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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삐 풀린 검찰 ‘걸면 걸린다’

  • 글: 이상록 동아일보 사회1부 기자 myzodan@donga.com

고삐 풀린 검찰 ‘걸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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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 대한 검찰의 이례적인 ‘행보(行步)’는 7월31일 또 다른 성과를 가져왔다. 굿모닝시티 인허가 관련 청탁과 함께 1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탁병오(卓秉伍) 당시 국무총리 비서실장을 구속수감한 것.

검찰은 탁실장이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있던 2002년 4월경 서울시청 3층 자신의 집무실에서 굿모닝시티 관계자인 송모씨에게서 “굿모닝시티에 대한 건축심의가 잘 통과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현금 1000만원을 받은 혐의라고 전했다. 탁실장은 특히 청탁을 받은 직후 송씨에게 “주무부서에 확인해 알아봐주겠다”는 말까지 했다는 것.

탁실장은 7월30일 오후 ‘자진출두’ 했지만, 그 내막을 알고 보면 사실상 검찰에 강제구인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검찰은 7월29일 밤 탁실장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뢰 혐의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신구속을 사전보고토록 한 규정에 따라 강금실(康錦實) 법무장관은 탁실장에 대한 체포방침을 고건(高建) 총리에게 보고했고 탁실장은 이날 오후 검찰 수사관들과 함께 자진출두 형식으로 검찰에 출두한 것이다.

그리고 이날 오후 탁실장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검찰은 소환조사 중이던 탁실장에 대해 체포영장을 집행했다. 다시 말하면 조사 도중에 탁실장을 검거했다는 얘기다. 검찰 관계자는 “법에 따른 당연한 절차”라는 입장을 보였지만, 차관급인 현직 총리 비서실장에 대해 검찰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강제구인한 것은 사실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다.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 등 이른바 ‘거물급’ 인사들을 소환할 때는 검찰이 그 시기나 방법을 놓고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왔던 게 지금까지의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탁실장의 수뢰 액수도 지금까지의 수사관행으로는 불구속 수사 기준에 해당하는 수준이었지만, 검찰은 탁실장 조사에서 혐의가 드러나자 곧바로 그를 구속했다.



탁실장 구속은 정치권에 대한 검찰의 고강도 수사 의지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여겨지고 있다. 앞서 대검찰청은 6월30일 전국 55개 지검 지청의 특별수사 전담 부장검사들을 불러 ‘전국 특수부장회의’를 열고 비위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한층 강화하는 기준을 마련했다.

이날 회의의 핵심은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의 금품수수 행위에 대해 법정형이 낮은 알선수재가 아닌 알선수뢰와 조세포탈 혐의를 적극 적용하고, 이른바 ‘떡값’ 관행에 대해서도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을 엄격히 따져 엄벌한다는 것. 특히 국회의원 등 고위공직자 금품수수의 경우 그동안은 5000만원 이상 금품을 수수했을 때에만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앞으로는 1000만원 이상이면 사안에 따라 영장을 청구하기로 했다. 탁실장은 이 ‘기준’에 따라 구속된 첫 케이스였다.

권노갑 구속도 ‘원칙 수사’의 결과

정대철 대표와 탁병오 실장에 대한 원칙적인 처리는 검찰 안팎에 신선한 ‘충격’으로 여겨지고 있다. 서울지역에 근무하는 한 특수부 검사는 “검찰 독립이라는 말 자체가 그동안의 과오를 인정하는 말이기 때문에 좀 거슬리는 면이 없지 않다”면서도 “지금은 현장에서 특별수사를 진행하는 데 ‘걸림돌’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탁실장 구속 사건은 그 과정이나 내용을 볼 때 검찰 내부에서도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얘기가 많이 나왔었다”며 “관련 수사팀이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아무리 기준을 강화했다고 해도) 예전 같으면 불구속 기소 하지 않았겠느냐는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

유력 시민단체의 관계자도 “최근 검찰의 사건 처리를 보면 검찰이 달라졌다는 느낌을 갖기에 충분하다”면서 “이런 기조가 계속 유지된다면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큰 버팀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 비자금 150억원+α’ 사건에 대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수사 역시 ‘성역 없이’ 진행되고 있다. 검찰은 7월22일 노무현 대통령이 ‘대북송금 의혹사건’ 새 특검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직후 본격 수사에 착수한 뒤 관련자들을 상대로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현대측이 비자금 150억원을 이익치(李益治) 전 현대증권 회장을 통해 박지원(朴智元) 전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전달한 경위와 함께 2000년 4·13 총선 당시 거액의 현대 비자금이 정치권에 유입됐다는 정황이 포착돼 수사가 확대됐다.

검찰 수사는 그러나 8월4일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의 자살이라는 갑작스런 ‘암초’에 부딪쳤다. 특히 검찰이 현대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7월26일과 31일, 그리고 자살하기 직전인 8월2일까지 모두 3차례 정회장을 집중조사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정회장의 자살이 검찰 조사와 적지 않은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됐다. 이런 추측은 ‘검찰이 정회장을 상대로 2000년 4·13 총선 당시 현대 비자금 수십억원의 정치권 유입 여부에 대해 집중 조사했다’는 동아일보의 특종 보도(8월5일자)를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당시 검찰은 이런 사실을 부인했지만, 이미 드러난 범죄혐의에 대한 후속 수사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정회장의 장례식까지 잠시 수사를 중단했던 대검 중수부는 정회장의 장례가 끝난 며칠 뒤인 8월15일, 마침내 권노갑(權魯甲) 민주당 전 상임고문을 구속수감했다. 권 전 고문의 혐의는 2000년 4·13 총선 당시 200억원이 넘는 현대 비자금을 받았다는 것. 검찰의 ‘원칙 수사’가 불러온 정치권 사정 태풍의 ‘신호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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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상록 동아일보 사회1부 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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