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 취소 소식 언론 통해 접해
총선에 임한 통합당, 청년 이슈에 관심도 없고, 잘 몰라
공천 취소 후 연락 한번 없다가 ‘참패 분석 토론회 나오라’ 해
청년을 정치 파트너 아닌 ‘예스맨’ 정도로 여겨
밥 사주며 정치활동 독려하는 선배 정치인 전혀 없어
이윤정 전 광명시의원. [박해윤 기자]
경희대 단과대학 학생회장 출신인 그는 2013년 경기 광명을 새누리당(미래통합당 전신) 차세대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통합당과 인연을 맺었다. 그 뒤 제7대 광명시의원, 자유한국당 부대변인, 여의도연구원 퓨처포럼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다.
이 전 시의원은 통합당의 4·15 총선 참패 원인을 두고 “2030세대 전략이 4050세대 못지않게 중요했는데, 정부‧여당에 불만을 가진 청년층 이슈를 읽지 못한 게 뼈아픈 실책”이라고 꼬집었다.
정부·여당 불만인 청년세대 이슈 못 읽어
- 총선에서 통합당이 놓친 청년층 이슈가 무엇인가.“대학이나 대학원에 재학 중인 20대에게는 ‘온라인 개강’이 이슈였다. 학생들 사이에서 대학 측에 등록금 일부를 환불해달라고 요청하는 움직임이 일었는데 당에선 이를 감지하지 못했다.”
이 대목에서 이 전 시의원은 20대 사이에 확산된 ‘비혼주의’와 30대의 관심사인 ‘내 집 마련’을 소재로 꺼내며 통합당의 실책을 꼬집었다.
“비혼주의자를 표방하는 일부 20대는 국민연금을 ‘늙어서 못 받을 돈’으로 인식하며 정부에 불만을 토로한다. 정치권이 무책임하게 방치하고 있는 국민연금 개혁을 짚고 넘어갔더라면, 이들이 통합당에 표를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30대는 내 집 마련을 위해 청약시장을 노리지만 청약 경쟁률이 치솟으면서 웬만한 가점으로는 당첨될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 처해있다. 더구나 자금 동원 능력이 떨어져 대출에 의존해야 하는데 금융 규제로 대출이 막혀 있다. ‘이번 생에 내 집 마련은 불가능하다’고 하는 30대가 공감할 수 있는 공약과 메시지를 우리 당이 내놓지 못했다.”
- 통합당 내부에서 총선 참패에 따른 쇄신 방안으로 ‘청년 리더십’이 제기되고 있다.
“청년층이 목소리를 내도 당 차원에서 이들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 될 가능성이 크다. 내가 경험한 정당 문화에 비춰볼 때 그렇다.”
- 지난 8년간 경험한 통합당의 정당 문화는 어땠나.
“청년 정치인을 정치 파트너가 아닌 말 잘 듣는 ‘예스맨’ 정도로 여긴다는 인상을 받았다. 내가 입당하던 2013년 당시에는 당내 정치인의 절대 다수가 50~60대, 판·검사나 변호사 출신이었다. 20~30대 청년 정치인은 한두 명에 불과했다. 당내 의사결정 구조가 수직적인 탓에 패기 넘치는 정치 신인이 어떤 주제에 관해 토론하자고 요청하면 당에서 수용해주지 않는다. 2014년 광명시의원에 당선돼 내 신분이 달라지자 그제야 일부 정치인이 내 의견을 물어봐주더라.”
“2시간 세미나에 인사말만 30~40분”
- 청년 정치인을 보는 선배 정치인의 시선이 어떤가.“선배 정치인이 후배 정치인을 격려하고 이끌어주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 않다. 일례로 8년간 정당 활동하면서 선배 정치인이 내게 밥 사주며 정치 활동을 독려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일부 선배 정치인은 청년 정치인을 견제하고 괴롭히기도 한다. 2017년 청년 문제 해결을 위해 광명시 청년 기본 조례안을 발의했는데, 다른 정당 소속 의원이 나와 비슷한 내용의 조례를 내놨다. 조례안 의결 과정에서 나와 같은 당 의원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의결을 번복하는 걸 보고 ‘구태 정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당시 내가 당 부대변인을 맡아 지역구 활동과 중앙 활동을 병행했는데, 나를 견제하려 조례 의결을 번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역 활동과 당 중앙 활동을 같이하던 내 또래 정치인도 선배 정치인으로부터 ‘피 말리는 괴롭힘을 당했다’고 하더라.”
- 통합당의 회의 분위기는 어떤가.
“‘백 투 더 베이직(Back to the basic)’, 기본으로 돌아가자고 말하고 싶다. 지나치게 의전(儀典)에 치중하는 회의 형식에 문제가 있다. 2시간 정도 예정된 세미나를 개최하는 경우, 참석한 의원들을 일일이 소개하고 그들이 돌아가며 인사말을 하는데 30~40분가량 소요된다. 형식에 치중하느라 발제와 토론 같은 본질을 놓치고 만다. 토론에서 나온 아이디어나 의견을 모아 정리하고 보완책을 찾은 뒤 후속 세미나를 열어 공부해야 하는데 그런 일에 소홀한 것도 문제다.”
- 정치권 일각에선 청년 정치인을 두고 “콘텐츠가 부족하다”란 비판적 평가가 나온다.
“내 경우 대학원(홍익대 경영대학원)에서 문화예술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시의원 임기 중엔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전문 영역을 구축해왔다. 하지만 지난 8년간 내게 ‘너의 스페셜리스트가 뭐냐’ 묻는 선배 정치인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당이 청년 정치인에게 청년 세대와 관련된 이슈 파이팅을 해보라고 요구하면서 정작 청년 정치인의 전문 영역에 대해선 관심 갖지 않는 모습이 너무 실망스럽다. 애초에 ‘청년 정치인은 콘텐츠가 부족하다’란 선입견을 갖고 비판하면 청년 정치인이 뭘 할 수 있겠는가.”
“토사구팽 당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공천 취소와 관련해 황교안 전 통합당 대표나 당에서 연락을 받았나.“(한숨을 내쉬며) 못 받았다. 당사자가 자기 공천이 취소된 사실을 언론 보도를 통해 알게 됐다는 점도 충격적이다. 당의 규칙을 준수하면 공천권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당이 스스로 만든 규칙을 어기며 공천 결과를 바꿨다. 정당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행태에 크게 좌절하고 기성 정치의 높은 문턱에 절망했다. ‘그 일’ 이후 내가 당에서 공식적으로 연락 받은 건 4·15 총선 패인을 분석하는 토론회에 토론자로 나와 달라는 요청뿐이었다. 좀 황당했지만 ‘토론자로 나가겠다’고 했다.”
- 이유가 뭔가.
“크게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에 머무르며 탄핵 정국을 거치는 등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럼에도 당을 떠나지 않은 건 보수 정당이 지향하는 방향에 깊이 공감했고, 건강한 보수 정치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기여하고 싶어서였다.”
이 전 시의원은 “당으로부터 토사구팽 당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정치적 상처를 받은 건 사실이기에 앞으로 이를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는 내 몫”이라며 덤덤하게 말했다. 이어 “기회가 주어진다면 건강한 인재 인큐배이팅이나 당헌 및 당규 재정립 등 정당 정치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