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은 찰(察)이다. 남을 관찰(觀察)하고, 나를 성찰(省察)하며, 세상을 통찰(洞察)하는 도구여서다. 찰과 찰이 모여 지식과 교양을 잉태한다. 덕분에 찰나의 ‘책 수다’가 묘한 지적 쾌감을 제공한다. 정작 살다 보면 이 쾌감을 충족하기가 녹록지 않다. 검증된 지식 커뮤니티가 우리 사회에 드물어서다. 이에 창간 88주년을 맞는 국내 최고 권위의 시사 종합지 ‘신동아’가 ‘지식커뮤니티 Book치고’를 만들었다. 회원들은 한 시즌(4개월)간 월 1회씩 책 한 권을 고재석 ‘신동아’ 기자와 함께 읽는다. 4월 30일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Book치고 두 번째 모임이 열렸다. 함께 읽고 토론한 책은 제도주의 경제사(經濟史)의 정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시공사)다. 멤버들이 정성스레 써온 서평 중 일부를 골라 소개한다.[편집자 주]
담장을 경계로 나뉘는 남쪽 멕시코 소노라주의 노갈레스(위)는 도로망도, 상수도도, 법질서도 엉망이다. 반면 담장 이북 미국 애리조나주 노갈레스시 주민들은 상수도는 물론이고 공공보험, 교육제도 등 국가로부터 다양한 혜택을 받고 있다.
필자도 20대 중반의 청년이다. 그래서 ‘탈조선’이 낯설지도, 이상하지도 않았다. 되레 구미가 당겼다. ‘탈조선’은 우스갯소리나 푸념이 아니다. 한국은 탈출해야 할 ‘헬(지옥)’이 돼버린 지 오래다. ‘처음으로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세대’ ‘N포 세대’ 등 온갖 불명예스러운 수식어가 청년 세대에 달라붙는다. ‘창조적 파괴’가 역동해야 할 창업 시장엔 구직난에 ‘울며 겨자 먹기’로 창업을 택한 청년도 쉬이 보인다. 책에는 한밤중 칠흑 같은 북한과 눈부시게 빛나는 남한이 극적으로 대조된 위성사진이 실렸다. 한국의 번영을 주장하기 위한 근거겠지만 정작 ‘한국 청년’인 필자는 이에 아무 감흥이 들지 않았다.
전후(戰後) 교역과 산업화를 통해 포용적 경제제도를 갖추고 민주화로 기틀을 마련한 포용적 정치제도가 시너지를 발휘해 한국은 번영할 수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견 타당하다. 지금의 기성세대는 이와 같은 정치, 경제적 과실의 수혜자다. 그러나 청년은 아직 배가 고프다. 저성장기를 관통한 탓에 경제활동의 꽃을 피워보지도 못했다. 고령화된 정치에서 청년 정책은 ‘미스 매치’되기 일쑤다. 지금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에게 저자가 상찬해 마지않은 포용적 제도란 아득히 멀리 있다. 저자가 북한의 헐거운 제도를 문제 삼으며 남한의 번영을 부각할 때마다 뾰족한 마음이 불쑥불쑥 솟구친 이유는 필자가 청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번영과 빈곤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결정적 분기점’에 주목했다. 이 대목에서 광장의 촛불이 머리를 스쳤다. 정유라의 부정입학, 학점 특혜 의혹에 분노한 대학생들의 시위는 광화문광장의 촛불로 이어졌다.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만들고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권력을 독점치 말라는 호소였다. 착취적으로 흘러가는 경제, 정치 제도를 바로잡으라는 준엄한 요구였다는 점에서 2016년 겨울은 저자 말마따나 ‘결정적 분기점’이다.
한국 사회는 중대 기로에 서 있다. 정작 국가의 성패를 좌우할 제도를 만드는 이들을 보며 희망을 거둔다. ‘아수라 국회’는 알까. 번영으로 갈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