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돈으로 움직이고 설득되는 동물
명분과 실리 일치하는 세상사 거의 없어
십자군전쟁은 성전(聖戰) 아닌 성전(聖錢)
프랑스대혁명·미국독립선언도 ‘불공정 과세’에서 비롯
병자호란 때 의병 일어나지 않은 건 선조 탓
[Gettyimage]
세상사에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정의와 명분(名分)이 있고, 한편으로는 이익 여부를 따지는 실리(實利)가 있다. 명분과 실리가 일치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일이 너무 많다. 정의롭기는 한데 이득이 안 되고, 이득은 되는데 이래도 되나 싶은 일들이 허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사 속 인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끊임없는 학살과 전쟁이 있었다. 마녀사냥 같은 말도 안 되는 흑역사도 있었다. 불과 100여 년 전까지 노예무역과 아편전쟁 같은 사건이 발생했고, 20세기에도 홀로코스트 같은 집단 학살이 발생했다. 당시 사람들은 이런 일을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렀을까. 그때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잣대가 달랐던 것일까.
그때도 인간의 양심은 지금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이해득실에 따라 행동했다’는 게 필자가 내린 결론이다. 한마디로 양심보다 돈을 택한 것이다. 정의를 위해 자신의 이해관계를 초월하는 성인(聖人) 혹은 영웅도 있다. 하지만 성인이나 영웅도 세상에 뜻을 펼치기 위해서는 보통 사람을 움직여야 했고, 별수 없이 돈을 동원해야 했다.
“영웅은 멋있게 힘으로 빼앗는 거야”
‘돈’은 토지, 금·은, 화폐 등의 부(富) 그리고 권력과 인간의 욕망을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이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돈은 ‘부와 권력’이다. 부는 역사에 따라 다양한 얼굴을 띠어왔다. 고대 금은(金銀) 주화가 등장하기 이전에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재산은 농업 생산을 확보할 수 있는 토지와 노예였다. 그 생산물인 곡물과 옷감도 중요한 재산이었다. 이는 필연적으로 토지를 얻기 위한 영토 전쟁을 불러왔다. 그 시대 전쟁과 약탈은 부를 획득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고, 하나의 경제행위였다.
제우스의 아들이자 올림포스 12신 가운데 하나인 전령의 신 ‘헤르메스’는 상업의 신이자 도둑의 신이었다. 그만큼 해적질과 교역은 그 경계가 모호했다. 아마 그 시대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무슨 좀스럽게 무역을 하고 그래. 영웅은 멋있게 힘으로 빼앗는 거야.”
이런 사고는 중세와 근세에도 이어졌다. 영국에서 ‘성 니콜라스’는 상인의 수호성인이자 도둑의 수호성인이었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때 해적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해적질로 어려운 국가재정을 해결해 준 국민적 영웅이었다. 그가 스페인 남서부 항구도시 카디스를 약탈하자 화가 난 스페인 펠리페 2세가 그를 처벌하라고 여왕을 압박했지만, 여왕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해군 제독에 임명했다. 드레이크의 배는 국가로부터 전투권을 허가받은 사략선(私掠船)이었다. 긴박한 상황에서는 언제든 전함으로 또 해적선으로 돌변할 수도 있는 그런 배였다.
고대 기원전 7세기 리디아(서부 아나톨리아의 한 지역, 지금의 튀르키예 이즈미르주)에서 처음 금은으로 주화를 만들면서 금과 은이 중요한 재산으로 등장했다.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를 거치면서 금과 은은 고대 경제발전에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서로마의 멸망으로 화폐경제가 시들고 다시 장원경제, 즉 자급자족경제 체제가 들어선다. 여기에 다시 활력을 준 사건은 십자군전쟁이었다. 신앙은 허울뿐, 실상은 탐욕과 약탈의 전쟁이었던 십자군전쟁이 뜻밖에 로마의 도로를 다시 살렸고, 교역을 일으켜 화폐경제를 부활시켰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세계가 확장되면서 중상주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유럽 국가들은 금과 은을 얻는 데 혈안이 됐다. 금과 은이 수단이 아니라 경제활동의 목적이자 국부(國富) 그 자체가 된 것이다.
“바보야, 중요한 건 생산이야”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노동력, 생산력, 생산물이 중요한 재산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시대에도 토지나 금은은 여전히 중요한 재산 목록이었지만 생산시설과 상품이 주요 재산으로 등장했다. 자본주의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사람은 영국의 애덤 스미스였다. 그가 쓴 ‘국부론’은 자유시장주의라는 새로운 사상과 시대를 열었다. 그는 금과 은이 넘쳐나던 스페인이 몰락한 것은 금과 은이 국내 생산으로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국부론에서 “바보야, 중요한 것은 금은이 아니고 생산이야”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역사적 사건 뒤에는 항상 돈이 있었다. 아무리 거룩하고 숭고해 보이는 사건이라도 실상을 들여다보면 돈이 나온다. 인간은 돈으로 움직이고 돈으로 설득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우야마 다쿠에이가 쓴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세계사’에 이런 글이 있다.
“정치·경제 분야에서는 부(富)야말로 모든 것이며, 그에 따른 제반 문제나 현상의 원인도 해결책도 결국 부, 돈에 있다. 역사의 사회문제를 파고들 때, 돈의 흐름을 따라가면 그 실체가 보이게 된다. 그 실체를 둘러싼 인간의 행동 양식이야말로 역사라는 현상 그 자체가 된다.”
그의 말이 사실인지 몇 가지 역사적 사건을 살펴보자. 로마 민중의 영웅이던 카이사르는 왜 원로원 귀족들에게 살해당하고, 그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는 어떻게 황제로 추대됐을까. 카이사르는 원로원의 부와 특권, 특히 화폐 주조권을 빼앗으려 했지만 옥타비아누스는 적절히 타협해 그들의 부와 특권을 지켜줬다.
프랑스 화가 에밀 시그놀의 ‘1099년 7월 15일 십자군의 예루살렘 점령’(1847). [위키피디아]
십자군전쟁은 성전(聖戰)이 아니라 성전(聖錢)이었다. 4차 십자군전쟁 때는 십자군이 이슬람 세계가 아닌 동로마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했을 정도로 십자군전쟁은 탐욕과 약탈의 전쟁이었다. 돈이 없는 기사들은 성전(템플) 기사단에 돈을 빌려 군인과 장비를 사서 전쟁에 나갔고, 돈을 갚기 위해 약탈과 학살을 자행했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뜻은 없었다.
십자군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에서 장군 티베리아스가 발리안에게 한 말은 십자군전쟁의 본질을 잘 나타낸다. “예루살렘은 내 전부였어. 모든 걸 바쳤지. 하지만 깨달았네. 신은 핑계였을 뿐, 이 전쟁의 목적은 영토와 재물이었어.”
수많은 사건의 발단이 된 기독교인들의 교회세는 어떠했나. 로마 기독교 공인의 배경에는 교회세를 상납받아 날로 어려워지는 국가재정을 개선해 보려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의도가 깔려 있다. 14세기에 일어난 아비뇽 유수(14세기 이탈리아 로마에 위치해 있던 서방교회의 교황청을 신성로마제국이 강제로 프랑스 남부 아비뇽으로 옮겨 1309년부터 1377년까지 머무르게 한 사건)는 프랑스 필리프 4세가 교회세를 교황청에 보내지 않기 위해 벌인 일이었다. 십자군전쟁의 실패로 교황의 권위와 힘이 서서히 추락하자 힘이 세진 군주와 교황 사이에 교회세를 둘러싼 싸움이 일어난 것이다.
헨리 8세가 수장령(首長令)을 선포하고 교황과 결별한 것도 실상은 교회세와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기 위해서였다. 왕권 강화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고, 캐서린과의 이혼은 그 빌미를 제공해 줬을 뿐이다. 이렇게 쥔 돈과 권력을 바탕으로 영국은 유럽의 후진국에서 벗어났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가 열린 것이다.
17세기 이후 가톨릭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포교 활동을 벌인 것도 종교전쟁이 끝나고 많은 국가가 개신교를 믿자 이로 인해 줄어든 교회세를 유럽 밖에서 만회하려는 교황청의 계산이 깔려 있던 것이라고 확신한다. 숭고한 신앙조차 돈을 피할 방법은 없었다.
중세는 그야말로 돈이 지배하는 세상
미국 화가 존 트럼벌의 ‘독립선언서’(1819). 토머스 제퍼슨 등이 독립선언서 초안을 작성해 대륙회의에 제출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위키피디아]
프랑스 대혁명도, 미국의 독립선언도 불공정한 과세에서 시작됐다. 평민들에게 세금을 떠넘기는 귀족과 성직자들의 지나친 이기심이 부르주아를 혁명으로 이끌었다.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민주주의 정신이 미국 독립전쟁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심지어 미국의 남북전쟁도 실제로는 관세 전쟁이었다. 자기들이 낸 관세로 나날이 부유해지는 북부 부르주아들을 남부 농장주들이 더는 두고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노예해방은 명분일 뿐이었다. 그 당시 미국인들이 흑인 인권에 얼마나 관심이 있었겠는가. 공짜로 흑인을 부리던 남부 농장주들에게 흑인 해방은 그들 사업에 엄청난 타격을 주는 사건이었다. 인권 때문이 아니라 돈 때문에 반대한 것이다. 다른 역사적 사건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듯 세계사는 힘의 논리로 흘러왔고, 그 힘이 작동하게끔 한 동인(動因)은 돈이었다. 돈은 시대에 따라 영토, 노예, 금은, 향신료, 교회세 그리고 권력이기도 했다. 심지어 종교의 움직임도 돈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스페인 정복자들의 원주민 학살, 그리고 포르투갈과 영국의 흑인 노예무역 등의 원인을 돈이 아니면 다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성직자들은 좀 나았을까. 중세 때 이자가 신의 시간을 훔친 결과물이란 이유로 교회법상 대부업이 금지됐다. 하지만 교황, 대주교 등 성직자들과 금융가인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및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의 푸거 가문 사이에는 금융거래가 공공연하게 행해졌다. 성직자들도 일반인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힘과 돈을 향한 세계사의 흐름에 가장 크게 희생당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가 아닐까. 다른 나라에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고 우리끼리 어찌어찌 살아가던 우리나라는 의도치 않게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고, 광복과 동시에 또 의도치 않게 남북으로 분단됐다. 얼떨결에 제국주의 시대라는 세계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려가 버린 것이다. 무슨 숭고한 가치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당한 것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그저 약했기 때문에 돈을 추구하는 힘 센 나라들에 당한 것이다.
세계사 뒤에는 언제나 돈이 있었다
이렇듯 인간사 대부분은 돈으로 설명하면 쉽게 납득이 간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신이 돈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신앙, 국왕과 국가에 대한 충성, 숭고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포장했다. 개신교, 특히 캘빈주의가 유럽에 퍼지면서 비로소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것을 신의 뜻이라고 여겼다. 18세기 후반 “인간의 이기심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나오면서 드디어 인류는 인간의 이기심이 사회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돈에 대해 앞과 뒤가 다른 행태는 사농공상의 위계가 분명하고 청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조선과 같은 유교 사회에서 더욱 심했다.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흥하기 시작한 명청 교체기에 이미 세상이 바뀌었음에도 조선의 지배층이 명(明)을 섬긴 것이 과연 의리 때문이었을까. 필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삼전도의 굴욕으로 땅에 떨어진 지배층의 권위를 유지하고 기득권을 계속 누리기 위해 명나라와 성리학이라는 명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명분 뒤에 실리, 즉 돈에 대한 계산이 있었다. 표면적으로 안 그런 척했을 뿐이다.
세계사의 도도한 흐름 뒤에는 언제나 돈이 있었고, 영원한 동지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 힘센 적이 있으면 둘이 서로 손을 잡지만, 적이 사라지면 머지않아 그들 둘이 싸운다. 동로마제국이 번성할 때 손을 잡고 서로를 지켜준 교황과 서유럽 군주들이 그 예다. 동로마제국이 쇠퇴하자 이 둘은 바로 ‘카노사의 굴욕’ ‘아비뇽의 유수’ 같은 사건을 일으키며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근현대에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강대국들이 자국 실리에 따라 동맹국 갈아타기를 하는 것을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놀랍다.
돈으로 인간사를 바라본다는 것은 너무 비관적이지 않느냐고 할 수 있다. 물론 인간이 돈을 추구하고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행복해지고 인생이 풍요롭기 위해서는 돈 말고도 더 중요한 가치가 얼마든 있다. 하지만 역사를 움직인 가장 중요한 동인은 돈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가 이를 제대로 인지하고 역사를 마주 대할 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사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다.
구한말 서구 열강과 일본이 무엇 때문에 조선을 두고 그렇게 싸웠는지 우리 선조들이 제대로 알았더라면 속수무책으로 나라를 빼앗기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된다. 과거의 오욕과 굴곡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칭송할 것은 칭송하되 반성할 것은 반성해야 한다.
지금 세상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과 달리 인권과 박애가 충만한 사회인 것처럼 보인다. 정말 그럴까. 인류의 평화, 공동의 번영 등 숭고한 가치를 내세우며 기후변화, 글로벌 경제위기, 코로나 팬데믹 등 세계적 이슈에 공조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런 공조는 그것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바로 그 지점까지다.
국가 간 이해가 충돌하는 상황이 오면 가차 없이 자국 이익과 실리에 따라 행동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을 보면서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고 있지만 언제 미국이 안 그런 적이 있던가. 미국은 언제나 아메리카 퍼스트였다. 물론 다른 나라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준비하지 않는 자는 살아남을 수 없다
지금 세계는 격변하고 있다. 이제 해묵은 이념 논쟁과 진영 논리는 던져 버려야 한다. 혹자는 조선시대 당쟁을 두고 사대부들의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이라고 말하지만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국가의 존립, 백성의 안위는 뒷전이고 누가 내 편에 섰는지만 중요한 것이 당파이고 당쟁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선조는 논공행상을 하면서 왜군에 맞서 싸운 의병장들은 빼버리고, 피난할 때 자신의 마차를 든 병사들에게 상을 주었다. 오히려 의병장을 견제하고 탄압한 탓에 많은 의병장이 산으로 숨었다. 병자호란이 터졌을 때 의병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논공행상을 잘못한 선조 탓이었다.
지금 우리는 조선과 얼마나 달라졌을까. 곧 닥쳐올 앞으로의 위기에 대비하고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가. 준비하지 않는 자는 살아남을 수 없다. 우리 젊은이들이 세계사에 관심을 갖고, 역사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이끌어주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