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호

임상 2상 진입하는 항암제 천지산

부작용 거의 없는 항암효과 입증, 백혈병 치료제로도 개발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6-02-01 13: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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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험대상 환자 15명 중 10명, 투약기간 중 암세포 진행 늦춰져
    • 종양표지자 감소, 괴사(壞死) 발생으로 간접적 항암효과
    • 2상시험 1차 대상은 말기 자궁경부암 환자
    • 상반기 중 제약회사 인수, 다국적 제약회사와 합작계약 진행 중
    • 백혈병 권위자 의정부성모병원 김동욱 교수, 천지산 연구팀 합류
    • 개발자 배일주, “황우석 사태 교훈 새겨 연구에만 전념하겠다”
    임상 2상 진입하는 항암제 천지산

    2005년 12월말 식약청에 제출된 천지산 임상 2상시험 계획서.

    세계 최초 무독성 비소(砒素) 항암제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천지산’(약품명·테트라스)의 임상 2상시험 진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말 (주)천지산은 천지산 임상 1상시험 결과가 첨부된 2상시험 계획서를 식약청에 제출했다. 식약청은 관련 규정에 따라 한 달 안에 2상시험 승인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1상시험기관인 서울아산병원이 임상시험 성적서를 내놓은 것은 지난해 11월. 1상시험의 목적은 2상시험에서 사용할 적정 용량을 결정하고 체내반응(흡수·분포·대사·배설)을 살피는 것. 실제로 약효, 즉 항암효과가 있는지는 2상에서 판가름난다. 그런데 천지산의 경우 1상에서 암세포가 더 전이되거나 커지지 않고 종양표지자(암세포가 있음을 나타내는 물질로, 암세포가 만든 단백질을 뜻한다)가 감소하는 등 항암효과가 입증돼 기대치를 높이고 있다.

    1상시험 책임자인 서울아산병원 종양혈액내과 강윤구 교수는 “1상은 적정 용량을 결정하는 것이고, 2상 승인이 곧 시판허가를 뜻하는 것은 아니므로 (2상시험)계획서에 담긴 실험방법에 문제가 없는 한 천지산의 2상 진입엔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강 교수의 말대로 식약청은 관례적으로 1상시험 결과에서 실험방법 오류 등 특별한 하자가 발견되지 않으면 2상시험을 승인해왔다. 따라서 규정대로라면 천지산은 늦어도 1월말엔 2상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식약청이 자료 보완을 지시하거나 추가 자료를 요구할 경우, 또는 행정처리 지연 등의 변수에 따라 시일이 더 걸릴 가능성도 있다.

    개발 중인 신약은 임상 3상시험까지 마쳐야 시판이 가능하다. 3상은 약의 장기적 부작용을 살피는 한편 2상에서 인정된 약효가 실제로 환자의 생명연장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다만 예외가 있다. 암이나 AIDS 등 희귀병 치료제에 대해선 2상에서 효능이 인정될 경우 ‘동정적 사용’이라고 해서 3상에 들어가기 전 조건부 시판을 허용하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특례조치로, 비록 안전성과 유효성이 완전히 입증되지 않은 상태지만, 기존 치료법으로 더는 희망이 없는 환자들에 대해 인도적 차원에서 제한적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천지산은 2상에서 항암효과가 인정될 경우 ‘동정적 사용’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 경우 천지산 시판 시기는 훨씬 앞당겨진다.



    식약청에 1상시험 성적서 제출

    널리 알려졌다시피, 일부 암 환자들 사이에서 ‘기적의 항암제’로 불리던 천지산은 한때 가짜 소동에 휘말리며 사장(死藏)될 뻔했다. 하지만 천지산의 비공식 임상효과에 주목한 일부 의대 교수들의 과학적 연구가 뒷받침되면서 극적으로 회생, 2003년 8월 식약청으로부터 임상시험을 승인받기에 이르렀다(천지산의 의학적 연구과정과 성과에 대해서는 ‘신동아’ 2005년 6월호 참조).

    서울아산병원이 임상 1상시험을 시작한 것은 2004년 2월. 적정 용량을 구하는 시험은 그해 7월 일찌감치 종료됐다. 1상시험 성적서 제출이 늦어진 것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약물역동학 검사결과를 분석해 통계처리하는 데 예정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 탓이다. 아울러 시험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은 것도 한 이유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약물역동학 검사란, 일정 시간마다 환자의 피를 뽑거나 소변을 수거해 주성분(천지산의 경우 육산화비소·As4O6) 농도를 비교, 검사함으로써 약물에 대한 인체의 반응정도를 확인하는 것이다.

    강 교수에 따르면 천지산 1상시험의 성과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기존 항암제와 달리 독성에 따른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점. 둘째, 종양표지자 감소. 셋째는 병합 사용, 즉 다른 항암제와 함께 사용할 경우 항암효과가 더욱 높을 것이라는 ‘추정 결과’를 얻었다는 점이다.

    천지산 1상시험 성적서에 따르면, 임상시험에 쓰인 의약품명은 테트라스 캡슐. 대상 질환은 ‘기존의 1차적 항암화학요법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고 표준 치료방법이 없는 말기 고형암(固形癌)’이다. 고형암은 피에서 비롯된 혈액암(백혈병, 골수종 등)과 대조되는 것으로, 위나 폐 등 형체가 고정된 장기나 두경부(귀, 코, 목), 피부에서 발생하는 암이다.

    임상 2상 진입하는 항암제 천지산
    임상시험 책임자는 서울아산병원 강윤구 교수이고, 임상시험 담당자는 서울아산병원 종양혈액내과 장흥문 조교수 외 5명이다. 임상시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시험약물 투여시 용량제한독성(DLT=Dose Limiting Toxicity·특정 용량에서 나타나는 독성반응) 발현 여부 관찰을 통한 최대 내약용량(MTD=Maximum Tolerated Doses)을 추정하고, 시험약물의 약물동태학적 특성을 평가하는 것을 1차 목적으로 했으며, 2차적으로는 해당 피험자에 대한 시험약물의 항종양 효과에 대해 탐색적으로 고찰했다. 본 연구로부터 얻어진 결과는 이후 실시될 임상시험의 설계시 적절한 투여 용법, 용량을 결정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

    연구팀은 최대 내약용량을 찾기 위해 저용량(5㎎/day)을 개시 용량으로 삼아 해당 용량군에서 안전성이 확인되는 경우 단계적으로 용량을 늘려 투여하는 실험방식을 채택했다. 또 약물동태학적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첫 용량 투여시엔 24시간까지, 반복 투여시엔 1주 단위로, 투여 종료시엔 72시간까지 시험대상 환자의 혈중 비소농도 변화와 소변으로 배출되는 비소 양을 확인했다. 아울러 탐색적 의미이긴 하지만, 투약 종료시점(4주)에 환자의 종양 상태가 투약 전에 비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관찰했다.

    1상시험 대상 선정기준은 ▲자의로 임상시험 참여에 동의한 자 ▲조직학적으로나 세포진단학적으로 고형암으로 확진된 자 ▲만 19세 이상, 70세 이하 ▲임상시험 시작 후 12주 이상 생존 가능성이 예상되는 자로 정했다.

    이 같은 기준에 따라 15명의 고형암 환자가 시험대상으로 선정됐다. 모두 수술이나 항암제 투여, 방사선 요법 등 표준적 치료방법이 없는 말기암 환자였다. 공식 약물 투여기간은 4주. 하지만 상당수 환자는 공식 시험과 상관없이 치료 목적으로 천지산을 추가 복용했고, 그 결과 몇몇 환자에게서 종양표지자 감소 등 항암효과를 나타내는 징후가 발견됐다.

    강 교수팀은 적정 용량을 구하기 위해 먼저 이들 중 3명에게 하루에 15㎎, 즉 한 번에 5㎎(1캡슐)씩 식후 세 차례 투약했다. 아무런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자 용량을 늘려 하루에 30㎎을 투약했다. 역시 이상이 없었다. 3단계에선 더 늘려 하루에 45㎎을 투약했다. 그러자 1명에게서 용량제한독성이 관찰됐다. 다른 3명의 환자에게 같은 양을 투여하자 마찬가지로 1명이 이상반응을 나타냈다. 6명 중 2명에게서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이 경우 한 단계 적은 양이 최대 내약용량이 된다. 그에 따라 천지산의 최대 내약용량은 2단계 용량, 즉 30㎎/day(6캡슐)로 결정됐다.

    “소문에는 좀 못 미쳤지만…”

    약물의 항암효과는 종양 크기 변화에 따라 ‘완전반응’ ‘부분반응’ ‘불변’ ‘진행’ 네 종류로 나뉜다. ‘완전반응’은 암세포가 완전히 죽거나 사라진 경우, ‘부분반응’은 종양 크기가 50% 이상 감소하거나 새로운 암 전이가 일어나지 않은 경우다. 이에 비해 ‘불변’은 종양 크기가 50% 미만 줄어들거나 25% 미만 증가한 경우를 일컫는다. ‘진행’은 투약 중에도 암세포가 25% 이상 커지거나 새로운 암 전이가 나타난 경우로 항암효과가 거의 없음을 뜻한다.

    천지산의 경우 시험대상 환자 15명에게 4주간 투약한 결과 10명에게서 ‘불변’ 반응이 나타난 반면 5명에게서는 ‘진행’ 현상이 관찰됐다(표 1). 67%에 해당하는 10명에게서 암세포 발전 속도가 더딘 ‘불변’ 현상이 나타난 것은 의미 있는 성과이긴 하다. 하지만 암세포가 사멸되거나(‘완전반응’) 종양 크기가 반 이상 줄어든 것(‘부분반응’)이 아니라는 점에서 항암효과가 뛰어나다고 하기엔 미흡한 구석이 있다.

    시험책임자인 강 교수도 “솔직히 기대에는 조금 못 미친 면이 있다. 그간 천지산을 둘러싼 소문을 의식해 종양 크기가 반 이상 줄어드는 환자가 많이 나올 줄 내심 기대했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1상시험은 적정 용량을 결정하고 부작용을 살피는 것인 만큼 항암효과를 논하기엔 이르다”며 “기존 항암제와 달리 부작용이 없다는 점이 인정된 것만 해도 큰 성과”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와 관련, (주)천지산이 식약청에 제출한 2상시험 계획서에는 이런 설명이 담겨 있다.

    ‘본 임상 연구의 대상이 과거 수년간 외과적 수술, 항암화학요법, 방사선요법 등을 실시했음에도 예후가 좋지 않았던 말기 진행성 악성종양 환자들이므로 15례(例) 중 10례에서 더 이상의 암 전이 및 종양 크기 증가가 관찰되지 않았다는 것은 유의할 만한 의미가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본 연구의 투약·관찰 기간이 짧았고(4주), 회복기나 추가적인 투약·관찰기간을 설정하지 않았으므로 본 연구에서 관찰된 항종양 효과 검증 결과에 대해 임상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현재 상용되는 다른 항암제들의 치료기간을 고려할 때 최소 3개월 정도 투약·관찰했을 때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관찰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부작용 없는 것만도 큰 성과

    1상시험에 응한 환자 15명 중 13명은 시험기간(28일)이 끝난 후에도 최소 3일(총 31일)에서 최대 238일(총 266일)까지 추가로 약을 먹었다. 환자 본인이 원하고 의료진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경우에 한해서였다. 나머지 2명은 시험기간에만 약을 먹었다. 추가 투여기간의 중앙치는 35일. 중앙치란 평균치와 다른 개념으로, 순서상 한가운데 있는 수치를 뜻한다. 예컨대 5명의 환자가 각각 1일, 3일, 7일, 15일, 30일 동안 약을 먹었다면 평균치는 11.2일(56÷5)이지만, 중앙치는 7일이다.

    강 교수를 비롯한 1상시험팀은 오히려 이 추가 복용기간에 나타난 약효에 주목하고 있다. 환자 15명을 암 부위별로 구분하면, 자궁경부암과 요로암이 각 4명, 두경부암이 5명(한 명은 폐암 동시 진행), 위암, 대장암 환자가 한 명씩이었다.

    ‘신동아’가 입수한 시험대상 환자 CT 필름에 따르면, 이중 자궁경부암 환자 2명에게서 종양표지자 감소 현상이 나타났다. 66세 환자의 경우 넉 달(2004년 2월23일~6월22일) 만에 종양표지자가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그림 1). 40세 환자는 한 달여 만에 절반 이상 감소했다(그림 2). 강 교수는 “종양표지자가 감소한 것은 암세포 기능이 죽거나 저하된 것을 뜻한다”며 “천지산의 항암효과를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또 자궁경부암 환자 2명과 두경부암 환자 한 명에게서 암세포 크기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종양 괴사(壞死·생체 내 조직이나 세포가 부분적으로 죽는 일) 및 누공(孔·부스럼의 구멍)이 발견돼 눈길을 끌었다(그림 3, 4). 괴사는 암세포가 액체처럼 흐물흐물해져 농도가 옅어지는 것이고, 누공은 암세포에 공기가 들어가 구멍이 생긴 것이다. 괴사가 발생한 자궁경부암 환자 중 1명(40세)은 종양표지자가 감소한 자궁경부암 환자 2명 중 한 명과 동일인이다. 즉 이 환자의 경우 종양표지자도 감소하고 괴사도 일어난 것이다.

    강 교수에 따르면 괴사 현상은 종양표지자 감소와 마찬가지로 항암효과를 시사하는 것이다. 해당 약물을 장기 투여할 경우 암세포 크기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라는 것이다.

    15명 중 현재 생존 환자는 한 명뿐이다. 강 교수는 이에 대해 “생존율을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1상시험의 목적이 제한된 기간에 제한된 용량으로 부작용을 검증하는 것인데다 시험대상도 하나같이 말기암 환자이므로 생존기간을 항암효과의 척도로 삼는 것은 무리라는 얘기다. 생존자 한 명은 두경부암 환자인데, 강 교수 분석에 따르면 암세포가 계속 자라고는 있지만 워낙 그 속도가 느려 생명이 연장되고 있다는 것.

    이와 관련, (주)천지산 대표이자 제조자인 배일주씨는 “1상시험 대상자들이 수술이나 항암제 치료를 포기한 중증의 말기암 환자였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며 “2상에서는 2기말, 3기, 4기 등 다양한 암 환자에게 장기간 약을 투여하기 때문에 항암효과가 구체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한편 KIST에서 실시한 약물역동학 검사는 체내반응을 살피는 것이므로 항암효과 검증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KIST는 환자 15명으로부터 채취한 피와 소변, 머리카락, 손톱, 발톱 등 모두 2500개의 시료를 분석해 약물의 체내 체류시간, 배설률, 최고 혈장농도 도달시간 등에 대한 파라미터를 제시했다.

    서울아산병원은 KIST의 분석자료를 넘겨받아 임상병리학과 배균섭 교수 주도로 검증작업을 벌였다. 총괄 책임자인 강윤구 교수는 약물역동학 검사와 관련, “KIST 분석결과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며 “체내 약물동태 확인은 2상에서도 가능하므로 필요하다면 (2상에서) 추가로 검사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재검사 가능성도 내비쳤다.

    천지산 연구에 동참한 의학자들에 따르면, 천지산은 그간 비공식 임상시험과 전(前)임상시험(동물시험, 시험관시험, 독성시험)을 통해 혈관신생억제(Angiogenesis Inhibitor), 암세포 사멸(Apoptosis), 방사선 치료효과 증대(Radiosensitization)라는 세 가지 항암효과를 드러냈다고 한다. 강 교수에 따르면 이중 1상시험을 통해 가장 두드러진 것은 혈관신생억제 기능이다. 혈관신생이란, 암세포에 영양을 공급하는 새로운 혈관이 생성되는 것이다.

    반면 대부분의 기존 항암제는 암세포 사멸 기능이 강하다.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몇몇 유명 항암제의 경우 치료 확률이 20%대인데, 그 정도만 해도 상당히 효과가 좋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효능에 비해 부작용이 크다는 것이 흠이다. 정상세포와 암세포를 구분하지 않고 다 죽이기 때문이다.

    혈관신생억제 기능 두드러져

    천지산의 경우 이 점에서 차별성을 갖고 있다. 강 교수는 “1상시험결과 천지산은 부작용이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기존 항암제와 병합 사용해도 부작용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천지산의 ‘안전성’을 강조했다.

    임상 2상 진입하는 항암제 천지산

    서울아산병원이 실시한 천지산 임상 1상시험 결과, 일부 환자들에게서 종양표지자 감소, 괴사 등 항암효과를 나타내는 징후가 발견됐다. 그림은 해당 환자들의 CT필름.

    어느 항암제를 쓰든 암 뿌리가 완전히 뽑히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 의약계의 정설이다. 항암제 시장의 현 추세는 병합요법이다. 암세포마다 잘 듣는 항암제가 다르고 항암제마다 고유 특성이 있으므로 함께 사용하면 약효를 배가시킬 수 있다는 것. 강 교수는 “혈관신생억제 기능을 겸하고 있는 천지산을 기존 항암제와 함께 사용하면 약효가 더욱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식약청에서 천지산 임상 2상시험 계획서를 심사하는 부서는 항생항암의약품팀이다. 이 부서 관계자는 “현재 1상에서 도출한 적정 용량이 적절한지 등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30일 이내에 승인하게 될 것”이라면서도 “부족한 자료가 있으면 보완을 지시할 수도 있다”고 토를 달았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식약청이 자체 심사로 끝내지 않고 중앙약사심의위원회에 자문을 구할 경우 시간이 더 걸린다.

    의약품안전정책팀은 심사를 통과한 의약품에 대해 임상시험 승인서를 내주는 부서다. 이 부서 관계자는 “1상 결과가 제출됐다고 해서 무조건 2상 허가가 나는 게 아니다. 2상이나 3상에 이르지 못하고 중도 폐기되는 경우도 많다”고 원론적인 견해를 밝혔다. 천지산의 ‘동정적 사용’ 가능성에 대해서도 “1, 2상 시험결과가 좋을 경우 조건부 시판허가가 날 수도 있다”는 ‘모범답변’을 내놓았다.

    2상시험 실시기관 및 책임연구자는 1상 때와 마찬가지로 서울아산병원 강윤구 교수다. 시험대상자는 자궁경부암 환자로 국한됐다. 그 이유에 대해 배일주씨는 “자궁경부암이 다른 암에 비해 진행상태가 쉽게 관찰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배씨는 자궁경부암 쪽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면 임상시험 대상을 다른 부위의 암 환자로 확대할 계획이다. 그때마다 식약청에 2상시험 계획서를 제출해 승인을 받아야 한다. 다시 말해 위암 환자 따로, 폐암 환자 따로 계획서를 내야 하는 것이다. 배씨는 이와 관련해 “일단 서울아산병원에서 시작한 후 최소한 세 군데 병원을 추가로 선정해 임상시험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언급했듯 1상시험에서 확인된 최대 내약용량은 하루에 30㎎. 2상시험 적정 용량은 1상시험 결과와 안전성을 감안해 15㎎으로 산정했다. 이는 하루에 5㎎(1캡슐)씩 세 차례 복용하는 것으로, 배씨가 과거 ‘불법적’으로 약을 처방할 때 쓰인 용량과 같다.

    예정 시험기간은 1년이고 전·후기로 나눠 진행될 예정이다. 전기에서는 환자 12명을 대상으로 투약하는데, ‘완전반응’이나 ‘부분반응’ 사례가 한 건도 관찰되지 않을 경우 연구를 중단하게 된다. 반면 한 명이라도 ‘완전반응’이나 ‘부분반응’을 나타내면 추가로 23명을 선정해 모두 35명에 대해 투약한다는 계획이다.

    계획서에 따르면 이 35명 중 중도탈락자를 제외한 28명을 최종 분석하게 된다. 투약기간은 44주. 4주 연속 투여 후 1주 휴식하는 것을 한 주기로 삼아 환자 한 명당 4주기까지 투약하고, 종료 후 24주간 생존 여부나 종양 진행상태를 점검한다. 다만 기본 투여기간인 2주기(10주) 이후 암세포가 커지는 ‘진행’ 상태가 확인된 암환자에 대해서는 투약을 중단한다.

    전 강북삼성병원 암 전문의 동참

    (주)천지산은 장비와 시설, 인원을 보강하고 2상시험에 들어갈 채비를 마친 상태다. 경기도 과천에 분석실을 새로 만들고 ‘ICP-MS(유도결합 플라스마 분광계)’라는 초미량분석기 2대를 사들였다. 이는 KIST에도 1대밖에 없는 고가의 장비(대당 23만8000달러)인데, 향후 약물역동학 검사를 자체적으로 처리할 목적으로 마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주)천지산은 최근 KIST 연구원 2명을 영입했다. 이로써 이 회사 직원은 모두 14명으로 늘어났다.

    연구진도 강화됐다. 현재 천지산 연구에 동참한 의학자는 30명에 이른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연구비를 지급받는데, 2상시험이 시작되면 별도의 자문료도 받게 된다. 배일주씨는 “황우석 교수의 문제점 중 하나는 연구내용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을 거치지 않은 점”이라며 “그런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교수들에게 철저하게 자문을 구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임상 2상 진입하는 항암제 천지산

    천지산 개발자 배일주씨는 ‘황우석 사태’를 교훈 삼아 제약회사 인수 후엔 연구에만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새로 합류한 의학자들 중 가장 관심을 끄는 인물은 유영석 전 강북삼성병원 내과교수. 암 전문의인 유씨는 과거 천지산이 ‘음지’에 있을 때 의사들 중에서 가장 먼저 천지산의 의학적 효능을 인정했던 인물로, 1996년 배씨가 사기꾼으로 몰려 체포됐을 때 검사 앞에서 천지산 복용환자의 필름을 제시하며 배씨를 옹호하기도 했다.

    그가 강북삼성병원을 그만둔 것은 ‘천지산 사건’의 후유증 때문이었다. 이후 미국에 건너가 천지산의 주성분인 비소의 항암 효능을 연구, ‘캔서 리서치(Cancer Research)’라는 세계적인 암 전문학술지에 두 차례 관련 논문을 실을 정도로 비소 전문가가 됐다. 귀국 후 그는 서울 강남에 열린내과의원을 개업했다. 그의 합류로 천지산 연구는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그가 천지산의 비공식 임상시험, 즉 강북삼성병원 재직 시절 천지산을 암 환자들에게 처방하고 그 상태를 관찰한 기록과 관련 자료를 고스란히 갖고 있기 때문이다.

    천지산 관련 뉴스 중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천지산이 백혈병 치료에 도전한다는 사실이다. 이 얘기가 허풍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는 비소가 백혈병에 잘 듣는다는 것이 이미 세계 의학계에서 공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시판허가를 받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트리세녹스가 대표적인 비소 백혈병 치료제다. 트리세녹스의 주성분은 천지산(As4O6)과 화학구조가 비슷한 삼산화비소(As2O3)다.

    백혈병에 대한 천지산 임상시험은 국내 백혈병 연구의 권위자로 알려진 의정부성모병원 김동욱 교수가 맡기로 결정됐다. 식약청 항암제 분과 심사위원이기도 한 김 교수가 천지산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과거 천지산 임상시험 신청서가 접수됐을 때 동물시험 자료 미비 등을 이유로 두 차례 퇴짜를 놓으면서다. 그는 당시 일에 대해 “처음 천지산에 대한 항간의 소문을 접했을 때 솔직히 황당한 느낌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다국적 제약회사와 합작계약 진행 중

    김 교수가 천지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백혈병에 잘 듣는 비소 때문이다. 현재 배씨로부터 천지산 원료를 건네받아 실험실에서 연구 중이라고 밝힌 그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백혈병에 대한 천지산 임상시험의 경우 1상과 2상을 동시에 진행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삼산화비소로 만든 트리세녹스가 시판허가를 받았으므로 백혈병에 대한 비소의 효능이 이미 확인됐다는 점이 그 근거다.

    김 교수는 현재 백혈병 치료용 신약으로 개발중인 슈퍼글리벡과 다사티닙에 대한 국제적인 임상시험에 동참하고 있다. 이 임상시험은 미국과 유럽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데, 아시아에서는 김 교수가 몸담은 의정부성모병원이 유일하게 참여하고 있다.

    그는 “슈퍼글리벡과 다사티닙이 통하지 않는 백혈병 환자에게 암세포 사멸 기능을 가진 천지산을 병합 사용할 경우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아울러 (고형암을 대상으로 한) 천지산 1상시험 결과를 정밀 분석한 후 백혈병에 대한 임상시험계획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주)천지산은 상반기 중 BGMP(원료의약품우수제조관리기준 시설설비)와 KGMP(대한민국 우수의약품 제조규격)를 갖춘 제약회사를 인수할 예정이다. 다분히 시판을 염두에 둔 포석인 셈이다. 의약품 생산시설과 판매 시스템이 갖춰진 제약회사를 인수할 경우 제조와 판매가 일원화돼 수익구조 면에서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주)천지산 김모 기획이사에 따르면 현재 몇몇 후보 회사를 선정해놓고 물밑 협상을 벌이고 있는데, 진행속도가 매우 빨라 인수시기가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또한 해외시장 개척과 정보 교류, 공동연구 목적에서 다국적 제약회사와 합작회사도 만들 예정이다. 다국적기업이 자금을 제공하고 (주)천지산이 기술을 대는 방식인데, 5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는 경우에만 계약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다국적 제약회사가 설립되면 한국과는 별개로 외국에서 천지산 임상시험이 진행될 수 있다. 현재 미국, 호주, 일본에 있는 다국적 제약회사들과 접촉하고 있는데, 그중 호주 회사와의 협상이 가장 빠른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배씨는 인터뷰에서 황우석 교수 사태를 몇 차례 언급하며 “연구자의 기본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절실히 느꼈다”고 했다. 제약회사를 인수하게 되면 경영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자신은 연구에만 전념할 생각이라고 다짐하듯 새해 포부를 밝혔다. 그의 새 연구내용 중엔 천지산 주사제 개발도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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