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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의 얼굴 지닌 ‘마음의 감기’

우울증

  • 이민수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천의 얼굴 지닌 ‘마음의 감기’

살아가면서 누구나 주변 상황이나 사건에 의해 일시적으로 기분이 우울해지고 가라앉는 것을 경험한다. 그러나 너무 세게 눌린 나머지 다시 튀어 오르지 못하는 용수철처럼 침울한 기분이 비정상적으로 오랜 기간 회복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우울증이다. 침울한 기분은 쓸쓸함, 슬픔, 불안, 절망, 허무, 초조, 답답함 등 다양한 감정으로 표현된다. 우리가 감기에 걸려도 몸살감기, 코감기, 목감기 등 다양한 증상을 호소하는 것처럼 우울증 역시 천의 얼굴을 지닌 질환이다. 우울증을 흔히 ‘마음의 감기’라고 비유하는데 실제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10명 중 1명은 우울증에 걸린다고 보고될 만큼 비교적 흔한 질환이다.

우울증에 걸리는 이유는 뭘까. 현대의학은 우울증이 단순히 유전적 또는 환경적 원인에 의한 게 아니라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병이라는 점을 밝혀냈다. 우울증의 원인은 크게 생물학적 원인, 심리적 원인, 사회적 원인으로 나눠볼 수 있다. 생물학적 원인으로는 가족력과 같은 유전적 요인과 대뇌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등의 결핍을 들 수 있다. 심리적 원인으로는 자신의 능력과 가치에 대한 불만족, 대인관계상의 실패를 들 수 있으며, 자신과 세상, 미래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해석하는 경우 우울증이 발생하기 쉽다. 사회적 원인으로는 어린 시절의 성적, 신체적 학대나 부모의 음주, 정신질환, 이혼, 사망 등의 경험과 우울증 발병 사이에 연관성이 발견되기도 했다.

핵심적 증상은 부정적 기분

우울증은 우울한 기분 외에도 다양한 증상을 보인다. 우리가 기분이 좋을 땐 활발하고, 집중을 잘해 일에 능률이 오르며, 잠을 푹 자고 입맛도 좋은 편이다. 그런데 우울증이 생기면 이와 반대 증상이 나타난다. 우울증의 핵심적 증상은 부정적인 기분이다. 일반적으로 개운하지 않음, 기가 죽음, 슬픔, 쓸쓸함, 희망 없음,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느낌 등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적지 않은 환자가 슬픈 기분보다는 두통, 복통, 흉통 등을 호소하기도 하는데 막상 신체적 검사를 해보면 별다른 이상을 보이지 않는다. 이런 경우를 가면을 쓴 것처럼 신체 증상 뒤에 우울한 기분이 숨어 있다고 하여 ‘가면우울증’이라고 한다. 이외에 집중력과 주의력 저하, 부정적 사고, 죄책감, 자살사고 등도 빈번하다. 심한 경우 망상적 상태에 이르기도 하는데 과거의 죄 때문에 처벌을 받는다는 피해망상, 자신이 재산을 모두 잃었다는 빈곤망상, 암 등의 불치병에 걸렸다는 질병망상 등이 있다. 또한 우울증에선 식욕 저하와 체중 감소가 흔해 환자는 입맛이 없어도 억지로 먹어야 한다고 느끼고 잠을 자더라도 자주 깨면서 깊은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활동량이나 식욕, 체중, 수면의 변화는 의사와 보호자가 쉽게 발견할 수 있어 객관적 평가가 쉽기 때문에 특히 중요하다.

천의 얼굴 지닌 ‘마음의 감기’

우울증은 매우 흔하면서도 방치되기 쉽다.

우울증 치료는 크게 생물학적 치료와 정신치료로 나눌 수 있는데, 생물학적 치료엔 약물치료와 비약물치료가 있다. 우울증의 가장 적절한 치료 방법은 약물치료와 더불어 정신치료를 병행하는 것이다. 약물치료는 환자가 보이는 증상, 약물의 부작용, 과거 약물치료에 대한 반응, 처방 비용 등을 고려해 적합한 약제를 처방한다. 항우울제를 복용하더라도 치료 효과는 투여 직후가 아닌 약 2주 뒤에 나타나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꾸준히 투약해야 한다.

비약물치료로는 전기경련요법, 두개경유자기자극술, 심부뇌자극술, 미주신경자극술, 광치료 등이 있다. 이러한 방법들은 어느 정도 유용성과 안전성이 확립돼 있지만 아무래도 약물치료보다는 낯설고 두렵게 느껴지므로 환자와 보호자가 거부감을 보이는 편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사용하기보다는 약물치료만으로 충분한 호전을 보이지 않을 경우 고려한다.

정신치료는 아마도 일반인이 정신건강의학과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치료일 것이다. 즉, 큰 틀에서 의사와 환자가 대화를 나누면서 치료해나가는 면담치료를 생각하면 된다. 세부적으로는 치료 대상과 기법에 따라 역동 정신 치료, 대인관계 치료, 인지행동 치료, 부부치료, 가족치료 등으로 나뉜다. 의사는 치료 목표와 환자의 선호도, 의사 본인의 특정 기법에 대한 숙련도를 고려해 가장 적절한 치료법을 선택하게 된다.

증상 호전 후에도 6개월~1년간 치료해야

우울증은 의사와 환자, 환자 가족의 노력을 통해 치료하고 관리 가능한 질환이다. 다만 치료 후에도 재발이 흔하고, 재발이 반복될수록 간격이 짧아지며 증상이 지속되는 기간이 길어진다. 따라서 조기 진단 및 치료, 꾸준한 유지치료를 통한 재발 방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증상 호전 후에도 통원 치료를 받으면서 6개월에서 1년간 꾸준히 약물을 복용하는 게 중요하다. 또한 우울증이 장기화하거나 두 번 이상 재발한 경우, 가족력이 있는 경우엔 1~2년 이상 장기 유지치료가 필요하다.

우울증 환자는 가족의 태도와 이해 정도에 많은 영향을 받으므로 가족 역시 우울증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어, 우울증 악화 시기엔 환자가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데 이때 환자를 비난하지 않고 질환의 한 증상으로 받아들여준다면 환자는 자신이 충분히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또한 가족은 환자의 수면, 식사량, 체중, 활동량의 변화를 잘 관찰하고 의사에게 자세히 전달해줘야 한다. 이런 정보는 치료에 큰 도움을 준다. 유지치료 기간엔 환자에게 따뜻한 관심을 유지하면서 강압적이지 않은 태도로 약물 복용을 갑자기 중단하지 않도록 격려해야 한다.

우울증은 매우 흔하면서도 방치되기 쉽다. 누구나 우울할 수 있다는 통념이나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거리감이 치료가 지연되는 한 원인이 된다. 그러나 우울증엔 조기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며 재발 방지가 치료의 핵심이므로 증상이 의심되면 망설이지 말고 병원을 찾아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자.

신동아 2014년 7월 호

이민수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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