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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바둑 그리고 쿠엘류감독

  • 글: 김화성 mars@donga.com

장기, 바둑 그리고 쿠엘류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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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딩크가 살려놓은 한국 축구. 바둑으로 치면 이제 포석이 끝났을 뿐이다. 한순간에 죽을 수도 있고 한순간에 더 기세를 떨칠 수도 있다. 중반전과 끝내기가 남아 있다. 쿠엘류 감독에게 이창호 같은 완벽한 끝내기를 기대한다.
장기, 바둑 그리고  쿠엘류감독
이 세상엔 ‘다 죽었다 살아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바둑, 한국 정치인 그리고 남자의 ‘그것’이 그렇다.

이 중에서도 바둑은 멀쩡했던 말들이 어느새 죽기도 하고 다 죽었던 말들이 한순간에 기적처럼 살아나기도 한다. 바둑알은 그저 ‘검은 돌-흰돌’일 뿐이다. 그런데도 바둑판 위에서 이들은 천만조화를 다 일으킨다. 흰 돌 검은 돌로 나누어진 바둑알은 컴퓨터 언어인 ‘0, 1’과 비슷하다. 그저 부호일 뿐이다. 컴퓨터에서 0과 1로 나타내지 못하는 말들이 없듯이 바둑에서도 이 두 가지 색으로 수천만 가지의 ‘전투 상황’을 조합해낸다. 따라서 부호에 불과한 바둑돌의 빛깔은 바둑 두는 사람들이 어떻게 정하든 전혀 관계가 없다.

바둑황제 조훈현은 전신(戰神)이다. 한마디로 싸움귀신이다. 혹자는 ‘화염 방사기’라고도 부른다. 그의 바둑은 바람처럼 빠르지만 풀잎처럼 부드럽다. 조자룡처럼 창 한 자루 들고 조조의 백만군대에 뛰어들어가 순식간에 적진을 뒤흔드는가 하면 어느새 적토마에 몸을 싣고 유유히 사라진다. 그는 단언한다. “바둑은 결국 실수를 안 해야 이기는 게임”이라고.

그래서일까. 조훈현의 제자 ‘돌부처’ 이창호는 끝없이 기다린다. 뭘 기다리는가. 바로 상대가 실수할 때까지 참고 또 참으며 기다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강태공’이라 부르기도 한다. 중국에선 그를 돌부처의 한자식 표현인 ‘석불(石佛)’이라고 칭한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서 아무리 날카로운 칼이라도 이창호라는 저 석불은 도저히 벨 수 없으며 오직 가장 둔탁하고 묵직한 칼 둔도(鈍刀)만이 벨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내세운 게 ‘둔도’ 후야오위(胡耀宇).

과연 후야오위는 이창호와 대적할 만했다. 처음 두 번 만나 석불을 보기좋게 무너뜨렸다. 그러나 한국 중국 일본의 최정예 기사 5명씩이 나와 붙는 ‘진검승부’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에선 그 둔도도 석불의 힘에 여지없이 두동강나버렸다. 그 전까지 후야오위는 5연승을 달리고 있었다.

조훈현 이창호 유창혁 이세돌…. 한국 바둑엔 천재 기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천재들이 만약 바둑이 아닌 장기를 두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장기는 장기알 하나하나마다 역할(Role)이 있다. 장기알은 그 일정한 역할에 따라 움직인다. 축구나 야구 농구 등 단체 경기 선수들에게 일정한 포지션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반 기업 조직에서 사람마다 직책이 있는 것과도 같다. 따라서 극단적으로 이야기한다면 단체경기에서 선수들은 장기판의 장기알 같다고 할 수 있다. 기업에서는 회사원들이 ‘장기알’이다. 이러한 면에서 축구나 농구 감독들 그리고 일반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자기 역할을 못하는 선수나 조직원들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탁구 배구와 비슷한 바둑

그러나 장기와 바둑은 패러다임이 완전히 다르다. 장기는 한마디로 ‘적의 임금 쓰러뜨리기’다. 부하들이 다 살아 있어도 임금(宮)이 죽으면 모든 게 끝이다. 거꾸로 부하들이 다 죽어도 최후까지 임금이 살아 있으면 승리한다.

장기는 축구나 농구 같은 ‘골 넣는 운동’과 비슷하다. 우선 골을 넣는 것보다 골을 안 먹는 게 중요하다. 장기에서도 임금(宮)을 온전하게 보존하는 게 최우선이다. 졸(卒)이나 마(馬) 상(象) 포(包)는 보디가드처럼 온몸을 던져 임금을 향해 쏟아지는 창과 화살을 막아내야 한다. 그런 다음 적의 임금(宮)을 향해 공격해야 한다. 축구나 농구에서 수비가 강한 팀이 이기는 것과 똑같다.

하지만 바둑은 다르다. 바둑은 한마디로 ‘땅뺏기’다. 바둑알은 어떤 바둑알이든 하는 일이 다 똑같다. 직책도 평등하다. 바둑알은 우선 자신부터 살아야 한다. 그러나 혼자서 산다는 건 불가능해서 반드시 다른 바둑알과 끊어지지 않아야(연대) 한다. 서로 손에 손을 맞잡고 ‘생존 띠’를 만들어야 한다.

바둑판엔 싸움터가 따로 없다. 바둑알이 놓여지는 곳, 바로 그곳이 싸움터다. 그리고 그 땅이 어느 곳이든 싸워 이겨 ‘두 집’이 나면 바로 그곳이 자기 땅이 된다. 이런 면에서 서비스권이 있는 배드민턴 복식경기 등과 비슷하다. 축구나 농구는 모든 공격과 수비가 골대에 집중되지만 배드민턴이나 탁구 배구는 모든 곳이 싸움터다. 바둑의 ‘4귀’와 ‘4변’이 두 집 내기가 쉽듯이 배드민턴 배구 탁구에서 공격 성공률이 가장 높은 곳은 상대 코트의 모서리와 양변이다. 탁구 배드민턴에서의 서비스권은 바둑에서 흑과 백이 기회 균등하게 서로 번갈아 두는 것과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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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화성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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