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김서령이 쓰는 이 사람의 삶

지상에 없는 한 남자, 그만을 향한 50년

연애편지, 한 달의 동거, 딸, 그리고 영원히 움직이지 않는 사랑

  • 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지상에 없는 한 남자, 그만을 향한 50년

2/8
지상에 없는 한 남자, 그만을 향한 50년

김씨가 교통사고로 숨진 뒤 49재에 부인 최옥분씨(소복 차림)와 지인들이 모였다.

속초 가는 길은 지난 장마로 곳곳이 통제되고 미시령 하나만 열려 있었다. 김종후도 서울과 속초를 여러 번 오갔다. 당시 미시령엔 길이 없었고 동서를 잇는 차도는 진부령 하나뿐이었다. 가는 길 내내 김종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평론은 선진적이었다. 지금 읽어도 손색없는 문제의식이고 논리 전개였다. 단어들은 야물고 문장은 우렁차다. 행간에는 얼마간 시니컬한 기운도 흘렀다. 동서양을 통틀은 방대한 독서량에 이십대 청년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사색의 깊이가 읽혔다.

1958년 1월 초 현대문학사에 들렀다가 속초로 내려가던 김종후는 자동차 사고를 당한다. 우리는 어쩌자고 이렇게 전도유망한 젊은 문인들을 자꾸만 사고로 잃어버리는가. 오겠다던 날짜에 도착하지 않아 초조하게 그를 기다리던 최옥분은 라디오 뉴스에서 사고소식을 듣는다. 홍천에서 버스가 뒤집혀 수십명이 죽거나 다쳤다는 소식, 우리가 요즘도 자주 듣는 그런 뉴스였다. 예감이 이상했던 그녀는 서둘러 홍천으로 달려간다. 김종후는 품안에 들어있던 원고 표지에 씌어있던 ‘김운학’이란 이름표를 달고 거기 눕혀져 있었다. 얼굴이 으깨져 신원을 알아볼 수 없었다. 원고더미만이 그를 증명했다.

그 순간을 최옥분은 내게 이렇게 증언했다. “아무 생각도 안났어요. 머리가 아니라 다리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차라리 불구가 됐다면 평생 곁에서 함께 살 수 있었을 것을. 그 생각만 자꾸 들더라고요.”

오대산 월정사에서도 총무 희윤스님이 달려왔다. 똑같이 라디오 방송을 듣고서였다. 그들은 함께 시신을 수습하고 화장한다. 그리고 유골을 낙산사로 가져온다. 낙산사는 그가 최옥분을 처음 만났던 곳이었다. 그가 죽고 나서야 최옥분은 비로소 김종후의 아내로서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있었다.

소복을 입고 무표정하게 유골함을 들고 서있는 20대 중반의 처녀! 아니 뱃속에 두 달 된 아이가 자라고 있는 젊은 새댁, 그녀는 평생을 세상에서 사라진 사랑했던 남자와 더불어 살았다. 무덤을 네 번이나 옮겨가며 그의 곁에 철저하고 완벽하게 밀착했다. 이날 월정사 총무스님은 두 해 전 김종후가 평론으로 등단했던 현대문학사에 기별을 보낸다. ‘문학평론가 김종후 사망. 신문광고 요망함’.



현대문학의 주간이었던 조연현은 나중 그 일을 이렇게 기록한다.

“바로 2, 3일 전 현대문학에 들러 속초로 간다고 명랑한 얼굴로 떠났던 김종후의 별안간의 사망통지는 충격과 함께 우리에게 여러 가지 수수께끼를 가져다 주었다. 그것은 그의 죽음이 심상한 것이 아니라는 예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첫째 그는 2, 3일 전까지 건강했고, 둘째 전보의 발신인과 사망 원인이 전혀 기재되어 있지 않았고, 셋째 그의 사망 장소가 전보 발신처로 미뤄보아 목적지가 아닌 홍천인 점 등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서정주씨와 안수길형은 우선 홍천으로 달려가야겠다고 말했지만 무작정 가봐야 허사가 될 것 같아 우리는 어서 다른 소식이 당도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수도생활 택한 엘리트

월정사에서 수도생활을 하던 김종후 ,그는 삭발하고 승복을 입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승려는 아니었다. 1955년 현대문학에 ‘김동인론’을 발표하면서 평론가로 등단한 그는 ‘동아일보’에서 특이한 모집광고 하나를 본다. 오대산 수도원이 경비를 일절 받지 않고 5년간 불교연구를 할 대졸이상의 인재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동양철학을 철저하게 공부하고 싶어서” 그는 거기 응시한다. 아니 어쩌면 5년간 숙식제공이란 단서에 더욱 매력을 느꼈던 건지도 모른다.

28세의 김종후는 서울에서 강릉행 버스를 타고 열 시간이나 걸려서 월정사 입구인 진부에 도착한다. 거기서부터 월정사까지는 도보로 걸어야 하는 길이었다. 최옥분 할머니가 아직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일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56년 4월 7일. 3시에 월정사 도착. 눈이 나리다. 중도에 웬 집 마루에서 김밥을 먹다. 모두 반가히 맞아주다.”

2/8
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연재

이사람의 삶

더보기
목록 닫기

지상에 없는 한 남자, 그만을 향한 50년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