한 보호자의 애정은 점점 식어가게 된다. 심한 경우 반려견을 포기하는 경우까지 생긴다.
나는 ‘개는 개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어떤 분은 이 말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개는 개니까 막 대해도 된다는 뜻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개는 개다’라는 말은 절대 그런 의미가 아니다. 개는 사람이 아니니 개 그 자체로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끼리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오죽하면 남자는 화성에서 오고 여자는 금성에서 왔다는 말이 있을까. 같은 종에 속하고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도 서로 이렇게 다르다. 개가 사람과 다르고,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운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반려견을 사랑할수록 ‘개는 개다’라는 말을 곱씹어보자. 우리가 반려견과 함께 살아가려면 더 많이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마음에 새기면서 말이다.
설채현
● 1985년생
● 건국대 수의대 졸업
● 미국 UC데이비스, 미네소타대 동물행동치료 연수
● 미국 KPA(Karen Pryor Academy) 공인 트레이너
● 現 ‘그녀의 동물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