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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속의 여성

‘성폭력 피해자’ ‘잔혹한 전사’ ‘자살 테러범’의 세 얼굴

  •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전쟁 속의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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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적으로 미 여군은 ‘직접적인 지상전투’를 벌이는 전투부대에 배속될 수 없다. 이 규정이 처음으로 문서화된 것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4년. 펜타곤(미 국방부)은 ‘직접적인 지상전투’의 개념을 ‘적군의 총격에 노출되고, 적군과 직접적인 신체 접촉을 할 가능성이 아주 높은 상황에서 적과 교전하는 행위’라 정의했다. 이에 따라 미 여군은 지상전을 주요 임무로 하는 여단(brigade) 이하 부대 단위에는 배속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미 국방장관 규약 : 직접지상전투의 정의와 임무규칙’. 1994).

미 여군은 특수부대원이 되겠다고 나설 수 없다. 미 해군 특수부대인 실(SEAL)은 응모자격 요건으로 ‘만 18세에서 28세 사이의 남성 현역군인으로 전과기록이 없어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미 레인저 부대나 델타도 마찬가지로 여군을 대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영화 ‘GI 제인’에서 볼 수 있듯, 아무리 뛰어난 체력을 지닌 여군이라도 엄청난 체력 소모가 따르는 훈련과정에서 합격점을 받기가 어렵다. 한 조사자료에 따르면, 특수부대원 훈련이 시작된 6일 동안 몸무게는 평균 9kg 줄어든다. ‘지옥훈련’을 통과했다 해도, 여성이 그 뒤에 실제로 주어질 고난도 특공임무를 해내기는 쉽지 않다.

정규군보다 반군이 여성 비율 높아

여성이 본격적으로 전쟁에 뛰어든 것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기록된다. 1914∼18년 사이에 영국군에는 약 10만명의 여군이 복무 중이었다. 이들 가운데 절반은 간호병으로, 최전선에 투입된 이는 거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영국이 독일군의 공세에 몰리던 1941년 윈스턴 처칠 수상은 병역법을 개정해 여성도 징집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19세에서 30세 사이의 미혼녀, 아이가 없는 독신녀(나중엔 43세로 연장) 750여 만명이 국가의 부름을 받아 군수공장 등에 동원됐다. 이 가운데 약 45만명이 군복을 입고 군대조직에 편입됐다. 이에 비해 아돌프 히틀러는 “여성들은 미래의 독일전사를 잘 키워야 한다”면서 여성 징집제를 시행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소련군에서 활동하는 여군의 모습은 당시로선 매우 인상적이었다. 소련 여군은 보병은 물론 전투기 조종사, 탱크병, 저격수, 정치장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치 침공군으로부터 ‘사회주의 모국’을 지키는 데 한몫 했다. 1942∼45년에 소련군 전투기 조종사의 12%가 여성이었다(소련군 내 여군 비율은 8%).

동유럽에서 독일군에 맞서 싸우던 게릴라 가운데도 여성이 다수 끼여 있었다. 또한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동유럽의 반소(反蘇) 게릴라 활동을 돕기 위해 영국군은 418명의 여자 특수요원을 훈련시켜 동유럽으로 내보냈다(이들 가운데 119명이 전사했다).

현재 140만 미군 병력 가운데 여군은 14%에 이른다(약 20만명). 1991년 걸프전쟁 당시 4만명의 여군이 수송병, 간호병, 통역병 등 비전투 인력으로 참전했다. 현재 이라크 주둔 미 여군은 1만1000명. 한국의 여군 비율은 0.3%지만, 전세계적인 평균 비율은 3%다. 남녀가 모두 병역의무를 지는 이스라엘은 30%, 캐나다도 10%로 비교적 높은 편이다. 일본 자위대는 약 4%선. 일반적으로 정부군보다는 반군의 여성 비율이 훨씬 높다. 이 글 앞에서 전체 병력 가운데 여군의 평균 비율이 3%라고 했다. 그것은 정규군의 통계치다.

지구촌의 여러 분쟁지역을 살펴보면, 많은 여성이 비정규군으로서 AK-47 소총 등을 들고 전투를 벌여왔다. 이들 비정규 무장조직은 민병대, 게릴라, 준군사조직(paramilitary) 또는 시민군(militia) 등 여러 이름으로 일컬어진다. 특히 병력 충원에 어려움을 겪는 소수민족의 무장세력일수록 여성의 비율이 높다.

이를테면 인도양 귀퉁이의 작은 섬나라 스리랑카의 반군 타밀 타이거 해방전선(LTTE)이 그러하다. 국제적십자사가 펴낸 ‘여성과 전쟁’이란 제목의 보고서(2000)에 따르면, LTTE 전체 병력 가운데 약 3분의 1이 여성이다. LTTE는 정부군에 맞서 힘든 싸움을 벌이면서 여성이든 미성년자든 가릴 것 없이 총을 들고 적을 향해 쏠 정도의 힘만 있다면 반군에 편입시켜왔다.

1996년 이래로 준(準)내전 상태에 빠져든 네팔도 여성 반군이 상대적으로 많다. 1만명이 넘는 반군은 마오쩌둥주의를 내걸고 네팔 왕정을 전복하려고 게릴라전을 펴고 있다.

아프리카 반군도 여성 비율이 높다. 2000년 봄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내전 때 취재한 반군 ‘혁명연합전선(RUF)’ 소속 여성들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거침없이 내뱉는 말투나 행동이 웬만한 남자를 주눅들게 할 정도였다. 그 가운데 30대 초반의 여자 반군 한 명은 부하들이 보초를 서면서 담배를 피우며 키득거리자 “보초 똑바로 서라!”며 매섭게 야단쳤다.

독재자 찰스 테일러가 이웃나라 나이지리아로 망명함에 따라 2003년 8월 내전이 끝난 라이베리아에서도 많은 여성이 반군 ‘라이베리아 화합민주연합(LURD)’ 소속으로 전투에 뛰어들었다. 그 가운데 ‘검은 다이아몬드’라는 이름의 한 20대 초반 여성 반군 간부가 허리춤에 권총을 차고, 한 손에는 AK-47 소총을 든 모습이 담긴 사진이 외신을 통해 전해지기도 했다. 내전 중 부모를 잃은 그는 1999년 정부군 병사들에게 강간을 당한 뒤 반군에 합류, 정부군에 맞서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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