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개헌안, ‘사회주의’ 불순한 의도
토지공개념 자본주의 근간 ‘토지사유권’ 제한
사회적 경제 시장경제 부정
상생 ‘사유 아닌 공유’ 지향
4년 중임제 ‘더 제왕적 대통령’ 초래
지방정부 세계 추세와 역행
[박해윤 기자]
기자를 만나자마자 정 의원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우리나라가 그렇게 공들인 한미연구소(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국제관계대학원 산하)가 문 닫으면…한국에 유리한 미국 여론 만드는 곳인데 정부가 너무 아마추어 같다”고 말을 꺼냈다.
개헌 이야기를 나눠볼까 하는데요.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했습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3회에 걸쳐 개헌안을 국민에게 브리핑하고 그 다음에 국무회의에서 의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요.
“대통령 비서가 앞에 나와 대통령 권한을 대신 행사하듯 행동해요. 그리고 의무적으로 하도록 돼 있는 국무회의는 요식 절차에 그쳤고요. 40분 만에 청와대 원안대로 통과됐죠. 이건 헌법 위반인 것 같아요. 비서실장부터 민정수석까지 ‘비서 정치’를 하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조국의 비서 정치, 위헌 소지”
왜 민정수석이 굳이 브리핑했을까요.“세 번 쪼개 낸 것은 개헌을 정치게임의 이벤트로 만드는 것이죠. 세 번 갈라서 하면 홍보 효과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그랬겠죠. 정작 개헌 내용은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어요. 이러니 곳곳에서 에러가 나와 사후에 법제처에서 수정을 하죠. 역대에 이런 개헌 논의는 없었어요.”
원래 어떻게 해야 하나요?
“많은 헌법 학자가 말하듯이, 개헌 논의는 내각을 통해 진행돼야 해요. 청와대 비서들은 안 보이는 데서 대통령을 보좌하기만 하면 되고요. 그러나 이번엔 사실상 대통령비서실이 주도해요. 문재인 대통령은 제왕적 비서들이 시키는 대로 그냥 한 듯해요. 개헌 프로세스도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이런 식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것 자체도 문제죠.”
문 대통령은 지방자치를 위해 개헌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역대로 지방자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개헌을 논의한 적이 없어요. 현행 헌법의 기본권 조항은 세계적으로 톱 수준이죠. 국민의 기본권을 거의 100% 보장해줍니다. 기본권과 관련해선 더 손댈 것도 없어요. 지방자치와 관련해선 현 자치단체가 재량권을 적게 갖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재량권은 결국 재정권과 인사권인데, 재정권은 정부가 지자체에 교부세를 더 주면 되고 인사권은 대통령과 중앙정부가 자신들의 인사 권한을 조금 내려놓으면 됩니다. 헌법을 바꾸지 않아도 높은 수준의 지방자치를 구현할 수 있어요. 대통령이 결심만 하면 오늘이라도 해결할 수 있죠. 따라서 지방자치를 위해 개헌해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어떻게 보면 꼼수”
정종섭 한국당 의원은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박해윤 기자]
“세계 추세와 안 맞죠. 우리나라는 연방제 국가가 아니고, 심지어 독일 같은 연방제 국가도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라 부르지 않아요. 지방정부라는 용어를 쓰는 나라는 매우 적습니다. 일본은 지방자치단체라는 말조차 안 써요. 그냥 공공단체라 하죠. 그래도 지방자치 잘하죠. 문 대통령의 개헌안엔 뭐랄까, ‘개헌에 대한 진정성’이 없어요.”
그럼 개헌을 추진하는 실제 목적이 뭐라고 추정하나요.
“이번 6·13 지방선거 때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지지 세력을 동원하기 위해 개헌이라는 주제를 이용하자고 생각했다면, 지방분권은 좋은 카드였겠죠. 이런 의도가 백일하에 드러났다고 봐요.”
개헌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 중 하나는 권력구조 개편이죠.
“국회 개헌특위 1년 동안 늘 해온 이야기가 그거였죠.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에 모든 정부가 다 실패하고 전직 대통령들이 감옥에 갑니다. 개헌의 핵심은 권력구조 개편에 있죠.”
문 대통령의 개헌안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담고 있습니다.
“대통령 임기를 사실상 5년에서 8년으로 오히려 늘리자는 것이고,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전혀 담고 있지 않아요. 지금의 대통령 권한을 거의 그대로 가진 채 재임을 위해 권력기관을 동원하고 그러면 ‘더 제왕적인 대통령’이 되겠죠. 권력구조 개편 부분이 워낙 문제여서 문 대통령 개헌안의 나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무 실익이 없을 정도입니다.”
여권이 말하는 2단계 개헌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제일 중요한 권력구조 개편을 뒤로 미루는 건데, 그러면 개헌의 동력이 안 생기죠. 어떻게 보면 꼼수죠. 문재인 정부 1년을 보면, 역대 제왕적 대통령보다 더 제왕적이잖아요. 거기에다 제왕적 비서들이 저렇게 날뛰고 있으니 이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거죠.”
4년 중임제가 우리나라 정치 실정에 안 맞다?
“승자독식과 만기친람, 이게 우리 대통령제의 심각한 문제죠. 대통령의 독주를 제도적으로 견제할 방법이 없어요. 대통령을 에워싼 소수가 국정을 농단하는 일이 예외 없이 반복되죠. 문재인 정부에서도 권력기관엔 거의 ‘자기 사람’이 포진해 있죠. 선거 때만 되면 나라가 영·호남으로, 보수·진보로 분열됩니다. 대통령을 배출한 데가 다 가지니까요. 지역 대결이 아니라 지역 전쟁입니다. 이래선 나라가 발전할 수 없죠. 사회 원심력이 커져서 결국 공동체가 분열·해체되는 단계로 나아갈지 모릅니다. 지금의 권력구조 형태는 우리나라에서 기능이 다됐다고 봐요.”
자유한국당 측은 문 대통령의 개헌안을 ‘사회주의 헌법’이라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색깔론’이라는 재반박도 나온다. 정 의원은 “우려될만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법률로서 사회주의 추구”
어떤 부분인가요?“결정적으로, 토지공개념 관련 규정입니다. 토지공개념은 법적으론 성립이 안 되는 말이죠. 노태우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차단해보자는 차원에서 한 말이긴 한데요. 토지에 대한 권리를 제한하는 규정은 현행 헌법 23조 3항과 37조 2항에 이미 있어요. 그런데 왜 대통령 개헌안은 별도로 이것을 만들었냐 하는 것이 가장 의심스러운 부분입니다. 또한, 개정안은 필요한 경우에 제한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러면 23조 3항과 37조 2항에 해당하는 요건도 아예 배제하고 마음대로 토지 소유를 제한할 수 있게 되거든요. 토지 사유화를 부정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해요. 생산수단을 공유화하는 전형적인 사회주의·공산주의죠. 이건 명백히 사회주의 요소가 있는 거죠. 나중에 법제처가 굉장히 위험하다고 해서 ‘법률로서’라는 조항을 끼워 넣었다고 해요.”
그러면 사회주의 논란이 해소된 건가요?
“‘법률로서’라는 조항을 추가해도 마찬가지예요. 이미 두 조항이 있는데 따로 별도 조항을 만든다는 건 두 조항을 배제하고 법률의 형태만 가지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식으로 가는 것이죠. 그러니까 ‘법률로서 사회주의’가 되는 거죠. 이것은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이 나라의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는 겁니다. 현행 헌법은 토지 사유화를 부정하는 어떤 법률도 사실상 만들지 못하도록 하고 있죠.”
문 대통령의 개헌안 중 ‘사회적 경제’ 용어에도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노림수가 들어 있다는 게 정 의원의 생각이다.
사회적 경제는 요즘 유행하는 ‘사회적 기업’과 다른 건가요? 사회적 기업은 좋은 건데.
“유럽 좌파 정권이 사회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틀로서 사회적 경제를 만들었죠.”
사회적 경제는 시장경제와 다르다?
“헌법에 사회적 경제 개념을 못 박음으로써 시장경제 질서를 부정하려 한다고 보는 거죠. 개헌안엔 시장경제 질서에 대한 뚜렷한 규정도 없어요. 시장경제는 사유재산과 영업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체제인데, 개헌안에 사회적 경제를 명시적으로 밝히면서 근본적인 변화가 오는 것이죠. 토지공개념과 사회적 경제는 굉장히 위험한 조항입니다.”
“‘사회적 시장경제’보다 훨씬 왼쪽”
유럽에서 사회적 경제에 관한 논의는 어떻게 전개됐나요?“독일에서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말이 나왔어요. 그러자 앞에 붙은 ‘사회적’이 무슨 뜻인가 하는 문제 제기가 있었죠.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라고 설명했죠. 자유주의자들은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를 같이 추구한다는 것은 형용모순’이라고 반박했고요. 그런데 지금 문 대통령의 개헌안은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완충적인 용어도 아닌 훨씬 사회주의에 가까운 ‘사회적 경제’라고 했단 말이죠. 이건 우리 국민의 삶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규정이죠. 굉장히 불순한 의도입니다.”
정 의원은 “여권은 헌법의 ‘자유민주주의’ 부분에서 ‘자유’를 빼서 우리에게 충격을 줬다. 저항이 세니까 문 대통령 개헌안은 그 부분엔 손을 안 대고 대신 국민이 잘 모르는 ‘사회적 경제’ 같은 용어를 버젓이 집어넣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 대통령 개헌안의 ‘상생’ 용어에도 비슷한 저의가 담겨 있다고 주장한다.
“개헌안에 ‘상생’이 나와요. 헌법 전문가가 아닌 사람은 ‘더불어 잘 지내자’는 뜻인가 보다 하고 넘어가죠. 그러나 전 세계 어떤 나라도 헌법에 ‘상생’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왜 갑자기 이게 들어갔을까? 이 헌법이 통과돼 나중에 헌법재판소가 이 ‘상생’을 해석한다고 칩시다. 불교적으로, 인문학적으로 해석할 리 없죠. 헌법적으로, 법률적으로 해석하면 ‘상생’은 ‘공생’을 거쳐 ‘공유’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아요. ‘사유가 아닌 공유’로요. ‘토지공개념’ ‘사회적 경제’ ‘상생’ 다 연결됩니다. 이 개헌안을 만든 사람들은 내심 ‘공생’을 쓰고 싶었겠지만 거부감이 덜한 ‘상생’을 쓰고 나중에 헌법재판소에서 ‘공생’ ‘공유’로 해석하는 방법을 택한 것 같아요. 상생에도 이런 꼼수가 들어있어요.”
정 의원은 “개헌을 자신의 사회주의 이념을 펴는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 지방선거의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 정치적 술수로 쓰지 말라”고 말한다. 그는 “초심으로 돌아가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4년 중임제 개헌하는 진짜 이유는…”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4년 중임제를 원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4년 중임제 국가에서 대통령은 대개 연임이 돼 8년을 합니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될 거예요. 대통령이 권력기관을 다 장악하는 거고 언론도 장악하는 거고. 지금 방송법 바꿔서 공정성 확보하자니까 여권이 죽기 살기로 반대하는 거 아닙니까? 문 대통령이 5년 집권하고 개헌해 민주당이 다시 8년 집권하면 13년인데, 이 정도 기간이면 나라의 체제를 다 바꿔서 완전히 다른 나라로 개조할 수 있겠죠. 그뿐만 아니라 그 세력이 그 후로도 계속 장기 집권하는 틀을 만들 수 있죠.”
여론조사에선 4년 중임제를 지지하는 응답이 더 많습니다.
“그 여론조사도 문제죠. 예를 들어, ‘이원집정부제를 원합니까? 내각제를 원합니까?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원합니까?’라고 물으면 우리 국민은 이원집정부제를 잘 모르고 내각제를 싫어하니 4년 중임제라고 답하죠. 여권은 이런 여론조사 결과를 갖고 지금 선전하죠. 그러나 개헌 논의 초기 한 여론조사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하는 것에 찬성합니까?’라고 물었어요. 그러니 응답자의 80%가 ‘찬성한다’고 답했어요. 이어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하기 위해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하는 것에 찬성합니까?’라고 물었더니 그 80%의 전부가 ‘찬성한다’고 했어요. 분권형 대통령제가 이원집정부제와 별로 다르지 않은데 말이죠. 여권이 특정 여론조사 결과를 갖고 개헌 당위성을 홍보하진 말았으면 해요.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선 분권형 대통령제를 지지하는 응답도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문 대통령은 ‘다른 대선 후보들도 지방선거 때 동시 투표로 개헌하겠다고 약속했지 않았느냐. 그 약속을 지켜달라’라고 말합니다.
“문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을 안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이 약속을 지키고 있나요? 그가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할 법안을 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어요. 야당이 동의하기 힘든 개헌안을 내놓고 야당에 약속을 지켜달라고 하는 건….”
“문 대통령 개헌안 철회돼야”
국회의장은 대통령 개헌안이 국회에 도착했기 때문에 5월 24일까지 국회가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말합니다.“대통령안이 철회되지 않으면 국회에서 그것을 처리해야죠.”
본회의에서 표결로 처리한다는 뜻인가요?
“본회의에서 처리하든 뭘 하든 우리 당은 그것에 찬성할 수 없어요. 제왕적 대통령제를 연장해 장기 집권하겠다는 것이니까요.”
여권은 이미 야당에 대해 ‘개헌 열차에서 탈선한 수구 세력’이라 비판하고 있습니다만.
“여권은 상대방이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안을 던지고 지방선거와 국민투표를 동시에 하자고 하면서 개헌을 지방선거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죠. 민주당은 야당한테 뒤집어씌우려 하겠지만 그렇게 안 될 겁니다. 여권의 의도가 이제 명백히 드러나고 있으니까요.”
정 의원은 “문 대통령의 개헌안은 철회돼야 한다. 민주당은 제왕적 대통령 문제를 해결하는 개헌 논의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