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이래 최근까지 한국의 대중외교를 대미외교와 연결해 심도 있게 분석한 글을 소개한다. 필자는 박정희 대통령 시기 미국으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에 대한 한국의 전략적 접근이 시작됐으며, 이는 정통성 문제에 시달리던 전두환 정부 들어 무역분야로 제한됐다가 노태우 정부에 들어서면서 ‘집착’에 가까운 한중수교 추구로 전환됐다고 분석한다. 이후 1차 북핵위기와 함께 혼돈에 빠진 한중관계는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을 위해 전략적 행보를 구사하면서 상대적으로 긴밀해지는 듯 보이는 결과를 낳았고, 이는 노무현 정부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대미외교의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으로 연결됐다가 ‘동북공정’ 논쟁을 통해 다시 혼돈에 빠졌다는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의 ‘상대적 중요성’을 논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등장한 것이야말로 전략적 외교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 필자는 이제 중국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 한중관계를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때라고 제안한다. |

문제는 이렇게 답답한 상황이 지난 3~4년 동안에 그저 뚝딱하고 만들어진 것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 시행된 여러 정책들이 그 촉매로 작동했다는 점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훨씬 이전부터 대(對)미국 및 대(對)일본 관계의 여러 난맥상이 드러나고 있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만일 이와 같은 문제의식이 상당 부분 적실하다면 우리에게는 시급히 점검해야 할 또 하나의 영역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한국과의 협력과 공조가 잘 이루어져온 것으로 평가받는 중국과의 관계이다. 과연 한국에 ‘대(對)중국 전략’은 존재했고 또 존재하고 있는가.
이미 세계의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한국에는 최대 교역국이자 최대 투자 대상국이며, 경제뿐 아니라 외교관계에서까지 그 영향력이 이미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가이다. 중국이 한국에 중요해지면 해질수록 우리는 더욱 안정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치밀한 전략적 사고를 키워야 하며 단순한 ‘경제주의’적 발상을 과감히 벗어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미 30여 년의 역사에 녹아들어 있는 한중관계라는 상호인식의 틀 속에서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에 대한 전략적 사고(思考)의 단초를 보여준 박정희 대통령 시기로부터 30여 년의 기간을 자세히 되짚어보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대외전략의 결정요인
한 국가의 대외관계에 배태된 전략적 사고를 체계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일은 그 나라를 ‘합리적 국가(rational state)’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합리적 국가란, 복수(複數)의 해결책 중에서 정책결정자의 선호에 따른 우선순위에 기반해 최소의 비용으로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을 선택하는 능력을 가진 국가를 의미한다. 한국도 합리적 국가의 범주에 속한다는 전제를 수용한다면 이제 우리는 한국의 핵심이익 달성을 위해 소요되는 비용의 범위 및 그 선호의 우위를 규정해야 한다.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핵심이익도 크게 생존(안보), 발전(성장), 그리고 국가의 비전 모색(國格) 등 세 가지 측면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내부적 균형’(즉 자위력의 증대)을 통한 안보의 확보가 관건인 것으로 인식되는 정도에 비례하여 막대한 예산을 국방건설에 투입하는 것은 정당한 선택으로 받아들여진다. 반면 경제 성장이 가장 중요한 목표로 인식될 경우 ‘외향적 균형’(즉 타국과의 동맹 결성)을 통해 안보를 확보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인 수단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후자의 경우 타국에 대한 ‘의존 비용’의 증가는 수용 가능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