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이 격찬한 한국 교육
한국 교육은 국내에서는 온갖 비난과 질타의 대상이 되지만, 신기하게도 외국에서는 으레 상찬(賞讚)과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일례로 지난해 4월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교육장관회의에서 다른 나라 교육 수장들은 한국 교육, 특히 한국의 초·중등교육은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고 입을 모았다. 까다롭다는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World Bank)도 한국을 교육 모범국이라고 지칭한다. 그렇다면 한국 교육의 강점과 잠재력은 무엇이며, 약점과 장애요인은 무엇인가.
사실 교육이 지난 수십년 사이 한국이 성취한 경이적인 산업화와 민주화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실제로 교육은 한국의 산업화에 필요한 양질의 인력을 공급했고, 시민의식을 고양함으로써 민주화를 견인했다. 만약 우리가 그간 인적자원 개발에 소홀했다면, 오늘날 그토록 자랑하는 경제발전과 민주화, 그 어느 것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 교육의 두드러진 성과는 초·중등학생들의 학업성취도에서도 드러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비교연구(PISA 2003)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의 학업성취 소양이 41개국 중에서 문제해결 능력 1위, 읽기 2위, 수학 3위, 과학 4위, 종합성적 2위로 나타났다.
성적만 뛰어난 게 아니다. 학생간 성취도 격차가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낮고, 학력부진아 비율이 OECD 전체가 21.7%인데 견주어 우리는 6.6%에 불과하는 사실 또한 고무적이다. 또한 중학교 2학년 대상의 국제비교(TIMSS)에서도 46개 참가국 중 수학 2위, 과학 3위라는 발군의 성적을 거두었다. 이러한 결과는 평준화정책이 학력의 하향 평준화로 이어졌다는 우리 사회 일부의 주장을 잠재우기에 충분한 논거가 된다.
외국이 부러워하는 한국 교육의 또 다른 강점은 세계 최정상의 교육정보화 기반이다. 한국은 이미 2002년 모든 초·중등학교에 세계 최초로 초고속 인터넷을 연결했고, 지난해 4월1일에는 교육방송(EBS)을 통해 역시 세계에서 처음으로 10만명이 동시에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 동영상 수능 강의 서비스가 제공됐다. e-러닝 선도 국가로서 한국의 위상을 크게 높인 것이다. 이 밖에도 우리 사회에는 전통적으로 교육과 학습을 중시하는 사회문화적 풍토가 깊이 뿌리내렸고, 다른 나라에 비해 우수한 교원들이 교육현장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한국 교육은 이러한 ‘빛’과 더불어, 오히려 그를 압도하는 어두운 ‘그림자’를 안고 있다.
우선 삶의 현장에서 가장 치열하게 직면한 교육 문제는 과열 입시경쟁과 이와 연관된 엄청난 사교육비의 무게다. 가계의 사(私)교육비 부담은 해마다 증가해, 2004년 가구당 월평균 자녀교육비는 49만4000원에 달한다. 사교육비에서 비롯된 가계압박 때문에 생활이 쪼들리고, 심지어 가정해체의 위기까지 겪는다. 증가일로의 조기유학 대열과 ‘기러기 아빠’의 양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저출산의 주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폭발적인 교육열의 빛과 그림자
입시 위주의 교육은 인성교육과 창의성교육을 뒷전으로 몰아내 학생들의 심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앞서 언급한 PISA 결과를 다시 살펴보면, 우리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매우 높지만 아쉽게도 학업에 대한 흥미는 대체로 낮다. 인생의 한 고비인 대입이라는 험준한 고갯길을 넘기 위해 마지못해 하는 학업이 신명나고 재미있을 리 없다. 인간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명제에 유의할 때, 우리는 PISA 결과에 마냥 즐거워할 수만은 없다. 이들의 학업성취도가 대학까지, 아니 이후의 교육과정까지 계속 이어질지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가 가장 행복한 터전이어야 하는데, 우리의 학교 현장은 어느새 청소년들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옥죄는 창살 없는 감옥이 돼버렸다.
학력의 세습과 가난의 대물림도 한국 교육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다. 입시경쟁이 치열하고 사교육비 부담이 과중할수록, 일류대의 문은 있는 자에게는 넓고 없는 자에게는 좁게 마련이다. 부모의 소득격차가 교육기회의 불균형으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 소득격차가 더 벌어지는 악순환을 낳는다. 계층간·지역간 교육격차는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벌주의·학력주의와 연계되어 사회통합을 심각하게 저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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