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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발굴

건국훈장 추서된 ‘잊혀진 혁명가’ 윤자영

사회주의 독립운동 이끈 조선공산당 핵심 리더

  • 글: 김희곤 안동대 교수,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heegkim2@dreamwiz.com

건국훈장 추서된 ‘잊혀진 혁명가’ 윤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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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자영은 학생대표들이 거사를 준비하는 동안 핵심부에서 움직였다. 민족대표와의 연합에서 전문학교 학생대표들의 위상은 상당히 높았다. 특히 시위가 시작되자 학생들이 전체를 이끌어갔다. 그날 시위에서 전문학교 학생대표들이 최고지도자였다.

그 가운데 윤자영은 거사 당일 김성득과 함께 경성전수학교 학생들에게 선언서를 배포하는 임무를 맡았고, 종로에서 시위와 독립만세 제창을 주도했다. 이로 말미암아 일제경찰에 체포된 윤자영은 11월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1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수형카드’에 따르면 1920년 5월27일에 출옥했으므로 실제로 그는 1년3개월을 감옥에서 고생했다.

서대문형무소를 나오자마자 윤자영은 바로 청년운동에 뛰어들었다. 출옥하던 무렵 서울에는 청년 모임 70여개가 있었으나 번듯한 청년단체는 없었다. 청년모임들을 파악하고 지도할 조직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조선청년회연합회를 결성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고 1920년 7월 정식으로 결성됐다.

조선청년회연합회를 이끌다

조선청년회연합회를 결성하기 위한 기성회에서 윤자영은 등 22명의 집행위원 중 한 사람으로 선출됐다. 집행위원 명단에는 오상근 장덕수 등이 있었다. 그해 12월2일 열린 창립총회에서 그는 서무부 상무위원으로, 1921년 4월 열린 제2차 정기회의에서 교무부 상무위원으로 선임됐다. 조선청년회연합회의 핵심인물로 떠오른 것이다.



윤자영은 조선청년회연합회를 이끌어가기 위한 구심체로 서울청년회 결성에도 나섰다. 1921년 1월27일 윤자영은 이득년·김한·홍증식·김사국·이영·장덕수·김명식·오상근·한신교 등과 함께 서울청년회를 조직했다.

1921년 그는 순회강연을 활발히 벌였다. 1921년 6월 조선학생대회 주최로 열린 강연회에서 ‘배재학생선후책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강연한 것을 비롯 8월부터 전국순회강연에 나섰다. 조치원·연기·청주·창녕·밀양·양산·울산·부산 등을 순회했다. 9월8일 경남 창녕군 청년회관에서 ‘개조운동의 선구자’라는 주제로, 9월26일 울산청년회관에서 ‘청년운동의 제일보(第一步)’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1921년 10월7일자 동아일보는 그 장면을 “도도한 웅변을 시(試)하여 일반 청중에게 막대한 자극을 주고 갈채 속에 10시 반경 폐회하였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그는 청년운동의 확산을 도모했다. 3·1운동 이후 사회 개조를 이끌어갈 에너지를 청년운동에서 찾아 전국에 바람을 일으키려고 시도한 것이다. ‘선구자’로서 청년들이 내디뎌야 할 ‘첫걸음’을 강조한 강연제목만으로도 그가 무엇을 제시하고자 했는지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한편 그는 서울청년회 기관지 ‘아성’의 편집위원으로 활약했다. 1921년 3월부터 10월 사이 네 차례 간행된 이 잡지에 그는 12편의 글을 게재했다.

소야, ‘시조 3수’(‘아성’ 제1호)윤자영, ‘唯物史觀要領記’(제1호)소야, ‘回程(詩)’(제1호)소야, ‘고생하는 언니와 외로운 아우에게’(제1호)소야, ‘배고파 우는 아우에게’(제2호)윤자영, ‘상호부조론’(제3호)소야, ‘향촌에 歸하라’(제3호)윤소야ㆍ김해광, ‘최근 중국의 國情’(제3호)SY生, ‘쏘피아 小傳’(제3호)윤자영, ‘상호부조론’(제4호)소야, ‘심장육의 단편’(제4호) SY生, ‘쏘피아 小傳’(제4호)

여기에서 두 가지 사실을 짚고 넘어가자. 하나는 그의 이름이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으나 그는 ‘소야·소야(蘇野)·소야(笑也)’와 ‘SY’란 필명을 썼다. 1924년 상하이에서 활동하던 시기 일제경찰 정보문건에도 ‘尹蘇野(滋瑛)’로 기록돼 있다.

또 같은 시기 일제 자료엔 그의 별명이 윤석한(尹石漢·尹錫漢), 호는 불가살(不可殺)이라 쓰여 있다. 그리고 1932년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에 제출된 이력서에는 ‘丁一英(尹蘇野)’이라고 적고 맨 아래편에 ‘丁一英’이라 서명했다. 러시아에서는 ‘Yun, Za Yen’ 혹은 ‘Chen Min’이라는 이름도 쓰였다.

또 하나는 그가 시조와 수필, 그리고 논평을 썼다는 점이다. 그가 남긴 ‘시조 3수’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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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희곤 안동대 교수,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heegkim2@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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