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호

봉달호 편의점 칼럼

‘또라이’ 총량 불변의 법칙 ; 대한민국 ‘진상’ 보고서

감정 과잉의 사회… 당신도 ‘진상’인가

  • 봉달호 편의점주 runtokorea@gmail.com

    입력2019-05-29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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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진상’들 속에서 살아간다. 진상의 양대 법칙이 있다. 하나는 ‘호의를 베풀면 권리인 줄 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진상은 자기가 진상인 줄 모른다’는 것이다. 진상은 ‘총량 불변의 법칙’대로 존재한다. 과연 나는, 당신은, 우리는, ‘옳기만’ 한가. ‘우리’가 욕하는 진상은 거울에 비친 ‘나’의 반면일지 모른다.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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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아내에게 우울증이라고 말했다’는 언론인 김정원 씨가 중등도(中等度) 우울증 진단을 받고 그것을 극복한 과정을 기록한 에세이다. 우울증에 대한 책이라니까 좀 우울한 책일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사람 정말 우울증에 걸렸던 사람 맞아?’ 싶을 만큼 유쾌한 필치로 자신의 경험을 술회한다. 

    이 책에서 요즘 말로 ‘격공’한 대목이 있다. ‘또라이 총량 불변의 법칙’. 사회생활을 하며 우리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출세하기 위해 남을 깎아내리고, 권력자에게 아부하고, 덤터기 씌우고, 박쥐처럼 이리저리 옮겨붙고, 남의 실적을 가로채고 등), 그런 ‘또라이’를 피해 다른 조직으로 옮겨가도 언제 어디든 일정한 비율로 또라이가 존재하더라는 말이다. 

    유통이나 서비스 업계에는 ‘진상’이라는 속어가 있다. 알다시피 진상은 임금님께 지방 특산물을 바치는 행위를 이르는 말인데, 진상품을 거둬들이는 과정에 워낙 패악이 심해 백성들이 원망의 뜻을 담아 ‘진상’을 회자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무례한 말과 태도로 필요 이상의 요구를 하거나 억지를 부리는 행위, 또는 그런 사람”이라고 사전에까지 정의하고 있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지인이 “은행에도 진상 손님이 있어요”라고 말하기에 이런저런 사례를 들으며 씁쓸하게 웃은 적이 있다. ‘또라이 총량 불변의 법칙’대로 진상 손님도 어딜 가든 일정 비율로 존재하나 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함께 일하는 동료나 선후배, 당신에게 수익을 가져다주는 손님을 또라이나 진상이라고 비하할 수 있느냐고 지적하실 분들이 계실 것 같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무례하고 불쾌한 일들에 속으로 끙끙 앓는 것보다 홀로 욕 한번 하면서 훌훌 털어버리면 마음이 좀 후련해지는 것처럼 ‘속풀이’ 용어 정도로 혜량해주시면 고맙겠다.

    진상의 4大 유형

    편의점에도 과연 진상이 있을까 싶겠지만 역시 ‘총량 불변의 법칙’대로 존재한다. 수년간 편의점을 운영하며, 다양한 손님과 점주를 만나면서, 보고 듣고 겪은 진상의 유형을 정리해보니 다음과 같다. 



    첫째, 교양 부족형 진상. 편의점에서 가장 흔하게 만나는 무례한 손님은 현금이나 신용카드를 집어던지는 방식으로 건네주는 손님이다. 지폐를 카운터 위에 나풀나풀 종이비행기 날리듯 던지는 사람이 있고, 신용카드를 화투 치듯 따락~ 내려놓는 사람도 있다. 세상사 둥글둥글, 상냥하게 전해주면 다시 공손하게 되돌려주고, 그러면 서로 좋을 텐데, 왜 굳이 그런 행동을 해 나쁜 감정을 유도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이 종종 있다. 

    근무하는 알바생에게 대뜸 반말하는 손님도 있고, 뻐끔뻐끔 담배 피우면서 편의점 안으로 들어오는 손님도 있다. 카운터 위에 물건을 올려놓자마자 “얼마예요”하고 물으면서 상품 바코드를 스캔하는 도중에도 계속 인상 쓰며 빨리 하라고 재촉하는 손님도 있고, 여기는 왜 이렇게 비싸냐고 다른 손님들 들으라는 듯 큰소리 지르는 손님, 다른 가게에서 산 물건을 우리 가게에 와서 환불해달라는 손님, 조금만 거슬리면 인터넷에 글 올리겠다고 항의하는 손님도 있다. 물론 ‘그런 것까지 진상이라고 매도하느냐’ 할 수도 있겠지만 정도가 지나친 사람들이 분명 있다. 

    둘째, 공짜 선호형 진상. 편의점엔 ‘공짜’인 것들이 있다. 나무젓가락, 빨대가 그렇고, 전자레인지를 사용하는 일도 그렇고, 편의점 앞 파라솔을 이용하는 것도 별도로 요금을 받지는 않는다(엄밀히 따지면 점주로서는 모두 소모품 비용을 주고 사들이는 물건들이다). 그렇다면 여기에도 교양과 절제가 있어야 할 텐데 막무가내인 사람들이 있다.

    성희롱은 진상이 아니라 범죄

    편의점 파라솔에서 담배 피우고, 침 뱉고, 쓰레기 버리고, 남은 음식물을 그대로 두고 가고, 온갖 지저분한 행동을 다 한다. 인근 치킨집에서 통닭 배달시켜 편의점 파라솔에서 먹는 사람도 있고, 등산로 입구에 있는 어떤 편의점은 밑반찬까지 바리바리 싸와 파라솔 테이블에서 먹는 사람들 때문에 신경전을 벌인다. 다른 사람은 생각지 않고 편의점 시식대에서 영화나 음악 들으며 장시간 자리를 독점하는 손님도 있고, 담배를 사면서 라이터를 서비스로 달라는 손님도 있고(담배에 판촉물을 증정하면 실정법 위반이다), 맥주 대용량 PET병에 걸려 있는 판촉용 과자만 떼어가는 사람도 있다. 도대체 무엇에 쓰려고 그러는지 나무젓가락, 빨대, 요거트 스푼을 한 움큼 들고 가는 사람도 있고, 커피머신 옆에 있는 설탕이나 시럽, 냅킨을 잔뜩 챙겨가기도 한다. 

    셋째, 음주 추태형 진상. 술을 마시면 사피엔스라는 동물이 어떤 종(種)으로 변이하는지 편의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술에 취한 채 편의점에 들어와 소주병을 고르다가 깨뜨리거나 진열대를 뒤집어놓는 사람도 있고, 매장 안팎에 구토하는 사람까지 있다. 설마 그런 일이 있을까 싶겠지만 편의점 안에서 큰대자로 뻗어 자거나, 쇼케이스 냉장고를 화장실로 착각해 용변을 보았다는 취객의 이야기도 업계에서 전설로 회자된다. 

    편의점 자동입출금기(ATM)도 때로 취객의 공격 대상이 된다. 잔고 확인을 했는데 없을 경우 기계에 화풀이하며 쾅쾅 두들겨대거나 발로 걷어찬다. 커피나 음료를 ATM 위에 올려놓고 인출하다 쏟고는 조용히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외부에 입간판을 세워둔 편의점도 취객이 걷어차는 바람에 재산상 손실을 입는다. 한 달 사이 입간판이 세 번이나 파손됐다고 한숨을 내쉬는 점주를 만난 적 있다. 

    넷째, 범죄형 진상. 술 마시고 편의점에 찾아와 혀가 꼬인 채 알바생에게 한참이나 자기 자랑을 하거나 “편의점 말고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훈계질하는 손님은 오히려 애교에 가까운데 “예쁘게 생겼다” “남자친구 있느냐” “전화번호 알려달라”며 이른바 ‘집적대는’ 손님이 있다. 과거에는 이런 손님을 그냥 진상 정도로 여긴 적도 있지만 요즘은 곧장 성범죄로 처벌되니 지면을 통해 강력하게 경고한다. 쇠고랑 차고 싶지 않으면 꺼지시라. 

    편의점에는 사기 사건도 일어난다. 점주의 지인을 사칭하거나 공무원 행세를 하며 ‘점주에게 받을 돈이 있다’고 알바생을 속여 현금을 가로채는 사건이 있고, 유통기한 지난 물건을 들고 와 편의점 진열대 안에 슬쩍 집어넣고는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돈을 뜯어낸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 청소년에게 술이나 담배를 팔도록 유도해놓고 신고하겠다고 협박하는 사례 또한 심심찮게 발생한다. 세상엔 참 별의별 사기꾼이 다 있다. 물론 이런 것들은 그냥 진상 수준이 아니라 분명한 범죄다. 

    교양 부족형 진상, 공짜 선호형 진상, 음주 추태형 진상, 범죄형 진상…. 소중한 지면을 낭비하며 손님들 뒷담화나 하자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범죄형 진상은 신고하면 되고, 음주 추태형 진상도 쫓아내거나 신고하면 되는 일이다. 공짜 선호형 진상은 일회용품이나 편의점 설비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바꿈으로써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교양 부족형 진상이겠으나 사실 이런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은 것도 아니고, ‘총량 불변의 법칙’대로 세상 어디나 일정한 비율로 그런 사람은 있게 마련이라며 참아버리면 끝나는 일이다. 흔히 하는 말로 ‘없는 셈치고’ 넘어가버리면 된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자영업을 하면서 ‘그 심리는 대체 뭘까’ 유심히 탐구하는 중이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을이 을에게 더 가혹하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동네 커피숍에 일단의 손님이 들어온다. 예닐곱 명 되는데, 테이블 몇 개를 붙여 커피숍 중앙에 자리 잡는다. 낯빛이 다들 불콰한 것을 보니 이미 거나하게 술을 마신 것 같고, 이들의 왁자한 이야기를 들으니(듣지 않으려 해도 들린다) 인근 노래방까지 거쳐 온 것 같다. 술 마시고 노래방 갔다가 다시 커피숍에 들른 것을 뭐라고 탓할 수는 없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역시 계속 들린다) 한동네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끼리 오랜만에 함께 등산 갔다가 술자리로 이어진 것 같다. 아이들처럼 친구의 볼을 잡아당기고, 짓궂게 모자 벗겨 머리를 땅땅 두드리며 장난치기도 하고, 왁자지껄 흥겹다. 

    물론 커피숍은 책 읽거나 글을 쓰는 사람들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다. 공부하는 공간만도 아니다. 저마다 다양한 목적을 갖고 커피숍을 찾는다. 사람들끼리 만나고 대화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렇게 다양한 목적을 갖는 만큼,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떠올릴 순 없을까. 나뿐 아니라 주위의 눈초리가 곱지 않다. 그럼에도 이분들은 주위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당신들의 감정을 한껏 풀어내는 중이다. 흥겹고 유쾌하리라. ‘나만(우리만) 즐거우면 된다’는 식이다. 

    그냥 정상적으로 건네주어도 될 텐데 굳이 현금이나 신용카드를 집어던지면서 계산을 치르는 사람을 대할 때, 처음 장사하던 시절에는 ‘저 손님은 오늘 기분 나쁜 일이 있었나 보다’ 하면서 최대한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손에서 손으로 건네주는 행위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사람인 줄 알았던 적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정상적인 전달 방식을 익히 알고 있고, 특별한 신체 결함이 없는데도 정말 ‘굳이’ 그렇게 한다. 습관적으로 그렇게 한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다는 아니겠지만 그들은 자신이 거칠고 무례하게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다. 그들은 그것을 손님으로서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고, 상대방이 그것에 고분고분 복종하거나 인내하는 모습을 보면서 은근한 쾌감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은 정당한 비용을 지불했으니까 이 정도 행세하는 것을 어쩌면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다. 이 아찔한 사고방식은 또 뭐라고 불러야 할까. 

    “진상 손님과 다툼이 생겨 경찰서까지 갔다가 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고 보면 우리 사회의 을(乙) 중 을인 경우가 많더라”는 이야기를 여러 자영업 점주들에게 듣곤 한다. 그런데 자기도 당할 만큼 당하고 사는 사람이, 그럴수록 을의 처지를 더욱 이해하며 배려해주어야 할 텐데, 다른 을에게 오히려 거칠고 무례하게 대하는 경우를 목격할 때마다 아뜩한 어지러움을 느낀다. 마치 화풀이하듯, 나도 이렇게 당하고 있으니 너도 당해보라는 듯, 혹은 ‘네가 고생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듯, 포식자처럼 행동한다.

    비행기는 안전, 식당은 맛과 위생

    정리하자면 이렇다. 거칠고 무례한 사람들의 공통점, 아무리 ‘총량 불변’이라지만 그런 사람이 여전히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를 살피면 대충 이런 것 같다. △배려와 공감 능력 부족 △진상 짓을 ‘권리’라고 생각하는 인식의 팽배 △비용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사회적 풍토. 

    특히 ‘비용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풍토는 한 번쯤 되돌아봄 직하다. 자영업이 내내 과포화돼 경쟁이 치열한 데다 빠른 경제성장의 과정, 유교적 전통과 관념까지 겹쳐 어쩌면 우리는 지나친 친절과 속도를 강조해온 것은 아닐까. 

    물론 친절은 좋은 것이고 우리의 강점이기도 하다. 같은 값인데 친절하기까지 하다면야 금상첨화 아니겠나. 하지만 더러는 본질에 충실치 않으면서 친절만 앞세우는 경우를 보기도 하고, 적절한 서비스 이상의 것을 기대하고 거기에 환호한다. 비행기에서는 안전이 우선이고, 관공서에는 명징한 행정 절차가 중요하고, 편의점에서는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구입하면 되는 것이고, 식당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적당한 수준의 접객 태도와 분위기 속에 즐기면 충분하지 않을까. 

    어떤 장소에서 기대 이상의 것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따뜻한 인간미를 느껴 마음이 훈훈해지는 것은 권장할 일이지만 그것 자체를 기준으로 삼거나 획일화하는 순간 친절은 가식이 되고 비인격적 노동이 된다. 어느 패밀리 레스토랑 종업원들은 왜 무릎을 꿇는 듯한 자세로 주문을 받아야 했을까.
     
    속도 또한 그렇다. 이왕이면 일을 빨리 처리하면 시원시원하게 보이고 좋겠지만, 굳이 속도가 중요하지 않은 일, 혹은 약간 참고 기다릴 수도 있는 일에 우린 더러 조바심을 낸다. 자정 무렵 주문하면 다음 날 새벽에 배달되는 서비스가 물론 편리하고 필요한 사람이 많겠지만 과연 굳이 그렇게 빠를 필요 있을까. 나도 그 쇼핑몰을 자주 이용하지만, 때로 내게 그렇게 묻는다. 하루쯤 늦는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는데 나는 왜 이러는 걸까. 늦어지면 왜 짜증을 내는 걸까. 이건 어쩌면 ‘비용 이상의 것’이다.

    진상은 자기가 진상인 줄 모른다

    나를 포함해 급하게 사는 이가 많다. 감정 조절을 못해 상황을 그르치기도 한다. 쓸데없이 상대의 감정을 도발하는 일도 잦다. 굳이 감정적으로 대응하면서 어떻게든 복수의 심정을 드러내려 한다. 

    퇴직금 700만 원을 모두 1000원권으로 지급해 공분을 산 횟집 점주가 있다. 그것도 지폐를 박스 안에 풀어 헤쳐놓고 스스로 세어 찾아가라고 했다고 한다. 돈을 세고 있는 와중에도 비아냥거리며 모욕감을 줬다고도 한다. 게다가 퇴직자가 다른 횟집에 취업하자 주위 상인들과 압력을 행사해 그만두도록 만들었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주지 않던 퇴직금을 이제는 꼭 줘야 하는 세상이 돼 약간 당황스러운 심정이야 같은 자영업자로서 어느 정도 이해되지만, 이리됐든 저리 됐든 어차피 ‘줘야 할’ 돈을 왜 그렇게 인간적인 모멸감을 주면서까지 던져주려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아무런 실익도 없는 일을 굳이 왜 그렇게…. 

    시선을 정치권으로 돌려봐도 그렇다. 사정이 어쨌든 선거법 개정이라는 정치의 ‘룰’을 정하는 일을 제1야당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채 무조건 밀어붙이려 한 여당의 빈약한 정치력도 한심하지만, 기어이 물리력으로 막아낼 수 있으리라 믿는 건지 장외투쟁까지 벌이는 야당은 더욱 한심하기 그지없다. 도대체 뭘 믿고 그러는지 무언가에 홀려 감정적으로 휩쓸리는 것은 아닌지 괜스레 걱정될 정도다. 그런 진흙탕 싸움 와중에 가장 이해되지 않는 한 사람.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국회법과 형법 조항 등을 올리며 불난 집에 기름 끼얹는 식으로 야당을 감정적으로 자극하는 청와대 민정수석의 행동은 정말로 이해하기 힘들다. 자신의 존재감을 굳이 그렇게 드러내고 싶었던 것일까. 이렇게 노골적으로 정치 개입을 하는 민정수석이 과거에도 있었던가. 일부러 조롱하는 의도를 제외하고, 그것은 도대체 무슨 실익을 갖는 행동일까. 한숨이 나온다. 자꾸 감정을 자극하는 정치를 통해 그들은 무엇을 얻으려는 걸까. 

    우리는 ‘진상들’ 속에 살아간다. 진상의 양대 법칙이 있다. 하나는 ‘호의를 베풀면 권리인 줄 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상은 자기가 진상인 줄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숱한 진상질을 하며 살아온 것 같다. 내 권리는 중요한 줄 알면서 다른 사람의 처지와 위치는 무시하며 폭주한 적이 있고, 그러다 번번이 후회했다. 차분히 인내심을 갖고 이성적으로 설득할 일을 권위와 압력에 의지해 손쉽게 해결하며 그것을 수완이나 능력이라 착각하기도 했다.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차례로 이루어낸 역사를 통해 70년 전 같은 출발선에 있었던 국가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윤택한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있고, 높은 민주·권리·평등의식과 정의감을 갖게 됐다. 이 같은 도약 덕분에 긍지가 높아졌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혹시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은 쉬이 간과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감정 과잉의 사회를 살아가며, 때로는 그런 감정을 집단행동을 통해 합리화한다. 과연 나는, 당신은, 우리는, ‘옳기만’ 한가? ‘옳게만’ 살아왔던가. 우리가, ‘진상이다’ ‘교양이 부족하다’ ‘저질이다’ 욕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거울에 비친 나의 반면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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