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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기⑭|한계령에서 미시령까지

금강산이 어드메뇨, 바위들의 축제 속에 설악 삼매경 빠져든다

  • 글: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공보담당 사무관 sixman@humanrights.go.kr

금강산이 어드메뇨, 바위들의 축제 속에 설악 삼매경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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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에서 1시간 정도는 완만한 오르막으로 힘깨나 써야 한다. 숨소리가 거칠어질 무렵 1310m봉을 지나쳐 고갯마루에 이르는데, 여기서 오른쪽으로 휘어져 나가는 암릉구간이 남설악의 백미로 꼽힌다. 왼편으로는 내설악의 기암괴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오른편으로는 남설악과 외설악을 시원하게 굽어볼 수 있다.

오랜만에 산행에 나선 후배의 페이스에 맞추다 보니 속도가 떨어졌다. 후배는 쉬었다 가자며 자주 발걸음을 멈추었으나 해가 떨어지기 전에 대피소까지 가려면 마냥 쉬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할 수 없이 후배의 고통을 모른 척하며 걸음을 내쳤다. 왼편으로 불쑥 솟구친 귀때기청봉(1577.6m)을 지나 3시간쯤 걸어가면 끝청(1604m)이다. 여기서부터 중청(1676m)을 거쳐 대청(1707.9m)으로 가는 길은 밋밋한 고원지대를 산책하는 기분으로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중청의 정상 부근에는 군사시설이 들어서 있어 접근할 수 없으나 산허리를 끼고 중청대피소 쪽으로 내려서다 보면 설악산의 명물 공룡능선과 동해바다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명당이 나온다.

중청대피소 주변에서 등산객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발걸음이 무뎌진 후배가 이곳에서 자고 가면 안 되겠냐며 투정을 부렸다. 안 될 거야 없지만 다음날 산행스케줄을 감안하면 좀더 나아가야 했다. 후배를 앞세우고 대청으로 향했다. 중청대피소에서 대청으로 가는 오르막은 아고산대 특유의 식생이 분포하는 지역이어서 등산로 양옆에 가이드라인이 설치돼 있다.

설악산의 정상 대청봉이다. 지리산 천왕봉(1915m)과 더불어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다. 천왕봉에 서면 끝없이 이어지는 남도의 산자락을 굽어볼 수 있고 대청봉에 서면 바다로 스며드는 산 그림자를 감상할 수 있다. 또한 대청봉은 내·외·남설악이 갈리는 분기점으로 이곳에 올라서야만 비로소 설악산 전체의 윤곽을 살필 수 있다. 대청봉에서 내설악으로 향하려면 소청산장이나 중청대피소를 이용하고, 외설악으로 가거나 주능선을 타려면 희운각대피소에 묵는 것이 좋다. 위급한 경우에는 대청봉 최단코스인 남설악의 오색약수터로 하산할 수도 있다.

희운각대피소의 저녁식사



지도에는 대청봉을 조금 지나친 곳에서 희운각대피소로 이어지는 코스가 있다. 하지만 백두대간 종주자들은 대청봉 조금 못미친 지점에서 죽음의 계곡을 따라 희운각대피소로 내려선다. 필자도 어느 길로 갈까 잠시 고심하다가 대구에서 온 단체 종주자(대구 K-2산악회)들을 따라 죽음의 계곡 코스로 향했다. 이곳은 해가 비치지 않는 응달이어서 며칠 전 내린 눈이 녹지 않은 채 깔려 있었다. 이 때문에 아이젠을 착용하고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다.

일몰이 시작되면서 설악산에서만 볼 수 있는 바위들의 축제가 시작됐다. 왼편의 공룡능선은 일찌감치 어두워졌지만 오른편의 천불동 암릉은 시시각각 미세한 색감의 변화를 보였다. 천변만화(千變萬化)라고 할까. 몇 발짝 걷다가 바라보면 조금 전과 어딘가 다른 느낌의 풍경으로 바뀌었다. 주변의 나무들이 빛을 잃은 탓인지 바위만 보이는 천불동은 풍경화보다는 수묵산수화에 가까웠다. 앞서 걷던 후배는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연상된다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가장 멀리 그리고 가장 동쪽에 위치한 탓에 늦게까지 태양 빛을 빨아들이는 울산바위는 다른 바위들이 색감을 잃은 뒤에도 계속 반짝거리며 설악의 저녁축제를 빛내주었다.

사방이 어두워질 무렵 희운각대피소에 도착했다. 이곳은 필자와 남다른 인연이 있다. 아내와 결혼하기 전 함께 설악산을 올랐다가 비 내리는 밤에 길을 잃고 가까스로 찾아든 곳이 바로 희운각대피소였다. 이번에도 그때처럼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김치찌개를 끓이며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저절로 침이 넘어갔다. 우리도 한쪽 구석에 좌판을 벌였다. 오늘의 메뉴는 삼겹살이다. 고기가 익기도 전에 술잔이 오갔다. 밤이 되면서 기온이 뚝 떨어진 탓에 소주를 삼킬 때마다 목덜미를 타고 올라오는 열기가 더없이 편안했다. 가져온 소주가 다 떨어진 뒤에는 필자가 직접 담근 복숭아주를 돌렸고, 그 다음엔 발동이 걸린 정 선생과 후배가 대피소에서 소주를 샀다. 술기운이 얼근히 돌 무렵 여자 후배가 먼저 노래를 불렀다. 1980년대 초반 양희은이 불렀던 ‘한계령’이다. 설악산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노래다.

‘저 산은 내게 오지 마라 오지 마라 하네.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네.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남자 후배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번엔 필자가 대학시절 어지간히 좋아하던 민중가요 ‘꽃다지’다. 필자는 이따금씩 집회장소나 공연장을 지나치면서 이 노래를 듣는데, 그때마다 소중한 기억들을 너무 빨리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한다. 이날 밤도 그랬다. 노래가 채 끝나기도 전에 연거푸 소주잔을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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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공보담당 사무관 sixman@humanright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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