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이 역할은 김선아이기에 해낼 수 있었다. 그는 늘 대본에 묘사된 액션보다 좀더 확실하고 동작이 큰 액션을 선보였다. 욕심이 큰 만큼 몸을 사리지 않았기에 촬영 기간 내내 온몸에 멍과 상처를 안고 살아야 했다.
심지어 김선아는 고난도 동작인 ‘다리 180。찢기’까지 해냈다. 이 동작은 시나리오에는 없었지만, 김선아는 박광춘 감독의 요구에 이미 유연하게 만들어둔 몸을 최대한 활용해 너끈히 소화했다. 이 장면이 화제가 되자 김선아는 “물론 감독님이 갑작스레 다리 찢기를 해보라고 주문했을 때는 원망스럽기도 했다”며 웃었다. 사실 일본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학창시절부터 수영을 했기 때문에 김선아의 몸은 상당히 유연하고 탄탄하다. 한때 수영선수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그는 관객이 눈치채기 힘든 장면조차 대역을 거부하고 직접 액션 연기를 했다고 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역을 써서 좀더 근사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과 몸을 보호하기 위해 대역을 쓰는 것과 욕심을 부려서 직접 연기 하는 것 중 어느 게 옳은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대역을 쓰지 않고 배우가 직접 촬영했을 때 느끼는 만족감과 뿌듯함이 다른 경우보다 훨씬 큰 것만은 사실이다.”
여배우가 대역 없이 액션 장면을 소화하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 본인의 의지가 없다면 기대하기 힘든 부분이다. 그러나 김선아는 촬영 중 상대배우 공유에게 얻어맞고 부상을 당하면서도 액션을 향한 의지를 불태웠다. 단지 액션을 원했던 것이 아니라 연기를 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선아표’ 코미디 액션
그러고 보면 김선아는 여형사 역만 벌써 세 번째다. 1997년 SBS 드라마 ‘승부사’에 이어 2002년 스크린 데뷔작 ‘예스터데이’에서도 여형사를 연기했으니 그의 단골 캐릭터라 해도 될 것이다. 김선아가 작품을 고를 때 중시하는 것은 ‘필(feel)’이다. 다음 작품에서 또 여형사를 맡으라고 해도 ‘필’만 꽂힌다면 김선아는 또다시 도전할 것이다. “액션 신은 다시 하고 싶지 않다”고 곧잘 푸념하는 그이지만 ‘김선아 스타일’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김선아와 같은 여배우는 흔치 않다. 한국 영화계에서 김선아가 차지한 위치는 그만큼 확고하고 독보적이다. 코믹 연기를 하는 배우는 있지만 ‘코미디 액션’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는 드물다. 단지 액션을 선보일 수는 있어도 홀로 나서 원톱으로 영화를 이끌어갈 만큼의 티켓파워를 가진 여배우는 없다. 바로 이 지점이 김선아라는 배우가 영리하게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다. 덕분에 김선아는 최고의 미모나 최고의 몸매를 가지지 못했어도 자신의 ‘이름’ 하나만으로 가벼운 평가를 받지 않는 톱배우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
김선아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작품은 2002년작 영화 ‘몽정기’다. 이 영화는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색즉시공’과 함께 흥행에 성공해 국내에 본격적인 섹스 코미디 영화 붐을 몰고왔다. ‘몽정기’에서 김선아는 남학생들의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교생 ‘유리’ 역으로 등장해 남성 팬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영화를 본 남성 관객 중 상당수는 ‘좀더 현실적’이라는 면에서 ‘색즉시공’보다 ‘몽정기’에 더 높은 점수를 줬다. 김선아가 건강미와 섹시미를 동시에 갖춘 배우의 이미지를 갖게 된 것도 바로 이 작품을 통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