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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 회고록

‘진보- 보수 시행착오’11년 인권위가 가야 할 길

‘이카루스의 날개로 날다’ - 마지막회

  • 안경환│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ahnkw@snu.ac.kr

‘진보- 보수 시행착오’11년 인권위가 가야 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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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권보호는 ‘다수주의’의 한계 극복하려는 시도
  • ● 대법원장의 인권위원 추천권 없애야 하는 까닭
  • ● 의회가 주도하고 시민이 감시하는 투명한 인권위 구성
  • ● 아름다운 문화 국가를 위한 인권교육 필요성
‘진보- 보수 시행착오’11년 인권위가 가야 할 길

2001년 5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법조계 종교계 시민단체 등 인권 분야 국민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인권위원회법 공포문에 서명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 당시 인권위 설치를 공약한 뒤 이를 지켰다.

11월이면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 11주년을 맞는다. 지난해의 10주년 행사는 더없이 초라했다는 평가였다. 인권위가 주관하는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일 기념행사 역시 시민사회는 물론 정부 측에서도 외면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올해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지난 7월 열린 현병철 인권위원장의 연임을 위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최종 결과와 무관하게 인권위의 현주소를 국민에게 알리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추락한 인권위의 위상이 곧 대한민국의 인권 지표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국제인권사회는 그렇게 평가한다. 어쨌든 이명박 정부는 적어도 인권의 관점에서는 실패한 정권이라는 낙인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정권 따라 인권의 기상도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새로 들어설 정권 아래 인권위는 어떤 모습이 될까? 미리 가늠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역사는 결코 거꾸로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진리다.

인권은 어쩌면 그 성격이 예술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인권도 예술처럼 소수자의 입장에서 다수가 지배하는 세상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소수의 신념이 다수의 윤리로 변하는 것을 우리는 역사의 발전이라고 한다. 1970년대에 널리 인용되던 ‘소설은 왜 읽는가’라는 김현의 유명한 에세이가 있다. “이 세상이 과연 살 만한 세상인가, 강한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 우리는 소설을 읽는다”고 그는 자문자답했다. 예술의 역할은 인간성의 이름으로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데 있다. 1970년대 미국 법학계에 강하게 일었던 ‘법과 문학’ 운동도 당시를 지배하던 ‘법경제학’에 대한 지적 항거의 성격이 강했다.

인권은 다수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다. 언제나 현실은 규범을 앞선다. 인권의 의미를 법전 속에서나 구하는 사람은 살아 움직이는 현실에 둔감하기 십상이다. 아직도 판·검사는 자신들이 인권의 수호자임을 자처한다. 그러나 많은 국민은 이들을 오히려 인권의 탄압자로 부르기를 즐긴다.

우리 사회에서 인권은 전통적으로 ‘좌파’ 세력의 정치철학과 담론을 대변한다는 정서가 있다. 이 지면을 통해 필자는 이러한 고정관념을 불식시키려 노력했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인권은 좌도 우도 아니고, 진보도 보수도 아니며, 인류 보편의 상식이다. ‘좌파’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믿을 만한 정의도 없다. 만약 소수자의 입장에 서서 주류 사회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좌파라면 예술가나 지식인은 응당 좌파라야만 한다. 인권위는 좌파정부의 유산이 아니다. 2001년 김대중 대통령 재임 중에 탄생했지만 만약 1997년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가 당선됐더라도 마찬가지로 탄생했을 기관이다. 1993년 유엔이 총회 의결로 나라마다 설립을 권고한 바와 같이, 당시의 세계적인 추세였기 때문이다.

‘우파’라고 해서 인권을 경시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인권을 좌파의 이데올로기라고 매도하는 우파 쪽에서는 스스로의 인권 항목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과도한 인권은 사회 발전에 부담이 된다” 등의 소극적·방어적인 담론밖에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여태껏 시대에 끌려다닌 것이다. 한때는 복지도 좌파의 선동적인 구호라며 냉소하던 한나라당이 ‘새누리’로 당의 간판을 바꿔 달면서 입장을 달리해 복지를 시대의 화두로 수용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인권위의 헌법기관화

세속의 편리한 평가대로라면 나는 3년 남짓한 재임 기간 ‘좌파’ 정부와 ‘우파’ 정부에 나누어 근무했다. 그래서 인권과 인권위에 대한 두 정부의 대조되는 태도를 몸으로 느꼈다. 이 특별한 체험을 국민과 나누겠다는 생각으로 회고록 집필을 시작했다. 이제 글을 마감하면서 국민에게 제언을 드리고자 한다. 지난 10년간의 성과와 시행착오를 성찰해 새로운 10년의 청사진과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고. 대한민국 인권문제는 인권위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누구도 인권 탄압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인권위에 어떤 역할을 맡길 것인지에 대한 국민적인 합의가 절실한 시점이다.

첫째, 무엇보다 먼저 인권위가 어떻게 독립기관의 지위를 유지해야 하는가, 이 근본적인 문제부터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만약 국제적인 기준이 요구하는 ‘독립기관으로서의 인권위’가 우리 형편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문제는 간단하다. 이명박 정부의 기본 입장이기도 했는데, 인권위법을 개정해 독립성을 부정하면 된다. 국무총리 산하에 설치된 국민권익위원회처럼. 그러나 그것은 국제 사회의 기대와 지난 10여 년간 쌓아온 인권위의 업적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 새 정부와 국민이 분명히 알고 결정할 일이다.

당초 인권위는 국가에 대해 ‘쓴 소리’를 하는 기관으로 탄생했다. 그래서 기존의 정부권력구조 밖에 설치한 것이다. 설립 당시 우리 헌법에 이를 직접 반영할 기회가 없었지만, 헌법 개정이 용이한 나라에서는 인권위를 헌법기관으로 설치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헌법 개정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초점은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중임 또는 권력분점형 대통령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헌 논의에 앞서 보다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보자. 왜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가? 현재의 대통령제로는 국정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 아닌가? 그러면 국정의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제대로 섬기는 데, 다시 말하면 국민의 기본권을 효과적으로 보장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닌가? 이렇듯 자명한 원리가 우리 헌법의 근간이 되는 조항에 천명돼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헌법 제 10조)

인권위를 헌법기관으로 승격시키고, ‘인권기본법’을 제정해 자유로운 인권국가의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 이러한 인식의 바탕 위에 현재의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대한 대대적인 손질도 필요하다. 인권위가 스스로 규칙을 제정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조직 및 인사에 관한 사항을 위원회 규칙으로 명시하고 위원장에게 소속 직원 임면권을 부여해야 한다. 예산 편성에 최대한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예산을 삭감할 경우에도 의견제출권을 보장해야 한다. 인권위의 기능을 키워주면 정부가 국제적인 신인도를 끌어올리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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