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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성 기자의 스포츠 別曲

장기, 바둑 그리고 쿠엘류감독

  • 글: 김화성 mars@donga.com

장기, 바둑 그리고 쿠엘류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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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바둑 장기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펠릭스 가타리와 함께 쓴 책 ‘천 개의 고원’에서 ‘바둑과 장기’의 본질에 대해 명쾌하게 갈파한다.

“장기의 말들은 모두 코드화되어 있다. 즉 행마나 포석, 그리고 말끼리의 적대관계를 규정하는 내적 본성 또는 내적 특성을 구비하고 있다. 각각의 내재적 성질을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마(馬)는 마(馬)이고 졸(卒)은 졸(卒)이며 포(包)는 포(包)고 차(車)는 차(車)다. 말 하나하나는 소위 상대적 권력을 부여 받은 언표의 주체와 비슷하며 이러한 권력들은 언표 행위의 주체, 즉 장기를 두는 사람 또는 놀이의 내부성 형식 속에서 조합된다.

이에 비해 바둑은 작은 낟알 아니면 알약이라고 할까, 아무튼 단순한 산술단위에 지나지 않으며 익명 또는 집합적인 또는 3인칭 기능밖에 하지 못한다. ‘그것’은 오로지 이리저리 움직일 뿐이며 그것이 한 명의 남자나 여자 또는 한 마리의 벼룩이나 코끼리라도 상관이 없다. 바둑알들은 주체화되어 있지 않은 기계적 배치물의 요소들로서 내적 특성 같은 것은 전혀 지니고 있지 않으며 오직 상황적 특성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말끼리의 관계도 장기와 바둑은 완전히 다르다. 장기의 말들은 내부성의 환경 속에서 자기 진영의 말들끼리 또는 상대방 진영의 말들과 일대일 대응관계를 맺는다. 구조적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바둑알은 오직 외부성의 환경만을, 즉 일종의 성운이나 성좌를 가진 외부적인 관계만을 구성하며 이들 관계들에 따라 집을 짓거나 포위하거나 깨어버리는 등 투입 또는 배치의 기능을 수행한다. 바둑은 단 한 알로도 공시적으로 하나의 성좌 전체를 무효로 만들 수 있는 반면 장기의 말은 그렇게 할 수 없다(또는 통시적으로만 그렇게 할 수 있다).



장기는 전쟁이기는 하나 제도화되고 규칙화되어 있는 전쟁으로서 전선과 후방 그리고 다양한 전투를 포함해 코드화되어 있다. 이에 비해 전선 없는 전쟁, 충돌도 후방도 없으며 심지어 극단적인 경우 전투마저 없는 전쟁, 바로 이것이 바둑의 본질이다.”

그렇다. 장기는 그 조직이 매우 수직적이다. 그러나 바둑은 수평조직(연대)이다. 장기에서 장기알은 각자 자기 맡은 바 역할에 따라 임금을 위해 장렬히 몸을 던지는 게 최고 미덕이다. 따라서 장기조직은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장기는 임금(宮)이 있는 곳이 최전방이다. 임금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은 그곳이 어디든 후방이다. 모든 물자와 병사는 모두 최전방에 집중된다. 축구나 농구에서 골대에 공과 선수들이 몰리는 것과 똑같다. 명령도 위에서 아래로 물흐르듯이 흐른다. 결국 전투의 승패는 지휘관의 지휘력이 좌우한다. 지휘관이 아둔하면 그 전투는 하나마나다. 따라서 축구나 농구경기에서 선수들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자기 맡은 바 임무다. 농구에서 강동희 김승현 등 포인트가드는 우선 게임 리드에 충실해야 하고 센터는 골밑부터 장악해야 한다.

그런 다음 상대 공격에 쓰러진 전우의 빈자리를 메워야 한다. 센터 서장훈이 외곽에 나와서 슛만 해댄다면 골밑은 누가 지킬 것인가. 이런 면에서 히딩크 축구는 각 ‘조직원의 역할’을 최대한 발휘하게 한 대표적인 예다.

제도화·규칙화된 히딩크 축구

한국올림픽축구대표팀 김호곤 감독은 말한다.

“월드컵을 통해 히딩크 감독이 한국 축구가 지향해야 할 모델을 정립했다. 히딩크의 축구는 한마디로 ‘자기 위치를 지키면서 힘을 비축했다가 필요할 때 폭발시키는 축구’다. 예전에는 무턱대고 많이 뛰기만 해 후반 들어서는 제 풀에 지쳐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떨어지곤 했는데 지금은 어느 팀과 상대해도 강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90분 내내 힘 있는 축구를 하고 있다. 그 힘의 원천은 스피드와 개인기다.”

히딩크 축구는 한마디로 ‘제도화’되고 ‘규칙화’된 축구다. 선수들은 자기 포지션에 따라 일정하게 ‘코드화’되어 있다. 장기판의 장기알처럼 일정한 임무가 부여돼 있다. 독일 같은 촘촘한 조직력 축구를 지향한다. 따라서 모든 일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땐 아무 문제가 없다. 문제는 공격을 하다가 볼을 뺏겨 순간적으로 역습을 당할 때 조직력이 와르르 무너진다는 것이다. 상(象)이 있어야 할 자리에 마(馬)가 있게 됐을 때 그 마(馬)는 잽싸게 변신해 상(象)의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그걸 할 줄 모른다. 히딩크는 그 원인을 선수간의 ‘상의 하달식 커뮤니케이션’에 있다고 보았다. 즉 나이 많은 고참 선수가 일방적으로 나이 어린 후배 선수에게 지시를 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 나이 어린 선수라 할지라도 그의 포지션에 따라 나이 많은 고참 선수에게도 지시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히딩크는 경기장 안에서 선수들끼리 이름을 부를 때 ‘님’자나 ‘형’자를 붙이지 못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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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화성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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