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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다석 유영모 선생의 하나뿐인 제자 박영호

“김용옥이 하버드 나온 걸 자랑하지만, 나는 똥 푸며 진리 깨쳤소”

  • 글: 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

다석 유영모 선생의 하나뿐인 제자 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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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면 그 안에도 해골들이 죽 앉아 있는 겁니다. 겁은 나고 잠은 오지 않으니 디립다 책만 읽어제꼈어요. 당시 칼 힐티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가 유행했는데 그건 아무 소용없었고, 톨스토이의 ‘참회록’을 읽으면서 비로소 평화가 찾아오는 걸 느꼈습니다. 톨스토이가 50세에 우울증을 앓았는데, 거기에 자살하게 될까봐 총도 치우고 노끈도 치우는 장면이 나와요. 그럴 때 하느님만 찾으면 평화를 얻는 걸 보고, ‘아, 하느님이 계시는구나’ 하고 처음 알게 됐지요.”

톨스토이 전집을 몽땅 구해 읽었다. 소설보다 50세 이후에 쓴 ‘예술론’ ‘인생론’ ‘우리가 어찌할꼬’ 같은 글들이 좋았다. 톨스토이 전집을 다 읽고 나니 어떤 관점이 생겼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을 얻은 기분이었다. 자신도 모르는 새 톨스토이안이 된 것이다. 특별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일부러 찾아가보았다. 마침 그때 부산 피난지에서 발간되던 ‘사상계’에서 함석헌 선생의 글을 읽었다.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였다.

“함 선생도 톨스토이안인 걸 금방 알겠더군요. 요즘 말로 하면 ‘코드’가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함석헌 선생의 주소를 알고 싶다고 사상계에 편지를 썼지요. 답장이 왔더군요. 잊지도 않아요. 그 주소! 원효로 4가 70번지. 물론 함 선생에게 다시 편지를 썼지요. 나는 톨스토이 영향으로 일생 농사짓고 살려는 사람이다. 한번 만나고 싶다고….”

순수하고 열정적인 숭배

박영호 선생 이야기가 재미있는 건 내용도 내용이지만, 디테일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함 선생을 처음 만난 식당 이름, 먹은 음식, 오갔던 말들을 50년이 넘도록 그는 선명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아무 날 대구 YMCA에 강의하러 내려가니 그때 만나자는 답장이 왔어요. 서두에 ‘나도 톨스토이 영향 받은, 작은 한 사람이다’라고 쓰셨더군요.”

대구에 가서 함 선생을 만나 강연을 듣고 다음 목적지인 대구보육원까지 따라갔다.

“보육원에서 함 선생을 아주 잘 대접합디다. 전쟁 직후인데 신선로가 나왔어요. 나는 그날 신선로라는 음식을 처음 봤어요. 침대에서도 처음 자봤고. 함 선생이 두루마기를 벗을 때 보니까 양가죽 조끼를 입고 계시데요. 그날 다석 선생님 이름을 처음 들었지요. 공경 경자(敬)를 말하는데 그게 구차할 구자 옆에 씌어 있다면서 구차함 속에서 공경이 나온다는 얘기 중이었던 것 같아요. 함 선생이 그날 내게 ‘톨스토이처럼 농사지으며 공부하는 공동체 생활을 해보고 싶은데 농장이 마련되면 같이 살지 않겠냐’고 제의하셨어요.”

마산요양소로 가는 함 선생을 배웅하고 집에 돌아왔다. 그로부터 40~50통의 편지를 교환했다. 강원도 평창 산꼭대기에 땅이 500마지기가 났다는 소식도 오고, 가봤더니 추워서 안 되겠노라는 연락도 왔다. 마침내 중앙신학대학에서 구내 이발소 하는 사람이 충남 천안에 있는 땅을 함 선생께 내놓았다는 편지가 왔다. 그 땅에 과수를 심었는데 거름 줄 일손이 필요하다, 똥 풀 사람은 박영호밖에 없다, 그러니 하루빨리 오라고 했다.

“아주 기뻤어요. 존경하는 스승과 함께 살러가는 벅찬 걸음인데 어찌 방자하게 차를 타고 갈 수 있겠나 싶데요. 한 걸음씩 걸어서 가기로 작정했어요. 마침 그때 함 선생님이 사상계에 ‘생각하는 백성이 산다’란 글을 발표하신 게 있었어요. 정치적 혁명을 하자면 난리 나니까 그 말은 않고 정신적 혁명을 해야 한다는 글이었는데, 굉장한 암시를 담고 있어 내 피를 끓어오르게 한 내용이죠. 그걸 복사해서 가방에 한아름 넣었어요. 가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그거 한 부씩 나눠주는 거예요.

구미 지나 안동 지나 문경으로 올라갔죠. 막 문경시멘트 공장이 생겼더군요. 충주 달천을 지날 때는 일부러 임경업 장군 사당을 찾아가 하룻밤 묵었어요. 함 선생님이 ‘성서적 입장에서 본 한국역사’에서 임경업 장군을 크게 칭찬한 걸 읽었거든요. 집을 나선 지 일주일 만에 천안에 도착했어요. 거지꼴이 돼서 선생 계신 곳을 찾았더니 마당가 위에서 주무시다가 반기며 일어나시더군요.”

이렇게 순수하고 열정적인 숭배가 있나. 그 시절은 비할 데 없이 행복했다. 중앙신학대학 학생이 몇 와 있어 농장 식구가 다섯쯤 됐다. 강당에 모여 같이 기도하고 찬송했다. 성경과 톨스토이와 사서삼경과 고문진보와 간디 자서전을 같이 읽고 토론했다. 물론 주된 일은 천안 시내까지 달구지를 끌고 가서 똥을 퍼오고 발이 세 개인 이북식 호미로 간작한 고구마 밭을 매는 농사일이었지만 힘들지 않았다. 뿌듯하고 충만했다.

“소낙비가 올 때 밭을 매면 마음이 급해지잖아요. 입은 다물고 호미질만 급히 하노라면 흐린 하늘 아래 호미소리만 들리죠. 선생님이 문득 호미를 멈추고 ‘들어봐라, 이것이야말로 최상의 음악소리 아니냐’ 하신 적도 있었죠.”

벅차게 살았다 한들 외로움이야 왜 없었을까. 똥을 담은 지게를 지고 천안시내를 걸어오면 눈앞으로 교복 입은 여고생이 지나가곤 했다. 눈물이 푹 솟는 날도 있었다. ‘내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지?’싶기도 했다.

“모든 종교의 기본은 에고(ego·자아)를 죽이는 것이잖아요. 기독교의 ‘날 버려라’, 불교의 고집멸도(苦潗滅道), 공자의 극기(克己), 노자의 무사(無私)가 다 에고를 죽이라는 말인데 나는 천안농장에서 어지간히 그 연습을 했던 것 같습니다. 영적으로 거듭나려면 에고를 죽일 수밖에 없어요. 에고는 거짓 나죠. 그게 죽는 자리에 참나가 들어서는 겁니다. 천안역 앞에서 행인에게 손을 벌리는 거지가 천사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었어요. 그 손이 하늘나라 시민증을 보여달라고 하는 것 같았어요. 손을 내밀면 천국시민이고 외면하면 아닌 거죠. 김용옥은 하버드 나온 걸 자랑하지만 나는 똥 푸면서 큰 가르침을 얻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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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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