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머리에 앉은 최씨는 시화호에서 자신이 찍은 희귀조와 야생동물, 식물들을 소개하겠다며 비디오테이프를 한참이나 돌린다. 그러다가 그것으로 부족했던지 갑자기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난다. 함께 시화호에 나가보자는 것이다. 작달막한 체구, 재빠른 몸 동작, 거침없는 말투가 영락없는 ‘형사 콜롬보’다.
“직접 가보고 기사를 써야 설득력이 있지요. 요즘 기자들은 도대체가 현장에 안 가고도 간 것처럼 막 쓰니까 죽은 기사가 되잖아요. 옛날 기자들은 안 그랬다는데….”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사는 고임금 기자들이라 ‘귀족화’했다는 핀잔이다. 실상은 접해보지도 않은 채 책상에 앉아 쓰는 관념적인 기사는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것. 최씨의 다그침에 따라 나선 필자와 사진기자는 점퍼와 사진 장비, 텐트와 식기 등이 널려 있는 지프 뒷좌석을 치우고 겨우 한구석에 걸터앉아 시화간척지 현장으로 향했다.
먼저 도착한 갈대습지공원은 안산시 본오동과 사동, 화성시 비봉면에 걸쳐 있다. 말이 갈대밭이지 한마디로 광활한 평원이다. 다양한 생태 양식이 존재하는 습지는 주변 생태계는 물론 철새의 이동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하나의 소우주. 특히 시화호 일대 습지는 연안 생태계에 직접 영향을 주는 중요한 지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반월천, 동화천, 삼화천 등 인근 지천에서 받아들이는 물이 갈대습지를 거치면서 깨끗하게 정화되어 시화호에 유입되고 있는 까닭이다. 일종의 필터인 셈이다. 공원 한켠에 위치한 전망대 옆 개천에는 깨끗하게 정화된 물이 샘물로 고였다가 흘러가는데, 겨울철에는 수질이 식수 수준에 이른다고 한다.
전망대 1층 전시관에는 박제된 고라니 너구리 산토끼 족제비 날다람쥐 등 갈대밭에서 야생하는 동물과, 파랑새 기러기 넙적부리오리 흰뺨검둥오리 청딱다구리 꿩 등 텃새와 철새 수십 마리가 각기 날개를 파닥거리는 형세로 박제, 전시돼 있다. 모두 갈대습지와 공룡알 화석지에서 포획했거나 주민들이 덫을 놓아 잡은 것을 수거한 것들이다.
“시화호 갈대습지공원은 수자원공사가 270억원을 들여 하수정화와 자연학습장 기능을 하도록 인공적으로 만든 곳입니다. 그러나 갈대만 식재하다 보니 또 문제가 생기는군요. 겨울이 되면 마른 갈대가 오염원이 되는 거지요.
당초에 제가 갈대만 식재하는 것에 반대한 것도 그 때문이었어요. 인간도 편식을 하면 안 되듯 이곳 습지도 갈대만 무성하면 공해가 되기 십상이지요. 아닌게아니라 겨울철이 되면 마른 갈대가 엄청난 퇴비가 되어 쌓입니다.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수생식물도 길러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고요.”
그러나 그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방문객의 눈에 비친 광활한 갈대밭은 아름답기만 했다. 창공을 베고 지나가는 맵고 차가운 바람을 받아 서걱거리는 갈대밭에 서 있으니 저절로 겨울 우수와 시적 감흥이 솟아나는 듯했다.
가난한 소년의 친구가 되어준 새
최씨는 이곳 습지와 공룡알 화석지 지킴이로 지난해 말 환경기자클럽이 주는 ‘올해의 환경인상’을 받았다. 그는 시상식에서 “많은 사람들이 시화호를 살릴 수 없다고 했지만 되살아나고 있다. 인간이 망쳤지만 역시 인간의 노력과 애정이 쏟아지니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실로 놀라운 교훈이다”고 소감을 말했다.
-왜 하필이면 시화호 지킴이로 나섰습니까.
“이 문제를 얘기하려면 어린 시절로 돌아가야겠네요.”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