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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 | 대기업 공익법인이 살길

‘지배력 강화’ 당근 주고 ‘공익투자 확대’ 의무화 필요

  • | 박두준 (재)한국가이드스타 연구위원

‘지배력 강화’ 당근 주고 ‘공익투자 확대’ 의무화 필요

  • 대기업의 공익법인이 총수의 지배력 확대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과도하게 제약하면 오히려 기업의 사회공헌이 줄어드는 악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 미국 사례는 우리 대기업 공익법인 개혁의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배력 강화’ 당근 주고 ‘공익투자 확대’ 의무화 필요
지난 8월 30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입법예고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따르면 대기업집단(자산 총액 10조 원 이상인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이하 기업재단)은 보유한 계열사 지분의 의결권 행사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상장사에 한해 특수관계인 지분 합산 15%까지만 예외적으로 적용한다. 

또한 국세청은 8월 28일 발표한 ‘하반기 국세행정 운영방안’에서 기업재단의 탈세 행위에 대한 전수 검증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특히 성실공익법인 요건을 위장해 주식을 초과 보유하거나 출연재산,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을 변칙 사용한 경우 등을 집중 조사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지난 7월 2일, 공정위는 “대기업집단에 소속된 공익법인들이 ‘공익사업’보다 총수 일가의 지배력 확대에 동원되고 있다”는 관련 자료를 내놓은 바 있다. 공정위가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 운영실태’를 통해 ‘그룹 기업재단들이 주식을 통한 지배력 확대 등의 편법 행위를 했다고 유추해볼 만하다’고 제시한 정황은 이렇다.


‘지배력 강화’ 당근 주고 ‘공익투자 확대’ 의무화 필요
우선 조사 대상인 51개 대기업집단 소속 165개 기업재단은 다른 공익법인에 비해 주식 자산과 소속 계열사 주식을 더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공정위는 ‘그룹 기업재단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은 지배주주 일가의 지배권 유지 및 강화에 이용되고 있고, 이는 비과세 등 각종 세제 혜택으로 공익법인을 지원하는 취지와 무관한 것으로 조세 형평성에 위배된다’고 보았다. 

또한 총수, 친족, 계열사 임원 등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하 상증법)상 특수관계인이 이사로 참여하는 공익법인이 138개(83.6%)였고, 이들 특수관계인이 전체 공익법인 이사회 구성원 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19.2%였다. 특수관계인의 이사 취임은 20%로 제한하고 있다. 특수관계인이 공익법인의 대표자인 경우도 59.4%(98개)에 달하는 등 정황상 총수 지배력 강화에 악용됐을 개연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계열사, 총수 친족 등과 내부 거래를 한 경우도 100건에 달했다.


‘공익사업’과 ‘지배력 확대’

‘지배력 강화’ 당근 주고 ‘공익투자 확대’ 의무화 필요
2016년 국세청에 의무 공시한 공익법인 자료와 이름이 동일한 기업재단 165개의 현황을 분석했다. 먼저 일반 현황을 보면 사업 유형은 학술장학사업 운영법인이 51개(30.9%)로 나타났고, 법인 유형으로는 재단법인이 128개(77.5%)로 가장 많았다. 

이들 기업재단의 평균 자산 규모는 1226억 원으로 나타났고, 이는 전체 공익법인 265억 원 대비 4.6배가 넘는 수치다. 반면 고유목적사업을 위한 수입·지출이 전체 수입·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 정도로 전체 공익법인(약 60%)의 절반에 불과했다. 또한 자산 구성에서 계열사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높지만(16.2%),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1.06%)해 수익 기여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가 문제 제기한 부분에서 한 가지 짚어야 할 점이 있다. 기업이 출연한 재단이 출연 기업의 경영권 방어 또는 기업 승계에 이용되는 것이 과연 문제가 되는 사안인지 따져볼 여지가 있다. 이 점에서 독일을 위시한 유럽의 대륙법은 미국보다 훨씬 느슨하다. 이들 재단은 기업 자산의 상당부분을 소유한 법적 소유자이고, 심지어 대규모 기업집단의 지주회사가 되기도 한다. 스웨덴의 발렌베르크재단, 독일의 베르텔스만재단, 로베르트보슈재단 등은 상속재산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방법으로 사용돼왔다. 그리고 기업재단의 공익성을 강조하는 미국에서는 출연기업의 면세 가능한 출연 주식 비율이 20% 미만으로 우리나라의 5%보다 높다. 

앞서 공정위가 대기업 출연 기업재단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공익사업보다 총수 일가의 지배력 확대에 동원된다’는 대목에서 ‘공익사업을 적게 한다는 것’과 ‘지배력 확대’는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 기업은 자본 축적과 이익 추구가 목적이고, 재단은 자본 사용과 공익 추구가 목적이다. 기업재단은 이런 두 가지 모순 속에서 탄생한 존재다. 기업이 축적한 자본을 공익을 목적으로 유출하려면 그만한 유인책이 필요하다. 일부 기업재단의 부정과 비리를 막는다는 이유로 기업재단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기회(출연)를 봉쇄해서는 안 된다.


미국의 공익법인 탄생

미국 포드재단도 처음엔 경영권 유지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공익사업을 선도하는 모범적인 기업재단이 됐다. 사진은 포드재단 설립자 헨리 포드(왼쪽)와 그의 아들 포드 2세. [동아DB]

미국 포드재단도 처음엔 경영권 유지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공익사업을 선도하는 모범적인 기업재단이 됐다. 사진은 포드재단 설립자 헨리 포드(왼쪽)와 그의 아들 포드 2세. [동아DB]

지금 우리 기업재단을 두고 벌어지는 논란은 1960년대 미국의 상황과 유사해 보인다. 당시 철도, 석유, 전기, 자동차 산업으로 막대한 부를 이룬 카네기, 록펠러, 포드 등 기업가가 만든 재단은 세금 혜택만 받고 재단으로서의 독립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동시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서비스 제공과 권익을 옹호하는 데 대체로 실패했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이 때문에 당시 기업재단에 대한 다양한 연구 조사가 이뤄졌는데, 그 결과는 시민에게 재단은 부자들의 세금 도피처라는 부정적 인식을 형성하게 했다. 이후 미국 하원 세입위원회와 상원 재정위원회는 공동으로 재무부에 재단에 대한 연구 조사 보고서 제출을 요청했으며, 1965년 제출된 보고서는 다음 여섯 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첫째, 자선활동에 배분돼야 할 지출의 유예다. 재단이 소득을 축적하고 부동산과 같은 저수익 자산에 대한 투자로 자선활동에 배분돼야 할 지출을 유예하는 문제다. 우리나라에서도 A재단법인(이사장이 B기업 회장과 특수관계)은 B기업으로부터 출연받은 자금을 B기업과 자회사인 C기업의 주식을 매입하는 데 60억 원가량 사용했다. 해당 주식을 통한 배당금은 0원이기 때문에 금융소득을 위한 자산 운용이라고 볼 수 없다. 공익 목적에 사용돼야 할 출연 자금을 수익이 전혀 나지 않는 주식을 매입하는 데 사용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둘째, 수익사업에 대한 소유권 문제다. 즉 영리기업이 재단을 설립한 후 재단의 면세 지위를 이용해 마련한 자금으로 계열사를 설립한 경우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D기업이 E문화재단(이사장이 D기업 회장 부인)에 2017년 110억 원에 가까운 금액을 출연했다. 하지만 공익목적사업인 문화사업에 사용된 금액은 10억 원이 채 되지 않는다. 나머지 100억 원은 이전에 출연된 금액과 더해 D기업과 계열사의 사옥을 짓는 데 사용됐다. 물론 공익법인도 수익사업을 할 수는 있다. E문화재단은 미술품 전시 등을 위한 공간 확보를 위한 것이라고 외부감사보고서에 기재했지만 토지와 건물 가격이 400억 원을 넘는 사옥을 짓는 것을 공익법인이 수행할 수익사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기업이 출연한 자금으로 계열사를 설립한 것은 아니지만 임대사업 또한 이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비판받다 찬사받는 포드재단

셋째, 가족이 기업 및 기타 재산 관리를 위해 재단을 이용하는 경우다. 미국의 기업재단 중 가장 존경받는 포드재단의 경우, 헨리 포드 1세가 설립할 당시 뉴딜 시대에 세금이 치솟아 그가 사망할 경우 자손들이 상속세를 내려면 포드자동차의 지분을 매각해야 했다. 포드재단 설립은 재산권 보호와 기업의 통제권을 보유하는 수단(미국 입법부는 1969년 조세개혁법을 제정해 이러한 허점을 차단했다)이었기 때문에 재단의 방향성이나 공익활동이 거의 없었다. 세금 혜택이나 상속의 용도로 재단을 설립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1947년 그의 아들인 헨리포드 2세에 이르러서야 재단의 방향성이 결정됐고 1950년대 이후 국내외에 걸쳐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공익활동을 활발히 전개해 국민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게 되었다. 포드라는 기업의 축적된 자본이 포드재단을 통해 공익목적으로 사용되는 모범적인 ‘기업재단’이 된 것이다. 

넷째, 재단의 투기성 투자다. 재단이 면세자금을 이용해 투기성 유가증권에 투자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부산저축은행이 사회 문제를 일으키고 청산됐을 때 500억 원을 투자한 대기업 F장학재단은 전액 원금 손실을 입었고 이로 인해 재단 이사장이 책임을 지고 사임한 바 있다. 

다섯째, 출연자가 재단 재산을 이용해 다른 회사를 인수하는 등 사적 이득을 취하는 경우다. 실제 국내 H그룹 회장은 G재단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재단 보유 주식을 매각해 만든 약 400억 원을 I산업 인수를 위해 설립한 계열사 H홀딩스에 출자(주식매입)했다. 재단의 자산을 이사장 사익을 위해 사용한 전형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민간 재단과 일반 자선기관

마지막으로 출연자에 의한 영속적 재단 통제의 문제다. 출연자와 그 가족들의 이사회 종신 재직권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는 탓에 이들에 대한 재단의 영구적 통제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 하지만 최근엔 법이 이사 자격을 제한하고 있고, 재단 내규 또는 법인의 성격에 따라 연임 제한 규정이 법적으로 제도화돼 있어 법을 잘 지키고 공익사업을 제대로 수행한다면 재단 통제의 영속성은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본다. 

미국은 1969년 조세개혁법(Tax Reform Act)을 통해 개인과 가족, 기업들이 만든 재단(Private Foundation, 이하 ‘민간 재단’)과 일반 자선기관(공공자선조직)을 다르게 분류하는 제도가 만들어졌다. 공공자선조직은 세액공제 대상이지만 민간 재단은 세액공제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민간 재단은 자본소득을 포함한 순투자 자산에 대해 연간의무지출(현재 5%)을 강제하는 규정을 두었고, 사업과 관련되지 않은 곳에는 연간 20% 이상을 투자하지 못하게 했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정치 활동 금지와 연방국세청에 재단의 수입과 지출 내역을 포함하는 보고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할 것을 규정했다. 

당시 재단 관계자들은 법률이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항변했지만 재단을 한층 더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후 다양한 제도 개선을 통해 지금의 미국은 기부 선진국이 되었으며, 2014년 기준 미국의 민간 재단은 8만6726개이며 연간 배분금액은 67조2000억 원에 달한다(미국 기업재단은 2521개, 배분금액은 5조7000억 원으로 한국 2016년 공익법인 약 9000개 총 기부금 수입액과 비슷한 금액이다).


순 투자자산 5% 의무사용제도 도입

이번 공정위 발표를 보면서 기업재단의 독립성과 기부의 목적성을 달성하기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현재 우리는 기업재단에 대한 규정과 이해가 완벽하지 않다. 그렇다 보니 관련 제도가 미비하고, 이로 인해 몇몇 좋지 않은 운영 사례가 생겨나기도 했다. 기업재단의 미래를 위해, 기업의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 기업과 부자들이 더 많은 돈과 재능을 기꺼이 공익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언론과 정치권, 시민사회가 기업재단의 적절한 역할과 영향이 무엇인지 논의해야 한다. 

정부는 외국의 경험과 사례, 제도를 연구해 기업재단의 독립성과 투명성,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규제를 만드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토론과 제도를 연구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종합적 정책이 나오기 전에 우선 제도에 반영할 수 있는 개선안을 추려보면 이렇다. 

첫째, 기업재단의 1차적인 기능은 사회문제 예방·완화·해결이므로 이를 위해 공익목적사업비 지출 순 투자자산 5% 의무사용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일반적으로 의결권 있는 주식의 보유 한도 상한선이 20%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결권이 있는 주식 5%를 초과하면 증여세를 부과한다. 단순 비교한다면 미국의 주식 보유 한도 상한선은 느슨해 보이지만 순 투자자산 5% 의무사용제도에 따라 공익목적사업에 지출해야 하는 금액을 강제함으로써 개인, 기업재단의 자산 축적을 방지하고 당초 법인 설립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 국세청은 재단이 면세자격을 유지하기 위한 순 자산 5% 지출로 인정되는 공익사업 범위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기업 또는 기업가들이 설립한 기업재단의 주식 보유 기준을 정하기 전에 부유한 기업가와 기업들이 주식을 많이 기부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대신 순 자산 5% 공익사업 의무사용을 도입해야 한다. 그러면 기본재산 사용규제를 통해 재단자금을 사용하지 못하는 문제와 주식의 배당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투명성과 규제, 자율성의 적절한 균형

둘째, 대기업 소속 기업재단의 경우 자산과 수입 기준에 관계없이 외부 회계감사를 의무화해 대중에게 회계자료의 신뢰도와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행 외부 회계감사 기준은 자산 100억 원 이상인 공익법인에 한해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 소속 기업재단의 경우 자산 기준에 상관없이 많은 금액을 모기업으로부터 기부받아 운영하는 형태이므로 고액 출연자, 특수관계인 등과 관련된 대기업의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이용되는지 아닌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기업재단의 경우 자산금액과 상관없이 외부 회계감사를 받게 해 어떤 돈이 기부에 쓰였고 그 돈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한층 투명하게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기업재단은 투명성과 책임성의 의무를 높여야 하며 정부도 그에 맞는 책임을 지울 수 있도록 사후관리를 강화하고 기업재단의 운영 현황을 볼 수 있는 공시 양식 개선 등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지금처럼 기업재단에 대한 정부의 규제 중심 정책이 급격히 추진된다면 기업재단의 적극적인 공익활동은 물론 기업과 기업가(부자)들의 기부 의지를 저해하게 될 것이다. 투명성과 규제, 자율성, 이 세 가지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맞추는 일은 우리 사회를 위해 앞으로 풀어야 할 어려운 과제일 것이다. 현명한 기업재단(설립자, 경영진)이라면 자신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지금부터라도 법을 지키면서 설립 취지에 맞는 공익사업을 적극적으로 수행해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대기업 공익법인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신동아 2018년 10월 호

| 박두준 (재)한국가이드스타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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