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SK하이닉스 ‘서버 D램’ 업황 수혜
“반도체붐이 한국 경제 취약성 은폐”
두 기업 시총 합계 352조 원, 의존 심화 방증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딜라이트룸에 전시된 반도체 웨이퍼와 반도체 관련 전시를 살펴보는 관람객. [뉴스1]
반도체 전문 애널리스트 등 증권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부문에서 4조 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올린 것으로 추산한다. SK하이닉스는 잠정 실적을 발표하지 않는다. 대신 4월 23일 기업설명회(IR)를 열고 1분기 실적을 공개한다.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직전 분기 대비 급증한 영업이익을 기록할 전망이다.
수출 절벽 방지턱 노릇한 서버 D램
반도체는 메모리와 비메모리(시스템)로 나뉜다. 메모리 반도체는 정보를 읽고 수정할 수 있는 램(RAM)과 정보를 읽을 수만 있는 롬(ROM)이 있다. 램(RAM)은 정보 저장 방식에 따라 D램과 S램으로 나뉜다. 롬(ROM)의 일종인 플래시 메모리(Flash Memory)의 경우 칩 내부의 전자회로 형태에 따라 낸드플래시(Nand Flash)와 노어플래시(Nor Flash)로 갈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시장에서 강세인 제품은 D램과 낸드플래시다.낸드플래시는 IT(정보기술) 기기에서 기억을 책임진다. 낸드플래시에 저장된 정보는 전원이 꺼져도 최장 10년을 버틴다. 다만 낸드플래시는 데이터를 처리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 틈새를 메워주는 제품이 D램이다. D램은 데이터를 빨리 쓰고 지우는 역할을 한다. 사양이 높은 D램일수록 처리 속도가 빠르고, 소비전력도 낮다.
2007년 애플 아이폰 출시 이후 D램 수요를 떠받쳐온 제품은 스마트폰이었다. 스마트폰 덕분에 삼성전자도 돈을 적잖이 벌었다. 스마트폰 시장 성장세가 둔화하자 모바일 D램의 수요가 쪼그라들었다. 그사이 치고 나온 제품이 서버 D램이다.
넷플릭스 등 OTT(Over The Top·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통해 고용량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용자가 늘었다. 회사에서건 사적으로건 원격으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클라우드 서비스도 확산됐다. 이에 데이터 트래픽이 급증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 글로벌 IT기업들이 세계 각국에 신규 데이터센터를 짓는 데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자연히 서버 D램 수요도 커졌다. 코로나19는 서버 D램 수요를 한차례 더 자극했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 온라인 교육, 동영상 서비스 등 수요가 증가하면서 데이터센터 투자가 늘고 있다”며 “코로나 영향이 본격화하는 2분기에 데이터센터 서버 수요가 많아져 오히려 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률이 높아지고, 삼성전자 주가 흐름이 다른 업체와 비교해 견조(堅調)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버 D램은 수출 절벽의 방지턱 노릇을 했다. 관세청이 발표한 4월 1~10일 수출입 동향을 보면, 이 기간 수출액은 122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6%(28억 달러) 줄었다. 석유제품(-47.7%), 무선통신기기(-23.1%), 자동차부품(-31.8%), 승용차(-7.1%) 등 대부분 수출 품목 성적표가 부진했다. 반도체는 –1.5%를 기록했다. 모바일 D램 수요가 급감한 점을 고려하면 선방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앞서 2~3월의 경우, 반도체의 수출액은 전년 동기와 비교해 각각 +8.8%, -2.7%를 기록한 바 있다.
‘예정된 위기’와 ‘반도체붐’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10월 4일 충북 청주 테크노폴리스에서 열린 SK하이닉스 M15 공장 준공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반도체업계의 한 관계자는 “서버 D램 수요가 앞으로도 폭증하리라는 낙관론은 금물”이라면서 “서버가 필요한 상당수 기업이 광고에서 수익을 얻는다. 실물경제 침체가 이어지면 광고시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면 아무리 트래픽이 몰려도 기업 처지에서는 데이터센터를 짓는 데 부담을 느낄 것이다”라고 말했다.
메모리 반도체 수요 감소는 한국 경제에 ‘예정된 위기’다. 반도체 공백을 메울 성장엔진이 전무한 탓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 12월,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반도체붐이 한국 경제의 취약성을 은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도체 산업의 경우 자동화기기를 중심으로 생산 작업이 이뤄지기 때문에 고용 창출 효과가 크지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주요 경제부처는 코로나19 확산이 코앞이던 2월 17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2020년 업무계획을 보고하면서 ‘포스트 반도체’라는 낱말을 꺼내 들었다. 산업부는 “과감한 도전과 혁신을 통해 신산업을 ‘포스트 반도체’로 육성하겠다”며 미래차와 시스템반도체, 바이오헬스, 로봇 등을 언급했다. 바꿔 말하면 문재인 정부 임기 3년여 동안 혁신성장에서 별 성과를 못 냈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이 와중에 코로나19로 소비심리가 급속도로 위축됐다. 항공, 여행, 유통, 관광 분야에서 고용불안 위험도가 높아지고 있다. 4월 8일 한국경제연구원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3%로 대폭 낮춰 잡았다. 유례없는 위기 국면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 합계(4월 14일 기준)는 352조 원에 달했다. 이는 두 기업의 경쟁력을 반영하는 숫자기도 하지만, 믿을 건 반도체뿐이라는 우려 심리의 방증이다. 서버 D램 호황이 한국 경제의 약점을 가리는, 이른바 ‘반도체 착시’가 코로나19 국면에서도 나타난 셈이다.
메모리 반도체 기업의 선도적 지위
반도체 시장에 위기가 와도 삼성전자는 고비를 순탄하게 넘길 공산이 크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4월 8일 낸 ‘코로나19 환경 하에서 한국 기업 및 금융기관 신용도 추이 및 전망’ 보고서를 통해 “(삼성전자는) 80조 원 이상의 순현금 포지션을 감안할 때 등급 하향 압력은 높지 않다”면서 “메모리 반도체 기업의 선도적 시장 지위와 다각화된 사업 포트폴리오로 코로나19 여파를 잘 극복해 나갈 것”이라고 평했다.난세일수록 기초 체력이 튼튼해야 한다. S&P 논평에서 삼성전자를 한국 정부로, 순현금을 재정으로, 다각화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신성장동력 찾기로 치환하면 문제가 무엇인지 단번에 드러난다. 자칫 삼성전자는 버티고 한국 경제는 고꾸라질 수 있다. ‘포스트 반도체’는 서두를수록 좋다. 지금도 늦었다는 걸 코로나19가 일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