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입시 새로운 키워드, 다면인적성면접(MMI)
상위 0.1%끼리의 싸움, 승부 가르는 건 인성
2분 준비 8분 면접, 중도 포기자 나올 만큼 강하게 압박
“환자와 소통 및 공감할 수 있는 의사 양성 목표”
2019년 1월 서울 종로학원 강남본원에서 열린 ‘자연계 최상위권 입시 및 재수전략 설명회’ 참석자들이 안내 자료를 읽고 있다. [최혁중 동아일보 기자]
최근 준비된 수험생이 경쟁하는 의대 입시에서 당락을 가르는 변수로 다면인적성면접(MMI·Multi Mini Interview)이 부상하고 있다. 이승희 서울대 의대 교수는 “서울대가 2013학년도 의예과 입시에 MMI를 도입할 때만 해도 ‘면접 영향력이 얼마나 되겠나. 결국은 성적 좋은 지원자가 합격하겠지’ 하는 인식이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MMI를 잘 못 보면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의대 입시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게 상식이 됐다”고 소개했다.
MMI는 소요시간 10분 안팎의 짧은 인터뷰를 연쇄적으로 실시해 지원자의 인성 및 적성을 다면적으로 살펴보는 면접이다. 2001년 캐나다 맥마스터의대에서 처음 시작한 후 세계로 확산해 현재는 북미, 유럽, 호주 등 여러 지역 의대 입시에서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대를 비롯해 성균관대, 아주대, 울산대, 인제대, 한림대 등 상당수 의대가 수시 또는 정시 선발에서 MMI를 실시한다. 치의대와 수의대 가운데도 MMI 결과를 입시에 반영하는 학교가 있다.
형식, 내용 모두 차별화된 면접
울산대 의대가 진행한 다면인적성면접 현장 모습(왼쪽). 울산의대 교수들이 다면인적성면접 준비를 위한 워크숍을 하고 있다. [울산대 의대 제공]
형식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MMI는 일반 면접과 차이가 있다. 수험생은 각 방에서 다양한 과제를 수행한다. 예를 들어 영국 한 의대 MMI에서는 ‘신발끈 묶는 방법을 손동작을 사용하지 말고 말로만 설명해 보라’는 문제가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윷놀이 방법을 설명하라’는 문제를 낸 대학이 있다. 이때 ‘7세 아이를 대상으로 하라’ 또는 ‘귀가 잘 안 들리는 80세 할머니를 대상으로 하라’ 같이 단서를 붙이기도 한다. 학생이 지시문을 받고 2분간 준비한 뒤 면접관 앞에서 설명을 시작하면 다양한 추가 질문이 쏟아진다.
“면접관이 ‘형. 나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하면서 아이처럼 칭얼대거나 ‘젊은이. 나 잘 안 들려. 또박또박 큰 소리로 설명해야지’ 하고 노인 행세를 하는 식이다. 그때 지원자의 반응과 태도가 모두 평가 대상이 된다.”
한 의대 교수의 귀띔이다. MMI를 실시하는 대학 교수들에 따르면 이런 면접은 학생들의 ‘진짜 인성’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된다. ‘윷놀이 문제’를 낸 대학에서는 확실한 합격 안정권에 속하던 수험생이 면접 도중 주사위를 집어던지고 나가버려 최종 탈락했다는 후문이다. 의대 교수들은 “MMI 도입 후 전국 각 대학에서 수능 만점자, 서류전형 수석 등이 최종 불합격하는 사례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당신이 꽃이라면?
MMI의 특징은 앞 사례처럼 기상천외한 면접을 끝낸 뒤 바로 다음 방에 들어가 완전히 새로운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내 한 의대는 MMI 면접장에서 지원자에게 아래와 같은 지문을 줬다.“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버린다.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져 버린다.
매화는 피어서 군집을 이룬다. 꽃 핀 매화숲은 구름처럼 보인다. 매화는 질 때, 꽃송이가 떨어지지 않고 꽃잎 한 개 한 개가 낱낱이 바람에 날려 산화한다. 매화는 바람에 불려가서 소명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다.
목련은 등불을 켜듯이 피어난다. 꽃잎을 아직 오므리고 있을 때가 목련의 절정이다. 목련은 자의식에 가득 차 있다. 그 꽃은 존재의 중량감을 과시하면서 한사코 하늘을 향해 봉오리를 치켜 올린다. 목련꽃의 죽음은 느리고도 무겁다. 누렇게 말라비틀어진 꽃잎은 누더기가 되어 나뭇가지에서 너덜거리다가 바람에 날려 땅바닥에 떨어진다.”
김훈 수필 ‘자전거 여행’의 한 대목이다. 2분간 이 글을 읽은 뒤 방에 들어간 수험생은 면접관으로부터 △제시문에 나온 꽃을 인간 삶에 비유해 보라 △제시문에 나온 꽃 중 하나를 골라 관련 있는 역사적 인물을 소개해 보라 △역사적 인물을 한 명 더 말해 보라 △지원자가 바라는 삶의 가치와 부합하는 꽃은 무엇인가. 제시문에 나오지 않은 꽃이어도 무방하다 △지원자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위해 고치고 싶은 점이 있는가 등의 질문을 받았다. 그렇게 8분에 걸쳐 면접을 치른 뒤 다시 방을 옮겨 다른 과제에 돌입한다.
영국 한 의대는 면접실에 배우를 두고 MMI를 진행했다. 배우는 지원자 이웃에 사는 노인 역을 연기한다. 지원자가 실수로 그의 고양이를 차로 쳤다고 가정하고, 노인에게 5분에 걸쳐 나쁜 소식을 전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정답 없는 질문
인제대 의대 학생들의 수업 모습. 최근 각 의대는 교육과정에 토론 및 실습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인제대 의대 제공]
“당신은 대학병원의 수술 보조를 하고 있는 OO과 전공의(레지던트) 1년차이다. 환자 바로 옆에 간호사와 집도의(과장)가 함께 있는 현장에서, 과장이 수술 과정에 명확한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을 지금 보았다. 당신이 보기에, 이 실수를 고치지 않으면 나중에 부작용이 있을 것 같았다. 과장은 매우 권위적인 성격이면서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이 무척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신은 이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캐나다 한 의대 면접에는 이런 질문이 나왔다.
“당신은 얼마 전 노숙자 쉼터에서 자원봉사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원봉사하는 날 알코올성 간질환으로 죽어가는 42세 중년 여성을 만났다. 평생 동안 마셔온 술로 인해 피부와 눈이 매우 노란색을 띠었으며 움직일 때마다 심해지는 만성통증을 호소했다. 그는 이틀간 술을 마시지 않았고 죽기 전에 만취하고 싶지만 사물함에 있는 마지막 남은 보드카병을 가져올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신 역시 쉼터에서 술이 허용되지 않음을 알고 있다. 중년 여성 침대 3개 건너 옆에는 또 다른 여성이 당신 반응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다. 당신은 뭐라고 이야기하거나 행동하겠는가. 결정에 대한 이유도 함께 설명하시오.”
이런 문제를 받아 든 수험생을 고민스럽게 만드는 건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면접관이 무엇을 평가하려 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도 수험생을 힘들게 만든다. 이승희 서울대 의대 교수는 이에 대해 “일반적 면접에서는 피면접자를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MMI는 다르다. 각 방에서 철저하게 한 가지 특성만 본다”고 설명했다.
“면접을 구성할 때부터 ‘첫 번째 방에서는 소통 능력, 두 번째 방에서는 윤리성, 세 번째 방에서는 공감능력을 평가한다’ 식으로 미리 정해 둔다. 그러려고 방을 나누는 것이다. 지원자의 다양한 면을 한꺼번에 보려 하면 ‘쟤, 왠지 마음에 드네’ 같은 인상 평가로 흐를 수 있다. MMI는 면접관의 직감이 점수에 개입되는 걸 철저히 통제한다. 소통 능력을 평가하는 방 면접관은 수험생 답이 윤리적인지, 공감을 잘 표현하는지 등에 대해 아예 판단하지 않는다. 오로지 소통 능력만 보고 점수를 매기도록 훈련한다. 그렇게 나온 각각의 결과를 종합해 지원자를 다면적으로 평가하는 게 MMI의 특징이다.”
윤리, 소통, 공감
MMI 문제 출제자와 면접관은 대개 해당 의대 교수다. 창의적인 문제를 만들고, 평가까지 진행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매년 더 많은 의대가 입시에 MMI를 도입하는 추세다. 교수들은 그 이유를 “의대에 오면 안 되는 지원자를 걸러내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이윤선 울산대 의대 교수 얘기다.“의사는 생명을 다룬다는 점에서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 또 환자와 잘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 스스로 성찰할 줄 모르고, 다른 사람과 소통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사람이 의사가 되면 안 된다. MMI를 하면 최소한 이런 지원자가 의대에 들어오는 걸 막을 수 있다.”
윤보영 인제대 의대 교수도 “내가 아플 때 어떤 의사한테 진료받고 싶은지 생각해 보면 ‘좋은 의사’의 모습이 그려질 것”이라며 “바로 그런 사람을 선발, 육성하고자 의대 입시와 교육과정을 바꿔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사교육 시장이 이런 ‘블루 오션’을 지나칠 리 없다. 서울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의대 MMI 대비반’을 운영하는 업체가 속속 나타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MMI는 단기간에 면접 기술을 익혀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든 시험”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의대 입시 담당자는 “교수들이 창의적인 문제를 만들고자 몇 달에 걸쳐 준비하고, 의예과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시뮬레이션 면접도 한다. MMI에 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꾸준히 책을 읽고 사고 연습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면서 의사직(職)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는 상황이다. MMI가 사명감과 윤리의식을 가진 의사 양성에 기여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