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인물 탐구

‘변화를 부정하지 않는 정통주의자’ 교황 베네딕토 16세

“믿음 없는 자들은 개혁도, 쇄신도 할 수 없다!”

  • 글: 정종휴 전남대 법대 학장 jeongjh@chonnam.ac.kr

‘변화를 부정하지 않는 정통주의자’ 교황 베네딕토 16세

2/6
‘변화를 부정하지 않는 정통주의자’ 교황 베네딕토 16세

정종휴 교수가 1999년 8월 독일 레겐스부르크 근처 말렌도르프 수도원에서 현 교황과 세 번째로 만나 찍은 사진.

필자는 로마로 편지를 보냈으나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이듬해 다른 일로 로마에 갔다가 라칭거 추기경이 집전하는 미사에 참례했다. 미사가 끝난 후 추기경에게 “말씀하신 대로 편지를 보냈는데, 비서실에서 편지를 아직 전해 드리지 못한 것 같다”고 했더니 그는 웃으면서 “편지는 잘 받았지만, 식중독으로 한 달 남짓 고생하는 바람에 답장이 많이 밀렸다”고 답했다. 그 자리에서 한국어판 번역 허가와 한국 독자들을 위한 인사말을 써주겠다는 약속도 얻어냈다.

그후 번역이 거의 마무리됐다고 편지를 보내자 추기경은 약속대로 한국 독자들을 위한 서문을 보내왔다. 추기경은 자신의 첫 번째 대담집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 일부를 인용한다.

“주된 걸림돌은 회복이라는 표현입니다. 이 말이 현대의 지배적인 역사철학에서 부정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역사철학의 근본사상을 형성하는 것은 진보에 대한 신앙입니다. 그러니 새로운 것을 더 나은 것으로 여기고 과거의 것은 불충분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자뿐 아니라 많은 이에게 혁명이 더 나은 세계에 대한 가장 거룩한 희망을 나타내는, 일종의 성사적인 용어가 됐습니다. 회복은 옛것을 다시 세우려는 것으로 또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주 쓰는 ‘반동’이라는 개념과 짝을 이루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저도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파괴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지라도 복원은 있어야 합니다. 이는 과거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참된 쇄신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또 이 책의 내용이 비관적이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진보 신앙은 낙관주의가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역사의 발전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척도로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라는 범주는 적절치 않다고 밝혀왔습니다. 진보사관으로 역사를 진단한다 할지라도 모든 구체적 발전 형태를 낙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사회건 저마다의 가치 기준이 있습니다. 교회의 가치 기준은 믿음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발전은 믿음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저는 지난 20년 동안 교회 안에서 이뤄진 발전의 구체적인 과정을 사회학적, 비판적으로 평가했습니다. 흡인력과 생명력의 상실이 너무도 명백했고, 외적인 활력의 상실이 교회의 내적인 힘을 등한시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또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태만도 가져왔습니다.”

미지의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정다운 인사말 수준이 아니라 대담집을 둘러싼 세계적 논란에 대한 정면 응수였다. 이 글은 훗날 독일의 한 신학잡지에 ‘신앙의 현재상황-그후 10년’이란 제목으로 실렸다.



反가톨릭주의자와의 대담

1996년 추기경의 또 다른 대담집 ‘이 땅의 소금(Salz der Erde)-삼천년기의 문턱에서 본 그리스도교와 가톨릭교회’가 출간됐다. ‘신앙의 현재상황’이 이탈리아어 원본을 추기경의 제자가 독어로 옮긴 것인 데 비해 ‘이 땅의 소금’은 페터 제발트라는 저널리스트와 직접 독어로 대화를 나눈 것이다. ‘신앙의 현재상황’은 추기경의 생각인지 대담자의 생각인지 분명하지 않은 곳이 있었고 주제가 그다지 포괄적이지 못했다. 게다가 대담자가 추기경을 잘 이해하는 ‘보수주의자’였다.

하지만 ‘이 땅의 소금’은 달랐다. 우선 대담자 페터 제발트가 유별난 사람이다. 1954년 보쿰에서 태어나 파사우에서 자란 제발트는 소년 시절 신앙을 잃고 늘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전쟁을 입에 올린 극렬 공산주의자였다. 고등학생 시절 이미 좌익 신문을 발행했던 그가 독일 지성을 대변하는 시사 주간지 ‘슈피겔’ 에 기자로 입사한 것은 반종교적 관점에 바탕을 둔 날카로운 분석 능력과 문장력 때문이었다. 그는 기자 생활을 하면서 크리스마스와 부활절 때면 반드시 가톨릭교회를 공격하는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더욱 효과적으로 교회와 추기경에 대한 비판 기사를 쓰려 했고, 이를 위해 추기경의 저술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건 등 교회 문헌을 연구했다.

2/6
글: 정종휴 전남대 법대 학장 jeongjh@chonnam.ac.kr
목록 닫기

‘변화를 부정하지 않는 정통주의자’ 교황 베네딕토 16세

댓글 창 닫기

2022/06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