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식 덕분에 말기암을 치유한 송학운씨와 부인 김옥경씨
8월5일 경남 양산시 원동면 내포리 해발 500m 산속에 위치한 자연생활의 집에서 송원장을 만났다. 자그마한 키에 단단해보이는 체구. 햇볕에 적당히 그을린 탄탄한 몸과 구릿빛 얼굴에서 병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암환자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해 보인다”는 필자의 말에 사람 좋은 웃음만 띠는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정말 암이 깨끗이 나았나?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말기암 환자가 지속적인 의학적 치료 없이 완치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1992년 12월3일 수술을 받고 18일간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딱 한 차례 항암치료를 받았다. 병원에선 1년간 계속 치료를 받으라고 했지만 그 뒤로 지금까지 병원에 가본 적이 없다. 그래도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으니 다 나은 것 아니겠는가.”
-혹시 처음부터 진단이 잘못됐을 수도 있지 않았나.
“1992년 9월15일 부산에 있는 병원에서 직장암 3기 판정을 받았다. 의사가 수술하고 인공항문을 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수술 후 오래 살 수 있는 확률도 크지 않다고 해서 수술과 치료를 포기했다. 대신 대체요법이니 민간요법이니 하며 허송세월을 하다 그해 12월에 서울의 큰 병원을 찾았더니 직장암이 결장과 임파선까지 전이된 말기로 6개월밖에 못 산다고 했다. 더 이상 기댈 곳도 없고 죽더라도 병원이 낫겠지 싶어 수술을 받았다.”
-수술 결과가 좋았던 모양이다. 의사가 지레 겁을 준 건 아닌가.
“1997년쯤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방송국에서 나를 취재하러 온 적이 있었다. 아마 담당PD가 내가 수술받은 병원을 찾아가 당시 진료기록을 확인한 모양이었다. 그때 내 담당의사가 놀라면서 ‘그 사람 아직 살아 있느냐’고 물었다는 소릴 들었다.”
의학적 검사 통해 ‘정상’ 판정
자연식을 통해 암을 극복한 송원장의 사례가 세간에 알려지면서 여러 차례 방송출연 요청을 받았는데, 그때마다 그는 ‘완치 확인’에 시달렸다고 했다. 지난 7월말 양산의 한 병원에서 그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정밀검사를 받았다. 수술 이후 병원을 찾은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검사를 담당했던 양산내과 방사선과의원 오동헌 원장은 대장내시경, 위내시경, 복부초음파, 복부CT, 암지표검사, 혈액검사 결과 모든 수치가 ‘정상’이었다고 확인해줬다.
“송학운씨의 경우 현재 수치상으로 암 재발을 의심할 만한 요소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 깨끗한 상태다. 모든 암환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긴 어렵겠지만 아마 자연식과 현재의 생활방식이 얼마간 도움이 된 것 같다.”
-수술 후 처음 병원을 찾았는데 혹시 검사과정에서 암이 재발하지 않았을까 두렵지 않았나.
“우리 몸은 자각능력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는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둔했고 설마하면서 무시해 병을 키웠지만 이젠 누구보다 내 몸을 잘 안다. 전혀 불편한 곳이 없고 잠 잘 자고 밥 잘 먹고 화장실 잘 다니는데 걱정할 게 뭐 있나. 사람들이 미심쩍어하지 않았으면 나는 병원에 검사받으러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많은 암환자들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대체의학과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을 찾아 헤매다 목숨을 잃기도 하고 때론 기적적으로 완치되기도 한다. 그러나 말기 판정을 받은 암환자가 재발 없이 11년 동안 생존하기란, 더구나 보통 사람 이상으로 건강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지속적인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죽음을 극복한 송원장의 건강비결이 궁금해졌다.
-어떻게 암을 이겨냈나.
“수술 직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문득 시골이 그리웠다. 남은 생이라도 내 몸이 원하는 대로 공기 좋고 조용한 곳에서 보내자는 생각에 아이 둘을 청도의 외가에 맡겨놓고 근처에 시골집을 구했다. 그때 아는 사람의 권유로 생채식을 시작하게 됐다. 그런데 대장을 거의 다 잘라낸 상태여서 날것으로 먹은 음식을 소화하기가 쉽지 않았다. 생채식을 한 지 3∼4개월이 지났을 무렵 몸은 뼈만 앙상하고 겨우 죽지 않을 만큼의 체력만 유지하고 있었다. 그때 어느 책에서 우연히 자연식을 하는 요양원에 대해 알게 됐고, 그곳에서 일주일쯤 생활하자 오랫동안 끊이지 않던 설사가 멈추고 몸무게도 10㎏ 이상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