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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사법 사상 첫 현직 인터뷰 이용훈 대법원장

“지금 국민의 바람은 ‘판사 앞에서 말 좀 하게 해달라’는 것”

  •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 위원 hthwang@donga.com / 사진·김성남 기자

사법 사상 첫 현직 인터뷰 이용훈 대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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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법원장은 국회 임명동의 투표에서 212표를 얻었다. 김황식(243표)·김지형(234표)·박시환(159표) 대법관이 얻은 표를 평균 내면 212표. 이는 묘하게도 지난 9월 국회 임명동의안 가결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 후보자가 받았던 찬성표와 정확히 일치한다. 흥미를 끄는 대목이다. 이 이야기를 꺼내자 이 대법원장은 “세 분이 나와는 천생연분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진보냐 보수냐 하는 정치권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결국 새로 뽑은 대법관 3인의 성향을 평균 내면 이 대법원장과 비슷한 코드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재판은 사회적 질병의 치유

-‘법관은 판결로만 말한다’는 법언이 이 시대에도 맞는다고 생각하는지요. 국민이 큰 관심을 갖는 사건 중에서 그것이 법률 문제와 관련 있을 때도 법관이 꼭 침묵하는 것이 옳은가요.

“‘법관은 판결로만 말한다’는 규정이 어디에 있습니까. 누가 그런 말을 만들었을까요. 민사소송의 대원칙이 구술(口述)주의입니다. 말로 하는 것입니다. 판사가 말 안 하면 어떻게 당사자들의 말을 정리하고 재판을 진행합니까. 공판중심주의도 법정에서 얘기 듣고 재판하자는 것 아닙니까. 판사가 재판 진행하는데 의심 나는 대목이 있으면 물어보면서 해야 될 거 아니에요.

그동안 판사들이 판결로만 당사자들을 설득하려 노력해왔는데 그게 한계에 부닥쳤다는 생각이 들어요. ‘설득은 법정에서 하고 판결은 간결하게 하라’고 동기부여를 하고 있습니다. 당사자들이 말을 좀 하고 싶은데 법정에서 말을 못하게 하기 때문에 법원과 국민 사이에 소통이 잘 안 되고 있습니다. 병원에서도 어지간한 병은 말만 들어줘도 대충 치료가 됩니다. 하물며 사회적 갈등이 생겼는데 그 사람들의 말을 안 들어주면 어떻게 치유가 되겠습니까. 재판은 사회적 질병에 대한 치유입니다. 사회적 질병은 말로부터 생기고 원한으로 생기는 것이니까 말을 들어줘야지요. 판결문이 간단해지는 것이 세계적 추세입니다. 미국에서도 1심 재판은 대부분 주문(主文)만 나갑니다.”



-우리 법원의 판결문이 긴 편인가요.

“판결문을 길게 쓰다 보면 사실이 아닌 것을 판사가 머릿속에서 궁리해 쓸 가능성이 높아지죠. ‘뼈다귀’만 쓰면 됩니다. 앞뒤가 잘 안 맞는다고 말을 만들다 보면 당사자가 경험하지 않은 사실을 판결문에 쓰게 돼요. 판결문으로 당사자를 설득하려 하면 실패할 수 있어요. 판결문은 누구든지 알아볼 수 있게 간결하게 써야 합니다. 지금은 너무 복잡하게 써서 오히려 이해하지 못해요. 법정에선 아무 소리도 안 하다 판결을 ‘꽈당’ 해버리면 당사자들이 납득하지 못합니다. 지금 모든 국민의 바람은 ‘판사 앞에서 말 좀 하게 해달라’는 거예요.”

-대법원에 식당을 만들어 법관, 법원 직원과 돌아가며 점심을 들며 의견을 듣는다지요? 그 중에 국민에게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는가요.

“전국 법원장 훈시를 하면서 ‘판사들을 만나봤더니 자기 고충 토로나 신분 향상 요구는 많은데 법원이 어떻게 국민의 요구를 더 받아줄지에 대한 처방을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판사들이 부글부글한대요.

판사가 스스로 재판한 것을 비디오로 찍어 모니터링해보라고 했죠. 어떤 판사가 자기 재판 광경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를 집에 가서 틀어보니까 도저히 못 봐주겠더라는 거예요. 자기가 봐도 어떻게 판사가 저렇게 재판할 수 있느냐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는 논란 속에서도 공직후보 검증 시스템으로 정착돼가고 있다. 인사청문회를 치른 한 고위 공직자는 청문회 전날 밤 걱정돼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일생을 까발리는 질문을 여러 의원으로부터 돌아가며 받는 일은 당사자에게 더없는 고통이다.

-사법 사상 처음으로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법원장이 됐는데요. 가장 고약한 질문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불쾌했던 질문이 뭐냐 하면, 강남 재개발 아파트 투기를 해 상당히 돈을 남긴 것처럼 몰아붙인 것이었죠. 사실이 아닌 얘기를 들으니 참 견디기 어렵더라고요. 그때 내 표정이 험악했던 모양이에요. 청문회장에 나와 있는 판사들이 ‘표정을 풀라’고 쪽지를 보내더라고요.”

검찰 출신 대법관도 필요

이 대법원장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 대법원장 자리를 놓고 최종영 전임 대법원장과 경합했다. 대통령과 고향이 같은 점이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그때 대법원장이 못 돼 서운했겠지만 이번에 63세에 취임해 6년 임기를 채우면 정년(70세)이 거의 되니 오히려 더 잘 됐는지 모른다.

“6년 전 대법원장이 됐으면 국민의 소리를 들을 기회가 없었겠죠. 법원 내부의 시각에서만 법원을 바라보다 끝나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요. 재판 수요자의 처지에서 법원을 5년 동안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판사들에게 바꾸자고 동기 부여하는 모든 것은 밖에서 법원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출발한 것이죠. 6년 전과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판사만 하면 잘 모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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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동아일보 논설 위원 hthwang@donga.com / 사진·김성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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