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부터 현대건설이 아파트단지 개발
광남 학군, 대치동 접근성 덕에 관심
“모두가 부잣집은 아니지만 부족함은 없는 가정”
“이곳 장점? 유치원에서 고교까지 다 키울 수 있다”
“학창 시절 기억은 집·학교·학원·독서실·놀이터뿐”
“주민들의 ‘동네 만족도’ 어마어마하더라”
“베이비붐 세대 자녀들에겐 월급 모아 입성 어려운 곳 돼”
여기 ‘현대’라는 이름표가 즐비하게 붙은 동네가 있다.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동. 면적 2.39㎢에 1만2016세대가 둥지를 틀었고 3만6139명이 산다.(2019년 1월 1일 기준) 4월 26일 서울 지하철 5호선 광나루역 3번 출구를 나와 4번 출구 방향으로 시선을 두니 같은 이름을 쓰되 숫자만 다른 아파트가 그득하다. 개중에는 ‘파크빌’ ‘힐스테이트’ ‘프라임’ ‘홈타운’ ‘아이파크’ 같은 조어를 붙인 곳도 있으나 본질은 공히 ‘현대 아파트’다. 광나루역 3번 출구 방향에서 광남고등학교를 거쳐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변역 방향으로 걸어가니 부동산과 태권도장, 독서실, 오피스텔도 ‘현대’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다.
그러니 ‘광장동 사람들’에게 ‘현대’는 공기와 같은 존재다. 광남고 근처 ‘현대타워’ CU 편의점에서 만난 정모(남·17)군은 “여기서는 ‘어디 사느냐’고 했을 때 ‘3단지 산다’ ‘5단지 산다’ 하면 다 안다. ‘현대’라는 말은 굳이 쓸 필요가 없다”고 귀띔했다. 말을 마친 정 군은 ‘현대타워’ 옆 상가에 자리 잡은 ‘대우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가로질러 발길을 옮겼다. 산업화의 희로애락을 품은 ‘정주영의 현대’와 ‘김우중의 대우’는 광장동에서 이런 식으로 조우한다.
“낙향하는 강호인들의 거처”
광장동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광진리(廣津里)를 만나게 된다. 광진은 광나루를 한자(나루 진·津)로 바꿔 쓴 명칭이다. 광나루라는 이름은 경기 광주(廣州)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나루, 혹은 강폭이 넓은 나루에서 기원했다. “광나루는 죄인들이 도성을 빠져나가는 길목이 됐고, 때로는 당쟁에 밀려 낙향하는 강호인들의 거처가 됐다.”(이은식, ‘지명이 품은 한국사’ 중)광나루는 양나루 또는 양진(楊津)이라고도 불렸다. 광장동에 ‘광장’ 뿐 아니라 ‘양진’의 이름을 단 학교가 있는 까닭이다. 광장동 뒤로는 아차산이 있는데, 1963년 산 중턱에 워커힐호텔이 개관해 인근이 유명해졌다. 애초 경기도 소속이던 광진리(廣津里)는 장의동(壯義洞)과 합쳐 광장리가 됐다. 1949년 서울특별시 성동구로 편입됐고, 잠시 구의동 일부와 합쳐 광의동이 됐다가 1970년 구의동으로 개칭했다. 1977년 구의동에서 분리돼 지금의 광장동이 탄생했다.
1995년에는 성동구에서 광진구가 분구됐다. 광진구는 광장동의 옛 이름인 광진에서 따온 것이다. 광장동은 광진구 면적의 14%를 차지할 만큼 양적인 위상도 남다르다. 그렇다면 ‘낙향하는 강호인들의 거처’는 어쩌다 ‘현대’의 성지가 됐을까.
발단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경제신문’ 2000년 8월 4일자 ‘구의/광장동 ‘현대 타운’ 조성…내달 초 10단지 입주 마무리’는 이와 관련한 전후맥락을 잘 보여준다.
“원래 밭과 쓰레기 매립지였던 이곳에는 현대건설이 1980년대 중반부터 10개의 아파트 단지(광나루현대 포함)를 잇따라 건설했다. 극동, 삼성, 청구, 강변우성 등 현대아파트 주변의 4개 단지 2712가구를 포함하면 이 일대 아파트는 1만 가구가 넘는다. 그중 현대아파트의 시세가 가장 높다. 현대건설이 이곳을 압구정현대의 명성을 이어갈 곳으로 보고 설계와 시공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다.”
1970년대 중후반부터 서울시내에 중산층을 겨냥한 아파트가 여럿 등장했다. 1985년 경제기획원은 ‘중간층 육성대책’을 내놨다. 정부가 내놓은 최초의 중산층 육성정책이었다. “주택금융 수요자 사이에서 아파트에 대한 선호는 1980년대 말부터 급증했으며 1990년을 전후해 단독주택을 누르고 가장 선호하는 주택 형태로 단연 아파트가 꼽혔다.”(정헌목, ‘가치 있는 아파트 만들기’ 중)
광장동과 SKY
2000년 10월. 첫 입주 당시의 광장동 현대10단지(파크빌) 모습. [동아DB]
오늘날 광장동은 서울특별시 노원구 중계동과 더불어 ‘강북 대치동’으로 꼽힌다. 이는 ‘광남 학군’ 덕분이기도 하고, 실제 대치동 학원가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서기도 하다. 광장동에서 올림픽대교를 건너면 곧바로 ‘강남 3구’에 속한 잠실이다. 기자가 찾은 4월 26일에도 ‘대치’나 ‘강남’이라는 이름을 단 학원버스가 여럿 단지를 돌았다.
대기업 금융사 대리 구정희(가명·여·29) 씨는 중학교 시절이던 2000년대 중반 광장동 워커힐아파트로 이사와 광남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구씨는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다. 지금은 ‘현대 3단지’에 거주하는 그는 ‘강북 대치동’이라는 비유가 “상당히 적합한 표현”이라면서 운을 뗐다.
“많은 학생이 대치동 학원을 다니고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픽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광남중은 특목고 진학률이 강남 우수 중학교와 유사하고, 광남고는 ‘SKY’대학 진학률이 높습니다. 과거 현대 임직원들이 많이 거주한 배경을 고려했을 때, 부모님들의 학력 수준이 꽤 높은 편이었습니다. 자녀 교육에 투자를 많이 하는 편이었어요.”
대기업 유통사 대리 문재환(가명·남·32) 씨는 송파구 신천동에 살다가 베이비붐 세대인 부모님의 결정으로 2000년대 초반 광장중학교에 전학 왔다. 이후 광남고에 진학했고, ‘현대 5단지’에서 10년을 살았다. 문씨는 학창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유명한 중견기업 회장의 아들도 학교를 같이 다녔어요. 그 친구도 꽤 오래 살았습니다. 남양주나 구리에 사는데 거주지 주소를 광장동으로 옮기고 광남고에 다니기 위해 통학하는 친구도 많았어요. 제가 고등학교 입학하기 직전 해에는 40~50명에 가까운 광남고 졸업생이 이른바 ‘SKY대학’에 합격했었어요. 재수, 삼수생이 섞여 있긴 했으나 이런 사례가 몇 해간 이어지자 광장동에 학군 프리미엄 비슷한 게 생긴 것 같아요.”
한국에서 사회적 층위를 가르는 잣대는 교육이다. 교육 성취는 개인적 노력의 결과다. 이와 동시에 교육 성취를 이뤄낼 환경을 제공할 부모의 존재가 상수다. 그래서 한국인이라면 “마음은 언제나 대치동에 가 있다.”(정아은, ‘잠실동 사람들’ 중) 선망과 질타의 시선을 동시에 받는 한국의 ‘행정동’은 대치동이 유일하다. 부모들은 자녀 교육에 적합한 동네를 찾아 이곳저곳 헤매면서도 늘 마음 한켠에 대치동을 둔다.
하지만 ‘대치동 캐슬’에 속하려면 특별한 경제 조건이 필요하다. 이는 그 자체로 ‘배제의 논리’로 작동한다. ‘강북 대치동’이라는 낱말이 회자되는 까닭은 대체재(代替財)에 대한 욕망 때문일 터. 강북에 속하지만 학군이 준수하고, 대치동 사교육에 대한 접근성에도 이점을 가진 광장동은 중산층의 ‘자녀 교육 둥지’로 쓰임새가 요긴했다.
광장동이 배제의 논리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광장동 현대 10단지의 경우 준공 20년이 다 돼가지만 84제곱미터(㎡) 기준 매매가는 10억 원을 웃돈다. 지은 지 30년 된 또 다른 현대 단지도 매매 평당가가 3000만 원 안팎을 형성하고 있다. 가격을 지탱하는 건 물론 학군이다. 대기업 금융사 대리 구정희 씨의 말은 ‘광장동 사람들’의 생각을 대변한다.
대기업, 은행원, 공무원
“가격은 아파트 연식보다는 사회적으로 책정된다고 봐요. 학군은 주거환경의 일종입니다. 학교의 정원은 한정돼 있으나,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은 많으니 가격이 오를 수도 있지요. 노후 시설이라도 편익이 크고 혜택이 훌륭하면 가격이 오를 수 있습니다. 시설이 훌륭해도 편익이 낮다면 찾는 사람이 없어 아무도 비용을 지불하지 않을 겁니다.”광장동은 주민들 사이의 동질성이 비교적 높은 동네다. 세대 간 부의 이전을 통해 자산을 축적한 부유층보다는 임금노동자로 일하며 ‘신분의 계단’을 걸어 올라간 중산층이 더 많은 편이어서다. 그 덕에 동네에는 대체로 맞벌이 가정이 많다. 공립학교가 대부분인 지역 환경도 이런 계층 배경과 무관치 않다.
5년 전 여의도에서 광장동 청구아파트로 이사 온 대기업 부장 주진호 씨(가명·남·42)는 맞벌이 부부다. 큰딸은 인근 초등학교에 다닌다. 그는 “살아보니 다른 동네와 비교하면 계층 격차를 느낄 일이 없다는 점이 아이들 키우기에 적합한 요인”이라며 말을 이었다.
“대부분 비슷한 여건에 있는 중산층이 많아요. 가령 애들이 학교에서 ‘누구네 집은 비싸. 엄청 부자야’ 이런 말을 자꾸 하다 보면 아무래도 계층 격차를 느끼고 위축될 수 있잖아요. 그로 인해 갈등이 생길 수도 있고. 여기는 그런 게 없어요.”
주씨는 중산층이 살기에는 고가 브랜드 아파트가 너무 많다는 지적에 대해 “물론 비싸긴 하지만 강남 수준은 아니다. 친한 이웃들을 보면 맞벌이 가정이 많은데, 잘 알려진 기업에서 일하거나 혹은 은행원, 공무원 등 그런 사람들이 많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보는 중산층이 많이 사는 동네”라고 말했다.
대기업 유통사에 다니는 문재환 씨도 주씨의 말과 맥이 닿는 주장을 했다.
“제가 학창 시절 친구들을 부를 때 ‘광장동 친구들’이라는 표현을 주로 쓰는데, 그들 모두가 대단한 부잣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족함이 있는 가정에서 자라지는 않았거든요. 어찌 보면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느낌이랄까요.”
광장동이 학군으로 가진 또 하나의 장점은 아이러니하게도 ‘단조로움’이다. 광장동에는 워커힐아파트를 제외하면 별다른 랜드마크가 없다. 상업·문화시설을 갖춘 복합단지도 찾기 어렵다. 대기업 부장 주진호 씨는 “이 동네의 최대 장점은 자녀를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 키울 수 있다는 점”이라면서 “유해시설이 없고 도보로 초·중·고교를 다 다닐 수 있다. 매년 초등학교 학생 수가 늘어나는 아주 특이한 동네”라고 말했다.
단조로운 일상
광나루역 인근 ‘삼성 2차 아파트’와 ‘현대 8단지’ 사이 자리 잡은 도보 표지판. [고재석 기자]
구정희 씨는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은 현대 단지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면서 “단지 안에 학교가 있어 아이들이 안전한 환경을 누릴 수 있었다. 유해환경이 없는 게 학군으로서 큰 메리트”라고 말했다. 문재환 씨는 “동네에 이렇다 할 즐길 거리가 많지 않다. 그나마 강변역 테크노마트에 가야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면서 말을 이었다.
“학창 시절 기억은 집과 학교, 학원, 독서실,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가 대부분인 것 같아요. ‘강남 메가스터디’나 ‘역삼 대성학원’에 수능 특강을 들으러 가는 날 빼고는 거의 동네를 벗어나지 않았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동네의 단조로운 일상이 맞벌이로 자녀 교육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어려웠던 부모님에게 ‘내 아이가 다른 길로 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줄여주지 않았을까 싶네요.”
자녀 교육에 특화되다 보니 광장동에는 오래 거주한 주민이 많다. 그 덕에 동네에 대한 주민들의 ‘로열티’가 큰 편이다. 여의도에서 살다가 이사 온 주진호 씨는 “살아 보니 광장동 주민들의 ‘동네 만족도’가 어마어마하다”면서 “자녀들이 대학에 가서야 이사 갈 고민을 하는 곳”이라고 전했다. 구정희 씨도 “월세 비율이 미미하고 전셋값도 매매값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라면서 “대부분 자가 소유로 실거주하는 비율이 높다. 그만큼 주민들의 동네에 대한 애착이 크다”고 말했다.
이는 개발에 대한 ‘색다른’ 시각으로 이어진다. 광장동을 포함한 아차산로 일대는 최근 들어 개발 호재를 누리고 있다. 먼저 동서울터미널 현대화 사업과 워커힐아파트 재건축이 가시화됐다. ‘현대 5단지’에 10년을 거주한 주부 김선경(가명·여·61) 씨는 “워커힐아파트 일부 주민 중에는 재개발 자체를 원치 않는 사람도 있다. 팔기 위한 집이라기보다 오랫동안 거주하려고 입주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인근 구의역도 상전벽해를 앞두고 있다. 광진구는 올해 하반기 구의역 일대에 들어설 ‘첨단업무복합단지’ 착공에 들어간다. 먼저 광진구청 신청사가 들어선다. 또 업무빌딩과 호텔 및 오피스텔, 대규모 문화공원, 아파트도 건설된다. 이에 대해 구정희 씨는 “지역의 건강한 개발에 관심 가진 주민이 많다”면서 “단순히 집값을 높이는 투기적 개발이 아니라, 살기 좋은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주민들의 의지가 지역 개발에 반영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격이 우리를 고른다”
중산층은 한국 자본주의의 동력이자 성장의 결과였다. 광장동의 ‘현대 타운’은 베이비붐 세대가 산업화를 거쳐 1990년대에 중산층 지위를 획득한 후, 자신의 계층을 재생산하는 무대로 역할을 해냈다.그러나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1980~1995년 출생)들은 “단군 이래 부모보다 못사는 첫 세대”라며 자괴감에 빠져 있다. 저성장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대기업, 공기업 등 ‘좋은 직장’에 다니는 30대에게도 ‘10억 원짜리 25평 아파트’는 선뜻 지갑을 열고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 미래를 가늠할 수 없어서다. 중산층 동네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제 어른이 돼 자신의 임금으로 감당 할 수 있는 또 다른 광장동을 찾아 부유(浮游)해야 할 상황에 내몰렸다. 1987년생인 문재환 씨의 고백이다.
“광장동은 제가 자란 동네긴 하지만 막상 월급 모아 입성하기엔 어려운 지역이 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까운 미래의 제가 앞 세대처럼 자식 교육을 생각해 이사를 고민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고요. 사실 뜨는 동네라거나 좋은 곳들은 관심을 쏟다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잖아요. 하지만 그중 우리 세대가 택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더라고요. 적당한 가격이 우리를 고르는 게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