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호

또 스크린 상한제? 그 아마추어적 탁상공론

“스크린 독점 반대론, 도덕에 경도돼”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19-05-31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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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J 출신 장관, 1위 영화 상영 50% 제한 규제 도입키로

    • ‘어벤져스4’ ‘신과 함께’ ‘극한직업’ 모두 스크린 내놔야

    • “극장, 상한 적용하면 상영기간 늘릴 것”

    • “1등 영화 막으면 2~10등 영화 흥행? 근거 빈약”

    • 극장, ‘될법한 영화’서 수익 최대화 꾀하는 산업구조

    • 다양한 영화에 기회 돌아가지도 않을 것

    • “스크린 상한제, 바뀐 미디어 환경 고려해야”

    • “유통 이전에 기획·제작 단계 지원이 필요”

    4월 18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어벤져스: 엔드게임’ 아시아 팬 이벤트 [동아일보 송은석 기자]

    4월 18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어벤져스: 엔드게임’ 아시아 팬 이벤트 [동아일보 송은석 기자]

    영화는 정치, 행정과 얽히고설켜 있다. 법과 규제로 촘촘히 엮인 그물망에서 ‘시네마 천국’은 무풍지대가 아니다. 여의도(국회)와 세종로(정부), 충무로(영화계)의 거리는 상상만큼 멀지 않다. 

    세기의 히어로무비도 한국에만 상륙하면 스크린 밖 논란거리로 비화한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이하 어벤져스4)은 전작이 그랬듯 스크린 독점 논란의 도화선이 됐다. 이번에는 관(官)이 민(民)보다 먼저 반응했다. 시곗바늘을 ‘어벤져스4’ 개봉을 이틀 앞둔 4월 22일로 되돌려보자. 

    이날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우리 영화가 세계시장에서 커나가려면 다양하고 좋은 영화가 많이 나와야 하고 해외에 나갈 수 있는 여건이 돼야 한다”면서 “다양하고 좋은 영화를 만들려면 ‘스크린 상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벌 대기업의 로비스트”

    이어 박 장관은 “상한 비율은 국회와 최종 조율이 필요하기 때문에 몇%라고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적극 검토 중이며 법 개정 작업에 들어가 있다”고 덧붙였다. 특정 영화의 상영 횟수를 법으로 규제하는 ‘스크린 상한제’를 주무부처 장관이 논의의 장에 올린 셈이다. 

    이보다 앞선 4월 15일에는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골자는 이렇다. 6편 이상 영화를 동시 상영할 수 있는 복합상영관(멀티플렉스)에서 총 영화 상영 횟수의 50%를 초과해 한 작품을 상영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프라임 타임은 오후 1시부터 11시로 총 10시간이다. 오전을 제외하면 하루 온종일이 규제의 잣대 위에 놓이는 꼴이다. 



    박 장관은 5월 2일 전북 전주에서 열린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시뮬레이션을 통해 ‘스크린 상한제’의 최적안을 도출하겠다”면서 재차 규제 도입 의지를 내보였다. 

    ‘스크린 상한제’의 총대를 박 장관이 멨다는 점은 하나의 역설과 같다. 박 장관은 2014년 3월부터 올해 3월 12일까지 만 5년 넘게 CJ ENM의 사외이사를 지냈다. 당초 박 장관의 사외이사 임기는 2021년 7월 1일까지였으나 장관 내정 직후 중도 퇴임했다. 

    이와 관련 4월 2일 ‘영화 다양성 확보와 독과점 해소를 위한 영화인 대책위원회’(‘반독과점영대위’)는 성명을 내고 “박양우 씨는 영화산업 독과점을 통해 문화적 다양성과 한국 영화의 지속가능성을 심각하게 침해해온 재벌 대기업의 거수기이자 로비스트였던 인물”이라면서 “그런 사람을 문화산업의 경제민주화를 위한 정책을 펴나가야 할 문체부의 수장에 임명한다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격”이라고 맹비난했다. 

    공식 임명된 박 장관은 ‘반독과점영대위’ 측과 4월 16일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후 상황은 앞서 소개한 대로다. ‘CJ의 로비스트’라는 비난을 듣는 장관이 CJ와 롯데를 겨냥한 ‘반독과점’ 행보를 펴고 있다. CJ 사정을 아는 재계 관계자는 “(스크린 상한제가) 박 장관이 평소 품은 철학이라고 보지 않는다. (‘반독점영대위’ 측에서) 강하게 반대하니 무언가 보여주고 싶은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이상과 현실, 그 아득한 거리

    4월 28일 서울 시내 한 멀티플렉스 영화관 모니터에 '어벤져스:엔드게임' 상영정보가 나타나고 있다. [뉴스1]

    4월 28일 서울 시내 한 멀티플렉스 영화관 모니터에 '어벤져스:엔드게임' 상영정보가 나타나고 있다. [뉴스1]

    ‘스크린 상한제’의 대상은 한국, 외국 영화를 망라한다. 즉 ‘어벤져스를 규제하는 정부’라는 온라인 공간의 여론은 오해다. 다만 정부·여당은 ‘스크린 독점’ 논란이 불 보듯 뻔히 예상되던 ‘어벤져스4’ 개봉에 즈음해 ‘스크린 상한제’를 공론화했다. ‘어벤져스4’ 독점에 대한 비판 여론을 등에 업으려 했다는 혐의가 짙다. 

    ‘어벤져스4’ 상영 현황이 스크린 독점에 해당한다는 건 이론의 여지가 없다. ‘어벤져스4’의 개봉 첫날 상영점유율은 80.8%다. 지난해 최종 1227만 관객을 동원해 연간 흥행 1위를 기록한 ‘신과 함께-인과 연’의 상영점유율은 개봉 첫날 53.3%로 시작해 4일 만에 59%로 치솟았다. 최종 1626만 관객을 모은 ‘극한직업’은 개봉 첫날부터 20일간 단 이틀(45.7%, 45.9%)을 제외하고 좌석점유율 50%를 넘겼다. 규제가 있었다면 세 작품 공히 스크린을 내놓았어야 했다. 

    문제는 ‘박양우·우상호’ 식 규제의 실효성이다. 영화는 ‘문화’다.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장삿거리’다. 호불호를 떠나 현실이 그렇다. 멀티플렉스업체는 돈을 벌기 위해 규제를 피해갈 공산이 크다. 국내 A 멀티플렉스업체 관계자는 “극장은 어떻게든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 비판을 받더라도 상영기간을 늘릴 가능성이 높다. 가령 2~3주 상영하던 영화를 2~3개월로 늘리는 식이 될 수 있다”면서 “그러면 결국 작은 영화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통계는 이 말이 단순한 ‘기득권 옹호 논리’가 아님을 알려준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매일 제공하는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KOBIS)에 따르면 ‘어벤져스4’의 개봉일 상영 횟수는 1만2544회다. ‘스크린 상한제’를 적용하면 어림잡아 5000회 안팎의 상영 횟수가 다른 영화에 돌아갈 수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좋든 싫든 영화는 소비자가 택한다. 평론가가 관객을 두고 “왜 작품성 좋은 영화를 보지 않고 오락물에 심취하느냐”고 비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영화는 적게는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이 늘어가는 비즈니스다. 관객이 돈 주고 관람해야 제작사와 투자배급사는 손익분기점(BEP)을 넘겨 비용을 회수할 수 있다. 극장은 설비 투자에 따른 비용을 상쇄해야 한다. 그러려면 당대 대중의 기호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

    103억4000만 원

    KOBIS가 제공하는 좌석판매율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아득한 거리를 눈에 보여준다. 좌석판매율은 전국 극장이 개별 영화에 배정한 좌석 수와 실제 표를 구매한 관객 수를 비교해 따져보는 지표다. 가령 극장이 한 영화에 100석짜리 상영관을 배정했는데 관객이 20명만 왔다면 좌석판매율은 20%다. 식당에서 100인분을 준비했는데 20인분만 팔렸다면 ‘실패한 장사’다. 그러나 ‘좌석판매율 20%’는 한국 극장가에서 나름대로 호성적이다. 

    온라인 공간에는 종종 “‘어벤져스4’만 상영하고 있어 선택권이 박탈됐다”는 글이 올라온다. 통계는 ‘어벤져스4’가 없어 선택지가 많은 시기에도 관객은 늘지 않았음을 오롯이 보여준다. ‘어벤져스4’ 개봉 전인 1월 1일~4월 23일 한 번이라도 ‘평일 좌석판매율 20%, 주말 좌석판매율 40%’를 동시 충족시킨 영화는 ‘극한직업’ ‘내 안의 그놈’ ‘러브 유어셀프 인 서울’ ‘뺑반’ ‘드래곤 길들이기 3’ ‘명탐정 코난: 전율의 악보’ ‘항거: 유관순 이야기’ ‘캡틴 마블’ 정도다. 

    반면 ‘어벤져스4’는 개봉 첫 주 평일 평균 52.4%, 주말 72.7%의 좌석판매율을 나타냈다. 개봉 2주차 이후에도 평일 평균 25% 안팎, 주말 평균 49% 안팎을 기록했다. 관객은 보고 싶은 영화만을 보기 위해 극장에 간다. 국내 B 멀티플렉스업체 관계자는 “관객은 어떤 영화를 보겠다는 목적의식을 갖고 극장에 온다. 1등 영화를 막는다고 2~10등 영화가 골고루 흥행하리라는 전망은 근거가 빈약한 낙관”이라고 잘라 말했다. 

    엄밀히 말하면 1~3위가 공히 25~30%씩 점유율을 장악해도 독과점이다. 가까운 선례도 있다. 지난해 12월 19일 화제작 세 편(‘마약왕’ ‘아쿠아맨’ ‘스윙키즈’)이 동시 개봉했다. 세 편의 도합 좌석점유율은 80%에 육박했다. ‘박양우·우상호’ 식 규제에 따르면 이는 불법이 아니다. 당장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상영할 영화가 없어서 스크린이 몇 개 영화에 몰린 건 아니다. 지난 한 해 한국 극장가에서 개봉한 영화는 1646편이다. 이 중 실질개봉작(최소 1개 상영관에서 40회 이상 상영하거나, 영진위로부터 독립·예술영화 인정 심사를 받아 개봉한 작품)은 728편에 이른다. 영진위 기준대로라면 이 중 순제작비(마케팅비 제외)가 30억 원 이상 쓰인 영화가 ‘상업영화’다. 지난해 이를 충족한 한국 영화는 총 40편이다. 40편의 평균 순 제작비는 79억 원이었다. 마케팅비를 더하면 한국 상업영화의 평균 총 제작비는 103억4000만 원에 달한다. 정작 손익분기점(BEP)을 넘긴 영화는 40편 중 13편에 그쳤다. 30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단 10편에 불과하다.

    “시장 성장, 더는 없을 것”

    글로벌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가 1월 24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넷플릭스는 극장의 가장 강력한 대체재로 떠올랐다. [뉴스1]

    글로벌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가 1월 24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넷플릭스는 극장의 가장 강력한 대체재로 떠올랐다. [뉴스1]

    실제 영진위가 집계한 상업영화 40편의 ‘평균 추정수익률’은 –17.3%였다. 수익률 –50%를 밑돈 작품 수는 17편에 달했다. 멀티플렉스가 비판을 들어가면서도 ‘될 법한 영화’에 스크린을 몰아주는 데는 이런 저간의 사정이 자리한다. 충분한 상영 기회를 얻은 영화도 관객에게 외면받고 있기 때문이다. 1위 영화에 상영 상한을 둬도 결국 2위나 3위 영화에 스크린을 몰아주는 식으로 어떻게든 수익성을 꾀할 거라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이런 복잡 미묘한 업계 상황을 두고 기승전 ‘독과점 탓’이라고만 말하기는 곤란하다. 

    ‘스크린 상한제’가 뒤바뀐 미디어 환경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과거에는 영화를 볼 창구가 극장 하나였다. 이런 경우 ‘스크린 상한제’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다소 투박하게 제작된 국산 영화라도 기회를 줘 시장에서 경쟁력을 담금질할 수 있게 정부가 도울 수 있어서다. 일종의 ‘보호육성 정책’이다. ‘스크린 쿼터’(극장에서 1년에 일정 기준 일수 이상 국산 영화를 상영하도록 한 것)가 효과를 낸 이유기도 하다. 

    한데 지금은 스마트폰 시대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전 세계 모든 영화를 볼 수 있다. ‘어벤져스’ 시리즈를 만든 마블 스튜디오는 극장에서 관람해야 즐거움이 극대화하는 콘텐츠를 내놓은 덕에 패권을 장악했다. 미디어와 대중문화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은 강보라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의 설명이다. 

    “지금 극장의 경쟁자는 다른 극장이 아니라 넷플릭스와 유튜브다. 극장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라도 아깝지 않은 콘텐츠를 보기 위한 공간이 됐다. 영화 관람 문화도 완전히 바뀌었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N차 관람이라면서 반복해 보는 까닭은 그것이 스마트폰으로는 즐길 수 없는 하나의 놀이라고 생각해서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의 ‘재미 추구 욕구’를 양적으로 제한하다 보면 반발이 생길 수 있고, 다른 영화에 대한 수요로도 전환되지 않을 것이다. 미디어 생태계 변화를 고려한 대책 마련이 선행해야 한다.” 

    지난해 한국의 총 극장 관객 수는 2억1639만 명으로 2017년보다 1.6% 줄었다. 2013년 2억1000만 명을 넘어선 이후 6년간 답보 상태다. 영진위는 “과거처럼 극장 관객이 몇 천만 명씩 증가하면서 시장 성장을 견인하는 상황은 더는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는 CJ CGV와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시장의 97%를 점유한 독과점 3사뿐 아니라 서울극장, 대한극장 등 비(非)멀티플렉스업체도 똑같이 직면한 현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극장은 되레 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전국 극장 수는 483개로 2017년보다 31개 늘었다. 스크린은 171개 늘어 2937개로 집계됐다. 수요는 그대로인데 공급이 증가한 것.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영화 투자배급사 NEW가 ‘씨네Q’라는 멀티플렉스 브랜드를 론칭했다. 대형 유통업체의 ‘장삿속’도 고려해야 한다. 국내 A 멀티플렉스업체 관계자는 “복합쇼핑몰이 들어설 때마다 멀티플렉스를 입점 시키려는 경쟁이 뜨겁다. (멀티플렉스가) 유동인구를 늘리는 데 용이하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어느 각도로 보나 레드오션이다.

    “한국 영화는 성찰이 필요하다”

    따라서 ‘어벤져스4’ 같은 대작이 빠진 자리를 박 장관 말마따나 ‘다양하고 좋은 영화’가 차지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익명을 원한 20여 년 경력의 영화 제작자는 “빈자리를 제작비 40억~50억짜리 한국 영화가 차지할 가능성이 높을 거다. 그러면 한국 영화 산업에는 숨통이 트이겠지만, 과연 그것이 (한국 영화의) 다양성을 도모할 대안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 영화투자배급사 관계자는 “영진위가 인증한 독립영화를 의무 상영하는 ‘하한 쿼터’를 두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국 상업영화는 도돌이표처럼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 영진위조차 ‘3월 한국영화산업 결산보고서’에 이렇게 썼다. 

    “고예산 영화와 범죄 영화로의 편중 현상이 심화되고 있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피한다는 배급 전략에 따라 한정된 시기와 관객을 두고 한국 영화끼리 과당경쟁을 펼치는 악수가 반복되고 있다. 과당경쟁은 한국 영화 수익률 악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어 성찰이 필요하다.” 

    물론 그 원인을 따져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대기업이 영화를 획일화한 탓’이라는 답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한국 영화가 거쳐온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지적도 있다. 1990년대부터 2010년 사이 영화프로듀서로 일하며 유명 상업영화 제작에 관여했던 전문가는 “스크린 독점 반대 논리는 도덕적 측면에 경도돼 있다. 대기업과 큰 영화가 시장을 장악하니 좋은 영화가 죽었다는 식인데, 이는 안이한 판단이다”면서 운을 뗐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난다 긴다’ 하던 제작사들이 군소화됐다. 이후 대기업 투자사 입김이 제작에 많이 미쳤다. 제작사와 투자사가 상호견제하며 제작해야 하는데 그 시스템이 무너진 거다. 지금은 영화의 질이 감독 개인이나 투자사 입김에 의존한다. 그러니 비슷한 영화가 반복되는 건 근본적으로는 대기업 탓이 맞다. 하지만 관객들이 제작비 큰 영화를 선호하고 있다. 차라리 대기업 투자사와 비등하게 협상할 수 있을 만큼 역량을 갖춘 상업영화 제작사를 키우는 데 정부가 선제적 지원을 하는 게 더 실효성 있다.”

    삼성 CGV와 LG시네마

    영화는 5단계를 거쳐야 관객 앞에 놓인다. 기획, 제작, 투자, 배급, 상영이다. ‘스크린 상한제’는 마지막 단계에서 정부가 개입하겠다는 의도다. 더 근본적 대책을 요구하는 영화계 일각에서는 대기업이 5단계 중 4단계를 빼고 투자만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CJ ENM 영화 부문은 9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같은 해 CJ CGV는 매출액 1조7694억 원, 영업이익 777억 원을 거둬들였다. 영업이익률이 4.4%에 불과하다. 이는 롯데 사정도 비슷하다. 그나마 투자·배급을 통해 문화적 영향력을 발산할 수 있고, 각자의 주력인 유통업과의 시너지 효과가 있기에 CJ와 롯데가 영화산업 플레이어로 남아 있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설사 CJ CGV나 롯데시네마가 매각 매물로 나와도 이를 살 수 있는 회사는 또 다른 대기업이나 해외 사모펀드밖에 없다. CJ CGV가 삼성 CGV, 롯데시네마가 LG시네마로 바뀐들 ‘다양하고 좋은 영화’가 늘 가능성은 크지 않다. 대안은 다시 선제적 지원이다. 

    강보라 연세대 연구원은 “대형 자본이 투입돼야 그나마 흥행 가능성이 높아진 게 현실”이라면서 “(유통 단계 이전에) 다양한 주제의 영화를 제작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지원을 하는 식의 정책이 더 실효성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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