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지목록함 대신 검색용 컴퓨터가 설치된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최근 몇년 사이 한류(韓流) 열풍으로 우리 국민은 문화산업의 경제적 가치를 체감하게 됐다. 2005년 10월28일 개관한 새 국립중앙박물관을 보면서 문화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고 있다. 국민소득 2만달러, 3만달러의 선진국에 이르는 길은 문화 분야의 성장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제는 ‘문화의 시대’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인 독서량이 세계 166위라니…
시설의 관점에서 볼 때 문화의 양대 축은 박물관과 도서관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준공으로 박물관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어느 정도 형성됐다. 이제는 도서관에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하고 싶다. 도서관은 ‘지식과 정보의 총체적 집합장’ ‘문화의 허브’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우선 ‘책을 읽는 곳’이라는 도서관의 전통적 기능이 활성화돼야 한다. 우리 국민은 인쇄매체를 잘 읽지 않는다. 책, 신문, 잡지를 사기 위해 매달 쓰는 돈이 가구당 1만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소식은 충격이었다. 신문 1부 구독하는 것말고는 단 한 권의 책도 사지 않는다는 얘기 아닌가. 반면 오락 분야에는 매달 10만원 가까운 돈을 지출하고, 술 마시는 데는 5만6000원, 몸을 가꾸는 데는 6만원을 지출했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 전체 소비 지출에서 서적과 인쇄물 구입이 차지하는 비율은 1.5%로 우리의 세 배였다.
지난해 7월 리서치컴의 설문조사 결과 우리나라 성인이 한 달 동안 읽는 책은 평균 1.3권이다. 2002년 조사의 0.8권에 비하면 조금 늘어난 수치이지만, 미국 6.6권, 일본 6.1권, 프랑스 5.9권에 견주면 창피할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우리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훨씬 적은 중국도 2.6권이나 됐다. 한국은 유엔이 정한 평균 독서량 순위에서 세계 166위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더욱 큰 문제는 청소년이 책 읽는 것을 더 싫어하고 깊이 생각하는 것도 싫어한다는 사실이다. 인쇄매체를 멀리할수록 국민의 전반적 문화 수준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책이 없는 집은 영혼이 없는 신체와 같다”는 키케로의 금언을 아프게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책은 세상과 가장 깊숙이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자 통로다. 책을 읽는 행위는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는 행위와 일견 비슷해 보인다. 웹에서 텍스트화한 정보를 읽어내려가는 것도 그 효과로 보면 독서와 똑같다는 관점이다. 과거의 책이 오늘날의 인터넷이기 때문에 독서량이 줄어드는 현상 자체를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책과 인터넷 사이에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인터넷으로는 눈의 피로 등의 문제로 장시간 집중해서 무엇인가를 읽기 어렵다. 인터넷으로 보는 텍스트는 간단하고 단순 주입식이다. 반면 종이로 된 책(인쇄매체)을 읽는 행위는 모니터에 뜬 글을 읽는 행위에 비해 더 장시간, 더 집중하게 한다. 그 결과 훨씬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읽은 정보를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고 이를 자신의 종합적 사고와 교양의 확장으로 이어지게 하는 점에서도 ‘독서’가 ‘인터넷 보기’보다 훨씬 더 우위에 있다.
이는 인터넷의 시대에도 인터넷이 책을 대체할 수 없으며 책은 여전히 유효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존재이유가 된다. 사람들은 책을 읽는 과정에서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고 반추함으로써 새로운 지식을 생산한다.
특히 산업사회가 지식정보화사회로 이행하고, 근력(muscle power)보다는 지력(brain power)의 발언권이 커짐에 따라 독서의 중요도는 앞으로 더욱 높아져야 한다. 인터넷에 많은 정보가 떠다니고는 있지만, ‘고급 정보’는 여전히 인쇄매체의 형태를 통해 유통될 수밖에 없다. 고급 정보는 그 본질적 특성상 ‘불특정다수와의 무차별적, 공짜 공유’라는 인터넷의 속성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지식정보화사회에선 지력이 가장 중요한 생존의 무기가 된다. 그런데 지력은 어떤 것을 아는 것 그 자체라기보다는 정보를 수집·분석·가공·이용할 수 있는 창조적 능력을 의미한다. 이런 능력은 독서라는 행위를 통해서만 형성·강화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