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호

PART 4. ‘절반의 은퇴’가 가장 행복하다

  • 입력2006-01-16 18: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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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만으로 살 수 없는 노후

    PART 4. ‘절반의 은퇴’가 가장 행복하다

    주부들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한 은퇴자.

    은퇴 후의 삶의 질은 은퇴한 뒤에 무엇을 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60세에 은퇴해도 100세까지 산다면 40년을 더 살아야 한다. 40년을 놀면서 지낼 수 있을까. 돈이 있으면 얼마든지 놀 수 있을 것 같아도, “결코 돈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 노인들의 말씀이다. 아무리 놀아도 시간이 남는다고 한다. 친구를 만나고, 등산을 해보고, 술을 마셔도 시간이 남아돈다는 것이다.

    너무 무료하다 보니 생각지도 않던 엉뚱한 일을 해서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예전엔 돈 한푼 쓰지 않던 어머니가 효도 관광을 다녀온 뒤 100만원짜리 건강식품을 사오기도 하고, 최근엔 어떤 사람의 꾐에 넘어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사업에 투자한다는 말씀을 하기도 한다. 뭔가 해야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일들이다.

    은퇴 후에는 돈 버는 것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야 한다.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호구지책으로 일해야 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젊었을 때 못 이룬 꿈을 뒤늦게나마 이뤄보려고 노력해보자. 그러려면 노인이 되어도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 되도록 젊을 때부터 노후에 즐길 수 있는 것을 계발하고 가꾸어보자. 이런 활동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또 적은 돈이나마 벌 수 있는 계기도 된다.

    직장에서 은퇴했다고 자신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직장에서 벗어났을 때 진정한 자신을 찾아 나만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있어야 한다. 이래야 미래를 진지하게 설계할 수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며, 무엇을 잘할 수 있을지 성찰해보자.



    우리는 지금까지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우리는 대부분 ‘상대평가’의 대상이었다. 어릴 때는 집안 어른들로부터 “옆집 아이는 일류 대학에 갔는데 너는 뭐하냐”는 소리를 들었고, 성인이 돼서는 “누구 집 아이는 대기업에 취직했다던데, 너는 어디에 들어갔냐”는 소리를 들었다.

    학교에선 모든 것이 성적으로 통했다. 자신의 가치보다는 1등에서 50등까지 매겨지는 등수 중 어느 지점에 있느냐가 중요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연수, 승진, 연봉 협상 등에서 항상 상대평가를 받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열등감에 젖거나 우월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인간에겐 120가지의 서로 다른 능력이 있다

    ‘우리가 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의 저자 강영우 박사는 중학교 1학년 때 축구공에 눈을 맞아 실명했다. 두 눈으로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1968년 연세대학교 교육학과에 입학했고, 문과대학 전체 차석으로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3년8개월 만에 피츠버그대에서 교육학 석사, 심리학 석사, 교육전공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한국 최초의 맹인 박사가 됐다. 나아가 미국 교육부의 차관보까지 올라 미국 이민 100년 역사에서 가장 높은 공직에 오른 한국인으로 기록됐다. 남과 비교하면 약점투성이였던 강 박사가 들려주는 성공의 비결은 이렇다.

    “자신을 믿고 하루하루 목표를 향하여 실천하다 보니 어느 날 이 자리까지 왔다.”

    우리는 신이 아니다. 모든 면에서 잘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과 비교의 대상이 된다. 자기의 약점을 다른 사람의 훌륭한 점과 비교하면 자학할 수 있고, 심하면 체념의 지경에 이른다.

    절반의 일, 절반의 휴식

    ‘직업 사전(Dictionary of Occupational Titles)’에는 1172종의 직업이 수록되어 있다. 해마다 직업의 종류는 증가하는 추세다. 이 많은 직업 중에 자기가 가진 능력에 맞춰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교육 심리학자 길퍼드의 ‘지적 모형’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120가지의 다양한 능력이 있다. 중요한 사실은 그런 능력이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한 사람이 여러 가지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듯 뛰어난 능력이 우리 안에 있는데도 상대평가에 가려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 한평생 남의 흉내를 내다가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은퇴 후 생활을 계획하면서 꼭 짚어봐야 할 것이 바로 자신에 대한 재발견이다.

    은퇴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활동기(60~70세)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 사회로 달려가면서도 ‘사오정(45세 정년)’이니 ‘오륙도(56세까지 직장에 다니면 도둑)’니 하면서 지나치게 조기 퇴직하는 바람을 일으켰다. 만약 50세에 직장에서 해고당한 뒤 다시 취업하지 못해 은퇴생활로 이어졌다고 가정해보자. 이 사람이 85세에 사망한다고 가정하면 35년 동안 일하지 않고 놀아야 한다. 웬만한 사람이 아니고는 이토록 오랜 기간을 일하지 않고 보낼 수 없다. 불행한 노년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은 일과 휴식을 균형 있게 추구해야 건강하게 산다. 그래야 행복하다. 반대로 일하지 않으면 건강과 행복을 동시에 잃을 가능성이 높다. 역설적이지만 행복한 은퇴생활은 은퇴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재무설계사들은 은퇴 이후라도 일을 완전히 그만두지는 말라고 조언한다. 은퇴 후 수십년을 무료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심각한 질병 상태에 있는 거나 다름없다. 그러니 ‘딱 절반만 은퇴하라’는 것이다. 현재 하는 일을 줄여 시간제로 일하거나, 자원봉사 같은 의미 있는 일을 찾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지금부터라도 노후에 할 일을 찾기 위해 관심 있는 분야의 재교육을 받아둬야 한다.

    취미생활은 노인의 친구

    노인은 건강해야 한다. 행복한 은퇴생활은 부부의 건강과 직결된다.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덜컥 중병에 걸리면 은퇴생활의 행복은 일순간 깨지고 만다.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려고 하지만, 노인은 치매, 뇌졸중, 파킨슨병 같은 각종 노인성 질환으로 고통을 겪는다. 2005년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중 50만명이 치매, 중풍, 뇌졸중 같은 중증 노인성 질환으로 장기요양이 필요하다.

    한 번뿐인 은퇴생활, 건강을 유지하려면 몇 가지 해야 할 것이 있다.

    첫째, 꾸준하게 즐길 수 있는 운동을 찾아야 한다. 젊을 때부터 해오던 부담 없고 재미있는 운동이 바람직하다. 운동은 거액의 병원비를 절약해주는 수단이자,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처방이다. 자신에게 맞는 것을 골라보자.

    둘째, 주기적으로 건강 상태를 검진해 질병을 예방해야 한다. 특히 암, 당뇨, 고혈압 등 노인의 건강을 해치는 질환에 대해 주의해야 한다. 되도록 조기에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행복한 은퇴생활에 꼭 뒤따라야 하는 것이 취미생활이다. 은퇴 전에는 하루의 80%를 직장에서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은퇴 후에는 다르다. 은퇴 후에는 직장에서 보내던 시간이 고스란히 남는다. 처음엔 참을 수 있어도 조금만 지나면 무료해진다. 이 때문에 은퇴 후에 정신적 고통을 받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당황한다. 별다른 취미가 없어서다. 취미를 갖지 못한 이유는 시간적으로, 경제적 또는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에는 매월 봐야하는 시험 준비하느라, 또 학원 다니느라 취미생활은 엄두도 못 낸다. 직장에 들어가면 업무에 매달려 매일 밤 늦게까지 일하다가, 퇴근길에 술 한잔하는 것이 고작이다.

    취미생활은 삶의 질을 결정할 만큼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직장생활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려는 사람이 많아 취미가 곧 직업인 사람도 많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했다면 그럴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은 그렇지 않다.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은 제쳐두고 매일 먹고 사는 일에 정신이 없다. 그렇게 때문에 이들은 하루하루 사는 것이 벅차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이후로도 우리가 살아가야 할 시간은 길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죽을 때까지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 채 애태우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를 보완하는 것이 취미생활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살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다.

    취미는 하루아침에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갖고 다각도로 노력해야 발견할 수 있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무엇이든 미루면 안 된다. 어떤 취미가 좋을까. 좋은 취미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행복하게 만든다. 나뿐만 아니라 가족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나에게 딱 맞는 취미일 것이다.

    취미를 가지라고 해서 너무 어렵게 생각하진 말자. 돈을 많이 써야만 좋은 취미라는 생각을 버리자. 취미에는 돈이 많이 드는 취미도 있고, 돈이 적게 드는 취미도 있다. 혼자서 하는 취미가 있고, 여러 명이 함께하는 취미가 있다. 기구를 사용해야 하는 취미가 있고, 자연과 함께하는 취미도 있다.

    돈이 적게 들면서, 가족과 함께할 수 있고, 자연과 함께할 수 있어야 좋은 취미라고 할 수 있다. 등산, 독서, 여행, 고궁 및 유적답사, 음악 감상, 미술 감상, 달리기, 걷기, 인라인 스케이트, 퍼즐 맞추기, 축구, 족구, 배구, 농구, 배드민턴, 사진 촬영, 종교 생활, 봉사활동 등을 꼽을 수 있다.

    환한 미소를 머금고 세상을 떠나는…

    노후생활의 중요한 특징을 몇 가지로 요약해보자. 첫째는 시간이 많이 남는다는 것, 둘째는 할 일이 없다는 것, 셋째는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주위에서 사라진다는 것,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이다.

    은퇴생활을 잘 한다는 것은 할 일 없이 남겨진 시간을 자신과 남을 위해 봉사하면서 보낼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종교생활도 한 가지 방법이다.

    교회, 성당, 절에서는 봉사할 일이 많다. 봉사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시간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다. 식사도 해결된다. 이뿐만 아니라 돈을 낭비하는 일이 줄어든다. 정신도 맑아진다. 성경이나 불교의 경전은 삶의 지혜를 담고 있는 명저다. 성현의 삶의 지혜가 담긴 글을 매일 읽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 경전의 특징은 삶을 살아갈수록, 많이 읽을수록 그 의미가 새로워진다는 것이다. 독서를 하고, 생각을 많이 할수록 치매 같은 질병에 걸리는 확률이 낮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종교생활을 하면 친구들이 끊이질 않는다. 언제나 만나서 대화할 상대가 있다. 더군다나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교제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은퇴생활 중에서 가장 힘든 일이 바로 외로움을 극복하는 일이다. 든든하게 의지할 절대자와 대화할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노년은 덜 외로울 것이다.

    인간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은 바로 죽음에 직면하는 것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렵고, 무섭다. 그래서 가장 잘 죽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고 하는 말이 있다.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종교를 갖는 것이다. 종교가 죽음을 막지는 못하겠지만 죽음의 고통을 완화해줄 수는 있다. 종교계의 거물들을 보라. 이들의 임종은 엄숙하고도 장엄하다. 종교에 심취해 있는 사람의 임종은 평온하다. 어떤 이는 환한 미소를 머금고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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