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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연재〉 황승경의 극과 인간

뮤지컬 ‘시데레우스’

“갈릴레이, 별에서 진실을 찾다”

  • 공연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뮤지컬 ‘시데레우스’

  • ●프레디 머큐리가 외쳤던 ‘진실의 아이콘’
    ●두 딸을 수녀원에 보내야 했던 아버지
    ●목성 위성을 ‘메디치의 별’ 명명… 궁정 수학자의 길
    ●지동설 연구로 9년간 가택연금, 묘비 없이 매장
뮤지컬 ‘시데레우스’
‘록 음악의 전설’ 퀸(Queen)의 대표곡 ‘보헤미안 랩소디’에는 살인을 한 사형수의 후회와 공포, 회한이 서려 있다. 그러나 이는 퀸의 리더 프레디 머큐리(1946~1991)가 자신 내면에 살고 있는 인물을 죽이고 새로운 자아를 찾아간다는 내용이라는 해석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사형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긴박한 순간에 생뚱맞게 코러스는 화음을 넣어 16세기 과학자 ‘갈릴레오’를 5번 부르짖는다. 아마도 프레디는 ‘지동설’이라는 과학적 진실을 주장하다 종교재판소 재판을 받기 위해 감금된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그림)의 고뇌를 이입하기 위해 ‘갈릴레오’를 부르짖게 했을 것이다. 

록 음악의 황제조차 절박한 순간에 연상할 정도로 갈릴레이는 감추어진 진실을 어두운 세상에 알리는 ‘아이콘’이다. 공연계에도 그와 관련된 다채로운 공연이 무대에 올라 다양한 표현과 해석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뮤지컬 ‘시데레우스’(4월 17일~6월 30일/ 충무아트센터)에는 갈릴레이와 동시대를 살았던 독일 수학자이자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가 등장한다. 케플러는 실제 자신의 연구 결과물인 ‘우주의 신비’를 선배 갈릴레이에게 보내 도움을 청했다. 물론 갈릴레이는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더는 교류가 없었지만, 케플러가 갈릴레이의 학설을 적극 지지했다는 기록에 근거해 뮤지컬은 출발한다. 

우주 속에 있는 듯 환상을 심어주는 무대는 각기 다른 독립된 공간을 만들기도 하고 공연장 전체가 하나의 우주를 표현하기도 한다. 무대 위 두 개의 영상 스크린은 갈릴레이와 케플러 두 개의 망원경 렌즈로 바뀌어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망원경 너머로 보이는 아름다운 우주 풍경을 보여준다.


‘눈물의 딸’ 첼레스테

[shutterstock]

[shutterstock]

막이 오르면 무대 위에 갈릴레이의 딸 수녀 마리아 첼레스테(아명 비르지니아)가 종교재판소의 법정에 서게 된 아버지의 편지를 받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파도바 교수 시절, 갈릴레이는 ‘마리나 감바’라는 아름다운 여인에게서 1남 2녀를 얻었지만 신분 차이 때문에 정식으로 결혼하지는 못했다. 지금이야 손가락질 받을 사생활이기도 하지만 당시 풍토로는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뿐, 큰딸이 10살 되던 해에 갈릴레이가 피렌체로 이직하며 두 사람의 사이도 금이 간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 한때 불같은 사랑을 하던 두 사람은 소원하게 되고 2년 뒤 마리나 감바는 세상을 등진다. 이미 두 딸을 보살피고 있는 노모에게 어린 아들까지 맡길 수가 없어 그는 두 딸을 피렌체 인근의 수녀원으로 보낸다. 사생아로 호적이 없는 두 딸이 적당한 혼처를 얻지 못할 것을 걱정한 아버지의 심정으로 차라리 수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큰딸 비르지니아는 수녀원에 들어가면서 별에 관심이 많은 아버지를 기념하며 ‘청명한 하늘’이라는 의미의 ‘첼레스테’로 이름을 짓는다. 비록 떨어져 있지만 부녀는 234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부모자식 간의 돈독한 정을 나눴다. 

지난 5세기 동안 갈릴레이를 주제로 한 작품에서 마리아 첼레스테는 항상 등장했지만 그는 아버지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뮤지컬 ‘시데레우스’에서 첼레스테 수녀는 ‘딸 바보’ 아버지의 사랑스러운 딸이자 든든한 동료로 그려진다.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에서 유죄를 받은 다음 해 첼레스테는 34세 한창 나이에 수녀원에서 요절한다. 하지만 가택연금 중이던 갈릴레이는 딸의 장례식에 가보지도 못하고 눈물로 한스러운 밤을 지새웠다고 전해진다. 뮤지컬에서는 갈릴레이가 너무 젊어 보여 실제 부녀가 아니라 남매로 보였다. 극에 대한 몰입도를 떨어지게 하는 옥의 티다. 

극 중 마리아 첼레스테 수녀는 편지에 일러둔 대로, 급히 갈릴레이의 연구실에 들어가 편지꾸러미를 찾아낸다. 행여나 누가 볼까 싶어 서랍 구석에 꼭꼭 숨겨둔 편지 발신인은 독일 수학자 케플러. 수녀는 행여나 아버지에게 새로운 죄명이 늘어날까 봐 노심초사한다.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된 두 명의 과학자가 잘못된 상식을 극복하기 위해 시대적 편견과 싸워가는 여정을 읽어 내려간다. 케플러가 자신의 연구 성과를 담은 ‘우주의 신비’에 대한 감수와 조언을 해달라며 끊임없이 서신을 보내자 이에 지친 갈릴레이는 그의 가설이 틀린 이유를 조목조목 증명하려 한다. 그는 자신이 발명한 망원경을 통해 작성된 천체 기록으로 지동설을 완성한다. 두 사람은 1500년 만에 종교·철학으로부터 분리된 과학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천동설을 깨는 사람들

중세 역사는 신앙의 역사라고 할 만큼 기독교적 세계관과 가치관으로 신의 세계에 접근하고 이해하려 했다. 중세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모든 행성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천동설을 굳게 믿었다. 그렇다고 신이 인간을 창조했으니 당연히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된다는 천동설을 맹목적으로 추앙한 것은 아니다. 천동설은 2000년 동안 세기를 거듭하며 당대 최고 석학들에 의해 보완되고 확장된 절대적 이론이었다. 

기원전 4세기경, 아리스토텔레스는 영원히 변치 않는 완벽한 존재인 우주의 중심은 지구라고 여겼고, 법칙과 이론으로 이를 증명했다. 앞서 기원전 5세기 피타고라스와 기원전 3세기 아리스타르코스가 지동설을 주장했지만 완벽하게 입증하지 못하면서 지동설은 가설에 머물렀다. 

천동설은 구약성경(여호수아 10장)에도 등장한다. 기원전 1400년경 신은 자신의 권능으로 지구를 도는 태양을 잠시 멈춘 기적을 행한다. 이후 1500년 동안 천동설은 절대적 진리로 군림했다. 천동설은 성경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돼 신앙인을 더욱 종교에 몰입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천동설을 근거로 계산한 천문항법은 정확하지 않아 항해자들이 목숨을 잃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천동설의 한계를 지켜보며 그 견고한 껍질을 깨려 시도한 과학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 테이프를 끊은 사람은 폴란드 출신의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1473~1543). 교회와의 충돌을 염려한 그는 사망 1년 전인 1542년에야 저서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를 출간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러나 왜 우리가 자전속도를 느끼지 못하는지,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이 왜 우주공간으로 떨어지지 않는지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 입증하지 못했다. 그가 주장하는 지동설은 천동설보다 훨씬 복잡하고 모호했다. 

코페르니쿠스가 세상을 떠난 지 22년 뒤, 이탈리아 피사에서 한 남자아이가 7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다. 당시 장남에게는 성(姓)과 같은 이름을 주던 이탈리아 중부지방의 풍습대로 성 ‘갈릴레이’를 따 이름을 ‘갈릴레오’로 지어줬다. 할아버지는 명망 있는 의사였고, 아버지 빈첸초 갈릴레이는 피렌체 유력 가문의 궁정 작곡가로 르네상스 시대에 손꼽히는 지식인이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갈릴레오는 피사대학 의학부에 입학하지만 의학보다는 수학에 더 집중한다. 그리고 1589년 피사대학 수학과 교수로 임용되지만 생활은 여전히 궁핍했다. 1592년 파도바대학 수학과로 적을 옮기면서 수입은 좋아졌지만, 가장인 그는 군사용 컴퍼스(제도용 기구)를 발명하는 등 부수입원을 끊임없이 찾아다녀야 했다. 1609년 갈릴레이는 네덜란드에서 발명된 망원경보다 8배 배율이 좋은 망원경을 개발해 베네치아 총독에게 헌사하고 종신교수직을 보장받으려 노력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그래서 20배율의 망원경을 개발해 직접 하늘을 관찰했다.


교회의 신념에 반한다는 것은…

갈릴레이 눈에 비친 달은 알려진 것과 다르게 표면이 울퉁불퉁했다. 36세의 젊은 수학과 교수는 지구 중심 세계관이 성경에 위배된다는 인식보다는 안정된 일자리가 시급했다. 그는 목성에 4개의 위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재빨리 이 위성에 ‘메디치의 별’이라 명명하고 코지모 메디치 대공에게 후원을 요청한다. 달과 목성을 기록한 책 ‘시데레우스 눈치우스’(‘별이 전하는 소식’이라는 뜻)와 망원경을 메디치 대공에게 보낸다. 그는 소원대로 메디치 가문의 궁정 수학자 겸 철학자가 돼 안정된 가계를 꾸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거처를 옮기면서 다섯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뮤지컬의 제목이기도 한 그의 저서 ‘시데레우스 눈치우스’는 550판까지 출간됐고, 중국에까지 번역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명성도 높아졌다. 그토록 염원했던 안정된 직장에서 부와 명예를 모두 쥐게 됐다. 그러나 아무리 이성적인 사고로 학설을 증명했더라도 교회의 신념에 반한다면 이단으로 내몰리는 현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지동설을 주장했던 천문학자 조르다노 브루노(1548~1600)는 고통스럽게 화형대에서 삶을 마감했기에 연구를 지속하려면 그도 목숨을 걸어야 했다. 1615년, 그도 종교재판소의 부름을 받았다. 자극적인 원본 문구를 순화시킨 위조 문서까지 만들어가며 교황청을 설득했고, 이에 성서 내용과 모순되는 학설을 다시는 주장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서야 재판에 회부되지 않았다. 

남부러울 것 없이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는 1632년 ‘두 개의 주요 우주체계에 대한 대화’라는 책을 집필하는데, 이듬해 참다 못한 로마 교황청이 그를 종교 재판대에 세웠다. 당시 교황 우르바노 8세(재위 1623~1644)는 교황에 선출되기 전에는 갈릴레이를 변호했던 인물로 죽마고우처럼 가까운 사이였다. 그러나 교리에 반대되는 책을 집필한 것에 대한 배신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갈릴레이는 지동설 관련 연구를 하지 않겠다는 교황청과의 서약을 어겼기 때문에 가중 처벌을 받아야 했지만 다행히 고령과 건강상태를 고려해 가택 연금이 내려졌다.


새로운 열망의 씨앗을 남긴 사람들

뮤지컬 ‘시데레우스’의 한 장면. [충무아트센터 제공]

뮤지컬 ‘시데레우스’의 한 장면. [충무아트센터 제공]

남은 9년의 인생을 집 안에서만 연금돼 생활했으나 그는 시력을 잃은 상태에서도 죽는 순간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을 정도로 흐트러짐 없이 연구에 열중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망하기 1년 전 ‘새로운 두 과학에 대한 논의와 수학적 논증’이라는 또 다른 역작을 네덜란드의 출판사를 통해 세상에 내놓았다. 새로운 두 과학은 ‘고체의 강도에 대한 이론’ ‘물체의 낙하 법칙’이었다. 과학에 대한 열정은 높았지만 이 때문에 그는 사망 후에도 가족묘지에 묻히지 못하고 95년간 묘비도 없이 쓸쓸히 있어야 했다. 

사망 이후 1세기 동안 그의 업적은 재평가됐고, 드디어 강력한 시대적 요구에 의해 미켈란젤로가 잠들어 있는 피렌체의 산 크로체 성당에 영면할 수 있었다. 이장(移葬) 당일에는 그의 추종자들이 몰려와 성당이 아수라장이 될 정도였고, 그의 오른쪽 손가락 3개와 척추와 치아 각 1개씩을 훔쳐가는 엽기적인 사건도 발생했다. 고작 100여 년이 지났을 뿐인데, 세상을 호령하던 권력자였던 교황, 베네치아 총독, 메디치 공작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갈릴레이는 여전히 현재형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4인조 라이브 밴드의 생생한 연주가 돋보이는 뮤지컬 ‘시데레우스’에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신념을 위해 싸웠고, 새로운 시대를 향한 열망의 씨앗을 남기는 갈릴레이와 케플러의 수려한 노래가 가득하다. 비록 두 사람은 만난 적도 없고 뮤지컬에서처럼 많은 편지를 주고받는 관계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두 사람을 함께 다루는 뮤지컬이 탄생했을까. 

이들은 끝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아 끔찍하게 불 속에서 죽어나간 브루노와는 다르다. 갈릴레오와 케플러는 과학적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학자적 신념 뿐 아니라 오히려 이론을 바탕으로 온도계와 맥박계, 물을 끌어올리는 기계 같은 ‘선물’을 인류에 선사하며 새로운 시대를 향한 청사진을 제시한 미래지향적 인물이었다.




신동아 2019년 6월호

공연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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