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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리 기자의 사람 속으로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만화가 박재동

“질투는 나의 힘, 사람은 나의 꿈”

  • 글: 이나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byeme@donga.com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만화가 박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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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은 어떤 분이셨나요.

“피부가 곱고 몸이 가볍고 책 읽기를 좋아하는 천생 선비 타입이었어요. 할머니께선 ‘니 아부지 어릴 적엔 책에 푹 빠져 비가 와도 마당에 널린 고추 걷을 줄을 몰랐다’고 하셨어요. 고등학생 때던가, ‘그거 참 선비들의 좋지 않은 점이구나’ 싶어 나는 안 그러마 했는데, 웬 걸요. 저도 똑같은 거예요. 그래서 제가 누굴 존경하느냐, 책 보다가도 누가 오면 탁 덮어버리는 사람이요. 사람 중심으로 산다는 게 그런 거거든요.”

-살림은 살만 했는지요.

“할아버지는 머슴 출신 농부였어요. 피나는 노력 끝에 말년에는 중농 소리를 듣게 됐죠. 하지만 아버지 아프고, 그래서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게 되면서 가세도 점차 기울었죠. 할아버지 돌아가신 뒤로는 아주 어렵게 됐어요. 그래도 초등학교 2학년, 그러니까 부산으로 이사가기 전까지는 제법 괜찮았지요.”

-선생이 쓴 글들을 읽어보면 어린 시절부터 ‘나는 그림을 잘 그린다’는 자의식을 갖고 있었던 듯합니다. 8, 9세 때 그린 그림까지 모아두고 있구요.



“그렇죠. 제일 어릴 적 기억도, 만으로 두 살 땐가, 석 달쯤 아버지가 카투사로 근무하는 부대 옆에서 생활했거든요. 잠자리비행기가 날아다녔는데 그걸 땅바닥에다 그리곤 했어요. 지나가던 사람이 보곤 절 어머니께 데려가더니 ‘애가 하도 그림을 잘 그려 그 말 해주러 왔다’고 하더군요. 그 때 그린 그림이랑 그 사람이랑, 또렷이 기억나요. 그때부터 알고 있었던 거죠. 난 그림을 잘 그린다, 나 그림 그리는 거는 아무도 못 말린다.”

-시골 선생 점잖은 체면에 장손이 그림쟁이라…. 집안어른들이 혹 싫은 소리는 하지 않았던가요.

“아뇨, 그런 거 없었어요. 오히려 다들 칭찬하고 자랑스레 생각했죠. 여섯 살 때 파도 그린답시고 송곳으로 장판을 다 뚫어놨을 때도 아버지는 ‘잘 그렸다’ 한마디만 하셨어요. 입에 겨우 풀칠할 만큼 힘든 시절에도 책, 물감은 떨어지지 않았어요. 2학년 때는 외갓집 새로 칠한 마루 회벽을 온통 자동차그림으로 채워놨는데, 다들 화는 못 내고 어쩌나 고민하는 눈치더라구요. 늦게 들어온 외삼촌이 비로소 막 야단을 치는데, 그 양반이 미대생이란 말이에요. 속으로 생각했죠. 그림 그리는 사람이 이런 일로 화를 내다니, 큰 화가는 못 되겠구만….”

-맹랑하네요.

“맹랑하지요. 어렸을 적 제 속엔 영감탱이 하나가 들어앉아 있었어요. 일곱 살 때 담임 선생님을 좋아했는데, 선생님이 절 그냥 어린아이로만 보는 게 참 마음 아팠어요. 슬프지만 할 수 없는 일이겠구나, 그런 생각도 했죠.”

강한 척, 남자다운 척

일단 발동이 걸리니 고향 살던 어릴 적 기억이 한정 없이 풀려 나온다. 그의 기억력은 놀랍다. 말을 따라 움직이는 손놀림도 정교하기 이를 데 없다. 추억의 줄기는 집이나 학교 생활이 아니라 그림, 자연, ‘나 자신에 대한 나의 느낌’이다. 특히 천둥벌거숭이로 뛰놀았던 고향 마을의 그 물과 산.

“가죽 냄새를 맡으면 국민학교 입학 때 받았던 멜빵가방이 생각나고, 밭에서 막 딴 고추 냄새를 맡으면 여름 들녘이 생각나죠. 어머니가 끓인 된장찌개 첫 술을 뜨면 고향 산천이 확 지나가고. 학창시절엔 ‘고향’ 자 들어간 노래만 불러도 목이 메였어요.”

그는 “너무너무 사랑해서 그런 것 같다” 한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소설가 박완서 선생으로부터도 똑같은 얘길 들었다. “기억은 사랑이다.” 하여 사람은 기억하는 그것대로 살게 되는 걸까. 아니, 절절이 기억나는 그것을 향해 살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행복한 걸까. “문학(예술)이 기댈 곳은 오직 자신에게 각인된 기억입니다.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사람마다 기억은 다 다르지요. 어쩌면 바로 그것이 ‘소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완서 선생은 그렇게도 말했었다.

-콤플렉스 얘기하자 했지요. 뭐가 걸리던가요.

“남자답지 못한 거. 대여섯 살 땐가, 새참 먹는 자리에 따라붙었다 막걸리를 마시게 됐어요. 벌컥벌컥 한 사발을 다 마셨는데 집에 돌아오려니 세상이 빙글 도는 거예요. 그 때 생각했죠. 난 술에 약하구나. 그러니 남자답지 못하구나. 나무를 하러 가도 또래 애들보다 짐이 적고, 알밤 줍기를 해도 나만 빈손이고, 운동회날 달리기도 못하고, 소풍날 보물찾기도 못하고. 그런 게 나한테는 콤플렉스였어요. 아마 전생에 일 안하고 글만 쓰거나 뭐 그런 사람이었나 봐.”

-그래서 더 남자다운 척, 강한 척하며 살았다는 건가요.

“그런 게… 있었겠지. 중3 때 담배를 배운 것도, 남자는 모름지기 이 때쯤 담배를 피워야 한다 했던 거고. 어른이 되는 고통이라 생각하며 ‘독학’으로 마스터했으니까요. 싸움을 무지 싫어하면서도 중고등학교 시절 슬쩍슬쩍 건달 짓하고, ‘짱’한테 덤비기도 하고, 무서워도 도망치지 않은 건 그 때문일 거예요. ‘키 큰 놈이 도망간다’ 그 소리가 죽기보다 듣기 싫었거든. 사실 전 여리고 섬세하고 여성적인 사람이에요. 그런 쪽이 더 강한데 사회는, 또 거기가 경상도니까, 남자다워야 한다는 요구를 많이 하잖아요. 거기 편승해 오버한 거지.”

-지금은 어떤데요.

“많이 자유로워졌죠. 솔직해졌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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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나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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