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호

‘황우석 사태’ 大해부

나팔 분 언론, ‘오버’한 정부, 쉬쉬한 전문가들이 환상 키웠다

  • 이성주 동아일보 교육생활부 기자 stein33@donga.com

    입력2005-12-27 16: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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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황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한국 과학계 최대의 성과라던 논문은 폐기처분을 앞두고 있고, 혼란스러움은 분노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국익’과 ‘진실’, ‘취재윤리’와 ‘연구윤리’를 넘나들며 격렬하게 진행된 소동은 누구도 믿기 어려운 결론을 향하고, 감당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둘 드러나는 것에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차라리 잊어버리고 싶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그러나 과연 그렇게 넘어가는 것이 옳을까. 세상을 뒤흔들며 진행된 이 희대의 사건을 그렇게 흘려버려도 되는 것일까.오랜 기간 관련 분야를 취재하며 숱한 ‘과학 신드롬’의 명멸을 지켜본 기자가 사태의 처음과 끝, 그 안에 얽혀있는 갖가지 문제의 뿌리를 헤집어보려 펜을 들었다. 필자 이성주 기자는 1996년부터 2004년까지 ‘동아일보’에서 건강·의학분야를 취재했다. 2004년 연세대 보건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1년 동안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보건·의료정책을 연구했다.]

    ‘황우석 사태’ 大해부
    지난 한 달은 말 그대로 롤러코스터였다. 어떤 이는 격분하고 어떤 이는 슬픔에 젖었다. 양쪽 모두 목숨을 걸었던 싸움은 승자와 패자가 뒤바뀌고 환호와 황망함이 교차하는 반전의 반전을 거듭해 끝으로 달려간다. 상황의 끝자락을 지켜보며 필자의 머리 속에 가장 아프게 떠오르는 이름은 ‘강원래’와 ‘최은진’이다.

    아직 논쟁의 소용돌이가 한창이던 11월26일 서울 여의도 MBC 사옥 앞에서 열린 ‘황우석 교수 지지 촛불 집회’. 수십명의 황 교수 지지자 가운데 눈에 들어온 것은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클론’의 멤버 강원래씨와 부인 김송씨였다. 강씨는 “이렇게 무작정 비판하는 것은 줄기세포에 희망을 건 사람에겐 삶을 포기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호소했다. 사흘 뒤에는 가수 채연이 자신에게 춤과 무대 매너를 가르쳐준 강원래씨를 위해서 줄기세포 연구용 난자를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최은진(10)양의 사진은 수주 전 대부분의 아침 신문에 동시에 실렸다. 한 살 때 교통사고로 목뼈를 다쳐 가슴 아래쪽이 마비된 최양은 아버지와 함께 세계줄기세포허브에 환자 등록을 하기 위해 서울대병원에 왔다.

    “줄기세포가 뭔지는 잘 몰라요. 다만 황우석 교수님이 연구에 꼭 성공해서 저도 걸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필자는 정말 소망했고 지금도 소망한다, 거짓말처럼 그 날이 오기를. 황 교수가 개발한 줄기세포 치료법 덕택으로 강원래씨가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치는 부인 앞에서 채연과 함께 히트곡 ‘쿵따리 샤바라’를 부르는 광경을 보고 싶다. 열 살배기 은진이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와 부둥켜안고, 파킨슨병 때문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10만 환자가 배우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산책하는 광경을, 뇌중풍으로 7년째 병상에 누워 있는 선배가 벌떡 일어나 그동안 눈물로 간호한 아내의 손을 꼭 부여잡는 광경을 정말로, 정말로 보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비극을 향해 한 발짝씩 다가가는 분위기다. 오로지 황 교수를 신(神)으로 알고, 줄기세포 치료법이라는 희망 하나로 산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지금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 할 말이 있기는 할까.

    이쯤해서 한 가지 고백을 하는 것이 옳겠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할 뿐, 허상과 환상은 처음이 아니다. 일종의 ‘집단 무의식’이었을까.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간다. 잊고 싶은 것은 자기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채로 잊혀지기 마련이다. 황우석 사태 앞에 그에 못지않은 많은 사례가 있었다. 단지 이번처럼 엄청난 소리를 내며 치닫지 않았을 뿐이다.

    잊혀진 허상

    1980년대 한국 언론은 유전공학의 발달로 조만간 식품혁명이 도래할 것이며, 농업과 과학의 합주(合奏)로 호박만한 토마토, 일곱 가지 맛이 나는 과일이 곧 양산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1990년대 유전자 치료법이 떠올랐을 때에는 10~20년 안에 만병을 치료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고, 21세기 들어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되자 무병장수의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 하나하나가 모두 엄청난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필자는 부끄럽게도 이 대열에서 나팔을 불었다. 1990년대 중반에는 5~10년 후면 일부 암(癌)을 치료할 수 있게 된다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생명의 신비는 한 겹을 벗기면 두 겹의 수수께끼가 등장할 만큼 오묘하기만 하다. 인체는 하나의 우주(宇宙)여서 사람의 뜻대로, 노력만 하면 뚝딱뚝딱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그 점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야 서서히 깨닫게 됐다.

    과학사에서는 1990년대 유전자 치료법이 또 하나의 선례(先例)를 남겼다. 당시 유전자 치료법은 지금의 줄기세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세계적인 화두였다. 1991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첫 치료법을 발표한 이후 고장 난 유전자를 제거하거나 다른 유전자로 대치해 질병을 고친다는 개념은 각국의 과학자들을 사로잡았다. 동물실험에 이어 임상시험도 봇물을 이뤘다.

    그러나 4, 5년 만에 부작용이 속속 나타나자 당시 NIH의 헤럴드 바무스 원장과 과학자들은 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우리가 오만했다. 다시 기초로 돌아가야 한다”고 결론을 내려야만 했다. 학문적으로 현재의 줄기세포 연구는 1990년대 초 유전자 치료법보다 훨씬 더 초보적인 단계다. 그러나 ‘황우석 신드롬’이 진행되는 2005년 한해동안에는 누구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2005년 한국에서 황우석 교수의 위치는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아마도 신(神)과 대통령의 중간쯤이 아니었을까. 국민의 절반이 선택한 노무현 대통령은 욕할 수 있어도 황 교수를 비판하면 매국노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PD수첩’ 사태 이후 황 교수에게는 이전의 ‘앉은뱅이를 벌떡 일어나게 하는 예수’의 이미지에 ‘십자가를 진 성자(聖子)’의 이미지까지 겹쳐졌다.

    그 와중에 이야기되지 않은 것, 이야기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밖에도 많다. 지금은 모두 알게 되었지만, 전문가 집단에서는 훨씬 오래 전부터 황 교수 열풍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필자가 지난 1년 동안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연수하며 만난 관련 연구소의 한국인 과학자 대부분은 황 교수 열풍에 대해 한국의 특수한 상황이 낳은 일종의 ‘해프닝’이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면 국내 학자들의 의견은 어땠을까. 필자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구한 대학교수들의 의견도 대동소이했다. ‘신드롬’을 비판하면 여론의 몰매를 맞거나 시기심 또는 소영웅심에서 비롯된 돌출행동으로 보일까 봐 입을 다물고 있었을 뿐, 대부분 ‘황사 바람’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였다. 나서서 입을 열지 않은 이들 모두는, 이 상황의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전달하지 못한 필자 역시 마찬가지로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언제부터 꼬여버린 것일까. 돌이키고 싶지 않은 상황이지만 처음부터 하나하나 되짚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앞서의 모든 과학 신드롬처럼 아무런 깨달음 없이 잊혀져서는 안 된다고 믿는 까닭이다. 황우석 신드롬의 조연자였던 언론에 몸 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써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미리 무언가를 알고 있으면서도 침묵했던 모든 이들이 비슷한 일이 일어날 때 또다시 침묵하지 않기를 기원하는 희망이다.

    황우석이라는 이름 석자를 들으면 누구나 ‘줄기세포’를 떠올릴 것이다. 반면 과학자 대다수는 황 교수를 ‘줄기세포 연구의 대가(大家)’로 부르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당시 소수의 과학자가 소리쳤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은 진실이다. 물론 최근의 파동 이후에도 황 교수가 세계 최고 수준의 복제 연구가이고 줄기세포 연구에 불을 지핀 주인공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황 교수의 연구를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자. 그의 이름은 1990년대 초부터 언론에 오르내린다. 그러다가 1999년 복제 소 영롱이를 탄생시키며 ‘스타 과학자’ 반열에 오른 황 교수는 2004년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하면서 복제 연구가에서 갑자기 줄기세포 연구의 대가로 불리기 시작한다. 복제와 줄기세포라는 크게 다른 분야, 거리가 꽤 있는 분야를 갑자기 건너뛴 믿을 수 없는 도약이었지만,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대신 노벨상후원회가 만들어지고, 황 교수는 국내의 온갖 상과 연구비를 휩쓸었다. 국가 요인(要人)에 해당하는 경호가 이뤄졌을 뿐 아니라 ‘범(汎) 황우석 사단’의 다른 연구원도 경호를 받기에 이른다. 황 교수가 노벨상을 받을 수 있게 하자는 비전문가들의 주장은 거셌지만, 황 교수의 연구가 노벨상을 받을 만한 것인지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무엇을 해서 노벨상을 받을지, 아니면 앞으로 어떤 성과를 거두면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냥 노벨상이었다.

    황 교수가 배아(胚芽) 복제와 조작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자라거나 세계 최고 수준의 팀을 이끄는 수장(首長)이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드물다. 세계 최초로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킨 영국 로젤린연구소에서도 황 박사의 ‘기술력’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줄기세포 분야에서는 검증이 필요했다.

    ‘황우석 사태’ 大해부

    2005년 11월26일 밤 황우석 교수의 팬클럽인 ‘아이러브 황우석’ 회원들과 한국척수장애인협회 회원 200여 명이 서울 여의도 MBC 사옥 앞에서 촛불 집회를 열고 있다.

    황 교수는 2003년 서울대 이종(異種)장기이식사업단과 함께 복제기술의 임상적용을 추진했다. 그러던 중 서울대병원 문신용 교수, 미즈메디병원 노성일 이사장과의 대화를 통해 패러다임의 전환을 맞게 된다. 문 교수는 국내 세포치료법 연구의 총책임자였으며, 노 이사장은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재정지원을 받으며 줄기세포를 연구하고 있었다.

    세 사람은 복제기술과 줄기세포 연구의 결합을 시도하기로 뜻을 모았고, 문 교수와 노 이사장은 황 교수팀에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모든 노하우를 전수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작품이 그 유명한 2004년 ‘사이언스’지 논문이다. 그리고 불과 십수개월이 지난 뒤, 사실은 ‘복제기술’ 전문가들인 서울대 수의학과의 황 교수 팀원과 이종장기이식사업단 소속 연구자들이 ‘줄기세포’의 대가로 불리게 된 것이다. 언론은 이 부분을 그냥 스쳐 지나갔고,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합리적 의심’이라는 첫번째 장벽이 소리없이 무너져내렸다.

    ‘미지의 설원’은 없다

    황 교수는 ‘PD수첩’의 첫 번째 보도 이후 기자회견에서 비장한 얼굴로 “아무도 발자국을 찍지 않은 설원(雪原)을 가는 심정으로 연구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또한 사실과 거리가 있다. 황 교수의 성과는 그동안 여러 사람이 거둔 줄기세포 연구 성과가 생략된 채 소개됐을 뿐, 이미 많은 과학자가 수십년 동안 ‘발자국’을 찍었기 때문이다. 언론이 제대로 사실을 알리지 않은 사이에 많은 사람이 황 교수가 줄기세포 연구의 막을 연 사람, 세계 처음으로 배아줄기세포를 추출한 사람이라고 잘못 알게 됐을 따름이다.

    배아줄기세포의 추출 및 배양은 황 교수팀이 처음 성공한 것이 아니다. 황 교수팀은 배아줄기세포 추출 방법 중 많은 과학자가 금기(禁忌)로 삼고 있는 인간배아 복제에 의한 줄기세포 추출에 성공했다. 그것은 분명 용기였지만, 과연 그렇듯 박수만 받아야 하는 학문적 업적인지는 천천히 성찰할 필요가 있었다.

    줄기세포는 20세기 중반 발생학(發生學)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이론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다가 1961년 미국의 매쿨로흐와 틸 박사가 골수(骨髓)에 성체줄기세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사이언스’에 발표했고, 1974년 브록스마이어 박사는 탯줄에 줄기세포가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에반 박사는 1981년과 1995년 쥐와 원숭이에서 배아줄기 세포주를 추출했다. 세포주는 특정 세포를 죽지 않고 영원히 살도록 한 ‘불멸화(不滅化) 세포’다.

    이런 기초의학의 성과에 힘입어 1980년대 초 노벨상 수상자인 미국의 도널 토머스가 줄기세포의 하나인 조혈모(造血母) 세포 이식, 즉 골수이식으로 백혈병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줄기세포 연구 바람을 일으켰다. 브록스마이어 박사는 탯줄혈액 이식법을 개발했다.

    이렇듯 바탕이 다져지자 1998년 무렵에는 배아줄기세포 연구사에 한 획을 긋는 연구결과가 잇따라 나왔다. 당시 미국 위스콘신대 제임스 톰슨 교수는 버려질 운명의 냉동배아에서 인간배아 줄기세포를 추출했다. 또 존스홉킨스대 존 기어하트 박사는 합법적으로 인공 유산된 태아의 미분화 생식세포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 시민이 한국인처럼 환호했을까. 그렇지 않다. 당시 두 교수의 연구성과는 격렬한 윤리 논란에 휩싸였다. 결국 줄기세포를 얻기 위해 배아복제를 시도할 것이고, 배아복제는 인간복제로 넘어간다는 비판이 거셌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난자(卵子) 핵 치환, 즉 배아복제를 통한 줄기세포 추출은 법적·윤리적 문제와 난자 확보의 어려움이란 장벽 탓에 누구도 엄두를 못 내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2004년, 서울대 문신용·황우석 교수 팀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배아복제를 통한 줄기세포 추출에 성공했다. 당시 연구팀은 16명의 여성에게서 242개의 난자를 추출했고, 이 가운데 1개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했다. 나머지 241개의 난자는 복제과정이나 줄기세포 추출과정에서 사라졌다. 황 교수 팀은 또 2005년 18명의 여성에게서 185개의 난자를 기증받아 환자의 체세포를 넣는 방법으로 복제, 11개의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세계 매스컴이 주목한 것은 ‘금기를 깼다’는 점에서 세상을 놀라게 한 2004년의 연구였지만, 의학적으로는 두 번째 연구 역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었다. 이론상으로는 환자 자신의 줄기세포를 환자에게 넣을 때 면역거부반응을 확실히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줄기세포를 치료용으로 넣으면 환자의 백혈구가 ‘적(敵)’으로 알고 죽일 확률이 높은데, 그 확률이 현저히 낮아지는 것이다. 바로 이 2005년 논문의 유효성을 입증할 줄기세포의 존재 자체가 흔들리면서, 연구의 신뢰성은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이것이 최근 사태의 본질이다.

    노벨상의 허와 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번 논란이 일기 이전부터 전문가들은 황 교수의 연구 업적에 대해 찬양 일변도로 일관하는 언론 보도에 거부감을 보여왔다. 황 교수의 연구 성공은 학문적 창의성 때문이 아니라 ▲윤리적인 시비를 벗어나 복제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 ▲난자를 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 ▲연구원들의 뛰어난 기술 덕분인 측면이 강하다. 사실 체세포 복제를 이용한 줄기세포 추출은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법적으로 금지된 방법이다. 황 교수 본인도 2004년 복제세포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데 성공한 것은 ‘젓가락을 사용하는 한국인의 섬세한 손’ 덕분이라고 말한 바 있다. 관점에 따라서는 스스로를 과학자가 아닌 기술자(technician)로 표현한 말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2004년 국내에서 황 교수 노벨상 만들기 위원회가 만들어졌을 때 이를 전해들은 외국의 과학자와 과학전문 기자들은 대부분 의아해했다. 노벨상은 주로 새로운 학설을 세우거나 새 영역의 지식체계를 세운 ‘과학자’에게 돌아간다. 기술인과 과학경영인에게 주어지는 상이라면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노벨상을 몇 번이나 받았을 것이다. 미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외국기자가 “당신이 노벨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한국인이 보기에는 무례하기 그지없는 질문을 던져 황 교수를 당황하게 했던 것은 이같은 맥락에서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은 이를 해외학자들의 치기어린 시샘이라 생각했다. 그들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진지하게 귀 기울이지 않았다. 앞뒤를 알 수 없는 국가주의와, 과학연구를 인간의 행복과 복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노벨상을 받기 위해 수행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성과주의에 매몰되어 합리적인 의견청취를 포기했다. 그렇게 해서 ‘객관적 비판을 통한 검증’이라는 두 번째 장벽이 무너져내렸다.

    한 가지 더 생각해볼 문제는 외국의 유력 신문에 소개된 연구라고 해서 무조건 박수를 받아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1998년말 경희대 의대 산부인과의 이보연 교수가 인간배아 복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을 때 세계 언론은 열띤 취재 경쟁을 벌인 바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 교수의 연구결과를 그해 과학계 10대 뉴스로 선정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그때 이 교수의 연구결과를 윤리적인 이유를 들어 맹렬히 비판했다.

    경희대의료원의 한 관계자는 “당시와 지금이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다”며 “황 교수의 ‘여론 주도 능력’이 상당기간 윤리적 논란을 잠재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라고 물었다. 실제로 ‘뉴욕타임스’는 2004년 황 교수가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했을 때 1면에 연구성과를 보도하면서 “1998년에도 한국에서는 복제를 시도했다”고 언급했다.

    과학보도의 원칙이 없다

    이제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국민이 줄기세포와 황 교수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갖게 된 데는 무엇보다 언론의 책임이 크다.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므로 가장 뼈아플 수 있을 것이다. 흔히 한국 언론의 과학기사는 정치나 사회 기사에서 요구하는 기본사항을 빠뜨리는 잘못을 범하곤 한다. 이제부터 황 교수 사태와 관련해 그 구체적인 내용을 하나하나 반성해보려고 한다.

    첫째, 다양한 정보와 의견을 제공해 독자의 논리적 판단을 돕기보다 미리 정해진 틀에 맞춰 보도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 신문에서는 외국 언론이 황 교수의 연구 성과를 극찬했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실제로 미국 신문을 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구의 권위 있는 매체들은 과학적 사실을 차분히 전달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다각적으로 소개한다. ‘뉴욕타임스’만 해도 줄기세포 연구를 지지하는 유대인 자본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신문이지만, 긍정적인 견해와 부정적인 견해가 고루 소개돼 독자에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둘째, 철저한 취사선택에 의해 특정인에게 유리한 정보만 나가는 경우가 있다. 이제는 잘 알려진 이야기가 됐지만, 황 교수가 2004년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했을 때 ‘네이처’는 난자의 출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한국 언론에서는 ‘네이처’가 ‘사이언스’에 대한 시기심 때문에 이 문제를 제기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바로 그 ‘사이언스’가 2005년 황 교수의 논문을 게재할 때 ‘네이처’가 지적한 문제를 다시 지적한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신문, 방송이 눈을 감았다. 네이처와 사이언스가 논문의 성격이 다르고 서로 경쟁하는 관계이지만 한쪽을 시기해서 왜곡보도를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외국 신문이나 학술지에서 부정적인 톤으로 쓴 기사가 한국 언론에서는 ‘업적을 대서특필했다’는 식으로 치장됐던 경우다. 2005년 5월31일자 ‘뉴욕타임스’ 과학면 기사나 ‘네이처’에 실린 황 교수 프로필의 원문과, 이를 소개한 한국 언론 기사를 대비하면 취사선택에 있어 얼마나 편파적인지 알 수 있다.

    ‘황우석 사태’ 大해부

    2005년 12월13일 서울대 노정혜 연구처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황우석 교수의 논문을 검증할 조사위원회 구성 계획을 밝히고 있다.

    한국 언론에서는 외국 신문이 황 교수의 업적을 1면 머리기사로 중요하게 처리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당시 1면 머리기사는 신문의 큰 기사 왼쪽 또는 오른쪽 끝에 한 줄로 늘어뜨린 기사였으며, 미국 신문은 과학적 연구결과를 중요하게 처리하는 전통이 있다. 앞서 말한 경희대 이보연 교수의 연구결과도 1면에 실렸다. 사회적 논란이 있는 주제에 대해 소개하고 토론을 유도하는 것과 한국의 연구성과를 부러워하고 극찬하는 것은 다르다. 최근에는 과학기술부가 ‘네이처’의 의례적인 통계기사를 ‘칭찬 기사’로 뻥튀기해 보도자료를 돌리고 이를 일부 기자들이 그대로 받아 쓴 경우도 있다.

    한국 언론은 한달 가량 진행된 황 교수 파동 와중에도 일방의 주장만을 보도하는 경향이 강했다.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은 “이 문제는 서구윤리와 동양윤리의 충돌이나 미국과 한국의 줄기세포 싸움이 아니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연구계에 윤리 문제에 대한 백신을 투여하고 국제적 수준에 맞는 연구 과정의 투명성을 정착시켜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대다수 언론은 외면했다.

    반면 황 교수측의 말은 여과 없이 지면에 고스란히 실렸다. 대표적인 예가 12월6일자 모 신문이 보도한 ‘황 교수 휘청하는 사이…세계 첫 논문 日에 선수 뺏겨’라는 제목의 기사다. 일본 오사카현립대 연구팀이 11월16일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은 황 교수 팀도 준비 중이었는데, ‘PD수첩’의 협박취재에 시달리느라 선수를 빼앗겼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논문은 이미 5월29일에 제출돼 8월22일 채택된 것으로 확인됐다. 학술지 심사과정에 몇 개월이 걸린다는 상식에 따라 논문 제출 및 수락 날짜를 확인했다면 금세 확인할 수 있던 사안이었다.

    척추신경이 끊겨 하반신이 마비된 개에게 사람의 줄기세포를 분화시켜 만든 신경세포를 주입한 뒤 1년이 지나자 걷지도 못하던 개가 뛰어다닐 정도로 회복됐다는 보도나, 영장류에 대한 줄기세포 실험을 실시해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는 보도도 기자가 기본적인 과학상식만 갖추고 있으면 피할 수 있는 오보였다.

    서울대 바이오장기사업단의 한 교수는 “동물실험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아직 윤리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는데 어떤 실험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개 실험의 경우 비교군(群)이 있는지, 손상의 정도가 어느 정도였는지가 실험의 기본이다. 또 실험용 원숭이는 현재 검역과 감염 여부를 판단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실험을 했다는 것인지 궁금할 정도라는 것이다.

    ‘섀튼’이라는 자충수

    셋째, 기사의 기본 요건이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연구업적에 대한 평가를 할 때는 제3자에게 묻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한국 언론에서는 해당 논문 공동 연구자의 코멘트가 버젓이 기사에 나간다. 미국에서 누가 황 교수의 연구를 지지하는지, 그 연구자가 황 교수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언론은 한번도 주의를 기울인 바가 없다.

    황 교수 관련 기사의 경우 초반 내내 피츠버그대의 제럴드 섀튼 교수의 코멘트가 빠지지 않고 실렸다.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듯, 섀튼 교수는 황 교수 논문의 공동저자이자 협력자였다. 그러나 ‘줄기세포의 대가’라는 그의 명성은 한국에서만 높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섀튼 박사는 2004년 과기부가 ‘제1회 서울 줄기세포 심포지엄’에 초청하려다 연구실적 미비로 대상에서 제외됐다가 우여곡절 끝에 초청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논란이 한창이던 무렵, 섀튼 교수의 모호한 태도가 사태를 혼란스럽게 만들자 황 교수가 그와 관계를 맺은 것부터 자충수였다는 얘기가 나왔던 것이다.

    넷째, 검증 또는 추적 보도가 전무하다. 세계적 치료법을 개발했다는 요란한 기사는 넘쳐도 그 치료법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황 교수와 관련해서도 1990년대 ‘보통 젖소보다 우유를 두 배가량 많이 만드는 슈퍼젖소 개발 및 보급’ ‘송아지를 두세 마리 낳는 초(超)우량 소 개발 등으로 국내 낙농계에 혁명’ ‘2004년까지 장기 이식 때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돼지를 양산할 수 있다’는 굵직한 보도가 이어졌지만 이에 대한 추적 보도는 하나도 없었다.

    황 교수팀이 발표한 2005년 논문에서 DNA 지문 문제를 찾아낸 지방 국립대의 박사과정 생물학도는 인터넷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이 말은 아마 언론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듯 하다. 언론인들은 본연의 임무인 검증에서 과학자들보다 한참 뒤져 있었다.

    “MBC도 무너뜨리는 거대한 힘 앞에 누가 나서려고 하겠습니까. 국익을 위해서라면 입 닥치고 숨죽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지당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 과학하는 사람들은 시야가 워낙 좁기 때문에 작은 현상 하나가 비뚤어져 보이면 끝없이 ‘왜? 왜?’를 외치며 덤벼듭니다. 저 역시 그런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실제적 윤리의 문제

    그렇다고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므로, 황 교수를 비판하던 이들의 목소리가 무조건 옳았다고 해야 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PD수첩’ 논란 이전에도 황 교수의 연구결과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일부 종교·과학·철학계의 비판은 지나치게 원론적이었기 때문에 병마로 고통 받고 신음하는 환자와 그 가족의 목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복제는 당위적 윤리뿐 아니라 실제적 윤리와 부딪치는 분야다. 한국에서는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적지만, 사실 복제 과정은 엄청난 희생을 필요로 한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한 교수는 “동물복제를 하다가 머리가 네모난 돼지와 같은, 신이 노할 정도의 기형 동물이 계속 나오는 것을 접하고 끔찍해 연구를 포기했다”고 말한다.

    황 교수의 연구와 관련해서도 수백 마리 동물 실험의 실패 끝에 복제에 성공했다는 기사가 여러 차례 나왔다. 그렇지만 ‘실패한 동물’이 어떻게 처리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처럼 동물과 인간의 난자를 쉽게 구하고, 쉽게 복제실험을 할 수 있는 여건이 과연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심각한 논의가 필요하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복제된 동물은 새로운 단백질이 생겨 30~70%가 출생 1주일 만에 사망한다.

    복제연구의 윤리 문제를 논할 때 논란의 핵심은 과연 배아가 생명이냐 아니냐에 있다. 많은 이가 발생한 지 14일이 안 된 배아는 생명이 아니라고 하지만, 찬찬히 따져보면 그 근거는 유대교 신앙이다. 유대교 교리에서는 14일 만에 생명이 완성된다고 본다. 현대 과학자들이 이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각종 기관의 기본꼴로 분화하는 ‘원시선(原始線)’이 생긴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과학계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유대인 과학자들이 주로 배아줄기세포의 과학적 이용을 주장하고 정치·사회적 강자인 기독교인들은 이에 반대하는 것이다. 미국의 과학계가 황 교수의 연구에 뜨거운 지지를 보냈던 것은 이러한 사회 배경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성과는 다르다. 유전학의 급속한 발달로 수정 후 4시간이면 ‘유전자 각인’(탈(脫)메틸화-재(再)메틸화)이라는 과정을 통해 개인의 유전자가 완성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배아가 생명이라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황 교수 팀은 2004년 논문에서 난자 242개 중 1개에서 줄기세포 추출에 성공했고, 2005년 논문에서는(현재로서는 근원적 의심에 도달했지만) 185개 중 11개가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실패한 나머지 배아에 대한 고찰은 찾을 수 없었다. 배아복제를 유지해 생명으로 만들면 그대로 복제인간이 되고, 죽으면 생명살해가 되는 윤리적 문제에 부딪히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고민은 거의 없었다.

    사태의 방아쇠

    한국인의 ‘애국심’은 이 모든 문제를 뛰어넘는다. 이번 황 교수 파동 때 1000명이 넘는 여성이 난자 기증 의사를 밝혔다. 난자 기증자들은 황 교수의 연구실 앞에 진달래 꽃잎을 깔고 ‘황 교수가 사뿐히 즈려밟고 오시길’ 기원했다. ‘I love 황우석’의 회원이라는 김모(47)씨는 미혼인 두 딸과 함께 난자기증 의사를 밝히고 TV에도 출연했다. 김씨는 사회자가 난자 기증에 부작용이 없겠느냐고 묻자 뜻밖에도 “약간의 고통 외에 부작용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여성이 난자를 제공하려면 ‘과(過)배란 유도제’를 맞으며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난자 채취 때 2주 정도 입원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복통과 탈수 등을 동반하는 난소과자극증후군을 감수해야 한다. 심하면 호흡곤란으로 숨질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해 한 불임 여성이 임신을 위해 과배란 유도제를 맞고 뇌출혈로 사경을 헤맨 적이 있다.

    게다가 과배란 유도제를 맞은 여성은 난소암 발생의 위험이 현격히 높아진다는 보고가 있기 때문에 서구에서는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 해도 좀체 난자를 제공하려 하지 않는다. 서구 과학계에서 동료 연구원의 난자를 제공받지 못하도록 규정한 것은 ‘묵시적 강압’이 개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황 교수가 2004년 2월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했을 때 서구 과학자들은 황 교수팀이 어떻게 그처럼 많은 난자를 구할 수 있었는지 의아해했다. 그들은 난자를 쉽게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ACT라는 생명공학 회사가 체세포 연구를 위해 ‘1인당 4000달러씩 주겠다’며 미국 전역에 광고를 내고 난자를 모으려 했지만 겨우 19개밖에 모으지 못한 바 있다.

    당시 ‘네이처’는 황 교수팀 연구에서 난자의 출처가 의심스럽고 난자 제공자에게 위험성을 알리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네이처’ 기자가 황 교수팀의 일원을 취재했더니 한 연구원이 “아픈 아이들을 돕고 싶은 바람과 한국에 대한 사랑으로 난자를 기증했다”고 자랑스럽게 밝혔다. 황 교수측은 문제가 불거지자 “영어가 미숙해서 생긴 오해”라고 말을 바꿨다. 황 교수는 곧 자료를 공개하겠다고 했지만 차일피일 미뤘고, 마침내 이른바 ‘연구윤리 문제’로 비화해 오늘의 사태를 부르는 방아쇠가 된 것이다.

    ‘황우석 사태’ 大해부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2005년 10월19일 세계줄기세포허브 개소식에 참석했다. 왼쪽부터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오명 과기부 장관, 정운찬 서울대 총장, 성상철 서울대병원장, 노 대통령 내외, 황우석 세계줄기세포허브 소장, 섀튼 미 피츠버그대 교수.

    이와 관련해 ‘사이언스’는 2005년 5월 황 교수의 두 번째 연구 성과를 게재할 때, 이례적으로 황 교수의 연구업적을 문제 삼은 스탠퍼드대 밀드레드 조 박사 팀의 논문을 함께 게재했다. 이 논문에서 조 박사팀은 황 교수가 난자 공여자에게 과배란 유도제의 부작용과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가 오로지 한 사람에게만 쓰인다는 점 등을 알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조 박사 팀은 또 ▲한국과 미국 공동연구이면서 두 나라 중 어느 정부기관의 승인도 받지 않은 점 ▲의학적 용도로 기증된 난자가 연구용으로 사용된 점 ▲‘치료용’이라는 용어의 잘못된 사용 등의 윤리적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당시 국내 주요 신문과 방송에서는 어느 한 곳도 이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다.

    호들갑과 선정성

    한동안 국민은 한국이 줄기세포 연구에서 최첨단에 서 있는 것으로 믿었다. 언론은 이를 바탕으로 조만간 한국이 엄청난 미래 산업의 선두주자가 될 것처럼 보도해왔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은 ‘기술’의 영역에 가까운 줄기세포의 추출과 배양에서는 세계적 수준이지만 ‘과학’에 더 가까운 줄기세포 연구에서는 초보 수준이라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줄기세포 연구의 고갱이는, 줄기세포가 다른 세포로 바뀌는 것을 막고 특정한 세포로 분화시켜 일정하게 분열할 수 있게 하는가에 있다. 이 부분에 대한 한국의 연구는 선진국에 한참 뒤져 있다. 게다가 배아줄기세포의 분화 과정에 대해서는 선진국도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서만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세포의 분화와 억제에 대한 연구논문은 계속 발표되고 있으며 이 부분에 대한 연구는 미국이 선두주다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는 한 해 3000억원을 줄기세포 연구에 쓰고 있으며, 하버드대 줄기세포 연구소의 기금만 1000억원에 이른다.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대가(大家)로는 최근 난자 없이 배아줄기 세포 생산에 성공한 미국 하버드대의 더글러스 멜턴과 케빈 이건 그리고 조지 데일리, MIT의 루돌프 야니시, 국립보건원의 로널드 맥케이, 슬로언 케터링 암연구센터의 로렌스 스투더, 영국 에딘버그대의 오스틴 스미스, 일본 리켄연구소의 신이치 니시카와, 요시키 사사이, 이스라엘 히브류대의 니심 벤베니스티, 호주의 앨런 트라운손과 마틴 페라,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로저 피더슨이 있다.

    또 성체줄기세포 연구의 대가로는 미국 스탠퍼드대 어빙 와이스만, 헬렌 블라우, 하버드대 레너드 존, 데이비드 스캐든, 스튜어트 오킨, 솔크연구소의 프레드 게이지, 메이요병원의 제프리 프레트, 베일러대의 마거릿 굿델, 인디애나대의 할 브록스마이어, 미시간대의 신 모리슨, 록펠러대의 일레인 후시, 캘리포니아 번햄연구소의 에반 스나이더, 일본 도쿄대의 아쓰시 미야지마, 게이오대의 히데유키 오카노, 캐나다 토론토대의 더레크 반데르쿠이, 스웨덴의 올 린드벨, 콜로라도 대의 커트 후리드 등을 들 수 있다.

    관련연구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테크니션’이라기보다는 세포 ‘연구’의 대가들이며, 수십편에서 수백편의 논문을 발표해왔다.

    ‘애국심’의 비합리

    그간 누군가 황 교수의 성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곧바로 “미국 연구자들이 공동연구를 제안할 정도이고, 하버드대-MIT 연구팀이 서울에 국제줄기세포은행을 설치하자고 했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이 또한 논리적으로 들여다봐야 할 부분이다.

    돌이켜보건대 미국의 과학자들은 한국에서 줄기세포 연구를 무한정 자유롭게 한다는 데 커다란 관심을 보인 듯하다. 황 교수의 명성이 정점에 오를 무렵에도, 미국 언론에서는 ‘한국의 뛰어난 과학자가 훌륭한 업적을 이룬 사실’이 아니라 미국이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규제를 풀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가 관심의 대상이었다. 미국 과학자들은 규제 완화의 당위성을 주장하며 황 교수의 케이스를 이용했다.

    많은 과학자는 미국이 한국의 풍부한 난자와 이것을 이용한 줄기세포주에 관심을 갖고 한국에 접근한 것이었다고 본다. 결국 그런 상황이 계속 진행됐다면 한국은 ‘난자 및 줄기세포 원료 제공처’가 될 가능성이 컸으리라는 의미다. 일부 과학자들은 이러한 현실에 빗대어 황 교수의 연구를 ‘행주대첩’에 비유했다. 한국의 여성이 ‘애국심’으로 무장하고 건강을 해쳐가며 난자를 제공했기에 연구가 성공했고, 이런 일은 대한민국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는 의미를 담은 비유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한 달 동안 일부 언론이 황 교수측 논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내세운 ‘기술유출론’과 ‘국익 손상론’은 근거가 희박했다. 몇몇 언론은 황 교수팀의 앞선 기술이 유출될 우려가 있으므로 황 교수팀이 재검증을 피해야 하고 미국의 연구원을 국내에 소환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유출될 기술이 무엇인지는 독자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황 교수팀에서 갖고 있는 추출기술은 이미 공개된 것이다. 우리는 아직 미국에서 줄기세포와 관련한 지식을 배우고 있는 시점이다. 미즈메디병원의 연구원들도 앞선 미국의 기술을 배우러 간 것이다. 이런 식으로 기술유출을 걱정한다면, 거꾸로 미국의 각종 연구소에서 밤을 밝히며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수천명의 한국인 과학자는 미국의 기술을 빼낼 염려가 있기 때문에 한국으로 보내야 한다는 논리가 가능해진다. 본질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였던 것이다.

    이처럼 비합리적인 주장은 과학자의 세계를 잘 모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과학자가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는 것은 1등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학술지라는 토론의 마당에서 검증을 받고 궁극적으로 과학의 발전,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기 위해서다. 줄기세포처럼 이제 막 태동한 분야는 세계 각국 과학자들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호주 모나시대의 줄기세포 분화 연구 대가인 마틴 페라 교수는 필자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줄기세포 치료법을 만들려면 휴먼 게놈 프로젝트에 맞먹는 노력이 필요하며, 이는 한 사람의 과학자, 한 연구소, 한 국가에서 이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탁월한 인간관계 능력

    어디까지가 진실인지조차 혼란스러운 상황이 돼버렸지만, 황 교수의 연구성과와 비중이 완전히 허위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뛰어난 능력으로 한국이 줄기세포 연구에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고, 이에 따라 많은 과학자가 줄기세포를 연구할 마당을 만들었다. 황 교수는 매우 부지런한 사람이다. 매일 자정을 넘겨 활동하고 이른 새벽부터 일했다. 자신은 술 한 잔 입에 대지 않으면서도 술자리에서 자정이 넘도록 박수를 쳐주고는, 다음날 새벽이 되면 어김없이 연구실로 향했다. 보통 사람은 상상도 못할 힘든 일과를 버텨내곤 했다.

    그는 이를 위해 각양각색의 사람을 만났다. 이른바 ‘황금박쥐’ 모임(황우석 교수,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 박기영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의 성을 따서 만든 모임)은 그가 얼마나 부지런했는지, 그의 정치적 능력이 얼마나 탁월했는지 잘 보여준다. 이러한 유대관계로 인해 식물학자 출신인 박기영 보좌관이 2004년 ‘사이언스’ 논문에 저자로 등재된 데 대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황 교수는 이해찬 국무총리, 오명 과기부 장관 겸 부총리, 강창희 전 과기부 장관 과도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황 교수는 기자들에게 성심성의껏 대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황 교수가 미국에 갔을 때의 일이다. 한국 기자가 시차를 착각해 그곳 시각으로 새벽 3시에 전화를 걸었지만 황 교수는 싫은 내색 없이 하나하나 차분히 설명을 했다. 더욱이 그는 끊임없이 ‘특종’을 쏟아놓았기 때문에 어느 기자도 선뜻 그를 비판하는 기사를 쓰려 하지 않았다. 황 교수는 언론사 간부급에서 평기자까지 전략적 관리를 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래서 일부 기자가 비판적 기사를 쓰려고 해도 다수의 목소리에 묻히고 마는 형편이 지속됐다.

    이러한 분위기는 황 교수에게 거대한 힘이 집중되는 결과를 낳아 오히려 부담을 가중시켰다. 국가의 과학정책과 예산집행 과정 상당부분이 그의 연구팀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계에서는 황 교수를 비판하면 ‘왕따’가 된다거나 연구비 지원이 끊긴다는 말이 공공연히 돌았다. 심지어 황 교수의 연구를 위해 그가 사용하는 연구비의 출처를 묻지 말아야 하며 국정감사에서도 면제해야 한다는 말이 아무런 여과 없이 신문지상에 올랐다.

    2005년 국회 국정감사 결과에 따르면 , 과기부는 6월의 최고 과학자로 선정된 황 교수에게 30억원을 주면서 청년 박사들에게 지원해야 할 10억원을 전용(轉用)했다. 이 돈은 박사학위 취득 후 2년 이내 연구자들 가운데 10명의 젊은 과학자를 선정해 1억원씩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1998년부터 2005년 10월까지 황 교수가 정부에서 받은 연구비는 확인된 것만 모두 380억원이다. 과학계에서는 황 교수팀이 정부 및 민간업체에서 받은 돈을 합치면 500억이 넘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라진 ‘국가의 임무’

    또한 국정감사에서는 황 교수팀이 생명윤리법에 따라 보건복지부의 승인을 받아야 할 인간배아 연구를 하면서 이 절차를 무시하고 연구비를 받아 쓴 사실, 세포응용연구사업단 윤리위원회의 조건부 승인 판정을 무시하고 연구비를 집행한 일 등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황우석 사태’ 大해부

    2005년 12월2일 MBC ‘PD수첩’ 최승호 CP(오른쪽)와 한학수PD가 기자회견을 열고 프로그램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황 교수의 연구기밀을 보호한다는 국가정보원의 행태는 더욱 문제였다. 정도를 넘어섰던 것이다. 한국생명윤리학회가 황 교수의 연구에 대해 성명을 발표하자, 당장 국정원측에서는 이 학회 구영모 총무의 소속 학교인 울산대 의대 박인숙 학장에게 항의전화를 해 ‘관리’를 부탁하기도 했다. ‘정치권력과 과학의 야릇한 만남’이 낳을 결과를 우려할만 했다.

    1996년 영국에서 세계 최초의 체세포 핵이식 복제동물인 양 ‘돌리’ 탄생이 발표되자, 당시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즉각 저명한 생명윤리학자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윤리위원회를 소집했다. 인간복제와 연결될 가능성과 더불어 장차 생명윤리에 미칠 사회적 파장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달랐다. 황 교수의 연구는 청와대의 전폭적인 지원과 성원을 바탕으로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의제를 전 사회가 함께 고민하는 작업’을 이끌어야 할 정부의 고유 업무는 어디에서도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한 고민을 제기하는 목소리를 정부가 나서서 비판하는 형국이 만들어졌다.

    서두에서 언급했지만, ‘황우석 사태’의 가장 큰 파장은 그가 불러일으킨 환상이 직간접적으로 일반인에게 그릇된 믿음을 심어줬다는 점이다. 환자들은 황 교수가 ‘마술 같은 치료법’을 선사하기를 기대해왔다. 불치병 환자들이 ‘그때’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으며 진료실마다 척수장애인들이 의사에게 황 교수의 치료법이 언제 개발되는지를 물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배아 줄기세포를 환자에게 투여해 특정질환을 치료하는 일은 아직 요원하다.

    지금까지의 연구수준을 꼼꼼히 살펴보자. 줄기세포의 30~70%가 타깃인 장기(臟器)에 들어가는 데 성공한 몇몇 동물실험에서조차 해당 동물의 상태가 일시적으로 좋아지긴 했지만 곧 줄기세포들이 없어졌다. 더욱이 줄기세포의 10%가 암 세포나 다른 세포로 바뀌는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상태이다. 이밖에도 줄기세포가 어떻게 분화되는지에 대한 연구도 초기단계이며 실험실에서 줄기세포 배양 때 나타나는 염색체 이상의 해결, 줄기세포의 효과적 이식방법, 이식 세포의 체내 장기생존방법, 인간 유래의 시약 및 바탕세포(줄기세포를 일정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세포)의 확립 등 풀어야 할 숙제는 너무나 많다.

    이론적으로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가 효과를 낼 가능성이 가장 큰 질병은 파킨슨병이다. 파킨슨병은 다른 신경계 질환과는 달리 복잡한 신경회로의 손상에 따른 질병이 아니라, 주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을 분비하는 단일 신경세포의 손상에 의해 발생한다. 따라서 이 병은 줄기세포 치료의 0순위로 꼽혔다.

    그러나 이 또한 난관이 첩첩산중이다. 태아의 중뇌세포를 이식한 동물세포에서 긍정적 반응이 나타났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졌을 때는 매우 고무적이었지만, 최근 들어 각종 부작용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운동장애가 회복되지 않거나 새로운 장애가 나타났고 이식 부위에 다양한 합병증이 생긴 것이다.

    당뇨병과 일부 심장병 치료 분야에서도 상당부분 진척되고 있다고 하지만 이 분야에서도 어떤 난관이 생길지 모르며, 나머지 장기에서도 치료법이 언제 나올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현재로서는 환자에게 투여된 줄기세포가 곧 암세포로 바뀌어 고통을 안겨주며 목숨을 앗아가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온몸이 마비된 사람에게 줄기세포를 넣어 신경세포로 분화하게 하면 기적처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을 것으로 많은 사람이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주위의 인대와 근육이 죽었는데 신경세포만 살아난다고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경세포는 일반 세포와 달리 표면에서 축색돌기 하나가 길게 뻗어나 다른 신경세포나 근육조직에 연결돼 있는 형태다. 끊어진 축색돌기를 줄기세포로 해결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방법이 없다. 줄기세포가 다른 세포로는 분화하지 않고 통증을 느끼는 신경시스템만 살리는 쪽으로 분화한다고 생각해보라. 그 고통의 소리가 끔찍하지 않은가.

    게다가 최근에는 일부 비양심적인 의사가 거액을 받고 척수손상 환자에게 줄기세포를 투여하고 있다. 동물실험에서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치료법을 환자에게 실시하는 것은 후진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한 벤처기업과 병원이 공모해 간경변증 환자에게 성체줄기세포를 투여했다가 환자가 다른 치료를 받을 기회를 놓쳐 숨진 사례도 있다. 한 방송국에서 간경변증 말기 환자가 줄기세포 치료를 받고 회복돼 한라산을 등반하는 사례가 보도되자 이를 본 환자들이 전국에서 몰려왔다. 그러나 회복됐다는 환자는 한 달 뒤 숨졌고, 줄기세포 치료를 받은 40대의 남성은 이 때문에 간 이식 기회를 놓쳐서 결국 숨졌다.

    사람의 몸은 사람이 쉽게 조작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지 않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몸에 대해 100만분의 1도 모른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 과학을 위한 낙관, 과학에 의한 낙관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부풀려서도 안 된다. 섣부른 낙관은 절망으로 바뀌기 십상이다. 우리가 새로운 사실을 알면 알수록 새로운 문제를 던져주는 것이 과학이다. 하버드대의 멜튼 박사가 난자 없이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한 뒤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과도한 의미 부여를 경계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한 줄기세포 전문가는 황 교수의 명성이 정점에 있었을 때 “한국에서 ‘세계 최초’의 영예를 위해 척추마비 환자나 파킨슨병 환자에게 줄기세포를 투여한 뒤 일시적인 효과가 나면 ‘세계적 영웅’으로 미화했다가, 훗날 암이 발생하거나 부작용이 생기면 모두가 침묵하는 시나리오가 실현되지 않기만을 바랄 따름”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신드롬’이 진행되는 동안 한없이 커진 환상과 그로 인한 부작용은 지금 그에 일조한 많은 언론과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잊혀지는 ‘지금 당장’

    한동안 한국 과학계에서는 ‘줄기세포’라는 이름을 달지 않으면 명함을 내밀 수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 과정에서 상당수 유망 과학 분야가 관심과 지원의 대상에서 멀어졌다. 의학만 해도 나노(Nano) 공학의 발전을 바탕으로 하는 나노 의학, 유전자 치료법, 성체줄기세포 연구 등 더욱 발전시켜야 할 분야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여러 분야가 함께 발전해야 난치병 치료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황 교수 파동이 부정적으로 치닫는다고 해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포기해서도 안 된다. 이번 사태가 과학 자체의 불신으로 이어지는 것이야말로 가장 경계해야할 상황이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언론의 자기성찰이다. 우선 지나친 성과 위주 보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환자에게 꿈을 심어주는 것은 좋지만 그전에 진실에 대한 탐구와 성찰이 필요하다. 언론은 과학을 ‘환호와 전투’의 영역이 아니라 ‘성찰과 토론’의 영역으로 격상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파킨슨병이나 척수질환자들이 왜 이렇게 줄기세포 연구에 매달리는지에 대한 애정 어린 접근이다. 환자들이 줄기세포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것은 그들이 현실에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피눈물은 일상생활에서 당하는 불평등을 해소하고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을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에서 흘러나온다. 그러나 언론과 정부가 조만간 병이 완치될 길이 열릴 것처럼 떠드는 동안 이들이 ‘지금 당장’ 현실에서 겪는 숱한 문제가 시야에서 사라진다.

    분명한 것은 황 교수의 연구가 100% 진실이었다 해도, 당장 이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국내의 한 줄기세포 연구학자가 “줄기세포 연구는 지금 우리가 열심히 하면 후손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미래의 의학”이라고 말한 것은 그런 뜻에서 의미심장하다.

    하나의 질병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좋은 논문이 수만, 수십만편 쌓여야 한다. 과학의 진보와 질병정복을 위해서는 과학계, 언론, 사회, 정부가 모두 기다릴 줄 알고, 좀 늦어보여도 바른 길을 가는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고 필자는 믿는다. 이를 깨닫는 계기가 된다면, 황우석 사태는 충분히 아프지만 의미 있는 수업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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