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찮은 민심…서울-충청 당 지지율 역전
“안보는 너무 북쪽에, 경제는 너무 왼쪽에”
“친문계에 공천 못 맡겨”…여당 권력누수 조짐
‘유승민·안철수 보수행’ 정개개편?
한국당, 박스권 갇혀 총선 참패할 수도
4월 26일 더불어민주당 내지 국회사무처 관계자들이 노루발못뽑이(일명 빠루)와 장도리를 사용해 국회사무처 의안과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뉴스1]
이렇게 만든 쪽은 문재인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다. 인사청문회에서 야당들이 부적격자로 낙인찍은 인물들을 줄줄이 임명해 부아를 돋우더니 한국당을 빼고 패스트트랙을 추진했다. 패스트트랙은 특정 안건을 신속처리 대상으로 지정하는 제도다.
민주당은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과 함께 공직선거법 개정안,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 검경수사권 조정안에 필요한 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기로 합의했다.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 동의가 필요하므로 다른 야당의 협조를 구했다.
서로 성질이 다른 법안들이 묶인 건 민주당과 야3당 간 정치적 타협의 결과다. 선거제 개정의 핵심은 준(準)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이다. 한국당에 불리하고 정의당처럼 소수당에 유리하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과제가 된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을 얻었다.
한국당으로선 투쟁거리가 생겼고 명확한 타깃도 설정된 셈이다. 황교안 대표체제 출범과 나 원내대표의 ‘문 대통령은 김정은 수석대변인’ 발언은 보수 유권자들의 호응을 샀다. 한국당은 자신감을 얻었다. 패스트트랙 무효를 주장하면서 장외 대여투쟁에 돌입했다.
패스트트랙 후 여당 지지율 비상
장외투쟁 방식이 문제인데 황 대표는 청와대 앞이나 광화문광장 ‘천막당사’를 생각했다. 2004년 총선 선전을 이끈 ‘박근혜 천막당사’ 효과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 대표는 내부 토론 끝에 ‘천막당사’를 접었다.황 대표의 측근 당직자 A씨는 “광화문 천막을 포기한 게 박원순 서울시장의 불허 때문이라고 보도됐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천막 정도로는 승부수가 안 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A씨는 “천막 안에 앉아서 농성하는 건 소극적 저항이다. 지금은 박근혜 대표 때보다 더 적극적인 저항이 필요하다고 봤다. 풍찬노숙하며 국민 속으로 들어가는 국토대장정을 선택한 것”이라고 했다.
이런 승부수에 따라 황 대표는 5월 2일 서울~대전~대구~부산 등 ‘경부선’에서 장외투쟁을 했고, 다음 날엔 광주~전주~용산역으로 올라오는 ‘호남선’ 투쟁을 했다. 광주에선 시민단체와 충돌하면서 물세례를 받기도 했다.
이어 황 대표는 5월 7일부터 25일까지 19일 동안 다시 부산·경남을 시작으로 대구·경북, 충청·대전, 광주·전남을 거치는 전국순회 대장정에 들어갔다. 원외인 황 대표가 일찌감치 대권 행보에 나섰다고도 볼 수 있다. 황교안-나경원이 주도한 장외투쟁의 가장 큰 효과는 고질적 계파갈등을 수면 아래로 가라앉혔다는 점이다. 친박’ ‘비박’ ‘친황’ 논란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한국당 관계자는 “공멸의 공포심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패스트트랙을 계기로 한국당과 민주당 간 정당 지지율 격차가 1%대로 좁혀진 결과가 나왔다. ‘리얼미터’가 5월 7, 8일 전국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민주당은 36.4%, 한국당은 34.8% 지지를 받았다(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3.1%포인트). 한국당은 4주째 상승세를 보이며 30%대 중반에 안착했다. 최대 승부처인 서울(한국당 42.5%, 민주당 33.0%)과 대전·세종·충청(한국당 43.5%, 민주당 32.8%)에서 역전했다.
“울타리 나간 집토끼 귀가 중”
같은 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평가도 긍정(47.3%)보다 부정(48.6%)이 앞섰다. 취임 직후인 2017년 5월 4주차 84% 지지율이 급락한 것이다.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조사기법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한국당에 긍정적인 추이 변화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한국당의 상승 흐름은 2·27 전당대회를 전후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국정농단으로 이탈한 보수층이 돌아오고 있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미스터 국보법’ 황교안 대표가 선출된 전당대회 컨벤션 효과,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북한 미사일 도발로 인해 안보를 중시하는 보수층이 서서히 결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당 지지율 반등은 한국당이 예전 보수를 다시 불러들이는 방증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종근 정치평론가(전 데일리안 편집국장)는 “울타리 밖으로 나간 한국당 집토끼들이 산(민주당)으로는 가지 않고 중간지대에서 있다가 다시 울타리 안으로 귀가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당 지지율이 오르는 시점에 무당층이 줄었다. 과거 한국당 지지층이던 이들 무당층은 홍준표 대표 시절까지는 관망했다. 홍 전 대표의 언행을 볼 때 비주류라고 판단한 까닭이다. 한국당의 전통 지지층은 주류적 가치를 존중하니까. 그러다 황교안 대표가 정치 입문을 선언하고 한국당에 입당한 날부터 지지율이 출렁거렸다. 한국당 지지율이 올라가면서 무당층이 줄어들었다. 황 대표는 한계가 있지만 예측 가능한 주류니까 일부 무당층이 황 대표에게 마음을 연 것으로 보인다.”
이 평론가는 “황교안의 이미지가 보수진영의 기호와 맞아떨어진다”고 분석했다. “정치인의 메시지에서 철학과 품격을 읽을 수 있는데, 황교안의 메시지는 안정적이고 일관성이 있다”는 의미다. 홍준표 대표 때처럼 “왜 저러지?” “말도 안 되는 소리하네?” 같은 지적을 듣지 않는 것이 보수에게 일단 먹히고 있는 셈이다.
“650만 자영업자 초토화”
2·27 전당대회를 통해 지도부에 들어온 김광림 최고위원은 당 지지율 상승 요인으로 황교안의 안정성, 황교안과 나경원 간 호흡을 꼽았다. 김 최고위원은 “홍준표 전 대표는 언행이 시원시원하지만 불안한 구석이 있었다. 반면 황 대표는 큰 실수를 하지 않기 때문에 보수층의 지지를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친박-비박 구분이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이런 상태에서 총선이 다가오니 의원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장외투쟁을 벌인다”는 것이다.문재인 정부의 실정(失政)에 대한 바닥 정서의 실망감도 상당하다고 한다. 김 최고위원은 “안보는 너무 북쪽에, 경제는 너무 왼쪽에 치우쳐 있어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며 “특히 650만 자영업자가 초토화된 상태”라고 했다.
그러나 황교안 체제의 확장성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시각도 많다. 윤 센터장은 “관건은 남북관계”라며 “남북대화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넓은 편인데 정부의 대북정책에 너무 견제를 심하게 하면 국민 정서와 괴리가 생긴다. 중도층으로의 지지세 확산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평론가도 “한국당으로선 당장 전통적인 지지층 재흡수가 급선무지만 5%가 됐든 10%가 됐든 중도층을 잡는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며 “지금부터 그 카드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승부수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은 기득권을 포기하고 자기 살을 깎는 총선 개혁공천이다.
한국당이 중도층을 붙잡기 위해선 다른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갈라선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바른미래당 내 바른정당계와의 재결합 내지 선거연대다. 지금 바른미래당은 혼돈 상태다. 패스트트랙에 참여하는 문제를 놓고 극심한 내홍을 겪었다. 당 지도부, 유승민계, 안철수계, 호남파가 서로 뒤섞여 우격다짐을 했다.
“유승민, 수도권 격전지 출마할 수도”
문무일 검찰총장은 5월 1일 여권이 패스트트랙에 올린 공수처 법안과 관련해 “민주주의 원칙에 반한다”고 밝혔다. [동아일보 원대연 기자]
여권에선 조직의 허술함이 노출되고 있다. 청와대의 경우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에서 추가경정예산안과 민생법안을 처리해야 할 국회가 마비됐음에도 정무 기능이 별로 작동하지 않았다. 대신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상황을 통제하는 듯했다. 이는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보였다.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에 대해 문무일 검찰총장이 반발하는 사실상의 ‘항명’ 사태도 일어났다. 문 대통령은 “적폐 수사를 기획하거나 관여한 바 없다” “경제가 좋다”는 말 때문에 야당과 일부 언론의 비판에 직면했다.
비문(非文)계를 중심으로 하는 민주당 의원들은 총선 때 공천을 받지 못하거나 본선에서 패배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여권 관계자는 “친문계에게 공천을 일임하면 현역의원 상당수가 물갈이 희생양이 된다고 생각한 듯하다. 또한, 4월 재보궐선거 0대 5 참패는 본선 패배 불안감을 부추겼다”고 말했다. 더구나 패스트트랙 지정으로 지역구 의석이 대폭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진 터였다.
민주당 의원들은 친문계의 독주를 견제했다. 5월 8일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86운동권 출신이지만 비주류로 분류되는 이인영 의원은 이해찬 대표의 측근이자 친문계의 전폭적 지원을 받은 김태년 의원을 넉넉하게 따돌리고 원내대표가 됐다. 권력 내부에서 누수가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바른미래당의 향배는 총선정국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사보임을 강행하면서까지 패스트트랙 참여를 주도한 김관영 원내대표는 퇴진했다. 오신환 신임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 공조를 수정할 것으로 보인다. 오 원내대표는 “본회의 전에 선거제와 공수처 모두 여야가 합의처리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과의 공조를 파기할지 여부가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그러나 바른미래당 의원들의 찬성으로 패스트트랙 지정은 이미 완료된 상태다. 이젠 ‘5분의 3’이 별 효력이 없다. 공수처 법안을 다루는 정원 18명 사개특위의 경우 바른미래당 몫 2명이 민주당과의 공조를 깨고 한국당 입장에 서면 ‘범여’(민주당 8명, 민평당 1명)와 ‘범야’(한국당 7명, 바른미래당 2명)는 9대 9가 된다. 이렇게 되면 공수처 법안은 사개특위 문턱을 넘지 못한다. 정개특위는 범여가 10명(민주당 8명, 민평당 1명, 정의당 1명)으로, 바른미래당 측이 변심하더라도 범야 8명(한국당 6명, 바른미래당 2명)을 능가한다.
다만 이들 법안을 다루는 해당 특위의 활동기간은 6월 말까지여서 이런 수적 우열은 의미가 없어질 수 있다. 활동 시한 종료 전에 속전속결로 법안을 처리해 법사위로 넘기는 강수를 두는 건 어려워 보인다.
민주당은 특위 활동 기간 연장을 추진하겠지만 장외투쟁에 돌입한 한국당이 들어줄 리 만무하다. 이 경우 특위 활동 종료와 동시에 해당 법안들은 관련 상임위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선거법 개정안은 정개특위에서 국회 행정안전위로, 공수처 법안과 검경수사권 조정안은 사개특위에서 법사위로 이관된다.
바른미래당이 민주당과의 공조를 파기하고 한국당과 연대할지는 당내 손학규 대표 퇴진론과 연결된다. 손 대표가 물러나면 바른미래당은 깊은 상처를 남긴 채 여당과의 공조에서 빠져나올 가능성이 높다. 유승민계와 안철수계가 정계개편 패스트트랙에 타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 신속처리안건을 둘러싼 충돌이 보수대통합을 재촉하는 접착제가 될 수 있는 셈이다.
무당층, 중도층이 사라지는 현실을 감안하면, 바른미래당의 총선 독자생존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정계개편의 시침이 돌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 충분히 못 받아먹을 수도”
5월 3일 광주시 광주송정역 광장에서 시위 참가자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게 물병을 던졌다. [뉴시스]
한국당 중진인 주호영 의원은 한국당과 민주당 지지율이 좁혀진 것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가 무능해서가 아니라 완전히 반대로 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책을 몽땅 거꾸로 쓰고 있다. 경제, 외교안보, 사법개혁, 국민통합…꼽을 수도 없다. 그러나 아직 우리에게 정을 주지 못하는 분도 많다.”
-‘황교안 효과’는?
“보수가 정권을 되찾으려면 황교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는 고민해봐야 한다. 이길 수 있는 카드를 찾아야지, 지금 1등이라고 밀면…”
-새로운 카드를 찾아야 한다?
“그럼 이대로 황 대표를 대선후보로 만드나? 다른 주자들에게도 공정하게 기회를 주고 경쟁력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잘 모르는 네거티브 요소가 있는지 이것저것 걸러봐야 한다. 그러지 않고 압도적 1위 만들어 본선 갔을 때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나.”
-한국당 지지율 상승세는 지속될까?
“저쪽은 계속 추락할 것이고 이쪽은 순전히 반사이익으로 올라갈 수 있다.”
-중도층으로 확장된다고 보나?
“우리가 하기 나름인데, 충분히 못 받아먹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