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호

전천후 ‘도박공화국’ 호주

승률 0%에 인생 베팅하는 ‘심심한 천국’ 사람들

  • 윤필립 在호주 시인 philipsyd@naver.com

    입력2005-05-24 15:0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전천후 ‘도박공화국’ 호주
    5월 어느 날 새벽 4시, 시드니 시내에 있는 스타시티 카지노 동쪽 하늘에 별똥별 하나가 스러져갔다. 어둠 가운데 떠 있던 작은 희망 하나가 소멸하는 순간, 필자는 카지노 난간에 기대어 뼛속까지 스며드는 찬 공기에 몸을 잔뜩 웅크렸다.

    취재를 위해 난생 처음 찾은 카지노였지만 신출내기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다. ‘돈 놓고 돈 먹기’라는 단순명료한 논리만 통하는 도박판에서 ‘타짜’나 ‘초짜’의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 화려하게 꾸며진 카지노의 위세에 눌려 주눅이 드는 것도 잠시, 판돈이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그곳이 카지노인지 친구들이랑 벌이는 포커 판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카지노는 잘 꾸며진, 그래서 더 많은 돈을 따야 하는 ‘돈 먹는 하마’일 뿐이었다.

    취재수첩에다 주변상황을 묘사하면서 게임의 결과를 꼼꼼하게 기록하는 평상심은 30분을 채 넘기지 못했다. 그 다음부터는 시간의 흐름조차 망각할 정도로 도박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이유는 딱 하나, ‘수업료’라고 생각한 밑천이 30분 만에 바닥났기 때문이다.

    결과는 완패였다. 아무리 길어도 2시간 이상은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마지막 동전을 밀어넣으면서 시계를 보니 어느새 여섯 시간이 흐른 뒤였다. 게임머니도 당초 계획보다 열 배 이상 불어났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조화인가. 장장 여섯 시간의 전투에서 완패했음을 인정하는 그 순간에 뜬금없이 체 게바라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엔 이룰 수 없는 꿈을 가지자.”

    -체 게바라

    그렇다. 그건 애초부터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물론 한평생을 바쳐서 온몸으로 마르크시즘을 실천했던 체 게바라가 도박을 두고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게 뒤죽박죽인 밤이었으니 그런 걸 따지고 있을 처지는 아니었다.

    ‘나일의 여왕’의 미소

    시드니의 5월은 가을이다. 새벽공기도 차갑지만 물밀듯이 밀려오는 허탈감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잃은 돈이 아깝기도 하고, 겨우 30분 만에 평상심을 잃고 도박에 휘둘린 사실을 곱씹고 있자니 화가 나기도 했다.

    뜨거운 커피라도 한잔 마시고 싶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카지노 안쪽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발길에 차이는 것이 있었다. 사람이었다. 필자가 중심을 잃고 넘어질 정도로 제법 강하게 부딪친 것 같은데 정작 발길에 차인 사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가가서 보니 동양인이었다.

    “그냥 가슈.”

    그는 한국인이었다. 차마 그럴 수 없어서 머뭇거리는데 그가 일어섰다. 단정한 양복차림에 넥타이까지 맨 40대 중반 의 남자. 그는 왜 그 시간에 차디찬 대리석 바닥에 쭈그려 앉아 있었을까.

    “이런 데서 웬일입니까. 들어가서 커피나 한잔 드시지요.”

    “아닙니다. 혹시 집에 갈 차비 좀 얻을 수 있을까요?”

    뜻밖의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의 주머니에도 동전 한 닢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자동차 키를 내보이면서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아닙니다. 그냥 차비만 좀 있으면 될 것 같습니다.”

    그를 데리고 카지노 안으로 들어갔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카지노 안은 여전히 북적댔다. 자동판매기에서 커피 두 잔을 뽑아 그와 마주앉았다. 그는 자신을 S라고 소개했다. 아내와 2남 1녀를 둔 43세의 직장인.

    밝은 불빛 아래서 보니 얼굴이 아주 초췌했다. 아무 말 없이 커피를 마실 뿐 필자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으려 했다. 차비도 없을 만큼 몽땅 털렸으니 그 심정이 오죽 하겠나 싶어서 더는 말을 걸지 않았다.

    자동차 키를 흔들어 보이면서 “주차장에 차가 있습니다”했더니, 그는 정색을 하며 “정말입니다. 차비를 빌려주시면 나중에 꼭 갚겠습니다”라고 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절대로 신용카드에서 돈을 인출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지만, S의 그토록 간절한 표정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100호주달러(약 8만원)를 인출해서 그에게 줬다. 그는 자신의 명함 뒤에다 ‘100달러를 차용했음’이라고 써서 건네줬다.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그에게 줄 100호주달러가 아닌 200호주달러를 인출했기 때문이다. 밑천이 달릴 때마다 자꾸 신용카드에 손이 갔지만 꾹꾹 눌러 참던 터인데, 그에게 돈을 건네면서 딱 떨어지는 핑계거리를 찾은 셈이었다.

    S와 헤어진 필자는 거의 달음박질치듯이 포커머신(슬롯머신) 쪽으로 갔다. 그리고 밤새도록 내 돈을 삼켜댄 포커머신 앞에 다시 앉았다. ‘나일의 여왕(The Queen of Nile·호주의 대표적인 포커머신 게임의 이름)’이 왼쪽 눈을 찡긋거렸다.

    그러나 나일의 여왕은 돈을 걸지 않는 한, 기계적으로 왼쪽 눈을 찡긋거릴 뿐 절대로 도박 상대는 되어주지 않는다. 캐시박스에 지폐를 밀어넣었더니 모든 버튼이 환하게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 카지노 동쪽 계단에서 느꼈던 후회나 쓸쓸함은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망설임도 없었다.

    다만 맹렬한 욕구가 ‘나일의 여왕’을 향해 솟구칠 뿐이었다. 미친 듯이 버튼을 눌렀다. 결과는 보나마나였다. 버튼을 누르는 횟수에 반비례하여 잔고가 줄어들고 있었다. 나중엔 승부에 대한 의욕조차 사라져 빨리 잃고 집에 갔으면 좋겠다는 패배의식마저 생겼다.

    바로 그 순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나일의 여왕’이 베풀 수 있는 최대의 은전이 필자에게 베풀어졌다. 피라미드 다섯 개가 동시에 뜬 것. 포커머신에서 경쾌하기 이를 데 없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스크린엔 축하풍선이 가득 떠올랐다.

    거의 바닥난 잔고에 돈이 쌓이기 시작하는데, 축하음악이 끝난 후 체크해보니 믿기 어려운 액수였다. 지난 여섯 시간 동안 잃은 돈을 만회하고도 남는 액수였다.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옆자리에 앉아 게임을 하던 중국계 여성이 “너는 럭키한 남자다. 당장 뽑아가지고 집에 가라”고 했다. 카지노 종업원을 불러서 돈을 뽑아달라고 했더니 그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간절히 기도하는 도박꾼

    계산대로 가서 돈을 받아들고 맥주 한 잔을 마셨다. 달콤했다. 창밖을 내다보니 일요일 아침은 이미 밝아 있었다. 밤새도록 포커머신에서 발하는 불빛에 시달린 눈에 비친 달링하버의 바다 빛깔은 싱그럽기 그지없었다. 몹시 침울하던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바다 쪽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젯밤의 일들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스쳐지나갔다. 시종일관 곤두박질치다가 마지막 순간 대역전을 이룬 해피엔딩의 드라마. 주머니가 두툼해진 것을 느긋하게 즐기고 있자니 시장기가 느껴졌다.

    천천히 스낵코너로 걸어가던 필자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새벽 4시에 나한테서 차비를 얻어간 S가 블랙잭 테이블에서 도박을 하고 있었던 것. 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고, 그의 앞자리엔 칩이 높게 쌓여 있었다. 끗발이 오를 대로 올라 있는 것 같았다. 옆자리에서 우거지상을 한 중국계 도박꾼들과 달리 그는 테이블을 혼자서 주도하는 듯했다.

    블랙잭 게임을 전혀 할 줄 모르는 필자는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뒤쪽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돈을 땄다. 그런데 그에게서 이상한 모습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큰 베팅을 하면서 잠깐씩 눈을 감는 것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집중을 하거나 무슨 결단이라도 내리는 것 같았는데, 달리 생각해보니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카드를 받으면서 가벼운 미소를 흘리던 그가 큰 베팅을 할 때마다 간절한 몸짓을 보였기 때문이다.

    카지노 내방객들에게 모닝커피가 제공됐다. 커피 잔을 집어들기 위해 몸을 뒤로 돌리던 S가 필자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자리에서 반쯤 일어난 그가 “아직 집에 가지 않았냐?”면서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다.

    새벽 4시에 카지노 동쪽 계단에서 본 그의 처연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밤을 새운 사람답지 않게 목소리에도 생기가 넘쳤다. 잠시 후 그가 수북이 쌓인 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칩을 돈으로 바꾼 다음, 우리는 처음에 만난 카지노 동쪽 계단으로 갔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그는 대답 대신 1000호주달러를 건네면서 뜻밖의 말을 했다.

    “주님께서 마지막 기회를 주신 것 같습니다. 내 도박 역사에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나는 900호주달러를 돌려주면서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들으나마나였다. 마지막 동전 한 닢까지 도박판에 밀어넣는 도박꾼의 심리를 모르는 바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차비로 빌린 100호주달러를 들고 집으로 갈 사람이었다면 카지노에서 밤을 새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것보다 그의 기도하는 모습이 더 궁금했다.

    “난 교회 집사입니다. 이런 말씀드리기 정말 부끄럽네요. 오늘이 주일인데 내가 왜 지금 교회가 아닌 카지노에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내 안에 사탄이 있는 것 같습니다”로 시작된 그의 넋두리는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오늘은 꼭 팔 것 같은데…’

    “저는 지하자원 개발장비를 제작하는 회사에서 설계사로 일하고 있는데, 동양계 이민자가 거의 없는 회사라 가끔씩 문화충격을 경험합니다.

    2년 전의 일입니다. 계약 수주를 자축하기 위해서 사원 전원이 참석하는 파티가 스타시티 카지노에서 열렸어요. 카지노에서 운영하는 뷔페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역시 카지노 안에 있는 극장에서 뮤지컬을 감상했지요.

    난생 처음 가본 카지노는 별천지였습니다. 회사일말고는 교회에서 활동하는 게 거의 전부인 나의 이민생활에서 도박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부도덕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뮤지컬 관람을 끝낸 동료직원 대부분이 포커머신이나 테이블게임을 했습니다. 동료들이 한번 해보라고 권유했습니다. 가뜩이나 호주의 유흥문화에 주눅이 들어 있던 나는 소외되지 않으려고 엉겁결에 포커머신 앞에 앉았습니다.

    다들 얘기하듯이, 그날 밤 포커머신을 처음 해본 나만 돈을 땄습니다. 물론 그 돈으로 동료들에게 술을 샀지요. 생각했던 것보다 게임은 단순했습니다. 그냥 돈을 넣고 버튼만 누르면 나머지는 기계가 다 알아서 계산해줬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 잠자리에 누웠더니 포커머신의 그림들이 자꾸만 눈에 어른거렸습니다. 경쾌한 기계음도 귓전을 떠나지 않았고요. 그 다음은 더 말씀드리지 않아도 될 겁니다. 저는 회사가 끝나자마자 포커머신이 있는 클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첫 경험’과는 달리 계속해서 돈을 잃었죠. 2년 가까이 쏟아부은 돈이 20만호주달러(약 1억6000만원) 정도였습니다.

    한창 시드니에 부동산 붐이 일던 시점에 집을 팔아야 했고, 집에서도 몇 차례 보따리를 싸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카지노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오늘은 꼭 딸 것 같다’는 이상한 환상에 사로잡히곤 했습니다.

    그래요, 나는 베팅을 하면서 습관적으로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게 몸에 배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도박판에서 한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주님께서 마지막 기회를 주셨다’고 느꼈습니다.”

    좋은 일은 오래가지 않는다

    커피를 마시고 난 S가 머뭇거리면서 필자에게 합자 도박을 제안했다. “까짓, 나도 딴 돈인데…”하는 생각이 들어서 선뜻 그렇게 하자고 동의했다. 그러나 그가 워낙 돈을 많이 가졌기 때문에 10대 1의 배율로 합자하는 조건이었다.

    S는 만면에 미소를 띠면서 바카라 테이블로 갔다. 그는 “단순 명쾌한 게임이니 선생님은 그냥 구경만 하세요”하더니 탐색전도 없이 첫판부터 통 크게 베팅했다. 그러나 그의 운은 블랙잭 테이블에서 다한 것 같았다. 채 30분도 안 되는 시간에 그 많은 돈을 다 잃고 말았다.

    허탈하지만 어쩌겠는가. 도박이란 게 다 그런 것 아니던가. 그는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차에 올라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였다. 속으로 아쉬움을 삭이느라 아무 말도 없던 S가 “미안하지만 교회로 데려다 줄 수 있겠습니까?”하고 부탁했다.

    전천후 ‘도박공화국’ 호주

    ‘웨슬리 도박문제 상담서비스’ 시드니시티 사무국에서 도박 카운슬러 업무를 5년째 담당하고 있는 박주혜씨.

    카지노에서 교회로 가는 동안 S는 딱 두 마디만 했다.

    “좋은 일은 오래가지 않는데….”

    “하긴 도박을 중도에 끝내는 건 도박에 대한 모독이지요, 히히.”

    ‘도박공화국’ 호주의 심장부에 있는 스타시티 카지노 취재는 그렇게 마무리 됐다. 롤러코스트를 탄 것처럼 오르막과 내리막을 맛보았고, 도박의 판타지에 빠져들어 황홀한 순간을 즐기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빈손’이었다. 피할 수 없는 엄정한 결과였다.

    도박에 대한 결론을 얻었으면, 그 병리현상에 대한 치유를 꾀하는 것은 당연지사. 필자는 ‘웨슬리 도박문제 상담서비스’ 시드니시티 사무국의 카운슬러 박주혜씨를 찾아갔다. 뉴 사우스 웨일스(NSW)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박씨는 지난 2000년부터 종교단체인 웨슬리 미션에 소속돼 도박 카운슬러 업무를 5년째 담당하고 있다.

    박씨는 필자를 만나자마자 “포커머신 게임이 재미있었냐?”고 물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다”고 했더니, 옐로카드를 내보이면서 ‘도박중독’의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도박중독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말라”고 했다.

    그는 “사실, 포커머신을 이용한 도박은 아주 자극적이며 재미가 넘친다. 그만큼 도박에 빠져 어려움을 겪을 확률도 높다. 호주 한인동포 사회에도 도박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가 아주 많다”고 말했다.

    포커머신의 게임원리

    전천후 ‘도박공화국’ 호주

    호주 한인동포들의 도박장 출입이 잦아지면서 대부분의 클럽이 한글로 된 도박 상담 팸플릿을 갖추게 됐다.

    다음은 그녀가 호주 오락기 플레이어 핸드북(AGMMA)에 게재된 내용을 요약해서 필자에게 건네준 내용이다.

    포커머신은 호주에서 가장 대중적인 도박이다. 이용하기 쉽고 널리 보급돼 있기 때문이다. 만약 포커머신에서 돈을 딸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포커머신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포커머신은 이용자가 돈을 따도록 만들어진 게 아니라 일정비율에 따라 돈을 잃도록 만들어졌다. 물론 가끔씩 따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포커머신을 상대로 돈을 따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포커머신이 갖고 있는 불변의 특성은 ‘게임 횟수가 늘수록 이미 잃은 돈을 되찾을 확률은 낮아진다’는 것이다. 또한 포커머신의 핵심원리는 게임의 결과가 항상 ‘우연’이라는 데 있다.

    게임의 결과를 결정하는 것은 기계 안에 있는 무작위 출력기다. 이는 포커머신 스크린 위에 나타나는 표시를 임의로 선택하는데, 이 선택은 이전 베팅에서 계속 이겼거나 진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즉 그동안 잃었다고 해서 적당히 이기게 해주지 않다는 것이다.

    포커머신엔 베팅자에게 돌아가는 예상치가 있다. 이는 베팅 총액의 일정 부분이 플레이어에게 되돌아가는 것을 말하는데, 호주 정부의 규정은 85%다. 그러나 이 환원치는 보장된 결과가 아니라 우연의 결과일 뿐이다. 가령 동전을 100번 던지면 앞면이 나올 확률이 50%다. 하지만 앞면이 50번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하물며 포커머신처럼 1억4000만 가지의 다른 가능치가 있을 경우 불확실성은 더욱 커진다.

    결론적으로 포커머신은 설치를 허가받은 업소가 이익(하우스 마진)을 올리도록 만들어졌다. 또한 전체 수익금의 3분의 1을 세금과 공과금으로 정부에 지불하도록 규정돼 있다. 오래 전의 수치이지만 1998년 호주에서 포커머신이 올린 수익금은 58억호주달러다.

    “그게 사실이라면 누가 포커머신에 돈을 넣겠느냐?”는 필자의 물음에 박주혜씨는 “한인 밀집 거주지역인 캠시에 오아시스라는 조그만 호텔이 있는데, 그곳은 호주에서 매년 1~2위를 다툴 정도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그곳엔 한인동포 노동자들이 밤마다 진을 치고 있으며, 근년엔 중국에서 온 동포들까지 가세해 힘들게 번 돈을 기계에다 쏟아붓는다”고 안타까워했다. 주말을 이용해 찾아간 오아시스 호텔은 박씨의 말대로 한인 동포들로 북적였다.

    담배연기보다 가벼운 주급봉투를뒷주머니에 푹 찔러넣고목공 송씨가 오아시스로 간다아무도 반겨주는 사람 없는캠시의 주말그래도 송씨를 알아주는 곳은오아시스뿐이다사막보다 더 말라비틀어진 도시야자수 몇 그루 서 있고지친 낙타가 목을 축이는 곳오아시스 호텔시내에 사는 유곽의 여자들처럼눈 찡긋거리며 손짓하는곱게 단장하고 선 포커머신들그래, 내 주급을 베팅한다마지막 동전을 건네받을 때까지만마주앉아 친구 해주는 너나일의 여왕(The Queen of the Nile)

    -윤필립의 시 ‘오아시스 호텔’ 전문

    호주에서는 도박을 일종의 문화로 간주한다. 도박 천국으로 알려진 미국에서조차 일정한 지역 안에서만 도박이 합법으로 인정되는 데 반해 호주에선 도박이 건국 당시부터 합법이었다. 그렇다면 도박이 어떻게 호주 땅에서 전통문화로 승화될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은 ‘죄수’의 유배지로 시작된 호주의 백인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영국에서 죄수가 되어 불모지 호주 땅으로 내몰린 초기 백인들은 각종 도박에 빠져 모국을 그리는 향수병을 달랬고 그것이 전통으로 굳어진 것이다.

    사실 호주에선 경마뿐 아니라 로또 복권, 카지노, 개 경주, 요트 경기, 각종 스포츠 등 도박이 될 만한 것이면 놓치지 않고 내기를 건다. 오죽하면 창을 기어오르는 파리에게조차 돈을 걸어놓고 행운을 기다릴까.

    복권 수입으로 만든 오페라 하우스

    호주 국민이 매년 도박으로 잃는 돈을 모으면 국가예산의 40%에 육박한다는 통계도 있다. 그러나 호주인은 도박판에서 잃은 돈에 대해 별반 개의치 않는다. 호주의 모든 도박 산업을 주정부가 관리하고, 그곳에서 나오는 수익금을 주정부의 예산으로 활용하거나 공공복지기금으로 지출하므로 도박에서 잃은 돈이 결국은 자신에게 되돌아온다고 생각해서다.

    그 대표적인 예가 호주의 상징처럼 돼 있는 오페라 하우스인데, 당시 엄청난 액수의 건설비를 모두 복권 수입으로 충당했다. 물론 문화계 인사들이 반대했지만 도박이 일종의 문화로 대접받는 호주에서 통할 리가 없었다.

    호주에서 도박이 사회문제로 대두한 것은 도박이 성행하기 시작한 건국 초기와 그 궤를 함께한다. 도박 자체는 불법이 아니지만 도박으로 물의를 일으켜 처벌을 받은 사람이 부지기수였다고 호주의 역사책은 기록하고 있다.

    1999년 호주생산성위원회가 조사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호주인의 40%가 정기적으로 도박을 하고, 80% 이상의 국민이 연 110억호주달러를 잃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금액은 10년 전에 비해 무려 두 배가 넘는 액수라고 한다.

    복권은 호주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도박이고, 그 다음으로 포커머신, 경마, 카지노 순이다. 그러나 호주에서 도박으로 소비된 전체 금액의 절반 정도가 포커머신에 의해서였다. 또한 중독성이 가장 강한 도박도 포커머신이다. 호주에는 약 18만개의 포커머신이 있고 시드니가 주도인 NSW주에 그 절반이 넘는 9만5000개가 있다. 이는 전세계 포커머신 대수의 10%에 해당한다.

    그뿐이 아니다.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호주 전체인구의 2.3% 약 33만명이 도박 때문에 생활고에 시달리고 가정이 깨지는 불행을 맞이했다고 한다. 이는 미국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도박 중독자들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정부가 나서서 심각한 사회병리현상으로 등장한 도박문제를 해결할 방편으로 고등학교 수학시간에 도박에서 이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확률을 통해 가르치겠다는 아이디어를 냈을까.

    지난해 10월, 케이 패터슨 사회서비스 연방장관은 “도박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사람의 4분의 1 이상이 25세 이하 청소년으로 밝혀졌다”면서 “그들이 도박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구체적인 통계를 이용하여 도박의 허구를 가르치는 게 아주 효과적일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전천후 ‘도박공화국’ 호주

    호주의 대표적인 포커머신인 ‘나일의 미소.’

    한편으로 주정부에서는 도박산업을 유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한다. 도박산업에서 거둬들이는 세수(稅收)가 천문학적인 액수이기 때문이다. 1973년에 합법이 된 카지노가 현재는 서부 호주를 제외한 모든 주에 들어서 모두 13개나 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도박 중독자들의 대부분이 중산층 이하의 노동자, 농민, 소규모 자영업자 같은 서민계층이어서 ‘도박으로 거둬들인 세금으로 공공사업에 투자하면 문제가 없다’는 주정부 당국자의 주장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초등학생도 즐기는 경마

    호주의 봄은 멜버른 교외의 플레밍턴경마장에 장미꽃이 필 무렵에 시작되고 호주인의 사계절은 멜버른컵 경마대회로부터 시작된다. 경마장 주변의 수만 그루 장미꽃이 겨울을 이겨내고 봄소식을 전하면 멜버른 시민은 봄맞이 축제를 시작한다.

    멜버른컵 대회에 출전한, 지상에서 가장 빠른 말 24마리가 갈기를 휘날리며 3200m의 잔디트랙을 달리는 동안, 국가 수반에서부터 오지의 농투성이까지 호주인 모두 숨을 죽인 채 한곳을 응시한다. 그야말로 ‘네이션 스톱(Nation Stop!)’이다.

    지금은 60여 국가에 생중계되며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이 걸린 지구촌 잔치로 치러지지만, 멜버른컵 첫 대회가 열린 1861년만 해도 호주와 뉴질랜드산 말들이 참가하는 일부 부유층 호사가들의 오락에 불과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하면서 명성을 얻은 이 대회는 호주 축산농가의 큰 소득원인 종마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견인차 노릇을 했다. 게다가 위성을 통해 생중계되면서부터 경마광인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을 포함한 전세계 경마팬들도 리얼타임으로 마권을 사게 되어 빅토리아주(멜버른의 주도(州都))의 주요 수입원이 됐다.

    멜버른컵 대회가 열리는 날을 공휴일로 지정한 빅토리아주는 말할 것도 없고 호주 전역의 초등학교에서조차 TV를 통해 경마를 지켜보면서 베팅할 수 있다. 당일 마지막 수업이 끝날 때쯤 대회의 하이라이트인 여덟 번째 레이스가 벌어지도록 배려해 학생들이 경마 열기를 함께 호흡하며 호주의 전통을 체득하게끔 만든다. 자신이 선택한 말을 응원하는 학생들은 경마에서 이길 경우 배당금 전액을 자선단체에 기부한다.

    “그들은 주말마다 경마장으로 몰려가 맥주를 마시며 한바탕 소동을 벌이곤 했다. 그러나 그것이 소동이 아닌 축제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호주에는 식민지 국가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출되지 못한 불만 같은 것이 있었는데, 동네마다 세워진 경마장이 그 응어리를 태워버릴 유일한 탈출구였다. 또한 경마는 누구에게나 균등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호주가 이념처럼 여기는 평등주의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1891년 호주를 방문한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이 그의 자서전에 기록한 호주여행기 중 일부다. ‘호주문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밴조 페터슨은 “평생 소원이 멜버른컵에서 우승하는 것”이라고 말했으며 필명조차 자신의 애마 이름에서 따와 ‘밴조’라고 지었다. 현재 호주에서 사용하는 10달러짜리 지폐에는 밴조 페터슨의 초상과 함께 수십 마리의 말이 그려져 있다.

    도박이 문화가 되어버린 나라, 도박으로 하루가 열리고 도박으로 밤을 새는 나라가 호주라는 사실을 안 후에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니 호주를 ‘도박공화국’으로 불러도 무리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드니 북부의 대표적인 주택가 중 하나인 에핑 지역에 있는 필자의 집 주변에도 도박장이 널려 있다. 한국 같으면 특별한 지역에서나 볼 수 있지만, 호주에서는 자동차를 타고 몇 분만 가면 잘 차려진 식탁처럼 즐비하게 늘어선 클럽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꼼꼼하게 조사해보니 필자의 집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만 10개 정도의 클럽이 있고 그 안에 포커머신이 설치되어 있다. 이 정도면 ‘도박 권하는 사회’라 불러도 할말이 없을 것 같다.

    호주에서 최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데일리 텔레그래프’지는 지난해 9월6일자에 “주정부가 포커머신 수익금 공개를 꺼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NSW주에서만 1억4000만호주달러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밝혀졌다.

    전천후 ‘도박공화국’ 호주

    ‘단도박 모임’을 운영하는 브랜던 호반 신부.

    NSW주는 이 사실을 공표하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몇몇 시민단체와 12개월 동안 법정공방을 벌인 끝에 법원으로부터 포커머신으로 발생한 수익의 자세한 명세를 언론에 공표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당시의 판결로 NSW주 각 클럽의 수익 리스트도 함께 공개됐는데, 캠시에 소재하는 오아시스 호텔을 비롯해서 버우드 클럽, 카슬 힐 클럽, 허스트빌 클럽 등 한인 밀집 거주지역의 클럽들이 ‘톱 텐’에 올랐다.

    이는 호주 한인동포들이 포커머신에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붓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곳이 카지노든 클럽이든 경마를 중계하는 TAB이든 한인동포들이 출입하지 않는 도박장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도박장에는 한글로 된 도박 상담 팸플릿이 비치되어 있다.

    병 주고 약 주고

    취재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호주처럼 도박병 치료를 위해서 애쓰는 나라도 없다. 그야말로 ‘병 주고 약 주는’ 격인데, 도박 중독자 치료를 위한 프로그램 운영비용도 도박 산업에서 의무적으로 감당하게 만들었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도박 비즈니스로 벌어들인 수익금의 일부를 강제 징수해서 도박중독 치료 비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

    도박중독을 치료하고 싶으면 ‘G-line’에 전화를 걸면 된다. 그러면 항상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다. 필자가 만난 ‘웨슬리 도박문제 상담서비스’의 박주혜씨도 스타시티 카지노의 지원금을 후원받아 도박문제를 상담해주는 카운슬러다. G-line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돕는다.

    ‘개인상담, 가족상담, 부채와 재무상담, 법률상담 도박장 자진입장금지 프로그램(Self-Exclusion Program) 신청 도움. 모든 상담은 비밀이 보장되고 무료임. 본인이 원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상담 제공함.’

    자발적인 단도박 모임

    G-line과 달리 시드니 서부지역인 파라마타에 위치한 브랜던 호반 신부의 사무실에서 열리는 한인동포 단(斷)도박 모임은 모든 것을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자발적인 모임이다. 아주 소액이지만 운영비용도 도박중독자 스스로 부담하고, 모임의 진행도 거의 본인과 협심자의 솔직한 고백으로 구성된다.

    호반 신부의 소개로 만난 한국인 K는 경마 때문에 자살 직전까지 간 인물이다. 그는 경마에 빠져 무려 30만호주달러(약 2억4000만원)를 잃었다. 하루라도 도박장에 가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던 K는 단도박 모임을 통해 비로소 거듭날 수 있었다.

    그는 “처음 도박을 그만두려 했을 땐 모든 생을 포기하는 듯한 무력감이 들었지만, 6년째 단도박을 실천하면서 이제는 매일 신의 은총에 감사드리고 있다”고 털어놨다.

    단도박 모임이 꼭 가족 모임과 함께 열리는 것도 특별하다. 가족이 함께 치료받지 않으면 도박을 끊기가 매우 어려울 뿐 아니라, 가족도 함께 도박병을 앓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도박 중독자와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도 큰 이유다.

    완벽한 프로그램으로 세팅된 포커머신과 상견례 겸 ‘맞짱’을 뜨며 카지노에서 첫날밤을 보낸 필자의 마음 한구석엔 마치 ‘이루지 못한 사랑’ 같은 아쉬움이 남아 있다. 자꾸만 필자에게 진한 윙크를 보내던 ‘나일의 여왕’이 눈에 밟힌다.

    시드니 스타시티를 일컬어 누가 ‘별들의 고향’이라고 했던가. 필자가 하룻밤 풋사랑을 나눴던 스타시티는 ‘절망의 바이러스’가 네온불빛처럼 점멸하던 환락가였다. 아니, 절망의 구렁텅이였고 탐욕만이 횡행하는 아수라였다.

    그런데 어찌하랴. 창가에 켜놓은 촛불 속으로 날아들어 자신을 불태워버리는 불나방처럼 그 아수라에서 산화하고 싶은 마음을. 연옥의 고통인 줄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발길이 그곳으로 향하는 것을 뉘라서 말리겠는가.

    그런 심리는 유럽계 호주인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스포츠나 도박이 아니면 흥분할 일조차 없는 ‘심심한 천국’ 호주. 그 역사 속에서 호주가 도박공화국이 된 유래를 찾은 언론인 던스틴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칼럼을 썼다.

    “호주의 도박은 호주의 역사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첫 식민지 시대를 살펴보면 이민자들 대부분이 현실도피자들로 채워져 있었는데, 그들은 도박을 하는 기분으로 생을 결판내고자 호주로 건너온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생을 결판내버린 사람들은 호주에서 느끼는 따분함이나 외로움에서 벗어나고자 도박에 매달렸고, 그후 호주땅을 밟은 이민자들도 그들의 전철을 밟고 있다. 아무래도 도박공화국이라는 호주의 자랑스럽지 못한 이미지는 오랫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아듀, 못다 한 사랑이여

    이쯤에서 호주의 도박 얘기를 끝맺자.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가끔씩 허방을 디딜 때가 있다. 필자 또한 카지노라는 구렁텅이에 잠시 허방을 디뎠던 것 같다. ‘도박 삼매경’에 빠져서 여섯 시간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포커머신을 즐겼으니 그야말로 위험천만의 순간이었다. 도박중독은 그런 식으로 시작된다는데….

    더구나 다 잡았던 고기를 놓친 기분도 뒷맛이 썩 좋지 않다. 그러나 아서라! ‘나일의 여왕’과 나눈 하룻밤 풋사랑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이다. ‘못다 이룬 사랑이 더 애틋하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다. 카지노에서의 좋은 기억들은 다 묻어두고, 스타시티 카지노 동쪽 계단에서 느꼈던 치욕스런 무력감이나 절망감을 다시 한 번 가슴 깊이 새기면서 “아듀, 못다 한 사랑이여”라는 말과 함께, ‘쿨’ 하게 돌아서야 한다. 그건 ‘잘못된 만남’이었으니까.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