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박근혜 시대 마지막 넉 달 반의 기록
“‘민낯’ 노출 민감하지만 ‘몰락 이유’ 답하는 게 숙명”
“나로서도 기억을 되살리는 자체가 고통”
“朴 정부 아닌 역사의 복원으로 이해해달라”
“사건 터지자 靑 직원들 ‘모르쇠’…‘대응 골든타임’ 놓쳤다”
“최순실은 내 앞에서 한 번도 티를 낸 적이 없어요”(박근혜)
[홍중식 기자]
그는 워싱턴특파원 등 23년간 ‘문화일보’ 기자를 하다가 2014년 7월부터 3년간 비서관을 지내면서 ‘암울한 시대’를 기록했다. 200자 원고지로 1000매 분량의 방대한 기록이다. ‘3인방’이 사퇴하고 ‘시스템’이 붕괴한 청와대에 앉아 언젠가는 ‘역사의 공백’을 채우겠다는 심정이었다.
천 전 비서관은 ‘신동아 연재’를 제안받는 자리에서 적잖이 고심했다. 여전히 그 시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현실에서, 비정상과 무능으로 낙인찍힌 시대의 기록이 독자에게 어떻게 비칠지 우려가 컸다. 청와대 민낯이 드러나는 데 대한 민감함과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는 기록자의 숙명이 맞섰다. 그리고 이틀 뒤 그는 “박근혜 정부가 아니라 역사의 복원으로 이해해달라”며 원고를 보내왔다. 5월 10일 서울 충정로 ‘신동아’ 인터뷰룸에서 그를 만났다.
-박근혜 정부 마지막 시기의 기록인 만큼 고민이 깊었을 거 같다.
“내가 쓰려는 기록은 어떻게 보면 한국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이 모두 포함된 시기다. 국민에게도 참담한 시간이었고, 국가적으로도 가장 비극적인 시기였다. 많은 사람이 심한 고통과 상처를 입었고 말문 열기를 주저하고, 지금도 박 대통령에게 동정심만 보여도 색안경을 끼고 본다. 나로서도 당시 기억을 되살리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2015년 대통령전용기에서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기자들과 환담하는 천영식 비서관(오른쪽). 2016년 9월 라오스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배석 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는 천영식 비서관 (왼쪽) [천영식 제공]
“지금 남은 기록은 박 대통령을 탄핵시킨 ‘승자의 축포’뿐이다. 박근혜 정부의 공과(功過)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필요하고, 이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는 역사를 연속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 박근혜 정부를 기록하고 평가하는 게 문재인 정부를 설명하고 평가하는 데도 필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퇴임 후 많은 사람에게 받은 질문이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그렇게 무너졌는가’였다. 나도 이 부분을 분석하고 싶고, 이제는 진솔하게 답변해야 할 필요성도 느꼈다. 이런 물음에 답을 해야 역사의 개선과 진전이 가능하다. 이는 보수든 진보든 모두에게 해당하는 교훈이다.”
-어떻게 기록했나.
“홍보기획비서관으로서 누군가는 있는 그대로 박근혜 정부와 박 대통령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과거 박 대통령에 대한 책(‘고독의 리더십’ 2013)을 쓴 경험이 있어 다시 책을 낼 기회가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해 정리를 했다. 탄핵정국 어느 날 대통령을 만났을 때에도 ‘최순실 사건으로 국민 여론이 나빠져 단기적인 대응으로는 부족하다. 대통령이 책을 써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또한 ‘신동아’ 연재에서 밝힐 생각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틈틈이 내가 본 상황을 기록했고, 관련자들의 진술도 정리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면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면서 집단 기억을 빌렸다. 반성이 필요한 대목에선 내 의견을 담았다. 가능한 한 대통령 육성을 많이 담으려고 했고, 작위적이지 않은 범위 내에서 에피소드를 많이 소개하려고 했다. 일관성과 객관성이 떨어지는 기억은 배제했다. 혹시나 일부분을 과장한 게 되지 않을까 항상 우려하고 확인했다.”
천 전 비서관은 현재 추가 원고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내용은 △JTBC 보도 등으로 인한 탄핵정국 초창기 상황 △대통령 임기 단축 등을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는 내용의 3차 담화가 나오기까지 △국회 탄핵 표결까지의 긴박했던 권력 쟁투 △탄핵 가결 이후 관저 칩거 △헌재 탄핵 결정 막전막후 등이다.
붕괴된 청와대 의사결정 시스템
[홍중식 기자]
“불행히도 박근혜 정부 마지막 넉 달 반 동안 공식 기록이 거의 없다. 어떻게 보면 ‘신동아’에 나오는 대통령의 발언은 귀중한 사료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다. 내가 하는 작업이 박근혜 정부의 복원이나 복고라는 협소한 차원보다는 역사의 복원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박근혜 정부 참여자로서 국정운영의 잘못된 점은 국민께 사과드리고 싶고, 오해가 있다면 바로잡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평가는 ‘신동아’ 독자의 몫이다.”
-홍보기획비서관이 대통령과 대면할 기회가 많지 않았을 거 같은데.
“전 정부와는 약간 ‘롤(역할)’이 달랐다. 3년간 청와대에 있으면서 나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청와대 모든 행사에 대부분 배석했다. 의전비서관보다 행사에 더 많이 참석했을 거다. 전 정부 비서관과 달리 해외순방에도 동행했다. 특히나 2016년 10월 JTBC 보도로 ‘3인방’과 우병우 민정수석, 안종범 정책조정수석비서관 등 오래 호흡을 맞춘 참모들이 대부분 떠난 상황에서는 2년 반 근무하던 내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다. 나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기 전에 (청와대를) 나가려고 했는데, 사건이 불거지니 마무리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3년 일했다.”
-1회 원고 ‘폭풍’을 검토하다 보니 윤전추 전 제2부속실 행정관 얘기가 나온다. 부속실과도 자주 교류했나.
“사실 청와대에서 있다 보면 다른 부서 사람들을 잘 모른다. 그런데 3인방과 수석들이 사퇴하면서 청와대 의사결정과 대통령 보좌 시스템이 ‘붕괴’된 상황이었고, 상당수 청와대 직원들은 직속상관도 없던 시기였다. 그러니 이영선(전 대통령경호실 행정관), 윤전추 등 다른 부서 직원도 종종 나를 찾아와 고충을 얘기했고 나도 그들을 위로했다. (2017년 3월)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으로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난 뒤에도 얘기할 기회가 많았다.”
-지금도 박 전 대통령의 ‘소통 부족’에 대해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소통 부족의 측면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은 오랫동안 혼자 생활에 익숙한 데다 ‘배신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사람과 대면(對面)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이 부분도 연재를 통해 조금 더 필요한 얘기를 하게 될 것이다.”
朴 “최순실이 진짜 그런 사람인가요”
-박근혜 정부 몰락의 직접적 원인은 최순실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그의 행각을 몰랐을까.“대통령 마음속에 들어가보지는 않았지만 여러 ‘비하인드 스토리’를 수집한 결과, 최순실이 대통령의 호감을 이용해 ‘나쁜 짓’을 했다고 분석했다.”
-비하인드 스토리라면….
“여러 사람의 경험을 기록해 분석했다. 2016년 11월에 한 행정관이 최순실의 이중 행실과 문제점에 대해 얘기하자 대통령은 깜짝 놀라며 ‘최순실이 진짜 그런 사람인가요’라며 몇 번을 확인했다고 한다. 당시 대통령은 거의 신문을 보지 않았다. 그날 들은 얘기를 다 기록으로 남겨놓았다. 당시 박 대통령은 ‘최순실이 내 앞에서 한 번도 티를 낸 적이 없다. (3인방도) 사태가 이렇게 안 좋게 됐으면 나에게 알려줘야 하는데’라며 섭섭함을 토로했다. 이러한 사례를 여럿 확인한 결과를 토대로 나름대로 분석한 거다. 개인적으로는 청와대 팀워크의 문제도 있었다고 본다. ‘사건’이 터지자 최순실을 알던 사람들은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침묵했다. 가장 위기의 순간에 최순실의 행각을 아는 사람들이 컨트롤타워가 돼야 하는데, 다들 피하다 보니 상황을 극복해야 할 최고의 팀이 결성되지 못했다. 이 문제도 차차 밝히겠다.”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과정에서 보수 세력은 갈라졌고 구심점을 잃었다.
“지금 와서 친박, 비박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국민들도 그렇게 나뉘어 싸우는 걸 원치 않는다. 박 전 대통령 주변 사람들은 서운한 감정이 남아 있을 수 있지만 크게 보면 새로운 미래를 향해 반성하고 합심해야 한다고 본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청와대 재직 시 정책보고서를 두 번 낸 적이 있다. 최근 들어 문재인 정부가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 보니 박근혜 정부와 다를 게 뭐냐, 더 나아가 박근혜보다 못하다고 비판하는 분들도 있는데, 이는 정책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은 초기에 경기 활성화에 주안점을 두었다가 후반기로 갈수록 구조개혁에 방점을 뒀다. 세계적인 경기 사이클을 감안하면 부양책으론 한계가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힘들더라도 구조개혁을 해야 했고, 4대 부문(공공·노동·교육·금융) 개혁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공무원과 노동자들이 반발했지만, 방향은 옳았다.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잘못됐다고 좋은 정책이 잊힌 것은 안타깝다.”
배수강 편집장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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