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은 화곡동 수사를 계기로 전국 10여 개 재건축 현장의 비리사건을 수사했고, 그 결과 71명을 적발해 사법처리했다. 이중 10명은 구속됐고, 8명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신청키로 했다. 53명은 불구속 입건됐다. 이중 화곡동 재건축과 관련해서 검찰은 1명을 구속기소하고, 1명은 불구속 기소했다. 수사가 전국으로 확대된 것은 화곡동 공사에 참여했던 도급업체, 감리업체의 수주 실태를 샅샅이 뒤진 결과였다.
수사의 본류인 화곡동 사건만 놓고 보면 몇 가지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왔다. 우선 조합장 S씨가 지분율을 낮춰주는 대가로 함바식당(건설현장에서 운영하는 식당) 운영권을 받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은 그를 배임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지분율은 시공사가 대지 지분을 기준으로 조합원에게 보상금 등을 제공하는 비율을 말한다. 지분율이 낮아지면 시공사는 그만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또 대우건설이 공사비를 부풀려 10여 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그러나 경찰은 일부 조합원들이 수년 동안 줄기차게 “대우건설이 주민에게 돌아갈 이익금 1000억원을 착복했다”고 주장한 내용에 대해서는 속시원히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경찰은 대우건설이 2004년 작성한 경상이익률 자료를 검토한 결과, 화곡동 시범아파트 재건축으로 950억원의 이익을 얻었다는 점은 확인했다. 경찰은 “대우건설이 다른 공사현장에서 얻은 이익이 전체 건축비의 최대 10%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화곡동 재건축사업의 이익률(30%)은 이례적이고 비정상적이다”고 여운을 남겼다.
그렇다면 일부 조합원이 주장하는 1000억원의 실체는 무엇인가. 이를 알아보려면 화곡동 재건축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납득할 수 없는 방법으로 1000억원의 공사비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화곡동 시범아파트 재건축은 1995년 시작됐다. 그해 재건축 결의 및 시공사 선정을 마쳤고, 다음해 9월 조합 설립인가도 받았다. 시공사 선정 당시 대우건설이 제시한 ‘무상 지분율’은 117.2%였고, 건립 가구수는 3202가구, 공사비는 2600억원이었다.
그러나 1999년 5월 막상 건설이 시작될 즈음 대우건설이 무상 지분율은 108.6%, 건립 가구수는 2292가구, 건축비는 3600억원으로 변경하려고 하자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조합원에게 돌아갈 보상액은 줄고 건축비는 크게 늘었기 때문. 대우건설은 1997년 금융위기로 사업 수지가 악화된 데다 사업 지연으로 물가가 상승했다는 점을 그 이유로 들었다. 이대로라면 가령 기존 아파트 100평에 살던 조합원이 재건축으로 받을 수 있는 아파트 평수가 117.2평에서 108.6평으로 줄어든다.
구청이 상식을 몰랐다?
이 때문에 1999년 5월 재건축 변경안에 대해서는 조합원 757명 중 537명만 찬성했다. 찬성률 70.9%. 집합건물법 제47조 제2항 규정(재건축 결의를 변경할 경우에는 조합원 5분의 4(80%) 이상의 결의를 얻어야 한다)대로라면 안건은 부결돼야 했다. 그런데도 조합은 1999년 6월 대우건설과 변경된 내용대로 가계약을 맺었다.
강서구청의 사업승인은 ‘막가파식’ 재건축을 가능케 해주는 면죄부가 됐다. 강서구청은 1999년 11월, 재건축 변경안 결의가 부적격한데도 사업승인을 내줬다. 1998년 대법원은 한 재건축 사건에 대해 ‘재건축 결의 내용을 변경할 때는 조합원 전원의 합의가 필요하고, 그러한 합의는 재건축 결의시의 특별 정족수에 준해 조합원 5분의 4(80%) 이상의 다수에 의한 결의에 의해 한다’고 판결한 판례가 있다. 이 같은 판례를 구청이 몰랐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재건축업자 A씨는 “구분(區分) 소유자 80%의 동의를 얻어야 재건축을 할 수 있다는 건 상식인데, 구청이 이를 모를 리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