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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증언

대한민국 이공계 연구실의 한숨소리

“대학원에서 ‘창의적 연구’를 하겠다고? 그건 뭘 몰라서 하는 ‘상상’”

  • 천태영 충북대 강사·생물학

대한민국 이공계 연구실의 한숨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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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과정 등 2∼3년의 과정을 밟고 졸업하는 연구원에게 그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무척 짧은 시간이다. 그냥 실험만 하다가 자기 논문 주제에 맞게 결과를 추려 논문을 내고 졸업하면 그만이다. 그러다 보니 터줏대감으로 눌러앉은 선배들의 충고가 귀찮다. 그냥 자기 뜻대로 실험을 진행하고 싶어한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잔소리하는 선배 연구원이나 지도교수가 미워지는 것이다. 사소한 일에도 감정이 들어가 사이가 점점 멀어진다. 결국 과정을 못 마치고 연구실을 떠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대부분의 연구실은 ‘변화’에 매우 민감하다. 실험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수립한 연구방법을 고수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학원에 진학해서 창의적으로 무언가를 연구해보겠다는 생각은 이루기 어려운 ‘상상’이다. 박사과정 정도가 되어도 지도교수가 고려해줄까, 말까다.

박사급 연구원에 ‘충성서약’ 강요

대학원생들은 지도교수의 지시에 절대복종할 수밖에 없다. 지도교수는 학생의 논문을 지도하고 대학원 생활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기에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학생들에게는 규율이요 철칙이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유교문화적 존경심은 대학원 과정에 오면 저절로 몸에 배게 된다.

요즘은 좀 상황이 다른가 보다. 최근 한 대학의 연구실에서 연구실 구성원 전원에게 각서를 쓰게 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문제의 각서는 지도교수의 지시사항을 잘 따르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일종의 ‘충성서약’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각서에 대해 문제를 삼고 불만을 토로한 사람은 그 연구실에서 박사 후 연수과정(Post-Doc.)을 밟고 있는 연구원이었다. 박사급 연구원에게까지 각서를 쓰라고 했다는 얘기라 좀체 믿기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이 일이 벌어진 것은 황우석 교수 파문이 막 불거졌을 때다.



문서화한 각서의 효력이 민사소송으로 갈 수 있다고 보면 이제는 대학원생이 지도교수의 지시사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법에 의해 처벌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황우석 교수가 자신이 데리고 있던 김선종 연구원을 지목해 검찰에 고발한 것을 보면 이미 그런 일이 현실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과학 강연회나 과학영재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왜 과학고나 영재고에 진학하려 하는가” 하고 물으면 대답은 한결같다. 의대에 진학하기를 바라는 부모님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리학, 화학, 수학, 생물학 같은 순수기초학문 분야에서 뭔가 해보고 싶다고 말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우리의 암담한 과학교육 현실이다.

교육과정이 대학입시 위주로 시행되는 한, 제대로 된 과학교육이 이뤄지긴 어렵고, 그런 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이 과학자의 길에 들어섰을 때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난감하다. 왜곡된 교육정책으로 인한 부작용은 이미 이공계 대학 신입생들의 기초학력 저하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수학의 미적분도 모르고 공대에 진학하다니 참담할 뿐이다.

아무튼 어려운 과정을 다 거치고 박사학위를 받으면 진로가 몇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속한 연구 분야에서 정말 실력이 있다고 인정받고 논문 실적도 우수하다면 즉각 교수로 임용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게 현실이다. 교수 자리 하나를 놓고 선배 교수들이 저마다 자신의 인맥을 대다 보니 전혀 예상치 못한 후보자가 임용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필자가 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중 잠깐 귀국했을 때 한 방송사 시사 프로그램에서 대학교수 임용에 얽힌 돈거래를 다룬 적이 있다. 국립대, 사립대, 심지어 전문대 교수 임용에까지 ‘가격’이 책정되어 있다는 방송을 보며 대학교수의 꿈은 내 머릿속에서 멀어져갔다.

나와 함께 연구실 생활을 하다 먼저 박사학위를 받은 선배 한 분은 지방 전문대에서 전임교수 임용 제안을 받고 면접을 하는데, 학교측에서 대놓고 돈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학교측 요구에 응하지 않았더니 전임교수 자리엔 다른 사람이 임용됐다.

교수 임용 다음으로 많이 선택하는 진로가 박사 후 연수과정, 이른바 ‘포스트닥’이다. 대학이나 연구소 연구원으로 일정액의 연구비를 지원받으며 활동하는 것이다. 포스트닥은 국내에서 할 수도 있고, 해외에서 할 수도 있다.

해외에서 연구활동을 해보면 국내 연구실 문화와 워낙 현격한 차이가 나기 때문에 대개는 귀국하지 않으려고 한다. 외국에서는 기초과학 분야 연구비를 풍족하게 지원하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주제를 갖고 마음껏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 연구원의 창의력과 연구에 대한 집중력이 향상되는 건 당연한 이치다. 자기가 생각한 것을 연구하고 실험하는 데 시간가는 줄 모르는 건 당연하다. 밤샘 작업도 마냥 즐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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