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호

‘엄마 가장, 아빠 주부’ 늘어야 한국경제가 큰다

  • 타릭 후세인 경제 칼럼니스트 tariq@diamond-dilemma.com

    입력2006-12-08 11: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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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에게 ‘선택과 기회’를 줘야 한다. 가정주부로 남든, 경력을 쌓든 그것은 강요가 아닌 그녀의 선택이 돼야 한다. 한국 사회는 여성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일까. 장기적으로 여성의 잠재성을 끌어내지 못한다면 한국은 반쪽짜리 나라가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한국의 심각한 저(低) 출산 해결과 경제성장의 열쇠가 있다.
    ‘엄마 가장, 아빠 주부’ 늘어야 한국경제가 큰다
    1997년 처음 한국에 왔을 무렵, 사무실에서 만난 멋진 정장차림 고학력 여성들의 주 임무가 커피를 타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직장이라는 것은 마치 결혼과 육아라는 버스가 오기 전까지만 머물러 있는 버스 정류장에 지나지 않는 듯했다. 이 얼마나 엄청난 잠재력의 낭비인가.

    이는 내가 한국 가정에서 하숙을 하면서도 깨달았다. 그들은 일하는 노동자일 뿐 아니라 가정교육을 책임지는 선생님이며, 아이를 낳고 기르는 어머니이며, 팍팍한 가정경제의 책임자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국가를 위해 알뜰살뜰 저축하며 수고와 희생을 다했다.

    ‘당연하지만 실행이 어려운…’

    여성은 한국의 기적적인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했지만 안타깝게도 가족과 사회를 뒷바라지하는 수동적인 기능으로만 제한됐다. 오늘날 이러한 전통은 급반전됐다. 현재 한국의 젊은 여성은 무엇보다도 자유와 독립을 갈구한다.

    요즘 많은 여성이 영화나 외국 드라마의 주인공을 통해 닮고 싶은 역할모델을 찾고 있다. ‘여성신문’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미혼 여성이 가장 선호하는 모델은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들이라고 한다. 그들 중 특히 캐리는 모방하고 싶은 대상 1순위다. 캐리는 전문직(프리랜서 칼럼니스트)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인생을 즐기며 최신 유행 패션을 추구한다. 굳이 결혼하지 않더라도 애인과 일, 친구 그리고 멋진 명품 구두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 일부에선 여성들의 이런 태도를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라고 비판하며, 한국인 출산율 저하의 주 원인으로 지목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과 우려가 오늘날의 여성을 과거의 여성으로 돌려놓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에 대처하는 최고의, 그리고 유일한 대안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더 많은 기회와 선택의 가능성을 여성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자신의 커리어와 포부를 달성하고, 재정적인 독립을 확보하며, 아이를 갖고자 하는 마음이 들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도록 선택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는 너무나 당연하고 간단해 보이지만, 정책과 관행의 변화는 물론 무엇보다 총체적이고도 전면적 변화를 요구한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미국 15%, 한국 1%

    한국이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이뤄내려면 여성 인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필수다. 2005년 말, 세계경제포럼은 양성(兩性)평등을 보장하는 경제체제를 가진 사회일수록 더 높은 경제수준과 풍요를 보장받는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경제가 제조업에서 지식기반 경제로 옮겨가면서 과거와는 다른 종류의 기술이 중요하게 여겨지게 됐다. 2005년, 경영 컨설팅 회사인 매킨지는 이러한 현상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보고서를 내놓았다. 연구팀은 미국에서 새로 탄생한 직업을 분류했는데, 그 가운데 70%의 직업이 복잡한 상호작용, 판단 및 높은 수준의 의사소통을 필요로 하는 ‘암묵적 직업(tacit job)’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국 사회도 이와 유사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암묵적 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자원, 즉 여성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 한 이렇듯 새로운 사회로 진입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그럼에도 한국 여성은 유사한 업무를 하는 남성과 비교해 60∼80%의 수입을 얻는다.

    많은 글로벌 기업은 한국 여성의 능력을 일찌감치 발견해 최고의 자원으로서 특별 관리하고 있다. 내가 책을 쓰면서 인터뷰한 많은 외국인은 자주 “한국 여성의 미래뿐 아니라 한국의 미래를 위해 여성의 잠재력과 소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꼭 강조해달라”고 당부했다.

    여러 외국 기업은 여성이 융통성 있고, 의사소통에 능하며, 남자보다 더 강한 팀워크를 보인다고 평가한다. 특히 소비재 산업은 마케팅, 고객 이해, 그리고 브랜딩과 커뮤니케이션 부문에서 한국 여성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고 있다. 한국의 소매산업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한 외국 기업의 CEO는 이렇게 말했다.

    “새로 경영진을 구성했는데, 두 자리만 빼고 모두 여성이었어요. 여성들은 남성 지원자들에 비해 훨씬 더 이해가 빠르고 융통성이 있었어요.”

    현재 공석을 메울 인재를 찾고 있는 다른 CEO도 비슷한 견해였다.

    “명문대 출신 남성 지원자들에게선 종종 거만함마저 드러나는데, 여성 지원자들은 훨씬 더 성실하고 긍정적입니다. 한발 앞서 우리 회사의 요구와 기대를 파악하고 그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해요.”

    많은 글로벌 기업이 여성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전세계적으로 여성의 사회진출은 미미하다. 이는 임원 진급에서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미국 여성은 전체 임원급 직책의 15%만 차지하고 있다. 유럽에선 7% 이하다.

    한국은 이보다 훨씬 더 뒤떨어져 있다.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한국은 양성평등 부문에서 58개국 중 54위다. 지난 3월 ‘동아일보’는 한국 기업에서 여성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한 바 있다. 결과는 의미심장했다. 한국의 재벌기업 중 겨우 1% 이하의 임원만이 여성이었다. 게다가 얼마 되지 않은 여성 임원 중 4분의 1은 기업 소유주 가족이었다. 그나마 가장 ‘평등하다’고 여겨졌던 회사도 여성 임원의 비율은 겨우 3.6%였다.

    비재벌 기업의 경우엔 조금 낫다. NC소프트, 다음 같은 신생기업은 고위직급 여성의 비율이 상당히 높지만, 그래도 국제적인 기준에서 보면 절망적으로 낮은 비율이다.

    선진국이 한국보다 여성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놀랍지 않다. 정말 걱정되는 것은 한국 경제를 추격하고 있는 많은 나라가 한국보다 앞서 자국의 여성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 최고 부자는 여성

    중국을 보자. 중국은 세계경제포럼 양성평등 순위에서 33위에 올랐다. 중국의 재계 및 정계 엘리트를 살펴보면 상황은 더 분명해진다. 단적으로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기업인은 여성이다. 중국 북동부 지방에서 태어나 겨우 3만위안을 들고 홍콩으로 건너간 이 여인은 폐지 수집상으로 출발한 자수성가형 중국 기업인의 전형이다. 홍콩 상장기업 주룽(玖龍)제지의 CEO 장인(張茵)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밖에 레노보그룹의 CFO 메리 마, 우이(吳儀) 부총리와 같은 여성 지도자도 눈에 띈다. 양성평등에 있어서 한국은 중국을 배워야 할 처지다.

    한국은 지금 여성의 기술력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생존과 직결되는 장기적 위기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여성의 도움은 절실하다. 심각한 출산율 저하가 그것이다. 한국 여성에게 아이를 갖는 것은 필수가 아닌 옵션이 된 지 오래다. 출산율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1980년 2.8명, 1995년 1.42명, 2005년엔 1.08명으로 급락했다. 이런 급속한 저하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독일은 벌써 수십년째 낮은 출산율로 고민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인구 고령화의 경고음이 울리고 있지만,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2006년 11월7일, 독일 통계청은 제11차 인구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의 결론은 충격적이다. 이제 독일의 인구 감소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민자를 더 받거나 출산율을 높인다고 해도 인구 감소를 막을 수 없다. 독일 인구는 현재 8240만명에서 2050년 7000만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인구 고령화는 경제에 심각한 부담을 안긴다. 국내총생산(GDP) 감소, 연금비용 증가, 혁신 역량 저하 등을 가져오며 궁극적으로 가정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한국 여성은 직업을 가질 기회를 충분히 갖고 있지 못하며, 아이를 갖는 데도 관심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여성만이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해결하는 엄청난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한국 여성은 결혼하면 직장을 나와 가사에 전념하다가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 외부에 맡길 수 있게 되면 다시 직업전선에 뛰어든다. 그리고 대부분의 여성은 아이를 가지면 아예 직장생활을 포기한다. 물론 모든 여성이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 시기는 그들의 경력에서 가장 중요하다.

    ‘엄마 가장, 아빠 주부’ 늘어야 한국경제가 큰다

    아이와 함께 채용공고 게시판을 보고 있는 주부들. 이들은 직장에 다시 다니길 원한다.

    임신수당, 휴직수당, 탁아수당…

    한 연구에 따르면 아이를 갖게 된 여성의 75%는 비자발적으로 일을 그만둔다고 한다. 이는 고용주나 사회가 일할 수 있는 환경만 허락한다면 일을 계속하고 싶어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여성은 일과 육아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 있다. 일부 여성은 일을 택하고, 일부는 육아를 선택해 전업주부로 살아간다. 둘 다 택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러나 전업주부로 남든 ‘워킹맘’이 되든 어디까지나 이 결정은 순전히 본인과 가족의 결정이어야 한다. 이제 결론은 명백하다. 한국은 여성에게 더 많은 기회와 선택을 제공해야 한다. 어머니로서, 직업인으로서, 전문가로서 그리고 일하는 엄마로서의 기회와 선택 말이다.

    정부는 여성을 지원하는 데 중요한 책임을 맡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한 보육 서비스와 육아휴직수당을 제공하는 것이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경험은 정부정책의 중요성에 대한 좋은 교훈을 제공한다. 예컨대 스웨덴의 높은 출산율과 여성의 직업참여도에는 충분한 보육수당과 훌륭한 보육시설이라는 배경이 있다. 이를 통해 직업을 가진 여성들이 셋째아이까지 부담없이 나을 수 있는 것이다. 1989년 육아휴직(부모 양자 포함)은 기존 봉급의 90%를 받을 수 있는 12개월 휴직과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는 3개월 추가 휴직으로 연장됐다. 게다가 아픈 아이를 돌보기 위해 부모 중 한 명은 1년 중 60일의 유급휴가를 받을 수 있다.

    충분한 출산휴가 수당을 지급하는 프랑스의 정책도 출산율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프랑스는 임신 7개월째 여성에게 800유로(96만원)의 임신수당을 지급한다. 또 아이가 3세가 될 때까지 4120유로의 고정수당을 나눠 지급한다. 부모가 휴직하면 월 340유로의 휴직수당과 가족수당, 탁아수당, 개학수당을 준다. 자녀수에 따른 주택수당과 세금감면, 연금 혜택 등 아이 가진 가정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 줄줄이 이어진다. ‘국가가 돈으로 아이를 산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프랑스의 출산율은 1.94로 유럽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지난해 프랑스 정부는 2050년경 프랑스 인구가 7500만명으로 독일을 앞지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국은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출산휴가는 90일로 연장했으며 보육시설을 확장했다. 저소득 가정은 더 관대한 보조금을 지급받고 있다. 3명 이상 자녀를 둔 가정은 셋째아이를 무상으로 교육할 수 있다. 주택 입주권에도 우선순위를 보장받는다. 하지만 아직도 개선해야 할 분야가 너무 많다. 사립 유아원이나 어린이집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2008년까지 공립 보육시설은 여전히 전체의 10%대에 머무를 것이다. 이 때문에 일하는 엄마들은 부모나 친척에게 아이 양육을 맡기거나 보모를 고용해야 한다.

    스웨덴의 양성평등담당관

    가까운 싱가포르나 대만을 보자. 이 나라들은 일찌감치 여성의 육아와 사회참여를 지원하기 위해 임금이 싼 나라로부터 공식적으로 보모를 불러들였다. 이 때문에 여성의 사회참여율이 한국보다 훨씬 높다. 한국에는 불법체류 중인 ‘연변 아줌마’와 ‘필리핀 보모’가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에게 싱가포르보다 7배, 대만·홍콩보다 5배 더 많은 돈을 주고 있다. 더욱이 한국은 가정보모를 정식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아 이들은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는다. 여러 가지 조건과 상황이 한국과 같지 않겠지만 싱가포르 같은 나라가 여성의 가사와 육아 지원에 발 벗고 나섰다는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정부는 공공기관 내의 양성평등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여성 공직할당제가 한 방법이지만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 세계경제포럼 양성평등 부문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스웨덴을 살펴보면 좀더 세심하고 잘 짜인 정책을 통해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웨덴 정부의 각 부처는 양성평등담당관을 임명해 최일선에서 남성과 여성에게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임무를 맡게 한다. 장·차관은 자신이 내리는 정책판단이 양성평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판단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국가로부터 지속적인 연수와 훈련을 받는다.

    정부의 노력은 사적 영역에도 뒷받침돼야 한다. 어떤 워킹맘은 언론 인터뷰에서 “법적으론 육아휴직을 할 수 있지만 실제 육아휴직 하는 사람은 한 명도 못 봤다”며 “산후 휴가 90일 쓰는 것도 동료에게 미안하고 눈치가 보이는데 1년 동안 업무를 중단하는 건 생각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국의 남성 CEO들이 더 많은 여성 임원을 고용하는 것이 결국 장기적으로는 비즈니스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비록 당장은 돈이 드는 복지나 보육지원을 해야 한다 해도 말이다.

    이처럼 미래를 내다보는 인사정책과 더불어 기업들은 여러 가지 관행을 바꿔야 한다. 가령 많은 한국 여성이 정기적인 술자리에 참석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에선 사업상 주요 정보를 얻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술자리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워킹맘은 승진의 기회에서 멀어진다. 또 대부분의 한국 기업은 나이나 재직기간을 연봉정산의 중요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워킹맘의 조직 내 승진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제 기업은 워킹맘이 가정과 직장생활의 균형을 맞추도록 유연한 근무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를 원하는 아버지들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삼성을 위시한 한국의 선진 기업들은 미래의 성공을 위해 여성 인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히 여성채용 목표를 발표하는 수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삼성전자는 신입사원의 30%를 여성으로 채용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여성이여, 야망을 가져라!

    세계경제포럼은 양성평등 과제 연구결과를 발표하면서 “모든 인간의 본성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도전이기에 아주 천천히 전진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남성과 여성, 가정과 직장 모두에서 궁극적으로 마음을 고쳐먹는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남성 위주 기업문화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한 연구결과는 남성과 여성 임금차의 절반 이상은 경험의 차이에서 오기보다는 여성차별 때문에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회사 회식에서 여성의 배제(명시적이든 아니면 암시적이든)는 차별의 다른 모습이다. 재벌기업에서 일하는 한 여성 임원은 “우리 부서는 회식자리에서 정말 중요한 정보가 교환되고 인간관계가 형성된다”고 했다. 이런 회식문화에 악의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고착된 관행이며 사고임은 분명하다.

    또한 가정에서 남성은 어떻게 하면 아내를 돕고 지원할 수 있는지 배워야 할 것이다. 어쩌면 단순히 더 많이 듣고 더 진지하게 의사소통을 하려는 노력이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일하는 아내와 두 아이를 둔 한국인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조화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의사소통을 잘하는 것이다. 솔직히 한국 남성은 이런 일에 능숙하지 않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집에만 오면 말수가 줄었다. 저녁식사를 할 때는 우리에게 ‘입 다물고 밥이나 먹어라’는 말만 했다.”

    여성도 노력해야 한다. 한국의 성공한 여성 기업가 김성주씨는 여성의 분발을 촉구한다. “Girls, be ambitious!(여성이여, 야망을 가져라)” 한국에서 비즈니스 트레이닝 사업을 펼치는 브라질 출신의 여성 경영인은 “우리가 요구하는 만큼 얻을 수 있다”며 “한국 여성들이 더 적극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 엄마의 사교육 걱정도 사회참여의 걸림돌이다. 많은 엄마는 사교육을 많이 받은 아이만이 인생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아이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서는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맘’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다. 일부는 할인점의 계산대에서라도 일해 사교육비를 보충하려고 혈안이 돼 있다. 이 대목에서 직장과 아이 교육을 병행하는 일은 여성이 또 하나의 과감한 선택을 하도록 강요한다. 사교육 열풍에 편승해야 한다는 주변의 압력과 싸움이 그것이다. 그러나 아이를 사교육의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이들의 시험성적 향상에 당장은 도움이 될지 몰라도 진정한 리더로 키우는 데는 별로 기여하지 못한다.

    여성의 성공욕구와 출산율

    많은 사람은 여성들이 더 많은 선택의 기회를 가질수록 출산의욕은 오히려 저하된다고 믿고 있다. 독일의 유명한 여성 뉴스 앵커 에바 헤르만은 최근 펴낸 책에서 “여성의 성공욕구와 성 역할 변화가 출산율 저하를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런 견해는 시대에 뒤떨어졌을 뿐 아니라 주장 자체도 옳지 않다. 몇 년 전, 세계 18개국을 대상으로 ‘남성의 일은 돈을 버는 것이며 여성의 일은 가정을 지키고 가족을 돌보는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지를 묻는 연구가 진행됐다.

    연구원들은 설문결과와 각국의 출산율 관계를 조사했다. 결과는 두 변수 간에 부정적인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양성평등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가 남성과 여성이 가정생활과 직장생활을 조화롭게 병행하기 어렵게 만들며 출산율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한 독일 연구원은 헤르만의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반박했다.

    “출산율은 여성뿐 아니라 전 사회가 해방됐을 때, 즉 여성이 직업적 성공을 추구할 때, 남성이 아이를 돌볼 때, 그리고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을 뿐 사실혼 관계인 성인남녀가 정상으로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높아진다.”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고, ‘아빠 주부’가 영화의 소재로 등장하고, 혼전동거가 심심찮게 거론되는 한국의 현실에서 귀담아 들을 대목이다.

    이 칼럼을 마무리하려 끙끙대고 있을 때, 딸이 다니는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가 아프니 당장 아이를 데리러 학교로 오라는 것이었다. 칼럼 마감은 촉박했지만 아내가 마침 일하는 시간이어서 나는 곧장 학교로 달려갔다. 아내와 나는 맞벌이 부부로 세 아이를 키우고 있다.

    양쪽 부모가 모두 멀리 계신 이유로 우리는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고 있다. 하지만 아주머니 혼자 가사를 전담하고 세 아이를 돌보기에는 벅차다. 이 때문에 우리 부부는 각자의 시간을 세심하게 배분해 가사와 육아를 분담한다. 서로의 시너지를 확인하고 부부평등의 육아가 아이들에게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면 여간 뿌듯하지 않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서로 긴밀하게 의견을 나누고 계획하기는 하지만 때로는 도저히 시간을 내지 못할 때도 있고 제풀에 지치기도 한다. 최대한 노력하고 있지만 우리는 종종 아이들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을 갖는다. 때로는 친구들에게 방과 후 아이들을 데려가 몇 시간이고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엄마 가장, 아빠 주부’ 늘어야 한국경제가 큰다
    Tariq Hussain

    독일 출생

    영국 런던정경대 경영학과 졸업,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석사

    부즈앨런해밀턴 한국사무소 이사

    現 Maxmakers 한국대표

    저서 : ‘다이아몬드 딜레마’

    수상 : 2006 Global Korea Award


    과연 우리 가족의 실험은 성공할까. 나도 확신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실험이 분명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여성들은 그들의 꿈과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모든 기회와 선택을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 저출산율 해결의 당사자인 그들은 사실상 미래 한국의 생존과 번영의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 한국의 미래는 결국 여성들의 손에 달려 있다. 나는 우리 가족의 실험이 꼭 성공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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