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호

‘러브레터’의 무대, 일본 오타루

눈 속 홋카이도 울린 은빛 메아리, “오겡키데스카…”

  • 사진·글 이형준

    입력2006-02-03 1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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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브레터’의 무대, 일본 오타루

    이 지역 최고의 명소로 꼽히는 ‘오타루 캐널’의 아름다운 야경.

    아이누족 말로 ‘모래가 많은 바다’란 뜻을 가진 오타루(小樽)는 한마디로 ‘일본과는 다른 일본’이다. 이국적인 풍광, 독특한 낭만이 가득한 이 거리에 서면, 무엇보다 이와이 지가 감독한 영화 ‘러브레터’의 아스라한 추억이 관광객을 사로잡는다. 조난사고로 죽은 약혼자 후지이 이츠키 앞으로 보낸 편지에 고향의 동명이인 친구가 답장을 하면서 시작되는 영화는, 약혼녀 와타나베 히로코와 고향의 여자 이츠키가 죽은 이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더듬어 나가는 애틋한 줄거리와 감각적인 영상으로 깊은 인상을 심어준 작품이다.

    1995년 일본 개봉 당시는 물론, 4년 뒤 한국에서 상영될 때도 ‘이와이 지 붐’을 일으킨 이 작품의 배경이 오늘 찾아가는 홋카이도의 오타루다. 영화 속 장면 대부분이 촬영된 오타루 곳곳에는 표지판과 안내도가 방문객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여주인공 이츠키(나카야마 미호)가 머물렀던 시청을 비롯해 도서관, 옛날 일본유우센주식회사(日本郵船株式會社)의 오타루 지점, 오타루 유리공방, 이츠키의 집 등 스쳐 지나간 곳을 빼도 스무 곳이 넘는다.

    ‘러브레터’의 무대, 일본 오타루

    영화 속에서 여주인공 후지이 이츠키가 살던 집.



    ‘러브레터’의 무대, 일본 오타루

    오타루 거리 맥주가게 벽에 그려진 재미난 간판.

    ‘러브레터’의 무대, 일본 오타루

    영화 속 여주인공의 집에 보관돼 있는 한국 관광객들의 방명록.



    영화 속 주인공처럼



    그 가운데 가장 먼저 찾아가야 할 곳은 아무래도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텐구산(天拘山) 중턱일 듯하다. 케이블카 승강장이 있는 산 중턱은 영화 도입부에서 약혼녀 히로코가 눈밭에 누워 있던 장면을 촬영한 장소다. ‘러브레터’에서는 고베에 있는 산으로 설정된 이 언덕은 어느 때 방문해도 영화 속 분위기 그대로인데, 특히 하얀 눈옷으로 단장한 겨울 풍광이 일품이다.

    텐구산 중턱에서 300m 남짓한 거리에 있는 유리공방도 지나칠 수 없다. 영화 속에서 와타나베 히로코와 선배인 아키하가 키스를 했던 그곳이다. 정식 이름은 ‘더 글라스 스튜디오 인 오타루(The Glass Studio in Otaru)’. 2층 건물인 공방은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데, 1층은 작업장이고 2층은 쇼핑공간이다. 수수료를 내면 영화 속 주인공처럼 직접 공예품을 만들어볼 수 있다.

    ‘러브레터’의 무대, 일본 오타루

    우편배달부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던 오타루 역 부근의 후나미자카 거리.



    ‘러브레터’의 무대, 일본 오타루

    오타루 운하공예관 주변의 겨울 풍광.

    텐구산 중턱에서 도심을 향해 조금 이동하면 영화에 병원으로 설정되어 등장했던 오타루 시청이 나온다. 독감에 걸린 여주인공 이츠키를 삼촌이 데려다주는 장면을 촬영한 장소는 시청 정문이어서 그대로 남아 있지만, 주인공이 진료를 받기 위해 의자에 앉아 있던 곳은 촬영을 위해 만든 세트라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영화 끝부분에 할아버지가 고열로 쓰러진 이츠키를 엎고 달린 곳은 시청 2층 복도. 시청 업무시간에는 관람이 가능하지만, 이츠키가 입원했던 병실은 보건실이라서 관람을 제한하고 있다.

    시청에서 언덕길을 따라 10여 분쯤 내려가면 이로나이 교차로가 나온다. 우편함에 편지를 넣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이츠키를 향해 고베에서 온 와타나베 히로코가 “후지이 상!”이라고 부르던 바로 그곳이다. 오타루에서 가장 번화한 이로나이 교차로 주변에는 앙증맞은 물건을 제작해 파는 공방을 비롯해 독특한 분위기와 사연을 가진 크고 작은 건물이 즐비하다.

    이로나이 교차로에서 북쪽으로 다시 10여 분쯤 걸으면 이츠키가 고베에서 날아온 편지를 읽고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던 곳이 나온다. 중학교에 다니던 두 명의 소년과 소녀 후지이 이츠키가 함께 책을 정리하던 곳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도서관으로 나오는 이 건물은 옛 일본유우센주식회사의 오타루 지점으로 고색창연한 석조 건축물이다.

    ‘러브레터’의 무대, 일본 오타루

    옛날 창고를음식점으로 활용하고 있는 ‘오타루 캐널’의 상가.

    도서관 장면을 촬영한 곳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500m쯤 이동하면 오타루 역사박물관 옆에 자리잡은 오타루 운하공예관(運河工藝館)을 만나게 된다. 옥탑에 두 개의 돔이 있는 오타루 유리공방은 영화 속에서도 유리공방이다. 그 모습 그대로 운하공예관은 제품을 판매하는 상점과 공방, 전망대로 이뤄져 있는데, 촬영장소를 공개하고 있어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다.

    영화 ‘러브레터’에서 가장 비중 있는 공간을 꼽자면 아마도 여주인공 이츠키의 집일 것이다. 오타루 역에서 기차를 타고 삿포로 방향으로 10여 분쯤 이동하면 나오는 제니바코 지역에 있다. 역에서 택시를 타면 집 앞까지 갈 수 있지만 걸어서 가면 20분쯤 걸린다. 물론 지금은 가정집으로 쓰이고 있다.

    ‘러브레터’의 무대, 일본 오타루

    오타루 특산품인 유리제품 상점 내부.

    ‘러브레터’의 무대, 일본 오타루

    여주인공이 근무하는도서관으로 나온 옛 일본유우센주식회사 건물. 1907년에 완성된 유서 깊은 건축물이다.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친절한

    이외에도 오타루에는 ‘러브레터’의 흔적이 즐비하다. 일본 사람들이 사랑한 영화이니만큼 어딜 가든, 누구에게 물어보든 친절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우편배달부가 오토바이를 타고 오르내리던 후나미자카 거리, 테미야 공원(手宮公園), 아키하와 히로코가 배에서 바라보던 낭만적인 항구, 고베에 사는 히로코가 이츠키의 주소를 적는 장면을 촬영했던 구스하라저택(口壽原邸) 등등. 모두 방문객으로 하여금 추억에 잠기도록 만드는 아름다운 공간이다.

    ‘러브레터’의 무대, 일본 오타루

    1 홋카이도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눈을 볼 수 있다. 눈을 치우는 발걸음이 분주해 보인다.<br> 2오타루의 텐구산 유리공방에서 공예품을 만드는 장인.<br>3 영화 속에서 오타루 공방으로 나오는 운하공예관의 외부.

    여행 정보

    홋카이도의 신치토세 공항까지 대한항공(KE) 직항을 타는 것이 편리하다(2시간40분 소요). 신치토세 공항에서 오타루까지는 기차(1시간10분)와 버스(1시간30분)가 다닌다. 오전 10시에 문을 여는 ‘더 글라스 스튜디오 인 오타루’는 하절기 저녁 7시, 동절기 6시20분까지 개장하고, 입장은 무료다. 운하공예관 역시 무료. 옛 일본유우센주식회사는 300엔의 입장료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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