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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한국 관료제의 원조, 일본 관료조직 대해부

‘캐리어’ 되면 평생 보장 그래도 ‘진골’은 도쿄대 법학부

  • 글: 조헌주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hanscho@donga.com

한국 관료제의 원조, 일본 관료조직 대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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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분류는 비록 자의적이기는 하지만 관의 체질이 대국민 서비스보다는 민간 위에 군림하는 기관이란 점을 적절히 꼬집고 있는 것이다. “민원 있는 곳에 부정 있다”는 말이야말로 부처 서열화와 무관치 않다.

고이즈미 총리는 2001년 취임과 동시에 행정부 장악을 시도했다. 성청을 개편하면서 장관 아래 기존에 있던 사무차관, 정무차관(별정직) 외에 부대신 자리를 신설했다. 총무·재무·외무·후생노동성에는 각기 2명의 부대신(부장관, 일본 공식 용어로 副大臣)이 생겼다.

하지만 관료 중심의 정책 형성과 정책 집행을 정치 주도로 돌리겠다는 목적은 제대로 달성되지 못한 채 겉돌고 있다. 여권 국회의원에게 자리를 만들어주었을 뿐이란 비판도 많다. 부처 공무원 중에는 부대신 이름조차 모르겠다는 사람도 많다. 정치인이 그저 잠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장관이 바쁘면 대신 기념식에 참석하는 보직쯤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성청 개편에도 불구하고 정책 형성의 핵심은 부처의 진정한 실력자인 사무차관이다. 각 성청의 ‘캐리어’는 사무차관의 말 한마디에 좌우된다. 정치적으로 임명되는 장관은 예나 제나 ‘손님’으로 불린다. 자리만 채우고 있다 때가 되면 떠나는 뜨내기 손님 같은 존재로 취급받고 있는 것이다. 장관과 함께 총리가 임명하는 정무차관의 별명은 ‘맹장’이다. 있어도 별 도움이 안 되고 괜히 골치만 아픈 존재라는 뜻이다. 부대신 역시 정무차관의 윗자리를 차지하고는 있지만 존재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었지만 아무 일도 내 맘대로 할 수 없다”고 한탄한 것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거대한 관료조직의 정점에서 융숭히 대접을 받고는 있지만 결국 한 사람의 ‘손님’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런 절망감을 드러낸 말이 아닐까. 좋은 부처, 좋은 자리란 말이 필요 없는 공직 사회는 정말 요원한 것일까. 가능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도요타 정신의 승리

일본 아이치(愛知)현 앞바다에서는 현재 중부국제공항 건설이 한창이다. 바다에 인공섬을 만들고 3500m 길이의 활주로 1개를 건설하는 것으로 2005년 2월 개항 예정이다. 관제시설과 육지와 연결하는 다리공사를 제외한 모든 건설 업무를 중부국제공항주식회사가 맡았다. 사장은 도요타(豊田)자동차 계열사 사장 출신인 히라노 유키히사(平野辛久).

그는 당초 7680억엔이던 건설비를 15%, 1200억엔(약 1조2000억원)이나 절약함으로써 ‘도요타정신이 관료주의를 이겼다’는 제목으로 언론에 대대적으로 소개됐다. ‘국제공항을 7680억엔으로 어떻게 짓는다는 거냐’며 아이치현의 국제공항 건설을 만류해온 정부 관계자들과 토목관계자들은 머쓱해지고 말았다. 히라노 사장은 국가 예산 집행이 얼마나 무책임하게 이뤄져왔는지를 생생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 것이다.

히라노 사장이 한 가장 큰 일은 설계 변경이었다. 우선 날개를 접은 학 모양이던 여객 터미널 설계부터 바꾸었다. 예산이 부족하다면서 멋을 내려는 ‘허위의식’에 대해 그는 단호한 자세를 보였다.

“여객 터미널 천장을 멋있게 짓는다 해서 하늘 위에서 감상할 사람이 몇이나 된단 말이냐.”

학 모양을 포기하고 직선 형태 설계로 바꾸면서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다. 부품은 규격화됐고 대량공급이 가능해졌다. 공사도 단순해져 공기가 대폭 단축됐다.

주차장도 우선 계획의 절반만 짓고 방식도 손쉬운 철골 구조로 바꾸었다. 8기를 건설키로 했던 연료탱크도 우선 5기만 짓기로 했다. 필요한 부품은 그때그때 조달한다는 도요타자동차의 유명한 재고관리시스템인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 방식을 원용한 것이다. 히라노 사장은 이밖에도 자재비와 인건비를 미국과 일본의 자문회사에 맡겨 철저히 조사케 한 다음 불황으로 인한 가격인하 요소를 반영해 예산 삭감에 성공했다.

히라노 사장의 사례는 과거 관료조직이 민간부문을 이끌어왔으나 이제는 위치가 바뀌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민간부문으로부터 한 수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을 일깨워준 것이다.

경제가 고속성장을 멈춘 지 10여 년이 지나면서 일본의 각 분야에는 위기감이 스며들고 있다. 국가공무원시험의 형식이나 내용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검사·판사 등 사법부 인원과 변호사 등 법조인을 내년 4월 신설되는 ‘로스쿨’을 통해 양성하겠다는 것도 다양한 선발 방식을 도입한 예로 볼 수 있다. 공무원과 민간부문 인사교류도 부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경제규모 측면에서 아직 일본에 크게 뒤져 있는 후발주자 한국. 일본을 따라잡으려면 일본보다 훨씬 더 힘을 모아 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개혁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일본 역시 극히 일부에서만 개혁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현재 일본의 정치·경제·사회 구조는 한마디로 ‘1940년 체제’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군 점령 하에 정치·교육 체제 등 일부가 변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일본인의 의식세계는 아직도 태평양전쟁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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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헌주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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