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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의 역사

길드의 자손이여, 등 따습고 배부르나니

  • |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chonmyongdo@naver.com

길드의 자손이여, 등 따습고 배부르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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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맥으로 특권 공고화

중세 길드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 ‘사회적 네트워크’를 구성해 대대로 물려주는 것이다. 길드의 구성원들은 종교, 사회 및 경제적으로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그들은 자손 대대로 동일한 직업에 종사하며 밀접한 통혼권(通婚圈)을 형성했다. 자연히 그들은 자손 대대로 각종 혜택을 독점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화합을 외부에 과시하기도 했다. 예컨대 길드의 누군가가 사망하면, 모든 구성원이 장례식에 참석해 내부 결속력을 증명하는 식이다. 

여러 종류의 길드 중에서도 가장 먼저 성장한 것은 상인 길드였다. 상인들, 특히 원거리 무역에 종사하는 상인들은 중세의 도시에서 일찌감치 시민으로 인정받았다. 그들은 도시 안의 일정 지역에 거주지를 정하고 촘촘한 인척 관계를 형성했다. 그러고는 상인 길드를 조직해 상호부조를 제도화했다. 

상인 길드가 최초로 출현한 나라는 영국이다. 윌리엄 1세(WillamⅠ· 1028~1087)의 정복 이후 노르망디(프랑스)와 잉글랜드 사이의 무역이 활발해지자 상인 길드가 수적으로 빠르게 증가했다. 에드워드 1세(EdwardⅠ· 1239~1307) 때는 무려 92개나 되는 상인 길드가 활약했다. 

도시의 발달은 상인 계급과 불가분의 관계였다. 상인들은 우선 성채, 수도원, 교회 부근에 자리를 잡았다. 이어 그들은 성 밖에 거주하는 수공업자들과 함께 시장 부근에 집단거주지를 형성했다. 이것이 점점 커져서 독립된 도시로 발전하는 경우도 많았다. 

길드는 정치·사회적 출세의 도구였다. 길드를 운영하는 부유한 상인들은 도시의 재정에 기여했다. 그 때문에 상인 길드의 지도자들은 차츰 도시의 행정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결국 ‘도시귀족(patrician)’으로 발돋움하는 데 성공한다. 

상인 길드의 약진은 이탈리아의 무역도시에서 더욱 눈부셨다. 12∼15세기 이탈리아 중북부 도시들은 동서무역의 중계자로 막대한 부를 획득했다. 이들은 동남아시아와 인도에서 수입된 향신료를 독일 남부지방에서 출토된 은과 교환했다. 여기서 많은 이익이 발생해 이들은 신흥 부호로 성장했으며 길드의 지도자에서 도시귀족으로 신분이 상승했다. 이른바 ‘신귀족’이 탄생한 것이다.


안티노리 對 메디치의 ‘피의 전쟁’

상인 길드를 지휘하던 거상들은 봉건귀족과의 혼맥(婚脈) 또한 개척해나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력한 결과 이들은 중세도시의 명실상부한 지배자로 떠올랐다. 이들 가운데는 도시 행정에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유력 가문도 드물지 않았다.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명가 ‘메디치’ 가문도 모직업 길드와 은행업 길드를 통해 권력에 다가갔다.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다. 

한마디로 부유한 상인 또는 은행가는 길드의 중심축으로서 그들이 거주하는 도시의 지배권을 확보했다. 이들은 점차 자기네 도시를 ‘도시 코뮨’(도시공동체)으로 바꿔나갔다. 이탈리아의 많은 도시가 이런 변화를 겪었다. 

피렌체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13, 14세기 피렌체에는 안티노리(Antinori)라는 명문(名門)이 있었다. 이 집안이 피렌체에 살기 시작한 것은 13세기였다. 본래 이들은 피렌체와 프라토 사이에 있는 ‘칼렌자노’라는 작은 마을의 평민이었다. 

안티노리 일가는 피렌체로 이주한 뒤 상업에 종사했다. 1285년에는 피렌체의 비단 길드에 가입하고, 그 뒤에 은행 길드에도 가입했다. 재산이 불어나자 이들은 포도주를 생산·판매하는 사업에도 뛰어들었고, 나중에는 포도주 유통업이 이 집안의 주요 업종이 되었다. 안티노리는 피렌체의 여러 길드에 참여했고, 이로써 가문의 영향력을 강화해나갔다. 

당시 피렌체는 도시국가였다. 명목상 공화국이었으나 몇몇 유력한 귀족 집안과 부유한 길드가 시정(市政)의 요직을 독점했다. 이들은 피렌체의 정치적·경제적 주도권을 둘러싸고 극심한 정쟁을 벌였다. 정적에 대한 음모와 모략이 난무했다. 정적을 먼 곳으로 추방하거나 체포, 구금하는 일도 빈번했다. 이따금 암살사건도 일어났다. 

안티노리 가문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들은 경쟁 가문인 메디치가와 뒤엉켜 싸우며 여러 차례 부침을 거듭했다. 도시국가 피렌체의 지배권을 지키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대학(university)’은 중세 유럽에 처음 등장하는데, 대학도 초기에는 일종의 길드였다. 11세기 이후 유럽 각국에 길드가 본격적으로 출현하자 그 영향으로 ‘교수조합’ ‘학생조합’ 등 교육 길드가 구성됐고, 그것을 토대로 대학이 성립된 것이다. 대학의 인기는 갈수록 높아졌다. 15, 16세기 유럽에는 80개의 대학이 성업했다. 

대학은 라틴어로 ‘universitas’로 동업조합(corporation), 즉 길드(guild)란 뜻이다. ‘universitas’는 보통 ‘일반연구소(studium generale)’라고 번역되는데, 여기서의 ‘일반’은 학문 일반을 뜻하지 않는다. ‘일반인’이라는 뜻이다. 요컨대 대학을 뜻하는 ‘일반(generale)’의 함의는, 학문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든지 이 조직에 참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대학 곧 ‘universitas’는 학문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의 동업조합, 곧 길드다. 

대학은 본래 특권적 엘리트의 아성이 아니었다. 시민 모두에게 열린 비(非)특권적 조직이었다. 시민의 자유가 확대된 서양 근대에 이르러 대학은 ‘상아탑’이 되어 특권적 교육기관이 된다. 그러다가 현대에 이르러 대학은 다시 본연의 위치로 돌아와 일반 시민의 교육을 담당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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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chonmyongd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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