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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고 神官의 한국 유적 답사기

“日 건국신, 백제·신라에서 건너온 흔적 확인”

  • 마유미 쓰네타다 일본 야사카 신사 궁사

일본 최고 神官의 한국 유적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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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고 神官의 한국 유적 답사기

야사카 신사(人坂神社) 입구. 일본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이 신사는 신라신 스사노오노미코토를 모신다.

또 신라, 백제와 패권을 다투던 고구려가 강성해져 남하하던 시기가 656년 전후라는 점도 주목된다. 이와 함께 우두산 인근의 ‘바리뫼’라는 언덕은 우두천왕비(牛頭天王妃)인 ‘하리채녀(頗梨采女)’와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 좀더 면밀한 조사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튿날 속리산 법주사를 찾았다. 그곳에는 무쇠로 만든 높이 16m의 당간(幢竿)이 우뚝 서 있다. 법주사에서는 법사(法事) 때 그 당간에 흰 깃발을 단다고 한다. 하지만 법주사의 법사는 고대 제사와 크게 다르다. 과연 그 옛날에 깃발을 달기 위해 이처럼 높은 당간을 세웠을까. 확인할 수는 없지만 당간은 신사(神事)를 위해 세워진 상징물일 가능성이 높다. 드높은 기둥은 신이 내려온 소시모리인 동시에 우두산의 상징일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당간이나 당간지주의 흔적은 백제문화권인 충남의 부여와 공주, 가야문화권인 고령 등지에서도 나타난다. 전북 익산의 미륵사지에는 당간을 세웠던 지주가 남아 있다. 미륵사는 백제 멸망 뒤인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명찰이다. 이곳 경내 9층 석탑 앞 좌우에 세워진 2기의 당간지주는 소시모리 또는 춘천의 우두산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아직 그 구체적인 연관성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 없다.

마찬가지로 일본 스와(諏訪) 지방의 ‘어주제(御柱祭)’, 이즈모 다이샤(出雲大社) 신궁에서 거행하는 ‘심어주(心御柱)’, 그리고 야사카 신사 ‘기온 마쓰리(기원제)’ 때의 호코(·양쪽 면에 칼날이 서 있는 창) 등이 소시모리 또는 우두산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연구가 필요하다.

신화 속 구마나리는 백제 공산성?



‘일본서기’ 신의시대 편(上 제8단 1서-5)에는 “스사노오노미코토는 구마나리(熊成) 봉우리에 계시다가, 드디어 네노쿠니(根國·뿌리의 나라)에 들어가셨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구마나리는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이즈모(出雲)’, 고사기의 ‘구마노(熊野)’ 등과 같은 지역의 다른 표기로 해석되고 있다. 또 구마나리는 음 그대로 ‘久麻那利’로 쓰고 읽기도 한다.

‘일본서기’(雄略 21년 3월 초)에는 “천황은 백제가 고구려 때문에 파멸당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구마나리(久麻那利)를 문주왕(文州王)에게 주어 그곳을 터전으로 나라를 구원해 일으켰다”는 기록이 있고, 그 각주를 보면 “구마나리는 임나국(任那國)의 별읍(別邑)이다”라고 돼 있다.

유랴쿠(雄略)왕 21년은 서기 476년이다. 그 한 해 전인 475년, 백제는 고구려의 공격을 받고 광주(廣州) 도성을 함락당해 웅진(지금의 공주)을 거쳐 다시 538년에 사비(扶餘)로 왕도를 옮겼다. 이때 웅진에 머물던 63년간 도성으로 사용했던 곳이 충남 공주의 공산성(公山城)이다.

결국 각주에 나타난 임나의 별읍은 시기상으로나 역사적 배경을 기준으로 볼 때 공산성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일본 역사학자 쓰다 소우키치는 이에 대해 “일본의 권위와 은혜를 나타내고자 한 문장이며 거짓 가설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공주 시내로 들어서는 다리 앞에는 곰(熊) 석상이 서 있다. 공주가 구마나리이며 한자로는 ‘熊成’이고, 그곳이 바로 ‘일본서기’의 신화에 나오는, 스사노오노미코토가 바다를 건너기 전 마지막으로 머문 땅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공산성은 금강 기슭에 있는 산성으로 과거 백제 때는 웅진성이라고 하던 곳이다. 성곽 총연장은 2660m이고, 쌍수정과 그 앞에 왕궁터와 임류각 및 성문의 흔적이 조금 남아 있다. 또 이곳에는 서기 523년과 526년에 각각 사망한 무령왕과 왕비를 안장한 무령왕릉이 있다. 1971년 종산리 고분군의 배수로 공사 중 우연히 왕과 왕비의 묘지석이 발견돼 뒤늦게 대규모 매장유물이 발굴됐다. 그런데 무령왕릉의 입구 옆에도 곰의 석상이 놓여 있어 눈길을 끌었다.

실패한 일본의 ‘백제 구하기’

한편 ‘일본서기’에는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받던 백제를 구하기 위해 일본에서 지원군을 파병해 나당연합군과 싸웠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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